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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큰 무리 3 (계 7:9-12)

작성자agaser|작성시간14.05.11|조회수228 목록 댓글 1

셀 수 없는 큰 무리 3 (계 7:9-12)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하더라


이 시간에도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창 13장입니다. 창13:16에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티끌을 셀 수 없듯이 셀 수 없는 복 받은 이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오늘은 이 자손들을 구원하기 위해 도운 모든 천사가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12절 말씀입니다.

 

12절 함께 읽으십시다.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하더라.” 여기 여기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의 의미는 “영원토록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전후의 아멘을 비롯하여 열거된 7가지를 영원토록 드리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런 영광을 돌렸다는 것은 먼저는 그와 같은 은사를 받았거나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하나님께 돌린 이 영광은 천사들이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돌린 말씀이 아닙니다. 여기 7가지 이상의 조목 하나 하나 모두 그들의 섬김의 사명인 복음사역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글자도 가감하지 않고 해석되어야 하고 이것은 사역자의 필수 구비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7~8가지 모두에게 명령하고 있는 "세세토록 있을지어다."는  “영원토록 드리라.”는 의미인데, 시간적인 면 뿐 아니라 본질면에서도 참되고 양적인 면에서도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상의 사항은 사역자의 절대적인 구비사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면 오늘 말씀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천사론을 통해 우리 사역자들이 천사에게 배운다는 측면에서 말씀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복음사역자가 구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절대 믿음입니다.


12절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여기 보면 천사들이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처음 아멘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찬양에 대한 화답이요, 두 번째 아멘은 자신들의 찬양에 대한 아멘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화법 자체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알파와 오메가는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뜻에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세토록 변치 않아야 합니다. 아멘이 무슨 뜻입니까? 아멘이 기도에 쓰일 때는 ‘진실로 이루어지이다.’하는 의미요, 말씀에 쓰일 때는 ‘동감입니다. 동의합니다. 믿습니다.' 명령에 쓰이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락의 의미입니다. 거기다 아멘의 귀한 점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이 아멘으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는 어느 것 하나도 믿음 없이 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6:7-10에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하셨습니다.

 

믿음의 훈련을 위해서 무전여행을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알지 못하고 단벌이어야지 옷 두 벌 이상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뭘 모르는 것입니다. 사치할 필요는 없지만 믿음 안에서 필요한 만큼 공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사역자는 일거수일투족 하나까지 믿음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본격적인 사역에 있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절대 아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부름 받았지 자신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 부름 받은 것 아닙니다. 요나처럼 자기 개성대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물가능한 듯한 일을 맡겨도 하나님의 종들의 입에서 아멘만 나와야 합니다. 모세는 못한다고만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내 힘으로는 못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동역할 수 없고 쓰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절대 믿음 절대 순종, 이것이 하나님의 종의 첫째 덕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아멘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뜻에는 아멘만 하셨고 그대로 순종하셨습니다. 다른 군말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고후1:18-20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했습니다.


2. 절대 찬송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낱말이 “찬송”입니다. 이 역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구원 받은 사건, 즉 구속의 은총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 받은 출애굽 사건이 항상 그들의 찬송 제목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하는 십자가 부활 승천 임마누엘 재림의 복음이 곧 찬송의 제목입니다.

 

그래서 엡1:3-7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하신 그 은혜를 항상 절대 찬송해야 합니다. 복음에 절대 선 자 만이 복음의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은 우리가 세세토록 찬양할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이 우리의 노래가 되지 않는다면 스스로 누리지 않으면서 전도만 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들이 하는 말은 들어도 그 행하는 것은 본 받지 말라 하시던 바리새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3. 절대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세 번째 천사들은 “영광”을 세세토록 드리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구원 받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1:2-4에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끊임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잠시라도 내가 영광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영광을 1초라도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칭찬을 듣고 1분 1초라도 가슴이 뛴다면 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큰일을 이루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행 16장을 보면 빌립보에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가 바울과 그 일행을 따라다니며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 그 귀신을 추방했다가(16-18절) 주인의 고소가 들어가 매 맞고 투옥되는 등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이처럼 높임 받을 때 견딜 수 없어야 합니다.

 

행 14장에도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한 앉은뱅이를 고치자 도시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무리들이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면서 바나바를 제우스라 바울을 헤르메스라 하면서 소를 끌어 오고 화환을 가져와서 사도들에게 제사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렀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몰라 지켜보다가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 때 두 사도는 옷을 찢어 가슴을 보여주며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라면서 그들의 행위를 말리고 전도하던 사건에서 보여주듯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께서만 찬송을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전도해 주어서 감사하다. 기도해 주어 감사하다. 도와주어서 감사하다. 그래서 은인이라 칭송해도 그 칭송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전 재산을 드려 예배당을 건축한 어느 성도는 사람들이 자기를 은인으로 생각할까봐 옮겼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사용된 하나님의 도구일 뿐 우리가 영광을 차지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계22:8-9에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 자질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4. 절대 지혜로워야 합니다.


네 번째가 “지혜”입니다. 인간이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있어서 하나님께 지혜를 돌릴까? 욥4:18에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신다 했는데,,, 그러나 하나님께 세세토록 지혜를 돌린다는 것은 사역자가 지혜를 절대 구비사항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 말입니다. 사역자가 가질 자질 중 하나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10:16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신 대상은 불신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어버린 양 이스라엘이라는 목회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들어가거든 평안하기를 빌라 하셨을 때 그 집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가 불안할 때 그 피해는 관여 여부를 떠나 고스란히 목회자가 받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의 30년 목회고백을 보니까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습니다. “목사는 하나님 외에 내 편이 없다. 개척목회는 일꾼 없어 힘들고, 부임목회는 일꾼 때문에 힘들다. 목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입이 무거워야 한다. 일군이 필요하다고 아무나 세우지 말라. 처음 일군을 세울 때 필히 한 사람은 세우지 말라 나중에 대감 노릇하기 쉽다.” 등등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기도하되 염려하지 않고 성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0:19-20에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하셨습니다. 지혜가 없어 하나님께 돌릴 지혜도 없다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5. 절대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와”, 이 감사를 사역에 적용해보면 가령 우리가 복음사역을 할 때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감사하고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옳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인지 아니면 마음을 찌르는 대적자인지 둘 다인지 그 이상인지 모르지만 이것들을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고후12:9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하시는 일은 무조건 찬양해야 합니다.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을 허락하실 때 요한은 기성교회의 사역은 핍박으로 다 막히고 난폭한 죄수들이 우글거리고 외롭고 적막한 밧모섬에 내팽개쳐졌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을 통해 천국만 사모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주의 날에 계시를 열어주시며 요한계시록이라는 놀라운 책을 쓰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롬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통하든지 어렵든지 열어주시든지 막으시든지 무언가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뜻을 찾고 찬송만 하시기 바랍니다.

 

큰 목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그토록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때마다 미리 미리 막으셔서 지원서 하나 내놓지 못했지만 비교적 조용한 곳에서 사이버로 주의 종들을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목회현장에서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도 식모의 불찰로 일생 소경이 되었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영의 눈이 열려서 신령한 노래를 많이 썼습니다. 그녀는 아홉 살 때 기도하기를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천국에 가면 더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이렇게 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눈에 보이는 상황만 보고 반응한다면 하나님과 동역할 수 없습니다. 사역자는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부동의 확신 속에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살전5:18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6. 절대 귀히 쓰임 받아야 합니다.


존귀와” 하나님께 세세토록 돌릴 것은 존귀입니다. 성도는 높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복음사역자 역시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점에서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의 종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강하게 붙들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역자니까 무엇보다 은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존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그럼 어떻게 성령과 그 은사가 임합니까? 예수님이 존귀해 짐으로 성령과 그 은사가 임합니다. 행2:33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했고, 엡4:8에도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예수님께서 지극히 높아지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은혜와 은사로 충만하려면 예수를 주로 섬겨 높이고 초대교회처럼 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며 존귀하게 해드리세요. 하나님을 높여드려야 은혜와 은사가 임합니다. 은사 받아야겠다는 욕심이 앞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이 은혜의 주인이요 은사의 주인이십니다. 덩굴째 굴러오는 이 비밀을 모르고 체험과 은사 위주가 되면 사탄이 임하는 신비주의 집회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여쭈세요. 이것이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사가 매력적이어도 내 은사를 찾아야 합니다. 은사를 말씀 안에서 적절히 사용할 때 우리의 사역은 놀라운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제자들도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전할 수 있었습니다.


7. 절대 능력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권능”을 하나님께 권능을 돌리라 했습니다. 권능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바로 능력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시103:20-21에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벧후2:11에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한 말씀에서 천사들도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역자라고 능력이 같은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서로 존중하고 도움을 받고 배우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권능이 있습니다. 막16:17-18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우편 예수 안에서 하늘의 사람이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 이름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은혜나 권능은 우리 몸과 마음을 드린 것만큼 나타납니다. 롬6:16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을 드려 섬긴 만큼 거룩해지고 권능으로도 충만해집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만 아니라 입으로도 음성을 발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보이는 기적을 원한다면 마음과 아울러 입술로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마음으로만 하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기적이 필요할 때 기도나 명령을 발성으로 해보세요. 입술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입을 닫고 있으면 권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도 섬기고 발성으로도 찬양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외우면서 뜨겁게 섬기시기 바랍니다.


교인들의 노령화로 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슬픈 현상입니다. 젊은이는 소리의 수용능력이 큽니다. 그러나 노인은 고독한 것도 싫지만 반대로 말하는 것도 떠드는 것도 손뼉 치며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싫습니다. 거기에 맞추면 교회는 침체의 무덤이 되고 맙니다. 심하지만 않다면 시늉이라도 따라 해주면 목회자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어른 중심으로 나가고 예배는 젊은이 중심으로 나가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드려 하나님을 섬김으로 절대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8. 절대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여기 힘이 나오는데 여기 힘은 육신의 힘도 되겠지만 특히 마음의 힘입니다. 마음의 힘은 위로를 받거나 마음의 꿈과 비전이 주어질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 생활할 때 해방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힘을 잃었습니다. 비전을 상실했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는 사40:27-31에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사역자에게 비전이 주어지면 새 힘이 생깁니다. 성령이 임하면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행2:17) 했습니다. 비전을 말한 것입니다. 노년의 바울을 보세요. 쉬어도 될 만한 나이인데 행19:21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런 비전이 있었기에 그는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3년 반 동안 사역자로서 온전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아멘만 하십시다. 아버지 사랑과 예수 복음에 항상 찬송하십시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십시다. 그리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성령의 은사로 충만하고, 마음과 몸과 입술 드려 권능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으로 새 힘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역자로서 소양을 갖춘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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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agaser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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