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3: 16 - 18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 3: 16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미지근한 물을 토해 버리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거부하고 버리겠다고 책망하신다.
16) 미지근한 신앙 :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것은 신앙의 불투명성이요, 열의가 없는 신자의 형식적 생활을 말한다.
* 렘 14: 19 – 15: 4 –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15: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 슥 11: 8-9 -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미지근하여'라는 언급은 '차다', '뜨겁다'는 말과 관련되어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무익하고 무력함을 나타낸다(Beckwith, Green, Rudwick).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게 됨으로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마시는 자마다 토하여 버렸다.
계 3: 17 부족함이 없다 하나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 즉 교인수나 재정에 있어서 부유했던 것 같다. 그 교회 목사는 자기 만족에 빠져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네가 가난하다’고 말씀하셨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목사는 물질적으로 부유했으나 영적으로 빈곤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참된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고 벌거벗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머나 교회의 목사의 경우와 정반대이었다. 서머나 교회의 목사는 외적으로는 빈곤하였으나 내적으로는 부유한 자이었다(계 2: 9).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재정적 부유함을 크게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의 영적, 신앙적 부유함을 크게 여기신다.
* 눅 12: 21 -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7) 여섯 가지 죄 :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1) 부요 하다.
'부요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루테카'(*)는 현재 완료형으로 이제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가 부요하여 더 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물질적으로 상당히 부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곤고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서머나 교회와 대조를 이룬다.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였던 반면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반대였다.
라오디게아는 돈이 많았다. 얼마나 돈이 많은지 시세로가 이곳에서 신용장으로 현금을 바꿔 썼다고 할 정도다. 이곳은 은행이 발달하여 돈이 많은 곳이었다. 주후 60년에 대 지진이 났는데, 돈이 많아서 모든 피해를 자력으로 복구했다.
오늘 이 시대도 부요하다. 교회들도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다. 믿음도 신자들이 다 부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죄악이다. 우리는 이런 때에 '내가 부족하고, 내가 모자라고, 믿음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 잠 13: 7 - 스스로 부한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 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 신 8: 12-14 –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 호 12: 8 -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 눅 12: 19-20 –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 곤고한 것
'곤고한 것'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당하거나 파괴당했을 경우를 묘사하는 것으로(*) 그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 시 137: 8 -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 롬 7: 24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는 물질적 부와 정반대로 가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Lenski, Moffatt, Morris).
'곤고한 것'은 정말로 곤란한 것을 말한다.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갈등이 없다는 것은 영이 죽었다는 것이다. 시체들은 때려도 모른다. 영적으로 괴로운 것을 깨닫지 못한다.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 철학, 무신론적 철학 사상이 들어가서 독일 교회가 다 죽어버렸다. 다 죽어서 화인 맞아버리니까 모른다.
* 마 9: 12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롬 2: 17-23 –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 딤전 4: 2 -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가련한 것
'가련하다'는 것은 곧 불쌍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오늘 이 시대의 믿음이 불쌍하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사회의 부요가 교회로 들어와서 신앙을 식게 하고, 부요에 젖어 식어진 신앙을 부여잡고 괴로움을 겪는 모습은 가련할 뿐이다.
* 슥 11: 5 - 사들인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하게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들의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도다.
* 눅 18: 11-12 –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 롬 11: 20 –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 고전 4: 8-10 – 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 고전 15: 19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4) 가난한 것 - 영적 가난 함.
'가난'은 라오디게아 인들이 금융업이 발달할 정도로 물질적인 부를 축척한 것과는 달리 영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섬길 수 없는 상태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2:9).
여기서 '가난'은 육적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가난이다.
이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으로 인해 영적인 요소를 다 잃어 버렸다. 즉, 주님 말씀처럼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아무 쓸모가 없는 상태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도 믿음이 가난하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교회들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가난한 것'이 섬기는 교회와 자신에게는 없는지 회개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홍수 속에 식수가 갈급하듯이, 교회의 홍수 속에 진리를 외치는 말씀의 선포는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을 보자.
* 잠 30: 9 -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눅 1: 53 -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 고후 8: 9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5) 눈 먼 것 - 영적 소경
'눈먼 것'은 라오디게아에 특수한 안약과 의학교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영적 시각 장애자로 분별력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라오디게아는 안질의 안약을 발명함은 물론이고 의학교를 세워 의술이 발달된 이곳에서 눈먼 것을 모른다는 책망은 역설이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 상태가 감겼다는 것이다. 시대를 보지 못한다는 것으로 징조와 시대, 진리를 보지 못하였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시대의 징조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성경을 통해 역사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
* 사 42: 19 -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 요 9: 40-41 –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벧후 1: 9 -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 사 29: 9-12 –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 사 56: 9-12 – 9 들의 모든 짐승들아. 숲 가운데의 모든 짐승들아. 와서 먹으라.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12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6) 벌거벗은 것 - 믿음의 수치
라오디게아는 직조업이 발달했다. 그런 도시에서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볼 때 너희가 벌거벗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벌거벗으면 부끄러운 것이 다 드러난다. 하나님 앞에 믿음의 행위가 다 벌거벗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라오디게아 시대를 말하는 것이지만, 예언적으로 오늘 이 시대를 말한다. 여러분은 이런 말씀을 듣고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란다.
라오디게아에는 칭찬이 하나도 없다.
중세 암흑시대가 타락했다고 하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지금이 훨씬 타락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철통같이 믿어야 한다.
* 창 3: 7,10-11 –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 사 20: 4 -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 사 47: 3 -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 나 3: 5 –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벌거벗은 것'은 라오디게아의 검정색 양모가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이 영적으로 벗은 모습임을 시사한다(Mounce).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여 전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Johnson)
계 3: 18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불로 연단한 금’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리킬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말하였다(벧전 1: 7).
‘벌거벗은 수치를 가릴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확신을 가리킬 것이다. 우리의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했고(롬 13: 14), 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했다(갈 3: 27).
또 안약은 진리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영안(靈眼)을 밝게 하는 성령의 지혜를 가리킬 것이다.
18-1) 권 고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 곧 시련을 통한 믿음을 사서 영적으로 부요해지라고 권면한다(Johnson).
* 사 55: 1 –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금 같은 것은 달란트 사명이요 기도를 담은 대접이다.
* 마 25: 15 -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계 5: 8 -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불로 연단한 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금을 모아서 불 속에 넣으면(용광로에 넣으면) 금은 금끼리 모이고, 찌꺼기는 빠져서 찌꺼기들끼리 모인다. 그전에는 같이 섞여 있다가 뜨거운 불을 가열하면 금은 금끼리, 찌꺼기는 찌꺼기끼리 모인다.
신앙이 그렇다. 미지근하면 세상의 모든 욕망 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믿으면 비진리 같은 찌끼들은 사라져 버리고 금 같은 순수한 믿음(순금)이 된다.
불 속에서도, 어떤 환난 속에서도, 뜨거움 속에서도 금 같은 순전한 신앙을 갖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렇다. 불로 연단해야 순금이 된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야 내가 정금같이 나오는 것이다.
(1) 불 - 성령의 불.
(2) 연단한 금 : 정금
* 욥 23: 10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말 3: 3 -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 고전 3: 12-13 –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 약 1: 12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 벧전 1: 7 -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3) 부요 하게 하라 - 성령에 충만한 생활.
* 딤전 6: 18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8-2) 권 고 :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흰옷을 사라는 것은 의의 옷을 입으라는 말씀이다.
* 갈 3: 27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 벧전 1: 19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 계 16: 15 -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 롬 13: 12-14 –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엡 6: 13-17 –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라오디게아는 광택 있는 검은 양모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양모가 아닌 '흰 옷' 곧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고 영적으로 수치스럽게 벌거벗은 것을 가리라고 권면하신다.
* 골 1: 27 -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 골 2: 3 -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1) 흰옷
성경에서 '벌거벗은'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즉, '옷을 벗는다.'는 것은 심판과 굴욕의 상징인 동시에 '좋은 옷'을 입는 것은 바로 영광의 표시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육적인 부요에 넘쳐서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해야 했다.
'흰옷'은 거룩과 성결을 말한다. 그러니까 거룩한 생활, 성결한 생활, 믿음의 생활, 경건한 생활, 기도 생활, 말씀 생활, 주일 성수 생활, 봉사 생활을 통해서 벌거벗은 부분을 가리라는 것이다. 즉, 불로 연단한 정금 같은 신앙을 갖으라는 것이다.
(2) 사서 입어라 - 희생, 봉사, 섬김.
(3)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라.
* 사 20: 1-4 – 1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다르단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니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니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 4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4) 보이지 않게 하라 - 섬김의 생활로 살라.
(5)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역의 특산물인 안약을 사서 치유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의 영적 시각 장애를 치유하고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라고 권면하셨다.
이 말씀은 영적으로 눈을 뜨라는 뜻이다. 영계를 바라볼 수 있는 성령의 전망력과 판단력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를 좀 보아라. 영계를 좀 보아라. 사탄의 역사를 좀 보아라. 하나님의 세계를 좀 보아라.'하는 것이다.
오늘 이 시대를 영적인 눈을 뜨고 보아야 한다. 영적으로 보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도를 많이 하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면 무엇으로 볼 것인가? 말씀으로 보는 것이 완전하다. 그것만이 100% 정확하다.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을 보시기를 바란다.
① 안약
영적 진리.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성령.
② 사서 바르라
간구하여(수고하여) 소유하라.
주님께 산다는 말은 이 모든 것이 주의 소유라는 것을 나타낸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실상,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이런 것들을 간구할 때 그는 그것들을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55: 1에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셨다.
③ 보게 하라
신앙의 영적인 눈을 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