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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팔현목사

슥 13 장 : 예루살렘의 정결(1)

작성자jung8h(정팔현)|작성시간21.04.20|조회수33 목록 댓글 0

슥 13 장 : 예루살렘의 정결(1)

 

 

제 13 장 : 예루살렘의 정결

 

 

1. 더러움을 씻는 샘(13: 1-6)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3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4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5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6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13: 1. 그 날에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

 

 

메시아로 말미암은 구원과 회복의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릴 것이다. 죄가 사람과 세상의 불행의 근본 원인이었고 더러운 것이었으나, 죄를 씻는 샘이 열릴 것이다.

 

(1) 죄의 개념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나쁜 짓을 많이 하길래 항상 죄인이라고 가슴을 치며 울고, 만나기만 하면 회개하라고 다그치는 것일까?

 

기분이 나빠서 교회에 나가기가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죄에 대한 개념과,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죄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죄라고 하면 법률을 위반 했다던가 윤리, 도덕상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죄를 범했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에서의 죄개념은 그 종교의 계율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자주 말하는 죄의 뜻은 무엇인가?

 

구약과 신약에서 죄라는 뜻으로 쓰인 단어는 여럿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말이 [하말티아]라는 히브리말이다. [하말티아]라는 말은 활을 쏘아서 과녁을 적중시키지 못하고 빗나갔다는 뜻이다.

 

이 말의 뜻은 인간이 신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출발해서 인간이 신의 뜻을 반역하는 일, 그 다음에는 악을 행하는 일 등을 죄라고 했다.

 

영어 성경에는 죄(sin), 죄과(罪過)(transgression), 허물(iniquity), 범죄(fault) 등으로 달리 구분해서 쓴다.

 

마음이 머물러 있는 악한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나쁜 행위, 그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들 등이 모두 죄라는 말로 표현된다.

 

(2) 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첫째,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다 선하였다.

 

* 창 1: 31 -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러므로 죄의 기원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천사들 가운데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자들이 있었다.

 

* 유 1: 6 -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그 천사들이 타락하여 악한 세력이 되었고, 그 타락한 천사가 인간을 유혹해서 사람이 범죄 하게 되었다고 하나, 이것 역시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천사에게 전가시키는 경우가 된다.

 

셋째, 우리는 죄의 기원을 하나님에게나 천사에게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죄의 근원은 인간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이 죄를 범한 것은 아담과 하와의 자발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인간이 범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이라는 말은 창조주가 아니라는 뜻이요, 피조물은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상대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의 죄는 바로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나온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인간이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완전한 존재 인양 착각하여 창조주와 같아지려고 한 것이 죄의 근본이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피조 된 인간이 창조주와 같아지고자 한 행동이었다.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주인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자신에게나 모든 피조계에 불행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3) 죄란 무엇인가?

 

죄는 피조물의 불완전성에서 파행된 곰팡이와 같은 것이며,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인 자신의 자유의지를 남용한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망각하고 창조주만이 앉을 수 있는 우주 만물의 주인의 자리에 앉으려고 한 노력이 곧 죄가 되는 것이다.

 

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① 인간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교만과

 

② 피조물이 창조주의 통치를 거부하는 불순종과

 

③ 자식이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을 뜻한다.

 

인간이 신을 거부하고,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선언한 아담과 하와의 행위야말로 죄악의 기원이 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피하여 굴레 벗은 야생마처럼 세상을 살아갈 때 인간의 욕망을 아무도 다스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 욕망이 안으로는 부패를, 밖으로는 갈등과 전쟁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한 사람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고 개인과 인류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

 

 

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은 비유적 표현이다. 구약에서의 샘물은 죄와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에 꼭 필요했다.

 

신약에서는 그러한 정결함이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통하여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가리킨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게 된다.

 

그 역사는 "씻는 샘"과 같다.

 

* 요 7: 38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죄를 씻는 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죄 씻음 받음을 상징한다.

 

우리의 죄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만 씻어진다.

 

 

2]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전국을 대표한다.

 

"열리리라"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이호예 니프다'라고 하는데, 계속하여 열려 있음을 가리킨다(Pusey).

 

죄를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해 열릴 것이다.

 

죄를 씻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만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어주신다.

 

* 고전 6: 9-11 -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 엡 1: 7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救贖)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 요일 1: 7 -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계 1: 5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를 씻으시고(전통사본).

 

 

13: 2. 우상의 이름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

 

 

여기 우상이나 거짓 선지자는 포로 시대 이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있었다.

 

* 느 6: 10 -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그러나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서 모든 우상과 거짓 선지자는 유대 땅에서 근절 되게 되었다.

 

특별히 바리새 주의는 일종의 거짓 선지자의 운동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파쇄 시켰다.

 

 

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 땅에서 우상숭배를 제거하실 것이다.

 

‘이 땅’ 곧 회복된 이스라엘 땅은 신약교회를 가리킨다고 보며 최종적으로는 천국을 가리킬 것이다.

 

* 계 22: 15 -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상숭배를 제거하실 것이다. 그는 우상들의 이름들을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참된 신약교회 안에서는 또 장차 천국에서는 이방종교들이나 우상들과 온갖 이단 종파들이 없을 것이다.

 

우상 숭배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즉 어떤 물체나 형상으로 표현되고 그 속에 신성이 구현된 것으로 생각하는 거짓 신을 숭배하거나 어떤 형태의 형상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형상화하여 경배함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 숭배는 가장 가증한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경쟁자를 참지 못하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상을 새기지 말라는 계명이 종교상 조각이나 그림의 사용을 막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예배의 대상이 될 때 정죄되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우상 숭배에 관련된 것은 비교적 적다. 예수님은 재물을 생의 중심으로 삼는 것을 역시 우상 숭배로 경고했고, 바울은 우상 숭배가 모든 종류의 종교적 도덕적 타락으로 인도함을 지적한다.

 

우상 숭배의 구약적 개념에 더하여 신약에서는 인간의 욕망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때에 우상 숭배적 태도로 간주한다.

 

 

2]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또 더러운 사귀(邪鬼), 곧 더러운 영들을 제거하실 것이다.

 

사탄과 악령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지울 것이다.

 

* 계 20: 10 -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그들이 전했던 잘못된 사상들과 주의들과 정신들은 마침내 다 제거될 것이다.

 

 

13: 3. 예언이 없다. - 사람이 아직도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가 예언할 때에 칼로 그를 찌르리라. (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

 

 

신약시대에는 자기 자녀라도 거짓을 예언하면 그 부모가 나서서 제재할 것이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네가 살지 못하리라고 경고하고 그를 찌를 것이다.

 

구약적으로는 사형이고(신 13 장), 신약적으로는 제명 출교이다.

 

 

1] 사람이 오히려 예언할 것 같으면 그 낳은 부모가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말을 하니 살지 못하리라. 하고

 

예언이란? 그 누구나가 어떤 사건에 대하여 미리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에게 전파하는 일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선지들의 예언적 기반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그들의 신관에 있으며 그 신관에 수반되는 신앙에서 그 예언의 역사는 성장해 왔다.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선지자라는 명칭을 갖지 않고서도 예언자적 역할을 한 자들이 있다.(아브라함과 족장들, 모세) 사무엘에 이르러 예언의 사역은 한 층 더 명확해졌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위대한 예언 사역이 통일 국가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성경을 기록한 위대한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가 왕정 시대였다.

 

성경의 예언은 인간이 자아도취에서 발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으로 선포하게 되는 하나님의 메시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은 예언자의 개성이나 인격이 자유롭게 반영되도록 조절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예언과 하나님의 계시를 분리하고 구약의 예언은 단순히 인간들의 발언인데 선지자들이 정의감에서 자기들이 살던 시대상을 책망하고 해석하는 의미에서 발언한 것이지 어떤 미래나 장래에 대한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언은 그 성취성을 제외한다면 죽은 설화가 되고 말 것이다. 예언의 미래성은 그 성취에서 그 정확성이 입증된다.

 

 

2] 낳은 부모가 그 예언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칼로 찌르리라"는 말씀은 구약 시대에 있어서 거짓 예언하는 자들을 그 근친이라도 아낌없이 죽인 사실을 신약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듯이 말한다.

 

* 신 13: 6-9 - 6 네 동복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7 곧 네 사방에 둘러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찌라도 8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9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이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철저한 배격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표현이다.

 

장차 새 언약 하에서 새롭게 변화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충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길 것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하게 되면 그를 배격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와 같은 정신을 신약 시대에 옮겨 놓는 표현이고 문자 그대로 칼로 찌름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말씀)가 더욱 밝히 계시되었기 때문에, 거짓 예언하는 자를 그의 근친이라도 미워하게끔 되리라는 것이 본 절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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