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1 장 7
3. 훈계와 권면(1:17-23)
⑰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⑱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⑲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⑳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1:17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유다는 4-16절까지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비판한 후 본 절에서부터 수신자들에게 권면을 한다.
유다는 사도의 말을 인용하여 이단에 대해 증거 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것 같다.
1)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사도들의 권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2)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미리 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이레메논'은 사도들이 유다가 본서를 기록하기 이전 시대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도들이 이전에 미리 거짓 교사들에 대해 권면과 경고를 하였음을 시사한다(Green).
수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고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한 사도들의 말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18 -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유다가 인용한 내용은 베드로후서 3:3이다 :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유다서는 베드로후서를 사도의 글로 인용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유다는 사도의 말을 들어 마지막 때에 나타날 이단에 대해 몇 가지로 증거 하였다.
첫째, 그들은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며 육에 속한 자들이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육신의 정욕대로 산다.
육에 속한 자(프쉬키코이 yucikoiv)도 육욕적인, 호색적인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이단자들의 한 특징이다. 이단자들은 음란하다.
둘째, 그들은 기롱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진리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이며 당을 짓는 자들이다.
이단들은 역사적 기독교 교리들을 조롱한다.
당을 짓는 것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행위이다.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교리들을 믿는 자들은 다 하나이다. 그 교리들을 조롱하고 배척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들이다.
이단들이 바로 교회의 일치와 화평을 깨뜨리는 자들이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본문은 사도들이 미리 경고한 말씀이다.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가리킨다(Cranfield, Bauckham).
* 히 1:2 -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약 5:3 -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 벧전 1:5,20 - 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⑳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기롱하는 자들'은 신앙과 도덕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자를 가리킨다.
* 시 1:1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잠 1:22 -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 잠 9:7,8 - ⑦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⑧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 잠 13:1 -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거짓 교사를 의미한다.
* 벧후 3:3 -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기롱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경건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뜻대로 행하였다(14,15절).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등장은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
* 막 13:5-23 - 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⑥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⑦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⑧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⑨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⑩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⑪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⑫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⑬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⑭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⑮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⑯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⑰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⑱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⑲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⑳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1:19 -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셋째, 그들은 성령을 모시지 않은 자들이다.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딤후 3:16).
성령을 모신 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며 그 중요한 진리에 있어서 일치한다.
주 예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6:13). 그러나 이단들은 진리의 성령을 모시지 않은 자들이다.
유다는 12절과 16절에 이어 다시 한 번 거짓 교사들에 대해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1)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당을 짓는) 자며,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자신들을 구분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서 또 다른 그룹을 형성한 것이 아니다.
고라와 같이(11절) 교회 내에서 애찬에도 참여하면서 자신들만이 참된 영을 소유(所有)한 것처럼 인식하고 그룹을 형성하였다(Bauckham, Blum).
2)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성령은) 없는 자니라.
'육에 속한 자'(프쉬키코이)는 '성령은 없는 자'와 동일한 의미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고 단지 세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스스로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할지라도 실제로는 종말론적 선물인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비그리스도인이었다.
1:20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유다는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를 권면한다.
첫째, 그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라고 권면한다.
유다는 성도의 믿음을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믿음의 성격을 나타낸다.
성도의 믿음은 세상적 욕심이나 목적을 가지고 세상의 것들을 구하는 세상적인 일이 아니다.
성도의 믿음은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그것은 죄를 버리고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이며, 지옥에 들어갈 자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 만일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자이다.
성도의 인격은 믿음 위에 건립된 인격이다. 우리는 아름답고 튼튼한 건물을 짓듯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잘 건립해야 한다.
둘째,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으로라는 말은 성령 안에서, 즉 성령의 감동과 도우심으로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 18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하였다. 기도는 믿음의 증거이다. 믿는 자는 기도하며 믿음 없이는 기도할 수 없다.
성령께서는 보혜사 곧 우리의 위로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그는 우리의 기도 생활도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잘 안 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해야 한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호칭을 통하여 수신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3, 17절).
2)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자기를 건축하며)
'믿음'은 복음을 가리킨다(3절, Green, Bauckham, Cranfield).
이것이 거룩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Blum).
'자기를 건축하며'란 말은 수신자들이 사도들을 통하여 전수 받은 복음을 잘 상고하고 연구하여서 터 되신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 공동체가 영적으로 성숙해져 가야 함을 의미한다(Green, Bauckham).
* 고전 3:11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유다는 이러한 권면을 통해 수신자들이 거짓 교사들의 도덕 폐기론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복음에 근거해서 영적 성장을 이룸으로 거룩한 생활을 영위해야 함을 강조한다.
3)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으로'(엔 프뉴마티)는 '성령의 통제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 마 22:43 -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 막 12:36 -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 눅 2:27 -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 눅 4:1 -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 롬 8:9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고전 12:3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계 1:10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계 4:2 -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정욕대로 불경건하게 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수신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성령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 롬 8:26,27 -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갈 4:6 -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엡 6:18 -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21 -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셋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자기를 지키라는 말은 교리적 이단들과 윤리적 죄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뜻이다.
유다는 이단들에 대해 많이 말했다. 그는 본 서신의 초두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단 사상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 우리는 더러운 죄들로부터도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성도는 온갖 더러운 죄들, 특히 음란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힘입어라는 뜻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죄 씻음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 아무리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악과 싸워야 하며 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말하였다(롬 8: 31-32).
넷째,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진행도, 완성도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뿐이다.
우리의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도 그의 긍휼로 이루어졌고, 성화(聖化)도 그의 긍휼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부족하며 시시때때로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일어선다. 또 우리의 구원의 완성 곧 영화(榮化)도 주의 긍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주께서는 피 흘려 사신 영혼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의 긍휼을 기다리면서 영생을 향해 달려가야 하고 끝까지 그러해야 한다.
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의 사랑'(아가페 데우)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 주격적 속격으로 이해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Blum, Bauckham, Green).
Ⓑ 목적격적 속격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의미한다(Chaine, Cantinat).
두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과 병행(竝行)을 이루는 요 15:9의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가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2) 영생에 이르도록
'영생'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에도 향유하는 것이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긍휼'은 하나님의 백성이 고대하는 종말론적 소망이다. 항상 하나님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 마 5:7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딤후 1:18 -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그러나 유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이라고 기술함으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委任)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다(Bauckham).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속죄 사역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3절, G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