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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현대소설]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 조세희

작성자금수산|작성시간08.05.18|조회수344 목록 댓글 0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조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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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5시가 이미 넘었는데도 어두웠다. 여느 때면 내방 창에 첫빛이 와닿고 커어튼이 그 빛을 올 사이사이로 빨아들여 방안의 어둠을 밀어 버릴 시간이었다. 나는 침대 머리맡의 수화기를 들고 주방으로 이어진 단추를 눌렀다. 아직 잠이 덜 깬 듯싶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떨림판을 흔들어 왔다. 커피를 시키고 일어나 커어튼을 젖혔다. 창문을 덮었던 안개가 스멀스멀 밑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늙은 개가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나는 내려다 보았다. 돌아간 할아버지의 개는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느릿느릿 안개를 헤쳐 흐트려 뜨렸다. 숙부가 독일의 어느 기업인에게서 선물로 받았다는 개였다.
숙부는 자기가 받은 선물을 다시 할아버지께 바치면서 족보를 밝혔는데, 개의 계보가 그 나라의 호엔쫄레른 왕가까지 들먹이게 했다.
늙은 개의 가까운 선조들은 2차대전에 참가해 노르만디 해안을 순찰하고, 아프리카의 사막도 횡단했다. 그 이야기가 나를 흥분시켰었다.
지도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늙은 개의 선조들은 주인과 함께 참전해 그들에게 할당된 참호를 지키고 보초를 섰다.
전진의 명령은 지도자가 내렸다. [나는 언제나 옳다. 나를 믿고, 복종하고, 싸우라]고 지도자는 말했다. 강력한 교육을 받은 유럽 국민답게 그들은 총력을 기울여 싸웠다. 나는 그들의 역사를 좋아했다.
할아버지의 개는 연못가에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찾아 내려앉는 참새를 앞발로 쳐 잡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영리하고 민첩한 사냥개를 아직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냥을 나갈 때마다 피묻은 짐승들을 차에 싣고 왔다. 할아버지는 그 짐승들을 거실로 끌어들이게 해 카페트를 버려 놓으며 큰 소리로 웃고는 했다. 그때 할아버지 앞으로 할아버지가 쏠 짐승을 꼼짝없이 몰아붙였던 개는 저의 집으로 들어가 적당한 양의 갈비를 뜯었다.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늙은 개는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두꺼운 책을 뽑아 그 개를 향해 내리던졌다. 빗나간 책이 풀장으로 이어진 보도 타일 위에 떨어졌고 늙은 개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숙부가 그 개를 가져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 개는 이미 장년기를 지나 늙기 시작한 때였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할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숙부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 숙부가 은강공장에서 올라온 공원의 칼을 맞고 숨졌을 때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숙모와 사촌들 옆에 선 아버지가 눈가에 차서 넘칠 듯 글썽해진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냈던 것이다.
나는 숙부를 죽인 공원을 법정 방청석에 앉아 보았다. 늙은 개는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듣고 안개를 헤치며 온 아버지의 경호원이 내가 늙은 개를 죽일 마음으로 던진 두꺼운 책을 집어들었다.
여자아이가 책과 커피를 받쳐들고 들어왔다.[작은댁 사모님께서 아드님하고 오셨어요] 여자아이가 아직도 잠이 덜 깬 듯싶은 목소리로 말했다. 엷은 하늘색 원피스에 흰 앞치마를 둘렀다. [함께 온 사람이 있지?] 내가 물었다. [변호사를 데리고 오셨어요] 나는 웃옷을 벗고 잤다. 그래서 여자아이는 나를 바로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열다섯살 계집아이로 왔는데 이태만에 몰라보게 자란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다. 가슴 부분이 유난히 볼록해 보였다. 나가려는 아이를 잡아 세웠다. 나는 [너희방 텔레비전에는 이런 것이 없지]라고 말하면서 카세트테잎을 골라 VTR 장치의 작동 단추를 눌렀다.
여자아이의 몸에 간밤의 잠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의 커피잔을 그 아이의 입에 대주었다. [전 쫓겨나요] 아이가 말했고, 화면에서는 베를리오즈의 음악이 화면 안 여자아이의 금발을 흩날리게 했다. 지금의 유럽 쪽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나라면 이런 종류의 테잎에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여섯살>이라는 제목의 테잎이었다. 빨간 스웨터를 걸친 열여섯살짜리 여자아이가 친구들과 헤어지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테잎을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뒷부분에 놓았다. 놀라운 일이 화면 안에서 벌어졌다. [내가 널 어떻게 했니?] 나의 물음에 여자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몸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여자아이는 화면에서 눈을 돌려 비난에 찬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손을 빼었다.
새벽같이 아버지를 만나러 온 세 사람은 2층 응접실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직도 그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 숙모가 데려온 변호사는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을 보는 순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사촌은 그들 맞은 편에 앉아 신문을 뒤적였다.
[형]
내가 불렀다.
[이리 와]
[넌 일찍 일어났구나]
숙모의 말을 나는 묵살했다. 눈을 뜬 변호사가 안경을 올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숙부가 돌아간 날부터 그는 숙모의 변호사로 일했다.
사촌은 나선형 층계를 돌아 내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 올라왔다.   [너 무 일찍 왔어] 내가 말했다. 우리는 복도 끝으로 가 비상 계단으로 내려섰다. 안개가 걷혔다. 아침 첫 햇살은 우리가 돌아 내려가는 층계참의 모서리와 흰 벽, 그리고 키 큰 나무들 잎 위에 떨어졌다. 사촌은 까만 양복에 까만 넥타이를 맸다.
[형까지 올 줄 몰랐어]
사촌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잠을 더 자두는 게 낫지.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어쩌겠다는 거   야?]
[우린 그런 이야길 하지 말자]
숙부가 돌아갔을 때 그는 미국에 있었다. 나의 친형 둘도 그곳에 유학 중이었으나 그들은 숙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갔다면 허겁지겁 돌아왔을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나의 형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기들이 차지할 아버지의 유산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 조바심을 쳤을 것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잠이 안 왔다. 둘이 터무니없이 차지해 나의 몫 은 바싹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장미밭을 지나갔다. 아버지의 경호원이 늙은 개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내가 던진 두꺼운 책이 아주 빗나가지는 않았다. 머리에 상처가 났다면서 경호원이 늙은 개를 끌어 갔다.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
나는 풀장 가에서 신발을 벗어 던졌다. 사촌은 등나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너도 나를 귀찮게 생각하니?]
우울한 목소리로 사촌이 물었다.
[아니]
나는 말했다.
[형을 귀찮게 생각할 사람은 없어. 난 형을 위해 하는 말야] [고   맙구나]
사촌의 다음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스프링보오드를 몇 번 구르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풀 깊은 바닥은 아직도 어두웠고 물은 아주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일 분 가량 잠수해 있었다. 풀 밑바닥 모퉁이에 몸을 오그리고 앉아 느끼는, 일 분 동안의 숨막힘, 일분 동안의 거짓 절망이, 나중에 잃게 될 내 세계와 지금 멀어져 버리는 괴로움으로 변해 나를 조여 왔다. 발을 놀려 물 위로 떠오르면서 나는 빛의 굴절이 일으키는 파면의 진행 방향 끝에 앉아 있는 사촌을 보았다. 나는 수면 위에 엎드려 물장구를 치며 손을 번갈아 움직여 물을 긁었다. 물장구는 다리 관절의 힘을 빼고 쳤다. 얼굴을 돌려 물 밖으로 내놓는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숨은 물 속에서 쉬었다.
[밖으로 나가자] 사촌이 수건을 던져 주었다. 햇살은 이른 아침부터 따갑게 느껴졌다. 정장을 한 사촌의 이마에 땀이 내배었다. 아버지의 운전기사가 자기 차를 타고와 내리는 것이 사철나무 사이로 보였다.
[숙모가 뭔가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아]
내가 말했다.
[형도 숙모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계신지 알겠지?] [난   모르겠어]
사촌이 말했다.
[네 말대로 미국으로 돌아가 하던 공부나 계속해야겠다] [이따    아버지를 뵙게 될 때 그 말씀부터 드려. 숙모가 하는 대로 따라   해서 이로울 건 하나도 없다구]
[그래야 큰아버지가 흡족해 하시겠지]
[형이 은강 그룹의 일원이라는 걸 강조하실 거야. 형도 우리 회   사들이 우리 나라 전체 세금의 4%를 내고, 매상액이 국내시장   의 4.2%,수출은 5.3%를 기록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돼]
[대단하구나]
[대단하지!]
나는 사촌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경영을 할 권리가 아버지에게는 없어. 숙부가 돌아 가   셨다고 그 분의 몫을 당신 앞으로 빼달라는 숙모의 말씀이 통할   것같아? 형이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일을 익혀 경영에 참여하는   게 제일 자연스럽지. 아버지가 인정하는 건 형뿐야. 나쁘게 들리   겠지만, 숙모는 이제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라구]
[어째서?]
사촌은 아주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사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 다. 내 위의 두 형에 비하면 선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은강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왜 날카로운 칼을 뽑아 살인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사람들에게 묻고는 했었다.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칼을 맞고 숨을 거두는 순간에 숙부가 아픔을 느꼈을까 하는 것도 그는 알고 싶어했다. 살인범이 노렸던 사람은 숙부가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침묵했다.
사촌은 범인을 이성과 감정, 의지와의 조화를 잃은 정신분열증 환자로 보았다. 그를 재판하면 안된다고 그는 말했다. 재판정에 나가 보고서야 피고가 정상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인 자의 계획살인을 정당방위라고 우겨 주위 사람들을 갑갑하게 만들었다.
법정 방청석은 공장 노동자들로 꽉 찼다. 아버지의 젊은 비서가 가방을 들고 들어서는 것이 똑같은 사철나무 사이로 보였다. 아버지의 승용차가 햇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독일 사람들이 만든 최고급 승용차였다. 같은 독일제였지만 나의 것은 차체가 작고 앙증한 흰색 국민차였다.
사촌이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미국의 노동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는 말했었다. [한국 섬유 노동자의 임금은 얼마?] 그곳 노동조합 대표가 선창하면 노동자들은 [시간당 19센트!] 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크게 외치면서 한낮의 광장을 돌 때 사촌은 그들이 우리 제품의 수입을 규제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달 임금으로 45.6달러를 지급하고 일을 시킬 경영집단이 있을 것으로는 믿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은강방직에서 올라온 젊은이가 칼을 뺀 것은 당연하다는 사촌의 주장이었다. 우리의 제도는 이제 안에서부터 파괴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칼을 품었던 사람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식구들은 2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현실이 한 차원을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었다. 2차원이라면 일정한 한도와 경계가 있다. 사촌에게는 자신을 너무 분석하고 구속하는 습관이 있었다.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갑갑한 사람이었다.
[변호사가 가잖아?]
그가 물었다.
[아버지의 비서가 쫓아내고 있어]
내가 말했다.
[아버지의 변호사를 찾아갔어야 될 사람이야. 숙모를 믿고 실수   를 했어]
[법률가는 사태를 똑바로 본다. 문제의 핵심을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파악해. 나는 그를 믿었어. 어머니가 새벽같이 전화를 해    불러냈 어. 어머니는 한잠도 못 잤어. 저 사람이 없으면 말 한마   디 못할 거야. 사실을 정연하게 제시할 능력가가 가버렸으니 큰   아버지를 뵈올 필요도 없겠어]
[몇 해만 기다리면 형은 자동적으로 중역이 돼] 웃으며 나는 말했다.
[들어가. 아버지가 일어나셨어]
[나는 돈이 많은 것도 싫어]
피로한 목소리로 사촌이 말했다. 그에게는 괴로운 날이었다. 숙모는 응접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내가 방으로 올라가 옷을 입고 내려 왔을 때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숙모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북쪽 벽에 은강조선 현장을 돌아보는 할아버지의 큰 그림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기분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변화를 무서워했다. 할아버지는 오래전 기술과 기계로도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팔아 높은 이윤을 얻었다. 몇 개의 소비재 생산 회사와 무역상사의 철저한 경영으로 그는 주주들의 투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재정을 안정시키며 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사회의 수요변화에 꼭 앞장서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돈을 계속 벌어들이고 있는 이상 모르는 방법과 기술에 매달려 머리를 쓸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아버지와 숙부가 합세해 변화에 대한 할아버지의 저항을 깨뜨려 버렸다. 우리는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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