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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롬 12: 9 - 11 형제 사랑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1.12.09|조회수98 목록 댓글 0

롬  12: 9 - 11    형제 사랑

 

 

4. 형제 사랑 ( 12: 9 - 11 )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열심을 품고주를 섬기라.

 

 

롬 12: 9 거짓이 없나니 -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바울은 특히 사랑의 삶에 대해 교훈한다. 성도의 삶은 한마디로 서로 사랑하는 삶이어야 한다.

 

요 13: 34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참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어야 한다. 거짓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참 사랑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사랑이다.

 

악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며 선은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다. 성도는 진실하게 서로 사랑하여 악을 버리고 선한 일을 힘써야 한다.

 

 

1]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이를 표현하는 헬라어 '헤 아가페 아뉘포크리토스'(*)는 명사 문장으로 동사 '에이미'(*, 'be')가 있는 것처럼 번역해야 한다. '사랑'의 헬라어 표현인 '아가페'(*)는 본서를 제외한 바울 서신 전체에서는 주로 성도들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나타내는데(Ridderbos) 사용되었다.

 

반면 본서에서는 주로 신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5: 5,8. 8: 35,39. 15: 30. Cranfield, Dunn). 그러므로 '아가페'는 10에 나오는 '형제 사랑'을 나타내는 헬라어 '필라델피아'(*)보다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인 것이 확실하다.

 

'거짓이 없나니'를 표현하는 헬라어 '아뉘포크리토스'(*)는 '위선 없이'를 나타내며 '진실한', '성실한'의 뜻을 가졌다.

 

고후 6: 6 -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벧전 1: 22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꾸밈없이 진실해야 함을 나타낸다.

 

성경 흠정역과 NASB에 각각 '숨김없이'(without dissimulatin), '위선 없이'(without hypocricy)로 번역한 것은 헬라어 원어에 가까운 표현이며 RSV나 NIV에서는 각각 '진심에서 우러난'(genuine) '성실한'(sincere)으로 번역한 것은 문맥의 뜻을 밝혀 의역한 것이다.

 

 

2]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미워하다'의 헬라어 '아포스튀게오'(*)는 '몹시 미워하다', '혐오하다'의 뜻이 있다.

 

'악'(*, 포네로스)은 '나쁜'을 의미하는 헬라어 '카코스'(*)보다 더 강한 의미로 '악한', '사악한'의 뜻이 있다.

 

'속하다'의 헬라어 '콜라오'(*)는 '함께 하다', '연합하다'의 뜻을 가졌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적극적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한 것에 연합하라는 가벼운 명령 혹은 권고이다. 이는 결정이 요구되는 삶의 길목에서 확실하게 선을 택하는 생활 원리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 속하기 위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미워하고 버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살전 5: 22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롬 12: 10 우애와 존경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성도는 참된 사랑 가운데서 서로 하나님이 주신 좋은 친구들이 되어야 한다. 또 상대방을 서로 먼저 존경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약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서로 존경할 수 있는 까닭은, 예수께서 저들을 위해 피 흘려 속량하신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1]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이를 나타내는 헬라어 '테 필라델피아 ... 필로스토르고이'(*)의 '필-'(*)로 시작되는 두 단어는 가족 간의 사랑을 나타낼 때 쓰인다. 즉 '형제를 사랑하여'를 가리키는 '필라델피아'는 형제 자매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우애하고'를 가리키는 '필로스톨고이'는 혈육(血肉)간에 주고받는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Dunn).

 

'필라델피아'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아델포스'(*, '형제')는 교회 생활에서 성도들에게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단어이다.

 

'필로스톨고이'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오지만 본서가 기록 될 당시의 헬라 문헌에 자주 나오며 특히 가족 간의 '지극한 애정'을 나타낼 때 사용됐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로 이뤄진 가족으로 그 공동체 안에서 가족 간에 느끼는 지극한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마 12: 46-50 -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보소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갈 4: 5 -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3: 17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사도 바울은 사랑이 단순한 이념으로 간주되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이제 사랑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지침)을 언급한 것이다.

 

즉, 사랑은 이론으로만 베풀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도는 그 사랑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성도들 간의 관계에서 표현되기를 요구한 것이다.

 

 

2]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이는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해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서로 먼저 존경할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의 개인적 인격이나 능력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의 크신 구속의 은혜를 입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데 있다.

 

그리하여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아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것을 생각할 때 그 형제의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떠나서 진실하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러러 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 베풂에 근거를 둔 권면인 것이다.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빌 2: 13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롬 12: 11 주를 섬기라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열심을 품고주를 섬기라. )

 

 

성도는 근면한 생활을 해야 한다. 첫째로 영적인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성경을 조금씩이라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이다.

 

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의 공적 모임들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고 전도와 봉사의 일들에 힘쓰는 것도 필요하다.

 

성도는 또한 세상일에 있어서도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의 직업에서, 직장의 일에서, 부인들은 가정의 일에서, 학생들은 학교 공부에서 부지런해야 한다.

 

결혼한 여성은 가사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 음식도 맛있게 만들고 제한된 생활비를 가지고 가정을 잘 꾸미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1] 부지런하여

 

바울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특별히 근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신앙생활의 나태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보통 성도들은 처음 믿을 때에는 매우 열심이다.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게 되면 주를 향한 처음 사랑을 잃고 영적인 타성에 빠져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계 2: 4 -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3: 15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자세한 주석은 8을 참조하라.

 

 

2] 게으르지 말고

 

'게으르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크네로이'(*)인데 이는 근심이나 걱정 또는 부끄러움으로 늑장부리는 것을 의미한다.

 

잠 6: 6, 9 - 6 게으른 자여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9 게으른 자여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잠 21: 25 -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마 25: 26 -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보소서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진정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된 삶은 게으르거나 나태할 여유가 없다.

 

 

3] 열심을 품고

 

이 구문의 헬라어 표현은 '토프뉴마티 제온테스'(*)이다. 개역 성경에는 '영'(*, 토 프뉴마티)을 해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뉴마'를 '하나님의 영'으로 이해할 것인지(Calvin, Deodoret, Dunn, Hendriksen) 아니면 '인간의 영'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견해로(Meyer, Murray, Philipi, Kasemann) 나뉜다.

 

이 말은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본문의 의미는 '성령과 함께 하는 열심을 품고' 혹은 '열심을 품고 성령으로 인하여'가 될 것이다. '인간의 영'으로 한다면 '열심을 품은 마음으로'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전자가 더욱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토 프뉴마티'(*)가 '열심을 품고'와 연결되어 있는 바 주를 섬기기 위한 열심은 성령의 감화가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주를 섬기라

 

주를 표현하는 헬라어는 '퀴리오'(*)인데 이는 A, B, P46 사본 등을 따른 것이다. 보다 덜 중요한 사본으로 간주되는 D, G 사본 등에는 '시간에'를 나타내는 헬라어 '카이로'(*)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기록 당시의 상황의 급박성을 나타내어서 '시간을 아끼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사본의 우위성과 문맥상, 전자가 많은 지지를 얻는다.

 

'주를 섬기라'는 헬라어 표현은 '토 퀴리오'(*)로 3격으로 표현되어 '주께' 섬김을 다하라'의 의미가 된다. '섬기다'의 헬라어 표현은 '둘류온테스'(*)로 '종노릇하다', '섬기며 충성하다', '종 되다'의 뜻을 나타낸다.

 

성도들은 주인의 종으로서 충성을 다해 주인을 섬겨야 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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