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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자료에 안원형(安元衡) 시조의 등재요청 과정 (추정)

작성자안재중| 작성시간09.11.16| 조회수189|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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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안병주 작성시간09.11.16 챙피한 일이군요. 남의 시조를 두고 왈가왈부하다니요!!
  • 작성자 안주혁 작성시간09.11.17 오원 안재홍은 고려시대에 근친결혼이 왕족과 귀족들 사이에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입니다. 한마디로 역사에 무지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료들을 수집하여 기고만장하는 오원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작성자 안재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9.11.17 고려말 유학자들은 중국에서 우리민족을 오랑캐라는 이유를 처가살이와 근친혼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처가살이와 근친혼의 풍속을 바꾸고자 노력하면서, 같은 성씨 끼리 근친혼 뿐 아니라 내외종사촌, 처가집과 중혼 등을 막고, 먼 지역으로의 촌외혼을 권했지만, 우리의 풍속은 처가살이와 근친혼, 촌내혼 뿐 아니라 재혼과 이혼이 가능했고... 제사를 모시는 방법에 있어서도 윤회봉사(아들 딸 큰아들 작은 아들 가리지 않고 돌아가며 제사를 모시는 것), 외손봉사(대를 이을 아들이 없거나, 아들이 있어도 똑똑한 사위로 대를 잇게하는 것), 장자 위주가 아니라 남녀 차별없는 재산분배가 조선 중기(1500년대) 까지 실제로 있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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