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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갈 3: 10-14 율법과 믿음 ( 2 )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2.03.24|조회수24 목록 댓글 0

갈 3: 10-14  율법과 믿음 ( 2 )

 

 

 

2]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 관계로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또 저주하게 된 것이다(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이 저주를 받으셨다. 고로 이 저주는 우리에게서 떠나게 되었다.

 

'속량하셨다' 함은 값 주고 사서 풀어냈다는 뜻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그 보혈로 우리의 죄 값을 내시고 정죄와 저주에서 우리를 풀어내시어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롬 8: 1-4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속량에 해당하는 헬라어 - '엑세고라센'(*)은 '값을 치르고 사다', '되돌려 사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본 절에서 이 말은 율법의 노예가 된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고 사셨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대가는 십자가의 피였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전(贖錢)의 개념에서 해석되었다.

 

출 21: 30-31 - 30 만일 그에게 속죄금을 부과하면 무릇 그 명령한 것을 생명의 대가로 낼 것이요 31 아들을 받든지 딸을 받든지 이 법규대로 그 임자에게 행할 것이며

 

 

3] 기록된바

 

'기록된 바' - 이것은 신 21: 23을 가리킨다.

 

신 21: 22-23 -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4]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나무에 달려 죽음은 저주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나무 형틀)위에서 죽으셨으니 이것이 저주의 죽음이란 말이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우리 때문에 저주를 받으심은 지극한 사랑이다. 아들을 나무에 달리게 하는 저주까지 받게 하신 것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다.

 

사 53: 4-6 -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본 절은 이 부분의 핵심이며 결론적 요지이다.

 

한 마디로, 율법주의의 오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건져내셨다.

 

그리스도의 이 구속의 일은 역사적이며 객관적이며 대리적이며 완전한 사건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는 완전한 의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받는 의는 완전한 의, 곧 도덕적 완전이며 거기에 무엇이 더 첨가될 것이 없다. 그 의와 완전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속박과 저주와 공포로부터 자유를 누린다.

 

 

갈 3: 14 성령의 약속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

 

 

본 절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결과를 말한다. 그것은 두 가지로 표현된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특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는 자들은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둘째는 믿음으로 약속된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성령께서는 죄인들 속에 거하실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씻음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 속에 들어오셔서 거하시게 되셨다.

 

이 두 가지는 다 믿음으로 오는 참으로 큰 복이며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결과이다.

 

 

1]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아브라함의 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천국 기업을 의미한다.

 

롬 4: 13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 8: 16-17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2] 또 우리로 하여금

 

'우리'란 말은 이방인과 유대인들 가운데 있는 모든 기독신자들을 가리킨다.

 

 

3]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성령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하신 약속이다.(Greijdanus)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다 함께 믿음으로 이 약속에 참여하여 같은 성령을 받은 것이다.

 

욜 2: 28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행 10: 47 -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2)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행 11: 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행 15: 8-9 -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성도들을 구속한 목적이 두 가지로 나타난다.

 

(1) 아브라함의 복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려는 것이다.

 

(2) 믿는 자들이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복'은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함을 받은 신약의 성도들에게 널리 미치게 되었고(9 주석 참조), 성령의 약속은 예수의 부활 이후 성취되었다.

 

요 14: 16-18 -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행 1: 4-5 -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처럼 의롭다함을 얻는 것과 성령을 선물로 얻는 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과 같은 성격이다. 왜냐하면 이방인에게 미치는 아브라함의 축복이 하나님의 약속이듯이(8)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성령을 받게 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눅 24: 49 - 볼지어다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1-14 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본문은 율법주의 곧 법을 지켜야 완전케 된다는 생각에 대하여 일곱 가지의 반론을 제시한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사람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을 것이다.

 

둘째,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써가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다.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오심은 죄 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전제한다.

 

셋째, 사람은 율법을 지키려는 육신적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

 

그것은 성경의 역사와 성경 자체가 증거하며 또 우리가 경험하는 바다.

 

사 64: 6 -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렘 13: 23 -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렘 17: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넷째,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성령의 기적들을 베푸신 것도 신자들이 율법을 지킬 때가 아니고 단지 예수님을 믿을 때었다.

 

행 3: 12, 16 -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이스라엘 사람들아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다섯째, 아브라함은 행함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창 15: 6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섯째,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을 항상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이다.

 

신 27: 26 -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일곱째, 성경은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예언하였다.

 

합 2: 4 보라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므로 율법주의 곧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은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의 불완전한 행위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죄인들의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義) 안에 거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해야 하며, 그 의 안에서 자유와 기쁨과 평강을 누려야 한다.

 

우리는 그 의 안에서 날마다 기쁨의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또 우리는 그 의 안에서 의롭고 선한 삶을 추구하며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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