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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세계

만타냐 Andrea Mantegna (1431-1506)

작성자hokyung|작성시간12.09.26|조회수175 목록 댓글 0

만타냐 Andrea Mantegna  (1431-1506) 

이탈리아의 파도바파(派) 화가. 

주요작품 : 《죽은 그리스도》 《게세마네의 기도》《승리의 마돈나》
파도바 근처의 이조라 디 칼투로 출생. 처음에 스콰르초네 밑에서 공부하고, 스승이 수집한 고대미술품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으나, 당시 파도바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조각가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아, 견고한 조각적 성격의 작품을 그렸다. 최초의 기념작, 스콰르초네의 제자들과 함께 그린 파도바의 에레미타니성당 오베타리예배당의 벽화(세 화면만 현존)가 그러한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그 후 당시 파도바에 화실을 두고 있던 베네치아파의 시조 야코포 벨리니의 사위가 됨으로써 베네치아파와의 관계도 깊어졌다. 그는 베네치아파의 채부법(彩賦法)을 섭취하여 당초의 강한 조각적 성격을 누그러뜨리면서도, 엄격한 북방적 사실주의를 견지하여 북이탈리아 화파(畵派)의 르네상스양식을 수립하였다. 1456년, 만토바의 영주 루도비코 곤자가의 초빙을 받아 그의 궁정화가가 되었으며, 토스카나나 로마 등에 잠깐 여행한 것 이외는 평생을 만토바에서 활약하였다.
만토바에서의 최대업적은 파라초두카레의 카메라 텔리 스포지에서의 곤자가 일가의 생활을 주제로 한 벽화군(壁畵群:1474 완성)이다. 탁월한 공상력과 엄격한 사실(寫實)이 결합된 이 벽화는 단축법(短縮法)에 의한 원근법적 효과와 고전취미가 넘쳐 흐르며, 천장화양식에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였다. 후일 코레조나 베네치아 화가들이 그 영향을 받았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 밀라노의 《죽은 그리스도》, 런던의 《게세마네의 기도》, 파리의 《승리의 마돈나》 등이 있다. 그 당시 발명된 지 얼마 안 되는 동판화(銅版畵)에도 걸작을 남겨, 독일의 뒤러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The Lamentation over the Dead Christ 
 

이 충격적인 구도의 그림의 주인공은 만테냐 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예수의 얼굴이 원근법상의 초점으로 고정되어 있고 화가는 발에서부터 예수의 몸을 그려나간 그야말로 놀라운 구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 예수의 ) 몸 그자체로서 원근법을 표현한 것입니다.

 

 

The Agony in the Garden 
 
 
 
 
The Agony in the Garden
Detail
 
 
 

The Agony in the Garden

Detail 

  
 
Adoration of the Shepherds 
 
 
St. Luke Polyptych
Detail of St Scholastica
 
 
 
St. Luke Polyptych
Detail of St Benedict
  
 
St. Luke Polyptych
Detail of St Prosdecimus
  
 
St James on the way to his execution
  

고대송에 대한 그의 관심은 로마의 개선문이 돋보이는  에레미타니 교회의 오베타리 벽화 ( 형장으로 끌려가는 성 제임스)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성 제노"의 제단화 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러한 만테냐의 고대성에 대한 관심은 "신혼의 방" 이라는 벽화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신혼의방은 만토바시 외곽에 위치한 후작의 궁인 "조르지오성"의 접견실로 사용되었던 방에 그려진 프레스코 화로 1467년부터 8년동안 제작된 것입니다,  신혼의 방이라는 이름은 17 세기 작가 리돌피의 책에 처음 나나타는데, 16세기에 한쌍의 신혼부부가 이방에서 첫날밤을 보냇다는 기록외에는 뚜렷한 근거는 없습니다,

 
 

Calvary 

 
 

Portrait of Cardinal Carlo de' Medici

 
 

아래에 보이는 그림,  신혼의 방은 벽화의 전체구성과 소재의 선택에서 그의 사상이 체계적으로 반영되는 것인데 서벽 "만남의 장면"은 고대신전의 건축 구조를 활용하고 코린트양식의 기둥주와 아칸서스잎 등으로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대 석관에서 볼 수 있엇던 기르란다 장식을 인용하였고, 서벽에 표현된 배경은 만테냐의 회화에 항상 등장하는 정형화된 고대도시입니다, 그의 고대도시는 항상 산능선에서 정상가지 뻗어있고 도시의 모습이 3 단계로 2 개의 성벽에 의해 구분됩니다,

첫번째 성벽 앞에는 나무들과 주택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고대건물들이 놓여잇으며 첫번째와 두번째 성벽 사이에는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선 번화한 도시가 보입니다, 이러한 고대도시 패턴은 만테냐의 회화에서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Camera degli Sposi
The Oculus
  
 
Camera degli Sposi
Detail from North Wall
  
 

Camera degli Sposi

Detail from North Wall

  

 
Camera degli Sposi
Detail from East Wall (Servants with Horse and Dogs)
 
 
 

St. Sebastian

 

 
St. Sebastian     (Detail) 
 
 
Madonna and Child ("Madonna of the Caves") 
 
 
Samson and Delilah 
 
 
Judith and Holofernes
  
 
Sacra Conversazione (Madonna della Vittoria)
  
 
Bird on a Branch
 

 안드레아 만테냐는 1431년 파도바 근교인 이소라 디 카르투라( Isola di Cartura) 라는 곳에서 비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낫지만 일찌기 고아가되어 10 살때인 1441년 파도바의 유명화가 스쿠아르치오네의 양자로 파도바에 정착합니다,당시 파도바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와 함게 중요한 도시였으며 파도바 대학을 중심으로 인문주의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더우기 파도바는 르네상스의 시원인 단테의 망명지였고 알베르티가 회화론을 저술한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조각가들과 화가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아 고전적인 양식을 추구하였던 지오토 (Giotto)가 아레나 채플의 벽화를 그렸고 도나텔로가 과타메라나를 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화가 만테냐는 성장기에 자연스럽게 고전양식을 접 할 수 있었고 이러한 환경속에서 양아버지의 도제수업을 받으며 성장한 만테냐는 평생을 "고대로의 복귀"를 관철하며 고대성에 심취하여 그림제작에 임하게 됩니다. 여기서 "고대로의 복귀"란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주의자들은 " 고대로의 복귀"가 인간의 덕을 지니게 한다고 생각하여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고상한 학문과 예술을 배움으로서 인간이 고귀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고대의 유물과 유적들은 르네상스인에게 스스로를 고귀한 존재로 승화시키는 매개로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사여구속에 숨겨진 르네상스 예술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한 브르크하르트는 "정치적인 치국책이며 정치예술이다" 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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