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 : 17. 완전하게 하려 함 5 : 18. 다 이루리라.
3. 예수와 율법 ( 5 : 17 - 20 )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 : 17. 완전하게 하려 함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모세가 쓴 처음 다섯 권의 책들은 모세의 율법이라고 불리며 그것이 구약성경의 핵심이다.
예수님 당시에 어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구약시대의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완전하게 한다’는 원어(플레로오plhrovw)는 ‘이룬다, 성취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의 율법이나 구약성경을 폐지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 율법이나 구약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의 관계, 즉 율법과 복음의 관계는 폐지가 아니고 성취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십자가 속죄 사역은 모세의 율법의 폐지가 아니고 성취이다.
1]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율법'은 구약성경 전체를 뜻하기도 하고 축약된 의미로서 모세 오경을 가리키기도 한다.
'선지자'는 구약 역사서들로 구성된 초기 선지서들과 이사야 이후의 후기 선지서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예수 당시 유대인이 신약이 기술되기 전에 구약을 지칭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마 7: 12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마 11: 13 -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 눅 16: 16 -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 요 1: 45 –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 행 13: 15 -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 롬 3: 21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 폐하러
'폐하다'(*, 카탈뤼사이)란 건축물의 파괴와 연관된 표현이다.
* 마 24: 2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마 26: 61 –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 마 27: 40 –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여기서는 어떤 규범이나 제도의 완전한 개편 또는 폐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를 비난했던 당시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의 손상자와 파괴자 역할을 했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두개인들은 선지서들을, 고지식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극단적인 엣세네파는 율법과 선지서들을 부분적으로 폐기함으로써 결국 율법의 파괴자가 된 것이다. 그들의 비난 대상이었던 그리스도는 그 모든 것의 완전한 성취자였다(Lange).
3]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온 줄로'에서 '왔다'는 말은 예언자들에게 사용되었던 표현으로서, 적어도 예수가 어떤 사명을 가지고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Maier).
* 마 11: 18-19 –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4]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부분에 대한 가장 훌륭한 해석은 율법과 선지자가 예수를 지시하고 있다고 볼 때 예수가 그것들을 완전케 하는 자이고, 동시에 예수가 바로 그 성취이다. 여기에 대조시키고 있는 것은 '폐하다'와 '완전하게 하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율법에 대해 예수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예수에 대해 율법이 어떻게 관계하는가.'이다(Banks)
'완전하게 하다'(*, 플레로오)는 말은 원래 '가득 채우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그 깊은 뜻과 충분한 의미를 드러낸다.', '모두 실행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본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의 큰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목적, 의도하는 온전한 뜻과 내용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NcNeile). 이러한 사실은 당신의 권위로써 그 율법의 각 조항을 문자적 해석 이상의 궁극적 목적과 의도를 밝히신21-48절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구약성경이 가지는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권위는 구약성경의 풍성한 성취가 되시는 예수의 품격과 가르침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가 의도하는 바는 구약의 율법을 폐기하거나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구약이 지시해 준 자기 자신의 권위에 입각하여 구약성경의 율법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준다.
예수는 자신이 구약이 지향하는 종말론적인 목표임을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이 구약성경에 대하여 유일한 권위 있는 해석자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그를 통해서만 구약성경의 근거를 얻고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율법과 선지자가 가리키는 초점은 예수다. 바로 이 점이 바울과 마태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울은 기독론적이고 종말론적인 해석을 통하여 구약성경에 접하고 있다. 이러한 구약 해석의 기초를 놓은 분이 예수라는 점이 본 복음서에 의하여 분명해진다(Carson).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가리킨다. '완전케 한다'는 말(플레로오)은 '이룬다, 성취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성경을 폐지하기 위해 오시지 않았고 이루기 위해, 성취하기 위해 오셨다. 그는 구약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고, 구약의 상징들, 모형들, 예표들의 실체를 드러내셨다.
초대 교회의 '말시온'이라는 사람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오해하였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공의의 하나님이며, 신약의 하나님은 인자한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서로 다른 하나님이라고 보았다. 그는 율법과 복음을 서로 모순되게 이해하였다. 다시 말해, 말시온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을 폐지하기 위해 오신 분으로 오해하였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의 오류를 밝혀 주고 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덕법을 성취하셨다.
즉 도덕법이 요구하는 의(義)를 이루셨다. 예레미야는 장차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일어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불리리라고 예언했다.
* 렘 23: 5-6 –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다니엘은 메시아의 때에 죄악이 영원히 속량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날 것을 예언하였다.
* 단 9: 24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도덕법의 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10: 4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라고 말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식법도 성취하셨다.
그는 구약의 상징적 의식들, 제사 제도, 성막 제도, 절기 등의 실체로 오셨다. 구약의 의식법들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상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 사역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라고 말했다(골 2: 16-17).
또 히브리서는 “이 장막[성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분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라고 말했다.(히 9: 9-12)
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했다(히 10: 1).
초대교회의 이단자 말시온은 구약의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신약의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서로 다른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을 폐지하기 위하여 오셨고, 율법과 복음은 서로 모순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큰 오해이었다.
역사상, 율법주의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구약의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 반(反)율법주의라는 잘못된 사상도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었다. 이 두 사상은 다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오해한 것들이다.
마 5 : 18. 다 이루리라.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본문의 ‘율법’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중의 모세 5경뿐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켰다고 보인다. 주께서는 이 말씀에서 구약성경의 신적, 절대적 권위를 증거하셨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라는 표현은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까지도 신적 권위를 가짐을 증거한다. 이 말씀은 성경의 축자(逐字) 영감[단어 영감]을 증거한다. 아니, 단지 축자 영감 정도가 아니고, 축점(逐點) 영감, 축획(逐劃) 영감을 보이는 것이다.
도덕법이나 성경은 결코 폐지되지 않고 남김없이 성취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다 이루셨다.
1]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멘 가르 레고 휘민)
이 말은 '믿을 수 있는'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다.
구약에서는 이 말이 '틀림없이', '진실로'라는 부사로 자주 사용되었다. 문장의 마지막에서 그 문장이 진실이거나 또는 진실임이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보증하는 의미로 사용된 용례가 자주 보인다.
기도에서 마지막에 '아멘'<amen>으로 화답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말로써 문장이 시작되기도 한다.
* 렘 28: 6 –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 계 7: 12 –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 계 19: 4 -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 계 22: 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또는 '아멘'이 응답으로 쓰이는 일도 있다.
* 신 27: 15-26 –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고전 14: 16 -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 계 5: 14 -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예수께서 하신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란 말씀은 당신의 절대적 권위에 입각해 어떤 한 진리를 단정적으로 선언하실 때 흔히 사용하셨다.
2]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세상의 종말까지는'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서 예수의 재림을 지향한 표현이다.
세상 종말까지는 율법과 선지자는 폐해질 수 없다는 것이 예수의 단정적 선언이다.
3] 율법의 일점일획(一點 一劃. *, 이오타 헨 에 미아 케라이아)도.
'일점'이란 히브리어 문자에서 가장 작은 글자인 '요오드'(*)를 가리키며 헬라어로는 '이오타'(*)정도의 가장 작은 문자를 뜻한다.
'일획', 즉 '케라이아'가 무엇을 가리키는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일획에 대하여 슈바츠(G. Schwaz)는 히브리어 문자 '와우'(*)라고 한다. 휠슨(Filson)과 렌스키(Lenski), 알렌(Allen), 잔(Zahn)은 비슷한 히브리어 문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작은 획이라고 한다.
타스커(Tasker)와 슈니빈트(Schniewind)와 슈바이처(Schweizer)처럼 장식적인 획이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락스(Lachs)는 가장 작은 글자의 가장 작은 부분을 가리키기 위하여 '일점'과 연결 지어서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예수는 여기에서 구약성경이 '붓 한번 살짝 움직인 정도'의 조그마한 내용조차도 모두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같은 예수의 생각이 구약성경에 대한 최상의 견해이다.
4]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새 세상에서까지도 율법의 권위와 그 효력성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 마 24: 35 -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막 13: 31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이것으로써 이 구절의 의문점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문자적 측면에서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범하셨다.
* 마 12: 8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이혼(divorce)에 관한 모세의 규범을 거부하셨다.
* 마 5: 31-32 –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특히 음식에 관한 규정을 무효화시키셨다.
* 마 15: 11 -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땅이 지속되는 한 율법의 한 획도, 나아가 경건한 필사자(筆寫者)가 덧붙인 수식어 중 어느 하나까지도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태는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태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율법의 어느 것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엄격한 문자적 보존과 성취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율법이 의도하는 것은 더욱 완전한 형태로 성취되며, 또한 모두 실제로 일어나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서 일어나며,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진정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에서 그리고 그의 가르침과 행위를 계속하는 그의 제자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주께서는 구약 율법의 신적 권위와 절대적 성격을 이처럼 증언하셨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라는 표현은 성경의 지극히 작은 부분까지도 신적 권위로 인 쳐져 있음을 입증한다. 이 구절은 소위 축자(逐字)영감(글자영감)보다 더한 축획(逐劃)영감을 보이는 것이다. 율법은 결코 폐지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도 남김없이 성취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