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3: 1 - 3 두세 증인의 입으로
제 13 장 : 권면과 축복 기도
1. 마지막 경고 ( 13: 1 – 4 )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후 13: 1 두세 증인의 입으로 -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
사도 바울은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하리라'라고 말한 것은 그의 고린도 교회 방문 계획이 참되고 확실함을 나타낸다.
1]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바울의 첫 번째는 그가 소아시아에서의 전도를 마치고 소위 2차 전도 여행에서 유럽 전도를 시작할 때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전도했고 또 그 후에 아가야 지방의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전도함으로써 고린도 교회를 세웠다.
고린도에서의 그의 전도사역은 사도행전 18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그 곳을 떠난 후,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를 듣고,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를 썼었다. 그 편지의 끝부분에서 그는 마게도냐를 지난 후 다시 그들에게 나아가서 겨울을 지날 뜻을 보였다.
* 고전 16: 5-6 –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고린도후서의 초두에, 그는 자신의 계획을 바꾸어 고린도 교인들에게 두 번 은혜를 얻게 하려고 먼저 고린도로 갔고, 거기서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가서 거기서 유대로 가려고 하였으나, 고린도를 떠나 마게도냐로 간 후 고린도로 가지 못하였음을 말했다(고후 1: 15-16, 23).
그는 가지 못한 대신에 많은 눈물의 편지를 그들에게 썼다(고후 2: 4).
아마도 그의 두 번째 방문 후에 그는 고린도 교회 내에 있었던 어떤 거짓 교사들과 또 그들의 영향을 받은 어떤 교인이 그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도전을 받았던 것 같다.
고린도후서는 이런 상황에서 부수적으로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목적도 가지는 서신으로 쓰였다.
그는 이제 세 번째 그들에게 갈 예정이며, 이 일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은 사람의 죄를 확정할 때 한 증인으로만 하지 말고 두세 증인의 입으로 하라고 규정했다
2] 두세 증인의 입으로
이 표현은 특별히 어떤 인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율법이 정한바 범죄자에 대한 재판 시 두 세 증인의 증거가 필요한 것처럼, 바울이 전통적인 율법에 따라 합법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엄격하게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 신 19: 15 -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바울이 이런 경고를 할 때 그의 심중에 이미 처벌에 대한 계획이 세워져 있었고 본문의 경고도 그것을 위한 절차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런 처벌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미리 각성하여 회개함으로써 서로 웃는 낯으로 대면하게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3] 말마다 확정하리라.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이 그가 바란 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바울은 이제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또 그의 진실성은 두세 증인의 입으로 확증될 수 있어야 한다.
고후 13: 2 미리 말하노니 -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다시 가면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해 엄히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1]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1) 미리 말하였거니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전한 말씀을 의미한다.
(2) 지금 떠나 있으나
* 고전 16: 5-6 – 5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6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3)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 고후 1: 15-16, 23 -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바울의 주된 관심은 죄 문제었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이 바로 그러하다. 우리의 주관심도 그러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범죄자들의 문제이다. 범죄자들은 그 죄를 정직하게,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죄를 회개하고 죄 씻음을 받은 자만 영생을 누릴 수 있다.
3]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다시 가면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해 용서하지 아니하고 징벌할 것이라고 엄하게 경고한다.
용서(容恕, Forgiveness)는 지은 죄나 잘못한 것을 용납하거나 면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종교 가운데 오직 기독교만이 하나님을 용서하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죄를 범하였고 또 형벌을 받기에 합당하지만, 하나님은 사랑 가운데서 용서하시고 관계를 회복하신다.
* 창 4: 15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고의적으로 잘못을 범하는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죄인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또 적대적이 되었다.
* 롬 5: 10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 골 1: 21 -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 엡 2: 1-3 –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조화를 이룬 관계가 다시 확립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했던 죄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신구약 성경은 모두 말씀하고 있다.
* 눅 11: 4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의 '죄'는 '하마르티아'인데 아람어 '호바'(hoba)를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빚'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에 근거하여 '죄'란 하나님께 '빚' 또는 '부채'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죄를 범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 할 '채무'를 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나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하나님께 빚진 나의 채무를 필연적으로 탕감되도록 하는 담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 빚의 탕감을 조심스럽게 간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 마 6: 14 -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용서하면'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죄를 용서함을 받는데 있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부적인(conditional) 공적(merit)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단지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원하는 자가 남을 용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로 타인의 잘못을 용서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며 참된 회개의 자세이다.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 이는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 12)라는 간구를 더욱 심화 시키고 강조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상이 이곳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 마 18: 23-35 –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막 11: 25 -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이는 예수를 주로 모신 공동체의 성격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용서하지 아니하면'(마 6:15)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라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원하는 바를 우리는 형제에게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황금율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고자 하면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원하면 형제와 화해해야 한다.
조지 허버트 -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건너야 할 다리를 부수는 것이다.
그런데도 바울 사도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성경에 용서하지 아니한 예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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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23: 21 -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 사 22: 14 -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렘 5: 7 -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 암 7: 8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 암 8: 2 -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 벧후 2: 4-5 –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마지막 심판의 때에도 용서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자.
고후 13: 3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증거 -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
1]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셔서 바울 안에서 그리고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 증거를 요구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약한 모습만 보았고 바울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향해 결코 약하시지 않고 오히려 강하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늘날도 주께서는 주의 신실한 종들 안에서 말씀하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신다.
2]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비록 주의 종들이 연약하게 보일지라도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은 약하시지 않고 강하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종들의 연약만 보지 말고 그들을 세우시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의 주님을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