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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빌 1: 19 - 26 신앙의 용기와 소망 ( 1 )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2.02.03|조회수45 목록 댓글 0

빌 1: 19 - 26  신앙의 용기와 소망 ( 1 )

 

 

4. 신앙의 용기와 소망 ( 1: 19-26 )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빌 1: 19 성령의 도우심으로 -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

 

 

원문에서는 '왜냐하면'으로 시작하여 앞 절에서 말한 그의 기뻐함의 이유를 제시한다.

 

'이것이'라는 말은, 앞 절의 '이로써'라는 말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시위대 안에서 전파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라는 말은 원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것은 성령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영'(롬 8: 9), '그 아들의 영'(갈 4: 6), 혹은 본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리신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 곧 삼위일체의 신비를 나타낸다.

 

 

1] 이것이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 절이 바울이 기뻐한 이유가 됨을 나타낸다.

 

'이것'(*, 투토)은 복음 선포를 위해 바울에게 나타난 모든 것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Hawthorne, Martin).

 

 

2]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본 절은'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작정된 뜻이 우리의 간구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짐을 보인다.

 

기도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는데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일들을 주권적으로 이루시지만, 인간 편에서의 기도와 간구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들이 인간의 기도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나, 인간의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3]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를 구원에'은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 황제의 궁궐과 시위대 안에 전파됨으로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우심으로 바울은 그 곳에서 풀려날 것이다. 바울은 그 일을 내다보면서 기뻐한 것이다.

 

본 절 끝의 '할 줄 아는 고로'라는 말은 '할 줄 앎이니'라고 번역하면 정확할 것이다.

 

(1) '구원'에 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① 빌립보 교인들이 다시 만날 재회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 감옥으로 부터의 석방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1: 26, Chrysostom, Robertson, Lenski).

 

② 영적인 구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Michael, Lightfoot, Beare, Collange, Gnilka, Houlden).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25의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과 23의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의 표현으로 보아, 바울이 현재적인 자기의 놓임과 미래의 구원을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러한 구원이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진술한다.

 

(2) 너희 간구

 

바울은 믿음의 기도가 엄청난 능력을 발휘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 4: 29-31 - 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혹 이적)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하더라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12: 5-12 -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급히 일어나라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천사가 가로되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빌립보 교회의 기도를 의지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로 하는 생명의 원리를 공급(供給)하시고 인도하신다.

 

요 15: 26 -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롬 8: 26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빌 1: 20 간절한 기대와 소망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

 

 

본 절은 처음에 '나는'이라는 말을 넣어서 읽고 끝에는 '하려 하나니'보다는 '하려 하노라'로 마치는 것이 뜻을 원문에 가깝게 드러낼 것이다.

 

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의 내용은 바로 본 절 후반부의 내용이다. 즉 바울 사도는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고 항상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했다.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범사에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진실과 의를 생명으로 여기는 모든 성도들에게 마땅한 일이다.

 

또 바울은 항상 아주 담대하게 살든지 죽든지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기를 원했다. 그것이 바울 사도의 생활신조였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본받을 만한 일이다.

 

 

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이 말은 재판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왔고 장차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몸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재판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의미를 함축(含蓄)하고 있다.

 

 

2]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바울은 재판을 받을 때 재판의 결과에 상관없이 복음에 대해서 담대히 변증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재판 결과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 살게 되든지 아니면 사형선고를 받아 죽게 되든지 간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재판 석상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언함으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기를 소망한다(Martin, Kent).

 

 

빌 1: 21 죽는 것도 유익함 -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바울 사도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존귀케 하기를 원한 까닭은 그가 사는 것이 그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그를 통해 사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 위한다면 사는 것뿐 아니라 또한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도 비슷하게 말하였다.

 

갈 2: 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이나 '그리스도가 삶의 구원'이라는 말이 아니다.

 

'삶 자체가 그리스도'라는 의미이다.(Goodspeed, Knox, Moffatt, Phillips)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하나가 되었음을 암시한다(Kent).

 

이것은 삶 자체가 그리스도에 의해서 통치를 받으며, 진실, 사랑, 희망, 복종, 전파 등이 삶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쳐나는 것을 시사한다(Vincent).

 

이런 삶의 형태에서는 죽는 것도 유익하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은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었다.(23)

 

고후 5: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상급 받는 축복 가운데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딤후 4: 7-8 -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동시에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존귀케 하는 것을 방해하던 모든 것에서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Muller).

 

 

2]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죽는 것'(*, 아포다네인)은 부정과거로 '죽음 후의 상태'를 말함이 아니라 죽음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인에게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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