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샤에 대한 평가에 비하면 김오랑중령에 대한 평가는 너무 형편없음에 ....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는 미국의 출판업자 엘버트 허바드가 아들로부터 전해들은 미국-스페인전쟁(1898년)의 영웅 로이완 중위의 무용담을 1899년 2월, 자신이 발간하던 잡지「필리스틴」3월호에 게재한 글이다.
-------------------------------------------------------------------------------------------------------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
나는 얼마 전 쿠바사변시에 불쑥 나타나 공헌한 화성처럼 빛나는 어느 영웅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누가 그를 잊을 수 있을까?
스페인(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속국이었다)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 대통령은 게릴라군의 지도자인 가르샤장군에게 급한 연락을 취해야 했다. 가르샤는 쿠바의 산중요새 중 한곳에 은신하면서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가르샤가 어디에 은신해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편물이나 전보 따위는 단 한 장도 가르샤에게 전달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빨리 가르샤의 협조를 확보해야 했다.
어떻게 했을까?
누군가가 대통령에게 말했다
『각하, 아무도 해낼 수가 없다면, 로이완이라는 사람을 보내시면 됩니다. 그는 틀림없이 가르샤를 찾아낼 것입니다.』
로이완은 결국 대통령으로부터 가르샤에게 전해야 할 밀서를 직접 받았다. 「로이완이라는 군인」이 어떻게 대통령 밀서를 방수 봉투에 싸서, 그것을 어떻게 가슴에 품었으며, 4일간의 여행 끝에 어떻게 밤중에 보트편으로 쿠바의 한쪽 해안에 도착했으며, 정글속으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리고 3주 만에 어떻게 쿠바섬의 반대쪽에 가서, 어떻게 도보로 낯선 나라 땅을 섭렵하다가 가르샤에게 대통령의 밀서를 전했는지-나는 이 모든 것에 관하여 상세히 이야기할 욕심은 하나도 없다. 단지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멕킨레이는 로이완 중위에게 가르샤에게 전해야 할 밀서를 주었다. 그때 로이완은 대통령의 밀서를 받고 결코 다음 같은 질문을 안 했다는 점이다. 『각하 가르샤 장군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나의 소원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로이완의 동상은 지상에 있는 각 대학의 교정에 세워져야 할 것이다. 청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가치한 서적이나 이것저것에 관한 지시가 아니다. 청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명완수, 즉각적인 실천, 분투노력일 따름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이다.「가르샤에게 밀서를 전하는 것이다.」
가르샤 장군은 이미 죽었다. 그러나 제2의 가르샤들이 있다. 자발적으로 행하는 사람이 아닌 무능한 혹은 무성의한 사람이 제2의 가르샤들에게 밀서를 틀림없이 전할 수가 있을까.
무기력한 후원, 우매한 부주의, 보기 흉한 무관심, 그리고 반신반의의 일처리가 규칙인양 통하고 있는데 이것은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사기와 핑계, 협박과 공갈, 아니면 불로소득을 일삼는 사람치고 크게 성공한 사람은 지상에 하나도 없다. 선하신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신다. 그리고 선한 사람에게는 빛의 천사를 보내어 적극적으로 후원하신다.
한번 시험해보라. 지금 당신은 당신의 사무실에 앉아있다. 여섯 명의 사원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다. 그 중 한 명을 불러 부탁해보라
『백과사전을 꺼내어 코레기오의 일생에 관하여 간단히 메모해주시겠습니까.』
그런 경우 그 사원이 정중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과연 그 일을 하러 갈까?
천만에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대신 그 사원은 당신을 흘겨보고 입술을 내밀며 이와 유사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가 누구죠?
어느 백과사전을 볼까요?
백과사전은 어디에 있죠?
그 일을 위해 내가 고용되었나요?
비스마르크란 사람 말인가요?
찰리라는 사람에게 시키시죠,
그는 죽었습니까?
왜 그것을 원하시죠?
그러면 십중팔구 당신은 그런 질문에 관해서 대답하고, 정보를 찾는 법을 설명하고, 그것을 왜 원하는지 상세하게 말해 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사원은 당신이 부탁한 것을 찾으러 갈 것이다. 억지로 말이다.
코레기오를 쉽게 찾기 위해서 다른 사원을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에 돌아와서 그런 사람은 백과사전에 없다고 흐리멍텅하게 보고할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렇게 된다고 본다.
좌우간 그런 경우 당신이 만약 현명하다면 심부름 보냈던 사원에게 코레기오는 「ㄱ」란이 아니라 「ㅋ」란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 아니 할 것이다. 그대신 매우 친절히 웃으면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한 후 직접 가서 코레기오의 일생을 찾을 것이다. 이런 독립심의 결핍, 창의성의 결핍이 모든 것은 사회생활의 악습으로 남아 있으며 미래를 좀먹게 만드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행동하지 아니하면 인류를 위하여 무슨 공헌을 남길 수가 있을까?
사람은 많다. 그러나 쓸모 있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아니하다. 예를 들면 속기사 모집 광고를 내어보라. 그러면 대부분의 응모자는 글을 바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더 한심한 것은 그들은 글을 바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이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를 작성할 수 있을까?
어느 큼직한 공장에 갔을 때 그 공장의 한 간부가 말했다. 『저 경리 사원을 아시죠?』
『예, 왜요?』
『뭐랄까, 그는 장점이 많은 경리 사원입니다. 주택가로 심부름을 보낸다면, 잘 해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부름을 보내면 그는 심부름 가는 길에 술집을 4차로 돌면서 술을 마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택가에 도착할 무렵에는 그가 무엇하러 거기에 오게 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를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최근에 「공장에서 천대받는 일꾼」 혹은 「정직한 고용을 원하는 정처없는 방랑자」와 같은 값싼 동정의 말을 가끔 들을 수가 있다.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권력자들에 대한 거친 말이 오가기 일쑤다.
그러나 심사숙고해 보자.
고용주는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다보면 원치 아니해도 설 늙기 마련인 것 같다. 거의 항상 고용주는 자기의 빵만을 벌기 위해 일하는 「무능자」까지 가능하면 구제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런 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끝내 깨닫지 못하면 조치를 취하게 된다. 도처에 산재한 각 업소와 회사에서는 지금도 무능자 제거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아니한다. 고용주는 누구나 꾸준히 회사에 이익을 안겨주지 아니하는 「무능자」를 추방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유능자를 고용해야 한다.
경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런 작업은 지속된다. 그리고 경기가 악화되어 일자리가 귀하면 무능자 제거 작업이 좀 더 철저히 진행될 따름이다. 문제는 무익한 그리고 가치 없는 사람만이 쫓겨나거나 밀려난다는 점이다. 그것은 적자생존이다. 사업이란 이익추구이기에 고용주는 누구나 이왕이면 최대의 이익을 안겨줄 자들을 찾고 있다.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진실로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처신을 잘 못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아무에게도 가치가 없다. 그는 항상 자기의 고용주는 자기를 억압하거나 억압하는 것 같다는 불신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명령을 내릴 수가 없다. 그는 명령에 순종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에게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를 주면 내심 이런 말을 외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직접 하시지!』
오늘밤에도 그런 사람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거리를 누빌 것이다. 찬바람이 그의 누더기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뼈마디를 에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질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그를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불만의 불씨다. 그런 사람은 이성이 마비되어 있다. 그런 사람을 단숨에 정신차리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몽둥이로 내려치겠다고 경고하는 것 외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신체적 불구자처럼 정신적 불구자도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살필 바에는 어차피 우리는 큼직큼직한 사업을 위해 밤낮으로 수고하는 사람들까지 불쌍히 여기도록 노력하자. 그런 사람들의 근무 시간은 호각소리에 국한되지 아니한다. 무관심과 배신, 그리고 몰지각 때문에 그들의 머리카락은 빨리 희어지는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정처없는 사람이다.
너무나 지나친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출세한 사람에게도 위로의 말을 하고 싶다. 출세한 사람은 여러 종류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선도하여 출세시키지만, 따지고 보면 타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실제로 노동자 생활을 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고용주 생활도 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양자를 향해서 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가난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누더기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미덕의 사람일 수 없듯이 모든 고용주가 다 욕심꾸러기나 착취자일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우두머리」가 회사에 있을 때처럼 그가 외출했을 때에도 똑같이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은 가르샤에게 보내는 밀서를 주면 묵묵히 그것을 받는다. 그 다음 그는 철저히 그리고 신중하게 사명을 완수한다. 그는 부당한 보상을 기대하지 아니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런 사람을 찾는다. 그런 사람은 무엇이라도 청구하면 다 받게 된다. 모든 도시, 마을, 그리고 농촌, 모든 사무실, 회사, 상점, 그리고 공장에서 그런 사람을 원하고 있다. 전 세계가 그런 사람을 원하고 있다.
가르샤에게 보내는 대통령의 밀서를 틀림없이 전해줄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