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 18 - 19 상 : 눈이 불꽃 같고
6. 두아디라 교회 ( 2: 18 – 29 )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 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2: 18 눈이 불꽃 같고 -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
주님의 눈이 불꽃 같다고 한 것은 그의 통찰력의 날카로움을 나타내시며 그의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한 것은 그의 심판의 엄위함을 나타내신다고 본다.
주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에게 이런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주께서 그 목사의 문제점을 통찰하시고 그가 포용한 악에 대해 심판하실 것을 암시한다.
오늘날도 주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시며 우리의 행위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18-1) 의미 :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1) 두아디라
두아디라는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약 64Km쯤 떨어진 곳으로 7대 도시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다. 그런데 편지는 가장 길게 써졌다. 일곱 교회 중에서 두아디라에 보내는 편지가 가장 길듯이, 일곱 교회 중에서 중세 암흑시대가 가장 길었다.
이 지역은 허무스 계곡과 카이쿠스 강을 연결하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강,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두아디라는 전략적 위치로서는 물론 버가모와 사데, 서머나와 비잔티움을 잇는 중요한 연결 통로의 위치에 있다. 따라서 부유한 도시였다.
중세 암흑시대는 왕도 교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교황청에서 파면해 버렸다. 다시 말하면 로마 교황권이 세상을 지배했던 시대였다.
여기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고향이다. 중세 기독교는 4세기, 5세기에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어서 전 세계로 놀랍게 퍼져 나갔다. 웨스트민스터 교회는 하나의 예술품이다.
A. D 590년 그레고리 1세가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전성기를 이루기 시작하여 A. D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까지 교회는 화려했다. 좋은 건물과 권력, 명예와 부를 다 가졌다. 모든 예술가들은 로마 교황청 하나를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타락하였다. 신앙이 무너진 부요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믿음이 떠난 물질은 흉기다. 왜냐하면 영혼을 죽게 하기 때문이다.
(2) 의미
'두아디라'라는 단어는 합성어다. '두아'와 '디라'인데, 그 뜻은 '관 쓴 여자, 면류관을 쓴 여자'다.
다른 좋은 의미도 있다. '수고의 향기, 희생' 등의 뜻이 있다.
중세 교회가 국교가 되어 핍박이 없고, 모든 영광을 누렸던 그 시대를 의미한다.
(3) 상징
중세 암흑시대를 상징한다. 풍요 속에서 신앙이 죽어버린 시대를 예언적으로 예표하고 있다.
18-2)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두아디라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예수님, 예리한 눈으로 통찰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마음을 통찰하시므로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다. 인간이 투시기를 통하여 온 몸을 살피는 것처럼 그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을 보지 못하겠는가?
우리가 감춘다고 감춰지겠는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투명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해준다.
* 단 10: 6 -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 슥 3: 9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 슥 4: 10 -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 사 30: 26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1) 하나님의 현현.
* 신 5: 24-26 - 24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하나님이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가 보았나이다. 25 이제 우리가 죽을 까닭이 무엇이니이까? 이 큰 불이 우리를 삼킬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 26 육신을 가진 자로서 우리처럼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불 가운데서 발함을 듣고 생존한 자가 누구니이까?
(2) 풀무 불
* 말 4: 1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마 13: 42 -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3)심판과 멸망
* 벧후 3: 6-7 -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4) 심판하시는 예수님 -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이 빛난 주석 같다는 것은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말한다. 빛난다는 것은 번쩍이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심판의 발이다.
불로 이글거리는 주석 발로 밟아 버리면 모든 생물이 살 수 없다. 중세가 너무 타락한 암흑시대이므로 심판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① 느부갓네살의 금 신상
* 단 2: 41-45 - 41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쇠 같은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 그 발가락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만할 것이며 43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44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하니
② 풀무
* 겔 22: 18-22 - 1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가 되었나니 곧 풀무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거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21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불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되 22 은이 풀무 불 가운데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그리스도의 모습은 두아디라에서 숭배하던 태양신 '아폴로'와 거짓 예언자 '이세벨'(20절)을 염두에 두고 경고하신다.
그들의 우상 숭배와 행음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당시 청동업이 발달한 두아디라에 사는 교인들에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생생한 화면처럼 느껴지는 계시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Johnson, Ramsay).
(5) 명령자 -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계시록에서는 '인자'라는 말로 두 번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로는 여기서 유일하게 나타난다.
두아디라 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면서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주님이 너희가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신다.
1949년 아일랜드 가톨릭 성직자들이 교황 레오 12세에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 중재자이신 다른 예수'라고 했다.
교회도 집사 때는 조용하다가 장로가 되면 교회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인간은 높아지면 이렇게 된다. 하나님 위치까지 높아져 버린다.
미국의 청교도 신앙을 보고 하나님께서 각종 좋은 것으로 축복하셨는데, 지금은 각종 나쁜 섹스 문화, 타락한 음악 문화, 전쟁 문화, 사탄 문화가 나왔다. 처음에 먹을 것도 없던 그들이 하나님이 복주시니 어느 날부터 안주하면서 타락해 버렸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언급은 일곱 교회 서신의 서두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 중에서 본 절에만 나타난다. 이는 시 2: 7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위엄을 강조하며(Charles) 두아디라 지방의 우상이면서 제우스의 아들로 여겼던 아폴로나 황제와 대조를 이루어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 시 2: 7 –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 마 3: 17 –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요 1: 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계 2: 19 믿음과 섬김을 아노니 -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
주께서는 먼저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가 잘한 일에 대해 칭찬하셨다. 그 목사는 주님께 칭찬들을 일을 많이 하였다. 그는 주님를 위해 많은 일을 했고 주를 사랑했고 믿었고 섬겼고 인내했다. 이것들은 다 좋은 점들이다.
우리도 주를 위해 일하는 자가 되고 주를 참으로 사랑하고 믿고 섬기는 자 되기를 원하며 또 환난 중에도 오래 참는 자 되기를 원한다.
또 두아디라 교회의 목사는 나중 행위가 처음 것들보다 많았다. 그는 참으로 진실한 목사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꾸준히 주를 믿고 섬겼으며 점점 더 열심히 주를 믿고 섬겼다.
19-1) 다섯 가지 칭찬 :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은 두아디라 교회가 지닌 성숙함에 대한 것이다. 본 절에서는 다섯 가지 칭찬 덕목이 나타난다.
(1) 사업.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가'(*)는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연이어 언급되는 '사랑', '믿음', '섬김', '인내' 등의 제반 덕목을 포괄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 요 6: 29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보내신 자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자요, 아버지와 하나가 된 자요, 성경보다 큰 자요, 성전(예루살렘)보다 큰 자요, 안식일보다 큰 자다.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말씀 속에서 거듭나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을 말하고, 사도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성전을 건축하여 성전보다 큰 자가 되는 것이다.
* 엡 2: 20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 돌이 되셨느니라.
* 요 2: 19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사도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일곱 영을 소유하여 사도 선지자들보다 큰 자가 되어 성경보다 큰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교회가 학교, 고아원, 양로원, 병원 등 사회사업에 열심히 하였다. 주의 이름을 위해 수고한 모든 사업을 주님이 아신다.
* 요 5: 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2)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람의 주제다. 모두가 사랑을 노래한다. TV에서도, 극장에서도, 공연장에서도, 책에서도, 컴퓨터에서도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주께서 기억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랑이다. 이것은 에베소 교회가 부족했던 덕목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규범이다.
* 마 22: 37-40 - 37 예수께서 이르시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고전 12: 31-13: 3 -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3) 믿음.
주께서 믿음을 보시며 믿음을 아신다. 그러므로 큰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가나안 여인 같은 믿음, 백부장 같은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란다. 주님이 말씀하신 말세에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는 한탄처럼 말세에는 믿음 보기가 어렵다.
* 눅 18: 8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을 가리킨다.
'믿음'보다 '사랑'의 덕목이 먼저 언급된 것은 두아디라 교회가 믿음보다 '사랑'을 강조한 듯하다. 그래서 말씀과 믿음의 바탕이 없는 사람들이 '이세벨'같은 이단을 수용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