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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기초교리

색즉시공 공즉시색

작성자해월|작성시간15.06.06|조회수72 목록 댓글 0
누가 묻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무엇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색은 곧 공하고, 공은 곧 색이라는 말이지요.”

“예? 그 말은 저도 할 줄 아는 말입니다. 실제로 색즉시공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게 물으니 예를 들면서 실제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시지요. “혹시 TV를 자주 보시나요?” ““예 자주 보지요. TV안에 사람이 있고 집도 있으며, 산과 바다 개와 고양이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이 실재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실재하지 않는 그림일뿐인가요?” “물론 그림이지요.” “그 말이 곧 색즉시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안에 말이나 노래가 있던가요? 없던가요?”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실재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거기에 있다고 보고 있음에 불과하지요.” “그렇습니다. 소리도 공한 것이요, 공한 것이 곧 소리로 들린 것입니다. 이제 소리도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시나요?

하나 더 예를 들어 봅시다. 프로그램에 자연의 맛을 찾아서 리포터가 맛있는 집과 요리사를 찾아갑니다. 보이십니까?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 음식 조리가 한창이군요. 그런데 그 냄새가 실제로 있어서 코에 와 닿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입니다. 리포터가 아주 맛있게 먹고 있군요. 보시면서 혀에 맛이 느껴지십니까?” “아니요,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 있다고 느껴지는 것 일뿐, 색과 성과 향과 미味와 감촉과 대상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고, ‘색수상행식 오온이 공함을 깨달아 모든 고액을 건너셨다‘는 말입니다.”

“스님, TV화면은 그렇다 쳐도 지금 여기 스님과 내가 이렇게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답을 하기 전에 우리가 여기 이렇게 있다고 하는 것과 TV 화면속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과 다른 것은 무엇인지 한번 말해보실까요?”

“글쎄요, TV화면 속에 인물이나 노래 등은 아마 언젠가 촬영을 하는 동안 찍어 놓은 것으로 실재하고 있었음이 공한 것으로 나타난 것 아닐까요?”

만약에 그것이 실재하고 있는 그림이었다면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겠지만,
다만 실재하고 있다는 생각만 실재하고 있는 것이고, 모든 것은 공한 까닭에 나투게 되는 모습인 것이지요.
 
그처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대화하고 앉아있음도 순간순간 무수한 파장이 흘러가며 하나의 화면을 형성하듯 공성의 현현임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공이 곧 색이며 수상행식과 성향미촉법도 이와 같다 하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직선적인 시간대만 존재하는 줄 아는데 TV 화면을 보면 재방송에 재방송이 거듭 되거나, 심지어 십년 전에 방영한 드라마를 다시 방송하여도 방송을 보고 있는 순간은 그것을 과거의 장면으로 보지 않고 현재의 화면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우리가 보는 것은 이미 과거도 한참 전의 과거일 뿐 현재에서 보여 지고, 나타나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과거가 현재로 투영되고 미래 역시 현재와 과거 속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걸림 없이 교차되고 있음을 보아 나툰 일체 모든 것들이 허망한 것들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빨간색 고추나 천이 여기 있다 합시다. 그 고추와 천의 본 색깔과 모습은 무엇일까요? 빨간색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본질에 다가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추는 아마 빨간색 이전에는 푸른색이었을 것이고, 고추로 만들어져 나오기 이전에는 노란색 고추 씨앗이었을 것입니다.

빨간색 천도 마찬가지로 물들여지기 이전에는 흰색 실이 아니면 푸른색 상태였을 것이고, 삼으로 나투기 이전에는 대지 속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무색 곧 공함으로부터 빨강이 나투고 푸름이 생겨났으니 공이 곧 색이라 하는 말도 이를 비추어 틀림이 없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거나,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들 사는 삶의 일거수일투족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기에 이 삶속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부처나 선지식이라는 분들 역시 특별한 분들이라기보다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집착할 바가 없다는 것을 바로 이해하여 올바른 견해 즉 정견을 지니게 된 분들입니다.

선가에 ‘염기염멸이 위지생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나고 스러지는 것이 곧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말로 우리는 순간순간 수도 없는 생각을 일으키는 만큼 나고, 죽고, 나고, 죽고를 얼마나 많이 반복하고 살아가는지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사는 참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워 보이지만, 아주 알아차릴 수 없는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 방법은 바로 지금 당장 여기서 멈춤과 비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니 생사가 끊어진 자리에는 텅 빈 충만과 적멸의 고요만이 있을 뿐입니다.

온갖 것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으면 이 세상은 지금 있는 그대로 절대평화입니다. 허공이 다투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허공이 눈썹 찌푸리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허공 같은 우리 마음에는 애시당초 다툼과 찌푸림이 없었던 것을 알면 그 즉시에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멀리 있거나 한참 후에 만나는 그런 것이 아닌 지금 즉시 여기 이 순간에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이고, 만져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완전한 평화 말입니다.

비온 뒤 개구리 울음이 허공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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