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6: 9 - 10 무명한 자 같으나
고후 6: 9 무명한 자 같으나 -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
바울은 자기를 선전하지 않고 조용히 일하였으므로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신실한 자들은 그를 인정하고 그를 사랑했고 그의 이름은 그들을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다.
그는 죽을 고난도 많이 당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으로 구원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그가 고난을 당하고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할 때는 마치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자 같았지만, 그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를 겸비케 하고 하나님만 의지케 하는 훈련 과정이었다.
1]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무명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그노우메노이'(*)는 '무시당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바울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바울이 무시당했다는 것은 아마 그의 사도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 고전 9: 1-2 –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 고전 15: 8-9 –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의 사도직을 부인하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반(反)하는 자기들의 견해를 주입하려 하였던 상황이 전개되었었다(10-13 장).
그리고 사실상 바울은, 열한 사도들처럼 생전의 예수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외부적 조건을 갖추지는 못하였으나 모든 사도직의 유일한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도직은 부여받았다.
* 갈 1: 1, 12, 16 –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중심 사도로부터도 인정받았고,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인정받았음이 틀림없다(5: 11).
* 갈 2: 7, 9 –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9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2]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본 절은 바울의 역설적인 표현으로 실제적인 의미와 신학적인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바울은 죽음의 위협을 여러 번 겪었다.
* 행 14: 19 –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 고전 15: 29-31 –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거의 죽게 된 상황에까지 이르렀었다(1: 8-9).
또한, 그는 예수의 죽음을 그의 몸에 짊어지고 다녔다(4: 10-12).
여기에는 자기 안에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신학적 의미가 있다(5: 14-15)
* 롬 6: 1-14 –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 갈 2: 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본 절에서 바울은 그 자신이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께 헌신(獻身)된 도구가 되었음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Martin).
3]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징계는 아들을 바로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행동에 비유되는바,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증거로 이해되었다.
* 욥 5: 17 –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 시 94: 12 -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 시 119: 67 -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잠 3: 11-12 – 11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 렘 31: 18-19 –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본 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그와 같이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이 여러 가지 고통과 시련을 당하는 것은 그가 과거에 바리새인으로서 교회를 심히 핍박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고난이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가 아니라 바로 세우기 위한 사랑의 표시임을 인식하였고 실제의 삶에서 이를 체험하였다(1: 9. 4: 11)
* 고전 11: 31-32 –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6: 10 모든 것을 가진 자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바울은 성도들의 연약 때문에 근심하기도 했지만, 그는 예수님과 그의 구원 사역의 확장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이었지만,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의 풍성한 은혜와 복으로 부요하게 하는 자였고 하나님께서 공급하심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로 부족함이 없이 일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꾼들은 평안 가운데서 뿐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바른 사역을 수행해야 한다. 전도자의 직분은 고난으로 감당해야 할 직분이다.
비록 심적, 육체적, 물질적 고난이 컸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심과 위로와 능력도 컸다. 그러므로 전도자들과 성도들은 낙망치 않고 더욱 주의 일에 충성하게 된다.
1]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적대자들의 사도 시비, 그것에 의해 흔들렸던 일부의 고린도 교인들, 그리고 전체적인 이스라엘의 불신앙 등은 바울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늘 기뻐하였다(2: 3. 7: 4).
* 롬 12: 12 -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 고전 16: 17 –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의 성도들에게도 그리하도록 가르쳤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적인 특징이다(Barrett).
2]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바울은 세상의 부(富)를 거의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경제적인 가난의 상태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고린도 교인들의 영육이 부해지도록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회의 보수를 받기를 피했다(5절. 11: 7-10).
* 고전 9: 12, 15, 18 –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그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영적인 의미의 가난이다(Collange).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였는가?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고귀한 지식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부요한 자라고 생각하였다.
* 빌 3: 7-9 –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이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물질적인 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인간의 부요함을 위해서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셨다(8: 9).
3]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울이 '아무것도 없는 자'라고 했을 때, 그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관한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이 세대'가 진행되는 동안만 쓸모 있고, 다가오는 '새로운 세대'에는 전혀 가치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었고 '새로운 세대'를 얻었으므로 사실은 모든 것을 소유한 자였다.
* 고전 3: 21-22 –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자'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의미이다.
* 고전 3: 23 -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기 때문에 오직 주 예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심을 믿고 살아간다(Barrett).
본 절의 내용은 영적인 것에 자신의 모든 사고와 행동의 초점을 맞춘 철저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바울 사도의 자화상(自畵像)을 보여준다.
바울은 실로 소유와 무소유, 삶과 죽음에 전혀 구애받지 않았던 하나님의 신실한 사역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