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도피성은 없는가?
<새 기도원운동에 대한 조명>
구약 이스라엘에 도피성 제도가 있었는데 도피성이란 부지중에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위한 피신처였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예수 믿으면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도 구원을 받고 그 안에서 생명과 안식과 영광을 누리게 됨을 알려주는 진리임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현대인에게도 이와 흡사한 도피성이 필요하다. 온갖 공해와 질병으로 죽어갈 때 와서 쉼과 고침을 얻고 영적으로 재충전 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 역할을 기도원이 했었는데 지금은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다. 그만큼 살만해졌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꿈꾸는 기도원은 도피성을 닮은 것이다. 갈릴리에 게데스라는 도피성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거룩을 의미한다. 이처럼 영적 거룩은 물론 시설이 친환경이어야 한다. 사람 잡는 발열필름이나 열선을 치우고 황토로 짓든지 발라서 불신자라도 하룻밤 머물고 싶어 하는 곳이어야 한다.
다음은 에브라임에 세겜이라는 도피성은 어깨라는 의미다. 당시 사람들이 짐을 어깨에 메었는데 현대인의 가장 무거운 짐인 병부터 벗겨주어야 한다. 신유의 은사도 좋고 마시면 낫는 신비의 약초수도 좋고, 한 겨울에 노천에서 자도 춥지 않고 치료되는 그런 찜질방도 있어야 한다.
유다에 헤브론이라는 도피성은 연결(joint)을 가리킨다. 그런데 연결되지 않고 다시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 닮은 영성이면 됐지 반듯한 시설 짓고 유명 강사 초청하여 연중무휴로 집회하려는 경영인의 천박한 꿈을 이루려 달달 볶은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그냥 재우고 그냥 먹여라.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하라.
르우벤 지파에 베셀이라는 도피성은 요새지를 뜻한다. 이처럼 다 타락해도 타락하지 않던 겐족속이 있었듯 다 타락해도 참 믿음을 지키며 세속화 공산화 이슬람화와 맞서 교회와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곳이어야 한다.
길르앗에 라못이라는 도피성은 들어 올리고 높아지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높이 되신 예수 안에서 함께 영광과 승리와 복락을 누리며 왕 노릇하게 하셨다는 그 복음을 날마다 가르치고 강조하여 하늘에 속한 삶을 살게 해야 한다.
므낫세 지파의 바산에 골란이라는 도피성이 있는데 기쁨 혹은 희열을 뜻한다. 이처럼 오순절 마가요한의 다락방과 같이 성령운동이 일어나 기사와 이적으로 복음을 증거하여 주 앞으로 돌아오게 함으로 기쁨과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이처럼 죄와 실패와 질병에게 쫒기고 있는 이들을 위한 도피성과 같은 기도원을 꿈꾼다. 한국에 폐허가 된 기도원을 다시 일으키고 누구든지 부담 없이 와서 마음껏 영육 간에 은혜를 받다가 돌아간 후 다시 오고 싶어 하고 올 수밖에 없는 교회와 기도원으로 거듭나도록 이를 위한 노하우를 준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