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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단 2: 22 깊고 은밀한 일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1.08.15|조회수128 목록 댓글 0

단 2: 22 깊고 은밀한 일

 

 

단 2: 22 깊고 은밀한 일 -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

 

 

본 구절은 계시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는 부분으로 하나님과 세상 역사에 대한 모든 비밀은 하나님의 계시 속에서만 부분적으로 드러나게 되며 그 의미 또한 빛 되신 하나님의 조명 속에서만 인지할 수 있게 됨을 시사한다.

 

 

1]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깊고 은밀한 일'과 '어두운 데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시나 신비스러운 예정을 가리킨다. 본 구절은 '빛 되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러한 모든 것들이 밝히 조명되고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시 139: 12 -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딤전 6: 16 -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아멘.

 

본 절에서는 모든 피조 세계를 초월해 계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속성을 찬미한다.

 

'죽지 아니함'의 헬라어 '아다나시안'(*)은 부정 접두어 '아'(*)와 '죽음'을 뜻하는 '다나토스'(*)의 합성어로 '불멸'(不滅) 혹은 '불사'(不死)를 뜻한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밝힌 말이다(Guthrie).

 

또한 '오직'(*, 모노스)이라는 말의 첨가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불멸이 있음을 강조한다. 혹자는 이러한 사상을 히브리적인 사고방식이라 한다. 헬라인들은 사람의 영혼이나 마음은 본질적으로 영원하여 죽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죽음 이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였다(Hanson).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불멸'에 정확히 상응하는 말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히브리적 사고방식을 헬라 말을 빌어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는 시 104: 2의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와 에스겔 선지자가 빛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본 것(겔 1: 4)과 비교될 수 있다.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는 출 33: 20-23과 요 1: 18의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와 요 4: 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다.

 

헬라 철학에서도 이러한 신(神)의 불가시적(不可視的)개념을 찾아 볼 수 있으나(Hanson), 신약에 언급된 하나님의 불가시적 개념의 연원은 구약 히브리 사상에 있다.

 

대부분의 송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지만 여기서는 '존귀와 능력'을 돌림으로써 결론을 맺고 있다. 이것은 15의 '능하신'이라는 말과 잘 조화를 이룬다. '아멘'은 영광송의 종결을 나타낸다(1: 17).

 

요일 1: 5 -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2]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이러한 계시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 인류의 구원이며 그 계시의 절정을 역사 안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롬 1: 3-4 -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갈 4: 4-5 -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 때가 차매

 

''에 해당하는 '크로노스'(*)는 2절의 '아버지의 정한 때'(*, 프로데스미아)와 연관이 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작정한 기간이 지났음을 시사한다. 또한 때가 차기 전에 일정한 기간 동안 율법에 매여 있었던 암담한 상태가 끝났음을 암시한다. NIV는 본문을 '시간이 충만하게 임하였을 때'(When the time had fully come)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함으로 그들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무기력과 곤고함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때가 차매'란 말의 헬라 원어를 직역하면, '그 때의 그 충만이 이르매'이다. '그 충만'은 관사가 있어서 특수한 '충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때의 그 충만'이란 것은 모든 시대들의 중심점으로서 의미심장한 그리스도 강림(初臨)의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미루어 보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모든 시대들은 각각 뜻 있는 토막들이며, 그것들은 또한 뜻 있게 연락되어 있다.

② 그 모든 시대들은 결국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업을 목표하고 흐른다.

 

때가 찼다는 것은 그 전에는 아들이 후견인이나 재산 관리인 아래 있어야 했던 어린 때였고, 이제부터는 아들이 성장하여 스스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

 

(2)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바울 서신에서 '보내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헬라어는 세 가지가 있다. '사도'(*, 아포스톨로스)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설명해 준다.

 

① '아포스텔로'(*)는 특별한 임무를 주어 보낸다고 하는 데에 역점을 주고 있다.

 

요 17: 18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② '펨포'(*)는 하나님이 아들을 보낸다는 의미나 아버지께서 성령을 보내신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단지 보낸다고 하는 사실에 역점을 두고 있다.

 

롬 8: 3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요 14: 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③ 본 절에서 사용된 '엑사포스텔로'(*)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 그를 보낸 사람이나 장소, 사회적 지위에 귀속되어 있다는 점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에 본 절의 '엑사포스텔로'는 아들이 하나님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것과 그를 보낸 실존적 공간, 즉 하늘나라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으로 본다(E. Huxtable).

 

눅 1: 53 -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행 7: 12 -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행 11: 22 -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 아들을 보내사'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아무나 세상의 한 인간을 당신의 아들로 삼으신 것이 아니었음을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이 입증하는 대로 하나님의 독생자 곧 그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다.

 

요 1: 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7: 5 -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3)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본 절에는 바울의 기독론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창조물 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묘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낸다.

 

빌 2: 5-6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골 1: 15-17 -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 이것은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 여자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참 사람으로 오셨음을 의미한다.

 

창 3: 15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독생자의 영광을 나타내신 예수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취하신 참 사람으로 오셨다.

 

요 1: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반면 본 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하였다. 즉 '여자에게서'라는 말은 메시야의 계보인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음을 의미하고, 따라서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 13).

 

롬 1: 3 -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본 문장은 앞 문장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완전한 인성을 가진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강조점에 있어서 단지 '사람'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의무를 가진 '유대인'으로 오셨다는 것이다(Longenecker).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께서는 율법 아래 나셨다. 특히 유대인으로 나셨다. 그는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그것은 그가 언약의 백성이며 율법을 다 지킬 의무 아래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율법을 다 지키셨고 율법의 의를 다 이루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삶속에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시고, 죽음으로 율법의 진노를 짊어지셨다(3: 13).

 

마 5: 17-18 -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 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빌 2: 8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본래 인간을 상대한 율법 아래 계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류를 위하여 그 위치에 오셨고, 또 그들을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인류의 죄 값)를 지불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인생들을 의미한다. 율법은 하나님 자신(혹은 하나님의 아들)을 제재할 표준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모든 선(善)의 표준이시며, 모든 진리(眞理)의 표준이시다. '율법'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제재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속량하시고'는 헬라 원어로 '엑사고라세'인데, '사서 자유하게 했다'는 뜻이다. 한자의 '속량'이란 말에 있어서도 '속'(贖)자는 '산다'는 뜻이고 '량'(良)자은 '자유'라는 뜻이 있다. 곧, 율법의 정죄와 속박 아래 있는 자들을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자유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이 자유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을 지킬 책임이 있고, 율법을 지키는 그들의 심리는 노예적 공포심이 아니요, 감사와 사랑을 포함하는 경외심(敬畏心)이다.

 

(6)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의 명분'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오데시안'(*)은 '양자됨'이라는 뜻으로서 신약성경에서 바울만이 사용하였다.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됨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TDNT). 이 말은 '아들로 둠' 곧, 양자 삼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장차 천국 기업을 받을 법적 자격을 가리킨다. 이 말은 롬 8: 15에 '양자'로 번역된 낱말과 같다.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제도와 율법을 순종하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

 

눅 2: 21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셨다.

 

눅 2: 41-42 -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요 2: 13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모세 율법을 지키면서 자라셨을 뿐만 아니라 율법의 속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하나님이 양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주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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