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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롬 9: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9: 6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9: 7 이삭으로부터 난 자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1.12.03|조회수18 목록 댓글 0

롬 9: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9: 6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9: 7 이삭으로부터 난 자

 

 

롬 9: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아멘. (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아멘. )

 

 

1]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조상들은 족장들 곧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을 일컫는다(7-13).

 

그런데 혹자는 '조상들'을 세 사람의 족장으로 국한시키는 것을 반대하며 다윗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1: 3에서 예수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본장에서 그리스도의 나심을 세 족장들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으므로 굳이 다윗을 '조상들'의 범주에 넣을 필요가 없다.

 

 

2]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본 구절은 골 1: 15-17과 더불어 바울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묘사한 독특한 표현이다.

 

골 1: 15-17 -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혹자는 본 구절을 의도적으로 변형시켜 '저는 만물 위에 계시면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그 하나님께 속한 자이시다'(Who belongs to God over all, blessed for ever)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이단으로 낙인찍힌 소시니안파(Socinianist)의 견해에 가까운 해석에 불과하다(Black).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바울의 이해는 사도 요한의 그것과 내용상 차이가 없다.

 

요 1: 1-5,10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본 구절은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 세세에 찬양이 있으리로다. 아멘'과 같은 송영(doxology)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형식상으로 다른 송영과 비교할 때 송영이 아니라 분명히 주장을 내세우는 진술이다(Barmby).

 

아무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가 신적 권위를 지니고 있는 구세주이심을 강조하고 있다.

 

 

2. 약속의 자녀 ( 9: 6 - 8 )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 9: 6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

 

 

이스라엘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자들이 참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이다.

 

 

1]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바르트(K. Barth)는 본 절과 관련된 주석에서 현재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선포하는 즉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참됨을 상실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르트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는 듯이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인간의 언어에 의해 제한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을 완전하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바르트의 생각은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너무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이 구원받는 데 필요 충분하다. 인간은 미약하지만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는 깨달음을 통해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 계시를 이해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가 기록된 말씀으로 불충분하고 그 진리성이 의심된다면 인간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살필 수 있는가?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제한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으나 완전하다.

 

본 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지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에 주어진 율법과 약속이 문자적으로 이스라엘에 성취되지 않았다고 하나님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3: 3-6에서 바울이 취급했던 것이지만, 본 장에서는 다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관련하여 보다 자세하게 언급될 필요가 있었다. 즉 이스라엘이 실패했다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구원 섭리 속에는 온 인류에 대한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스라엘은 구속사의 전개 과정에서 모형적 선민으로 선택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혈통적 특권 의식에만 젖어든 채 그 구원 섭리를 잘못 이해하여 자기들의 역사에 그릇되게 적용시켰다.

 

 

2]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머레이(John Murray)는 본 구절을 압축하여 그들이 모두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 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에게서 난'이란 표현이 족장들의 혈통적 후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Murray, Harrison, Kasemann).

 

즉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가 혈통적인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진술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납득되기 어려운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본 구절의 첫 번째 '이스라엘'을 반드시 야곱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 이유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바울은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모두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롬 9: 7 이삭으로부터 난 자 -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하셨으니 )

 

 

하나님의 선택의 진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선택된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그 자손으로 여기심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1]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본 절은 6 후반 구절 내용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반증하기 위한 설명이다. 이는 본 절의 초두에 있는 '또한 ... 아니다'를 가리키는 부정사 '우드 호티'(*)가 앞 절(6)의 ' ... 아니요'라고 번역된 부정사 '우크 호티'(*)와 논리적인 연속성을 갖고 있는데서 더욱 확인된다(Dunn).

 

본 구절에서 '씨'(*, 스페르마)와 '자녀'(*, 테크나)는 본 절 전체에 대한 해석을 좌우한다. 이 문장에 대한 대부분의 역본들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이기 때문에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번역한다(RSV, NEB, NIV, NJB).

 

여기서 '아브라함의 씨'와 '그의 자녀'에 대한 주석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 '아브라함의 씨'란 '자연적, 혹은 육체적 후손'을 가리키며 '그의 자녀'란 약속을 좇아서 난 참된 이스라엘, 즉 '믿는 자'를 말한다(Hendriksen, Murray).

 

Ⓑ 이스마엘과 이삭은 다 아브라함의 씨였지만 여기서 말한 '자녀'는 이스마엘을 제외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이 육신적인 혈연에 의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C. K. Barrett, Calvin).

 

 

2]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은 창 21: 12의 70인 역(LXX)에서 문자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창 21: 12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여기서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알 엔 이사악)는, 문자적으로 '오직 이삭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오직 이삭 안에서'란 무슨 의미인가?

 

여기서 '엔'(*)은 제한적 의미를 가진 전치사로서 '... 으로부터만'이라는 뜻이다(Dunn). 따라서 이 말은 이삭을 통해서만 아브라함의 참 자녀라는 이름과 지위를 가지고 약속의 후사로 인정될 후손이 나오리라는 의미이다(Meyer).

 

그런데 바울 사도가 여기서 왜 유달리도 '오직 이삭으로부터'란 말을 강조했을까?

 

Ⓐ 언약의 후손에 참여할 수 있는 범주를 이삭으로부터 시작한 그 후손으로만 제한하는 의미이다.

 

Ⓑ 이스마엘이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씨'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녀를 말한다.

 

창 17: 16 -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히 11: 17-18 -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이 씨의 최종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앞 구절에서 사용된 '씨'가 제한된 범주로 해석된 반면에 본 구절에서 사용된 '씨'는 앞 구절 '자녀'(*, 테크나)와 같은 것으로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 넘어 믿는 자 누구든지를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칭하리라'고 번역된 헬라어 '클레데세타이'(*)는 창 21: 12에 나오는 '칭할 것임이니라'는 말씀과 동일한 관용구로서 3인칭 단수 미래 수동형이다. 이 뜻은 '이름이 주어지다', '선택되다'이다(Dunn).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아브라함의 참된 씨라 일컬음 받은 계열에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한 일방적인 은혜로 되는 것임을 '수동형'이란 점이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따라서 이스마엘이 서출(庶出)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씨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은 매우 인간적이고 단순한 발상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하신 뜻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12족장과 유다의 계열을 택하셔서 아브라함의 씨라 칭해질 계통을 정하신 것이다.

 

또한 이 동사가 미래형으로 쓰인 것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시작으로 하여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영적 후손이 역사의 과정을 통해 일어날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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