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5: 11 화목하게 하신 5: 12 대표성의 원리
롬 5: 11 화목하게 하신 -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칭의의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릴 뿐 아니라, 또한 미래의 구원의 확실한 보증 속에서 소망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이것이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이요 소망과 기쁨의 삶인 것이다.
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신'이란 표현은 지금까지 바울 자신이 설명했던 '칭의', '진노하심에서의 구원', 그리고 '구원'을 포함하는 의미로 해석해도 별 무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여기서의 '즐거워하다'(*, 카우코메노이)란 말은 2, 3절에서 언급된 동사인 '카우코메다'(*)의 분사형에 대한 해석이다. 본 절에서도 이 동사는 '자랑하면서 즐거워하다'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exalt, MB).
그러면 본 절에서 의미하는 '즐거움'은 구체적으로 어떤 즐거움인가?
이에 대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구속(救贖)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즐거움이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으며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영원한 소망을 바라는 즐거움이다.
바울은 2절에서 이 즐거움을 언급했으며 본서의 다른 구절과 고린도후서에서도 수차례 언급하고 있다.
8: 18에서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8: 24에서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고후 5: 1에서는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하였다.
셋째, 참된 즐거움이다.
현재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은 일시적이요 가변적이며 또한 거짓되고 기만적이나 그 근원과 이유를 하나님께 둔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이요 보증이 있는 즐거움이기에 참되다.
이에 대해 칼뱅(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요 축복 그 자체이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함으로써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 라고 하였다.
6. 아담과 그리스도 ( 5: 12 - 13 )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롬 5: 12 대표성의 원리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칭의의 세 번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다.
바울 사도는 한 사람 아담의 죄의 전가(轉嫁)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대조하면서 이 사실을 증거한다.
1] 그러므로
이는 헬라어 '디아 투토'(*)의 번역으로 어떤 학자는 이 접속사가 6-11절과 12-21절 내용을 하나로 연결해 주고 있다고 본다.(Lenski),
본 절에서 이 접속사의 사용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진술과 본 절부터 진술될 내용은 직접적으로 어떤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디아 투토'를 별 의미 없이 다른 주제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된 단순 접속사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히브리식 문장 전개 방법임을 이미 2: 1의 주석에서 설명한 바 있다. 본 절 초두에 '그러므로'라는 말은 다음 몇 절들에 잘 연결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이 왔다.' 그러나 21절까지 전체를 보면, 그 말의 뜻이 통할 것이다. 즉 '그러므로 한 사람 아담으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으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의와 영생이 왔다.'
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해 새 시대(new aeon)가 시작됨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옛 창조의 시작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오염되었음을 가리킴과 동시에 '죄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3]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 17)고 하셨던 명령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 그 한 사람은 아담이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인간의 타락의 사건을 가리킨다.
세상 곧 온 인류의 죄와 사망은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담의 첫 범죄는 온 인류의 범죄로 간주되었다. 죄와 사망은 불가피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여기서 '사망'은
(1)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2)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한다.
* 엡 2: 1 -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엡 5: 14 -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 골 2: 13 -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 딤전 5: 6 -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 계 3: 1 -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 지옥의 형벌로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 계 21: 8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본 절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망의 개념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6: 23은 마지막 영생과 사망이 대조되어 있으므로 세 번째 사망의 개념이 더욱 타당하다.
자세한 것은 6: 23 주석을 참조하라.
4]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바울은 한 사람에 의해 세상에 들어온 죄가 보편성을 지님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죄의 보편성에 대해 증명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이미 1:18-3:19에서 이미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5]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엘덴'(*)은 일반적으로 '통과하다', '퍼져가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몇몇 영역 성경은 문자적으로 '퍼져가다'(spread to)로 번역하기도 한다(RSV, NASB).
그렇지만 또 어떤 영역 성경은 개역 성경과 같이 '이르렀다'(came to)로 번역하기도 한다(NIV).
어떤 번역을 취하든지 본 절의 의미를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12절 후반에,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왔다'는 말씀은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죄를 지었으므로 죽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인류의 대표인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범죄 하였으므로 죽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 진리는 15절 이하에 반복적으로 증거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