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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마 23: 8. 너희는 형제라 - 마 23: 9. 땅에 있는 자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3.03.17|조회수89 목록 댓글 0

마 23: 8. 너희는 형제라 - 마 23: 9. 땅에 있는 자                                                                                                                   

 

 

마 23: 8. 너희는 형제라 -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예수님은 자기를 드러내는 자만이나 허영심을 버리도록 하셨다.

 

 

1]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여기서 대화가 전환되고 있다.

 

전통 사본(Byz syrc 등)에는 '너희 선생은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시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서기관과 율법 학자들을 향한 비판을 마치고 '너희는'(*, 휘메이스)이란 말로 청중과 제자들에게 초점을 옮기고 있다.

 

이로써 예수의 설교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는 겸손에의 요청인 동시에 당시의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를 박탈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한 하나님, 한 주님을 모신 교회 구성원 안에서 단지 하나님의 일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는 허영심이나 계급의식을 버리고 오직 섬김의 자세를 취하도록 말씀하신다.

 

마 20: 25-28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특별히 '받지 말라'(*, 메 클레데테)란 부정 과거형으로서 어느 때라도 칭함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금지 조치가 바리새인의 교만을 지적하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당시 특권 의식을 지니고 사람들의 존경을 기대하던 특수 교권주의자들의 권위를 철저히 분쇄한 것이기도 했다.

 

이 금지 조치는 제한적이며 정신적인 교훈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교회 내의 지도자들이나 교사들에 대한 존경 의식마저 금지 시키신 것은 아니다.

 

고전 11: 1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교직에 대한 합당한 칭호는 지나친 공명심(功明心)이나 사사로운 명예욕에 근거하지 않는 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고전 12: 28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첫째는 사도요둘째는 선지자요셋째는 교사요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엡 4: 11-13 –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어떤 사람은 선지자로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충만의 신장의 분량이이르리니

 

딤전 1: 2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2]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시내산 사본이나 베자 사본 등에는 본문의 '선생'(*, 디다스칼로스) 대신에 '지도자'(*, 카데게테스)로 기록하고 있다.

 

전체 문맥의 흐름상 '지도자'란 말은 10 이하에서부터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본 절에서는 바티칸사본이 제시한 바대로 '선생'으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본문의 '너희 선생'이 과연 누구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다.

 

Ⓐ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키신 말씀이다. (Carson).

 

Ⓑ 하늘에 계신 모든 존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Bengel, The Puplit Commentary).

 

Ⓒ 각 개인의 내면에 내주하셔서 가르치시는 성령이시다. (Alford).

 

이 가운데 Ⓐ의 견해는 비록 후대에 수정된 사본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나 본문의 표현이 추구하는 바가 예수로 보기에는 부적절한 점이 많다.

 

이에 비해 이어지는 '너희는 다 형제니라'는 말에 근거해 성도들은 모두가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점에서 Ⓑ의 견해가 자연스럽다고 본다.

 

마 16: 17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바요나 시몬아네가 복이 있도다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요 6: 45 -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행 10: 28 – 이르되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하시기로

 

이와 더불어 예수께서 유언적 메시지로 성도들의 영원한 안내자요 교사이신 성령(聖靈)을 약속하셨다는 점에서 그리고 뒤이어지는 성부(聖父, 9)와 성자(聖子, 10)에 대한 각각의 권위에 대한 삼위 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탁월함을 암시하는 구절로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 견해도 무시는 할 수 없다.

 

요 14: 26 – 보혜사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지적하시면서 세상의 명성을 사모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교훈하셨다.

(1) 랍비라는 명성을 경계하셨다.


예수께서 랍비라는 존칭을 금하고 계신 것은 매우 신중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① 랍비는 더 큰 심판을 받는다.


'랍비'란 선생이란 말로서 일반인들을 깨우치고 교훈하던 자들을 부르는 존칭이었다. 이 랍비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지식을 소유할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더욱 훌륭한 본을 보일 수 있는 자여야만 했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선생 된 자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약 3: 1-2 – 내 형제들아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곧 온전한 사람이라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즉 인간은 누구나 온전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말에 실수를 제어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② 인간은 타인을 가르칠 수 없는 존재다.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이전에는 무지할 따름이다. 따라서 진리에 무지한 인간이 형제를 가르친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것을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결국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고 표현하셨다.

 

마 15: 14 - 그냥 두라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하시니

 

그러므로 선생으로서 받게 될 존경이나 명성 때문에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던 자들처럼 헛된 명성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수는 후회를 불러온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바를 따라서 반드시 실행하신다.

 

민 23: 19 -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그러나 인생은 식언하기 일수이고 늘상 이런 사실을 후회하곤 한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연약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므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매한가지 고민일 것이다.

 

어찌 선생이 된 자라고 해서 모든 실수로부터 벗어 날 수 있겠는가?

(2) 랍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①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


유대인의 관원으로서 바리세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했다.

 

요 3: 1-2 –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 이다.

 

본문에서 '너희 선생은 하나요'라고 말씀하신 것도 바로 그리스도인의 선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 이외에 아무도 없다는 의미다.


②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셨다.


당시 많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신적인 메시지를 가르치기보다는 오히려 말씀의 뜻을 어둡게 하고 헛된 교훈만을 베풀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랍비'라는 칭호를 가졌을지라도 진리의 실체를 가르치지 못하는 자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께로서 와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친 선생이었다.

 

즉 교훈을 베풀어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끌고자 하는 선생은 세상의 도를 전하는 자들이나, 교훈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게 하는 선생은 진실로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자인 것이다.


③ 영생으로 인도하셨다.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게 하는 여러 가지 지식이나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교훈이 더욱 가치 있는 가르침이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규례와 여러 가지 외형적인 경건의 장식을 귀중하게 생각했지만, 진리의 가르침인 하나님의 일인 하늘나라의 일을 깨닫지도 못했고 가르칠 수도 없는 거짓 선생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생의 길을 논하셨고, 구체적인 영생의 방법을 제시해 주셨다.

(3)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형제들이다.


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형제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성도의 맏아들이 되신다.

 

롬 8: 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서로에 대해 형제자매라는 영적인 가족관계를 갖게 된다.

 

이 가족관계는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신 우주적인 가정으로 앞으로 하늘나라에서 실현될 천국 생활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②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가족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을 받아들인 모든 자들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그를 의뢰하는 자들마다 자연적으로 한 형제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형제애를 느끼며 서로 관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한 가족인 것을 증명하는 좋은 일례가 될 것이다.

 

형제들은 한 공동체이므로 서로 베풀어주며, 용서하며, 실수와 잘못을 감쌀 수 있다.


 형제는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형제는 서로의 궁핍함을 볼 때 도울 마음이 일어나며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자들의 결속이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형제애를 가진 자. 그는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거듭난 새사람으로 세상을 향해 따뜻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3] 너희는 다 형제니라.

 

단 한 분, 영원한 랍비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형제라는 이 선언은

 

(1) 인간 중에는 하나님의 권위를 능가할 자가 아무도 없으며

 

(2) 지금껏 누려왔던 종교상의 독재나 특권을 모두 폐지(廢止)하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므로 어떤 직책이나 전통(傳統) 때문에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음을 명시하신 것이다.

 

 

마 23: 9. 땅에 있는 자 -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

 

 

본 절에서 참 아버지를 깨우쳐 주셨다.

 

 

1]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여기서 '땅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가 대비 되고 있다.

 

먼저 '아버지'(*)란 최고의 권위를 인정하는 용어로서, 특히 '땅의 아버지'라 함은 그 시대 이전의 율법 선생, 또는 위대한 스승, 원로 교사. 어떤 학파의 태두(泰斗) 등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Prike, Aboth).

 

유대인들은 위와 같은 자들을 절대적으로 숭상(崇尙)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요 4: 12 -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는 '땅의 아버지'를 '하늘의 아버지'와 대비시켜 종교적인 의미에서 어떠한 사람의 영광과 권위도 하나님의 권위에 미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하며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바리새인처럼 사람으로부터 찬양받으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암시적 표현이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과 같은 종교적 특별대우는 분명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이다. 실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종교상의 아버지로 하나님 한 분만을 인정하였었다.

 

고전 8: 6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롬 12: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아멘.

 

고후 6: 18 -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하셨느니라.

 

이 교훈은 광의적,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아버지'란 육신적으로도 능히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고린도 교회의 아버지나 디모데의 아버지로 스스럼없이 부르고 있다.

 

고전 4: 15 -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딤전 1: 2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2]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아버지는 육신의 아버지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영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우리의 선생님과 영적 아버지와 지도자는 하나님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영적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이런 칭호로 불리는 것은 합당치 않다.

 

물론 우리가 이런 칭호를 사랑하는 것도 합당치 않다. 명칭 때문에 사람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형제, 자매는 성도 상호 간에 사용될 만한 좋은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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