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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딤후 2: 20 - 26 귀하게 쓰는 그릇 ( 1 )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1.12.30|조회수230 목록 댓글 0

딤후 2: 20 - 26    귀하게 쓰는 그릇 ( 1 )

 

 

 

4. 귀하게 쓰는 그릇 ( 2: 20 - 26 )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딤후 2: 20 금 그릇과 은 그릇 -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

 

 

큰 집, 곧 부잣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도 있고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다.

 

주인 밥상에 놓이는 밥그릇이나 국그릇은 좋은 그릇일 것이다. 귀한 손님이 오면 사용하려고 보관해 놓은 더 좋은 그릇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쓰레기통이나 오물통 등으로 쓰이는 그릇도 있을 것이다.

 

 

1] 큰 집에는

 

'큰 집'에 대해 혹자는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암시한다고 주장한다(Robertson).

 

그러나 이것은 가시적인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Hendriksen, Lenski, Earle).

 

 

2]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드는 재료에 대하여 먼저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릇의 종류를 다양하게 표현함으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나타낸다.

 

 

3]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바울은 다양한 그릇을 기능별로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들의 의미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 본 절을 롬 9: 21-23과 상관된 것으로 본다.

 

롬 9: 21-23 -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귀히 쓰는 그릇'은 "영광받기로 예비 하신 긍휼의 그릇"(롬 9: 23)이며 '천히 쓰는 그릇'은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 하나님의 교회 내에 귀하게 쓰이도록 예비 된 교인과 천하게 쓰이도록 예비 된 교인이 있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두 해석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Earle).

 

 

딤후 2: 21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

 

 

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깨끗하게'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 악한 생각이나 행위를 버리고 내면적인 정결을 이루라는 의미라고 한다(Scott).

 

Ⓑ 앞서 언급한 후메내오나 빌레도와 같은 거짓 교사들의 행위나 가르침을 피하여 깨끗하게 하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Hendriksen, Guthrie, Lock,Bernard).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앞서 언급된 영지주의자들의 이단 사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2]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바울은 본 절에서 '귀히 쓰는 그릇'의 특징을 세 가지로 설명한다.

 

(1) 거룩하고

 

이것은 구약 시대의 정결한 제물과 관계된 것으로 자신을 구별시켜 하나님께 순수하고 온전하게 바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고전 15: 33 - 속지 말라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살후 3: 14 -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2)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주인'은 큰 집에 쓰이는 모든 그릇들 가운데 귀히 쓰는 그릇과 천히 쓰는 그릇을 결정하는 분이다(Lenski).

 

귀히 쓰이는 그릇은 주인이 흡족한 마음으로 쓰는 그릇을 의미한다.

 

'합당하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살후 1: 11 -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3)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귀히 쓰는 그릇은 선한 일을 행하며 모든 이에게 유익을 끼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릇이다.

 

주의 종들이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말과 같은 불신앙적인 이단사설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될 것이다.

 

주의 종들은 무엇보다 교리와 말씀에 사상적으로 깨끗해야 한다. 모든 이단사설들에 조금이라도 물들지 않고 바른 신앙과 사상, 바른 교리와 말씀에 대한 곧은 사상을 가져야 주님의 일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주께서 귀히 쓰시는 종은 바른 말씀, 순수한 말씀을 소유한 종이다. 그런 종은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 된 그릇이 될 것이다.

 

 

딤후 2: 22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

 

 

1]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가 버려야 할 것을 언급한다.

 

'청년의 정욕'은 단순히 성적(性的)인 욕망뿐만 아니라 지나친 식욕, 지식욕, 명예욕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후에 언급할 '의', '믿음', '사랑', '화평'과 반대된다(Hendriksen, Guthrie, Scott).

 

주의 종들은 윤리적으로도 깨끗해야 한다. 젊은 교역자들은 무엇보다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한다.

 

음란한 죄는 매우 치명적 죄악이기 때문이다. 정욕의 시험은 피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남녀 관계에서 오는 시험은 가까이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책이다.

 

구약성경에서 요셉은 그것에 대한 좋은 예이다.

 

창 39: 10, 12 -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2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비록 집주인은 진실을 알지 못하고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셨다. 그러므로 그는 죄를 범치 않으려 애쓴 경건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와 그의 하는 일에 복을 주셨다.

 

 

2]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디모데가 덕목을 추구할 때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추구해야한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에서 '깨끗한 마음'은 '불의에서 떠남'(19), '자기를 깨끗하게 함'(21)과 같은 것으로 내면의 인격이 정결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본문은 참 교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깨끗한 마음은 모든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 진실하게 믿는 마음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모든 미움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자신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며 또 다른 이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는 자이다.

 

이런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이 모인 곳이 참된 교회이다.

 

 

3]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가 추구해야 할 덕목을 언급한다.

 

참된 교회는 이런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모여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가지기를 힘써야 한다.

 

(1) '의'는 하나님의 뜻과 부합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의는 모든 죄와 불의와 악에 반대되는 말이다. 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의는 성경적 행위이다. 그것은 세상 표준이나 세상 사고방식에 따른 행위와 다르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만을 힘써야 한다.

 

(2)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겸손하고 전적인 신뢰를 의미한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기를 힘써야 한다. 모든 불신앙과 의심을 다 버리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참된 믿음은 성경말씀을 통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함으로써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3) '사랑'은 원수까지도 자비의 대상으로 삼는 형제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를 힘써야 한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요 13: 34).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사랑은 모든 윤리적 선을 포함하는 가장 고상한 덕이며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성품이다. 천국에서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4) '화평'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간의 평화롭고 완전한 상호 이해를 의미한다.

 

우리는 화목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 속에는 교만한 마음과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마 11: 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려 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순수하게 부르는 모든 직분자들과 성도들은 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구해야 한다.

 

특히 주께서 귀히 쓰는 그릇은 교리적으로, 사상적으로 깨끗할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 인격적으로도 깨끗하고 온전해야 한다. 주께서는 이런 그릇들을 교회에서 크게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마 5: 9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요 13: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롬 12: 18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딤후 2: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 -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의 종들이 소유해야 할 덕들이 있고 반대로 버려야 할 악들이 있다.

 

주의 종들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은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다툼이 나기 때문이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이란 용어나 명칭이나 표현상 문제로 다투는 말다툼이나 중요성이 없는 지엽적 문제로 다투는 것이나 불경건한 변론들을 말할 것이다.

 

그런 변론은 어리석은 변론이다. 우리는 그런 일들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1]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본 절의 권면은 목회 서신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16절).

 

딤전 1: 4 -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딤전 4: 7 -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딛 3: 9 -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어리석고'의 헬라어 '모라스'(*)는 '둔한' 혹은 '지각이 없는'을 의미한다.

 

'무식한'의 헬라어 '아파이듀투스'(*)는 '교육을 받지 못한'을 의미한다.

 

이런 지각이 없고 무식한 변론은 앞서 언급한 이단들의 허탄한 족보와 신화에 대한 논쟁을 가리킨다(14).

 

 

2]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디모데는 이러한 변론에 휘말려서는 안 되며 단호히 배격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런 것으로 인해 교회의 분열과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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