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2: 11 - 14 게바를 책망함 ( 2 )
베드로가 이 사실을 알고도 든든히 서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책망하였노라.' 이 말의 헬라 원어(* 안테스텐)는 '바로 대면하여 그를 반대하였다'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반대'란 말의 뜻은 반드시 책망이 아니다.
여기 '바로 대면하여'란 말은 역설체이다. 바울은 진리대로 행동하지 못한 베드로의 처신을 반대한 것이다.
튜빙겐(Tbingen)학파의 바워(F. C. Bauer)는 바울이 베드로를 반대하였다는 이 구절들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그릇된 학설을 주장하였다. '초대 기독교에 바울파와 베드로파가 있어서 서로 충돌이 계속되다가 2세기 말에 이르러 그 두 파가 화합하여 기독교가 통일되었다.'하였고, 또 '신약 성경의 문헌들 가운데 파쟁(派爭)의 기미가 있는 것은 2세기 말 경의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헤겔(Hegel)의 변증 철학(辨證哲學)을 색안경으로 성경을 잘못 본 의견이다. 바울이 베드로를 반대한 일 때문에 그와 베드로 사이에 복음에 대한 근본적 차이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
갈 2: 15-21은 명백히 베드로의 전하는 복음과 바울의 전하는 복음이 일치한 것임을 증명한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다.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은 구약 율법과 유대인의 관례법에 젖어 있었던 자들이었을 것이다. 유대인의 관례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사도행전 10: 28에 보면,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 때 말하기를,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했다. 이것은 물론 구약 율법에 의거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는 일이나 상거래를 하는 일을 금한 곳이 없다.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한 유대인의 관례법은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규정한 구약 율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 신 7: 3-4 - 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여하튼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유대인들이 왔을 때 그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갔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베드로에게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공격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인들의 완고함을 생각한다면 그의 두려워함을 이해할 만하다.
베드로가 떠나 물러간 것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약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 받기는 좋아하지만 비난 받기는 싫어하고, 싸움과 갈등보다는 평안과 안정을 좋아한다.
갈 2: 13 외 식 -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
'외식한다'함은 자기가 믿는 복음 진리대로 행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두려워하여 다른 행동을 취한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복음 진리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할례자들'(할례주의를 가진 유대인들)이 들어올 때에 베드로를 따라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것은 외식이다.
1]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주님의 가까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요 공적인 위치에 있던 베드로의 외식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복음의 자유가 첨예(尖銳)하게 대립되고 있는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베드로의 실수는 단순히 개인적인 외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1) 다른 사람들 심지어 바나바 같은 지도자까지도 외식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근거가 되었다.
(2) 예루살렘 공의회(A. D. 49)의 율법 무용론에 대한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3) 결과적으로는 율법주의에 굴복한다는 위미를 지닌다.
여기서 우리는 공적인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행동의 중요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중요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베드로의 행위는 외식의 잘못, 이중적 행동의 잘못이었다.
이방인들과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 정당한 일이었다면, 그는 야고보에게서 온 유대인들 앞에서도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다.
반대로, 만일 그것이 그 유대인들 앞에서 할 수 없을 정도로 옳지 않은 일이었다면, 그는 그들이 없었을 때에도 하지 않았어야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을 원하시지만, 연약한 인간은 때때로 이중적인 외식의 죄에 빠진다.
2]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루터는 사도들이나 선지자들이 실수한 일이 있었음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추론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욥과 예레미야는 생일을 저주하였다. 루터의 이 말은 신자들이 혹시 실수로 인하여 낙심하는 경우에 참고할 만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 욥 3: 1-12 - 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 렘 20: 14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머니가 나를 낳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엘리야와 요나는 죽기를 원할 정도로 낙심한 일이 있었다.
* 왕상 19: 14 -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 욘 4: 3, 8 -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바울과바나바는 서로심히 다투고 나뉘었다.(Commentary on St. Paul's Epistle to the Galations,1930, 15: 30).
* 행 15: 39-41 -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신앙 위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본받음이 합당하다. 베드로의 연약함은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물러가자 함께 먹던 유대인들도 같이 물러갔다. 바나바까지도 그러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역할이 큼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만일 베드로가 그 때 외식하지 않고 담대히 처신하였었다면 다른 이들도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연약하여 외식하므로 다른 이들도 외식에 빠졌다. 신앙생활에는 바른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처럼 기독교계가 혼란한 시대에는 바른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교회 안에서도 목사와 장로의 역할, 전도사의 역할, 교사와 권찰의 역할, 각 회 회장의 역할이 크고 중요하다. 그들이 말과 행실에 있어서 바로 서면 교회에 유익을 끼치지만, 그들이 바로 서지 못하면 해를 끼친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교회를 건설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부덕(不德)한 것은 교회를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말과 행동으로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시험을 주는 것을 말한다. 교회의 일꾼들은 믿음에 바로 서서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갈 2: 14 유대인답게 살지 못하면서 -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던 이유는 베드로가 초대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 마 16: 17-19 -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그는 교회의 기둥이었다.
* 갈 2: 6-9 -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 행 15: 6-11 -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그런 베드로가 유대인 율법주의자를 의식하여 이방인과 식사 도중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외식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이 이방인의 차별에 대한 베드로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는다면 이방인들에 대한 전도는 큰 장벽에 부딪힐 터였다.
1]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베드로의 외식은 복음 진리대로 바로 행하지 않은 실수였다. 복음 진리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요 1: 12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예수 믿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이다.
* 행 15: 7-10 -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2]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바울은 베드로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망을 했다. 이것은
(1) 베드로뿐만 아니라 여러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잘못을 저질렀다.
(2) 공적인 잘못은 사적으로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Lenski)
(3) 그러한 실수를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Hendriksen).
3]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베드로는 이미 그의 믿는 복음대로 이방인과 기탄없이 교제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제 할례자들의 눈을 두려워하여 다시 그런 의식적 율법(儀式的律法)을 지키는 듯 한 태도를 취하였다.
이로 인하여 함께 있던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에게 유혹을 받게 하였다. 바울은 베드로의 이런 모순된 행위를 지적한 것이다.
말씀을 정리하자.
여러분은 복음 진리를 바로 아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 복음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
모든 사람은 다 주 안에서 형제요 자매라는 이 놀라운 사실을 참으로 인정하며, 이중적인 외식에 떨어지지 말자.
또한 우리는 복음 진리를 바로 깨달을 때 우리의 삶의 새로운 동기를 발견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수치와 참혹한 고통과 저주의 죽음을 죽어주셨다. 그로 인해 구원 받은 성도들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그의 공로에 억만 분지 일이라도 보답하는 양으로 악을 버리고 의와 선과 거룩과 진실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 때문에 거룩하고 선한 삶, 주를 위한 헌신의 삶을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여러분 중에 아직도 복음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한 분은 없는가?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어떤 죄인도 참으로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죄인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다.
아직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지 못한 분이 있다면 이 시간 여러분의 죄를 고백하고 그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