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안씨 안우(安佑) 장군에 대한 중국 정사 기록
안우 장군에 대해서 중국 역사서에 홍건적의 난에 대한 기록에서 1361년 제2차 홍건적의 난 때 개경 수복의 전공에 대해서 적어놨다. 중국 정사에 홍건적의 난에 공을 세운 것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을 만큼 공이 컸던 장군이다.
『신원사(新元史)』卷249「外國列傳」第146 고려(高麗)
○ [至正]十九年(1359)冬, 紅巾賊[校勘 127]渡鴨綠江, 陷義州, 又陷靜州·麟州, 及西京. 二十年, 祺卜遷都避之, 不吉, 仍營白岳宮闕爲新京, 移居之.
[至正] 19년(A.D.1359; 高麗 恭愍王 8) 겨울에 紅巾賊이 鴨綠江을 건너 義州를 함락하고 또 靜州·麟州 및 西京을 함락하였다.
[至正] 20년(A.D.1360; 高麗 恭愍王 9)에 祺가 도읍을 옮기면 不吉함을 피할 수 있다 하여, 白岳에 궁궐을 짓고 新京으로 삼아 옮겨 살았다.
○ [至正]二十一年(1361), 紅巾賊潘誠·沙劉·關先生等, 率衆十餘萬, 渡鴨綠江. 祺走福州, 遂陷王京, 至次年, 安祐·崔瑩等, 合兵二十萬, 圍王京, 賊大敗, 斬沙劉·關先生, 餘黨渡鴨綠江而去, 賊遂平.
[至正] 21년(A.D.1361; 高麗 恭愍王 10)에 紅巾賊 潘誠·沙劉·關先生 등이 무리 십여만을 거느리고 鴨綠江을 건너니, 祺는 福州로 달아나고 마침내 王京은 함락되었다. 그 이듬해에 安祐·崔瑩 등이 군사 2십만을 모아 王京을 포위하니 賊이 大敗하였다. 沙劉·關先生을 베니 殘黨은 鴨綠江을 건너 도망가고 난리는 드디어 평정되었다.
[校勘 127]『高麗史』卷39「世家」恭愍王 8年 12月 丁卯條에는 ‘紅頭賊’으로 되어 있고, 恭愍王 10年 10月 丁酉條에는 ‘紅賊’으로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