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7: 4 그리스도의 몸으로 7: 5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
롬 7: 4 그리스도의 몸으로 -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당하시고 율법의 의(義)를 이루셨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저주를 이미 당한 것과 같고,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만족시키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서, 즉 율법의 저주와 형벌에서 자유 함을 얻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목적은,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선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함으로 율법의 저주와 형벌에서 자유케 된 것은, 새 생명 가운데서 의와 선을 행하기 위함이다.
1]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바울은 율법이 죽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이 죽어야 그 사람이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 죽는 것은 바로 옛사람인 바, 이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바울은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2]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율법에 대하여 죽음으로써 사람은 율법에서 벗어났다.
위의 비유에서는 율법(남편)이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율법은 죽을 수 없기에 여인이 죽어야 한다(2절 주석 참조). 이 여인도 직접 죽을 수 없고 결국 대신 죽은 자에게 붙어 있게 됨으로써 그 죽음이 인정받게 된다.
그 후에 여인 된 성도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으므로 다시 사신 자와 연합하게 된다. 여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란 표현은 무엇보다도 결혼 관계의 성립을 보여주고 있다.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또한 두 몸이 한 몸으로 연합됨을 가리킨다.
이처럼 바울은 6장에서는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에 대해 추상적으로 설명했으나(6: 3-6). 본장에서는 결혼 관계를 비유하여 보다 구체화 시키고 있다.
3]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맺히게 될 열매에 대한 견해는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혹자는 결혼의 비유의 연속으로 보고 결실로서 '자손을 생산하는 것'과 연관 짓고 있다(Fritzsche, Reiche). 그러나 이처럼 '열매'를 결혼으로 인한 자손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열매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6: 22)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맺는 열매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과 의라고 할 수 있다(Calvin).
즉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의'를 얻고 '거룩'하게 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6장과 본장에서 말하는 '열매'의 본질이다.
'열매'에 대해서는 6: 22의 주석을 참조 비교하라.
어떻게 우리가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율법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를 주관한다(1절). 우리가 죽으면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죽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방법뿐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우리들도 함께 죽은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들은 율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롬 7: 5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 -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육신에 있을 때라는 말은 구원 받기 전의 상태를 가리킨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라는 표현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깨달아지는 죄의 정욕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는 죄의 정욕들이 우리 지체들, 즉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 그리고 몸의 기관들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다.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는 죄성이 우리의 본성 전체를 지배하였었다. 간혹 양심의 가책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무시되었거나 변명으로 무마되었었다.
1]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바울은 항상 '육신'(*, 사릍스)을 '영'(*, 프뉴마)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사용하여 죄와 대항하기에 무기력한 인성과 그에 근거하는 삶의 방식을 나타낸다(8: 3-9).
'육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육신'을 통해서 죄가 왕 노릇하기 때문에 '육신'은 '죽을 몸'(6: 12)이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인간'에 대해서 '육신'이라고 했으며, 또한 그리스도를 알지만 율법에 종노릇하며 죄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이 말을 적용했다.
* 고전 3: 1, 3 -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신분상으로 육신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한 자 같이 행동하는 것은 그 일을 행하는 사람 자신 뿐 아니라 그를 불러 의인되게 하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2: 24).
어쨌든 본 절에서 육신은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의 상태 즉, 그리스도와 무관(無關)한 삶을 살던 때의 신분을 가리킨다.
2]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파데마타 톤 하마르티온'(*)은 죄악의 성격을 갖는 정욕을 의미한다. 혹자는 '색욕, 분노, 증오, 악한 뜻, 투기, 시기, 터무니없는 두려움'등으로 해석한다(Hendriksen).
그러나 본 절에서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서, '죄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Meyer, Gifford, Murray)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바울은 7절과 8절에서 '죄의 정욕' 중 '탐심'을 대표적인 것으로 언급한다.
바울은 '죄의 정욕'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고 진술하고 있다(7, 8절 주석 참조).
3]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여기서 '지체'는 '육신'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죄가 지체를 통해서 실제화 되기 때문에 '역사하다'란 말과 어울리는 '지체'란 용어를 사용했다.
즉 사람의 '지체'는 죄에 붙잡혀 사용되면 '불의의 병기'이며 하나님께 붙잡혀 사용되면 '의의 병기'로 역사하게 된다(6: 13).
4]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 말은 6: 13에서와 같이 사람의 지체가 '불의의 병기'로 사용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 맺는 것(4절)과 반대로 죄와 연합하여 죄의 종노릇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상태에 빠진 사람은 사망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있다. 이러한 상태가 그의 열매이며, 최종적으로는 영원한 사망의 열매로 이어진다.
우리가 율법이 금한 것, 곧 하지말라는 명령에 직면할 때 인간 본성이 반응한다. 비록 율법의 의도가 우리를 하나님을 향하도록 이끄는 것일지라도 언제나 율법은 인간의 반항심은 율법에 대들게 만들고 다른 사람보다 잘한다고 말하게 만든다.
* 갈 3: 24 -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어떤 방법이든 결과적으로 율법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자극하여 악으로 쏠리게 하고 결국에는 죄를 짓게 만든다. 그것이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율법의 한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