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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otius)과  사제의 생활과

작성자안 엘리지오|작성시간26.06.17|조회수41 목록 댓글 1

레오 14세 교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otius)과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 
반포 60주년 기념 교황 교서
미래를 탄생시키는 충실성 
(Una Fedeltà che Genera Futuro)
1. 미래를 탄생시키는 충실성은 오늘날에도 사제들이 부름받은 모습입니다. 사도적 사명 안에서 항구함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사제직의 미래를 성찰하고 다른 이들이 사제성소의 기쁨을 체험하도록 돕는 기회가 됩니다. 이번 희년에 맞이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0주년은, 1965년 10월 28일과 12월 7일에 각각 반포된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otius)과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이 열매 맺는 충실성이라는 선물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두 문헌은 교회의 단일한 숨결에서 탄생했습니다. 교회는 모든 민족을 위한 일치의 표징이자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으며, “교회 전체가 바라는 쇄신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제들의 교역에 많이 달려 있다.”1)는 사실을 자각하며 스스로를 쇄신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2. 우리는 단순히 형식적인 기념일을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두 문헌은 역사 안에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에 대한 이해에 굳건히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사제 직무의 본질과 사명, 그리고 그 준비에 관한 신학적 성찰의 이정표로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탁월한 생명력과 시의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이 이 문헌들을 계속 읽고 특히 신학교들, 그리고 성품성사로 받은 직무에 대한 준비와 양성이 이루어지는 모든 현장에서 이 문헌들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것을 권고합니다.

3. 성품성사에 관한 교회의 교리적 전통의 흐름 안에 잘 자리 잡은 ‘사제 양성 교령’과 ‘사제 생활 교령’은 직무 사제직에 대한 공의회의 깊은 성찰을 중심 과제로 삼았으며, 사제들을 향한 공의회의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그 목적은 공의회가 추진한 쇄신에 따라 미래 세대의 사제들을 양성하기 위한 필수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직무적 정체성을 굳건히 유지하는 동시에, 건전한 교리적 발전의 관점에서 이전의 성찰을 통합하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 것입니다.2) 따라서 우리는 이 교령들이 교회 전체에 전달한 사명을 받아들여, 살아 있는 기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사명이란,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대라는 뿌리에서 힘을 얻어, 모든 신자와 함께 그리고 그들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선교하는 제자가 되고자 매일 사제 직무를 새롭게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4. 공의회 이후 60년 동안 인류는 끊임없는 변화를 겪어 왔으며, 이는 우리가 걸어온 길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공의회의 가르침을 일관되게 현실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발맞추어 최근 몇 년에 걸쳐 교회는 성령의 인도 아래, 시노드적이고 선교적인 형태에 따라 친교로서의 교회 본질에 관한 공의회 교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3) 저 역시 이러한 뜻을 따라, 주님께서 오늘날 교회에 요구하시는 바에 비추어 성품 사제직의 정체성과 기능을 함께 재고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쇄신의 과업을 이어가고자, 이 교황 교서를 모든 하느님 백성에게 보냅니다. 저는 이를 충실성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 충실성은 하느님의 은총인 동시에, 주 예수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기 위한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세계 곳곳에서,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거행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죄를 용서하고, 날마다 기꺼이 형제자매들에게 헌신하는 사제들의 증언과 노력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형제자매들의 친교와 일치를 위하여 봉사하고, 특히 고통받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충실성과 봉사

5. 교회의 모든 성소는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4)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에서 생겨납니다. 모든 헌신, 선한 개인적 열망, 그리고 봉사에 앞서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라고 부르시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생명의 주님께서는 우리를 알고 계시고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 마음을 비추십니다(마르 10,21 참조). 이는 단순한 내적 목소리가 아니라, 흔히 다른 제자들의 모범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어 용기 있는 삶의 선택으로 구체화되는 영적인 이끌림입니다. 우리의 성소에 대한 충실성은 특히 시련과 유혹의 시기에, 그 음성을 잊지 않을 때 더욱 굳건해집니다. 곧 우리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시며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마음 깊이 기억하고, 영성 생활에 정통한 이들이 함께해 주는 필수적인 동반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그 충실성은 더욱 강화됩니다. 그 말씀의 메아리는 시간이 흐르는 내내 그리스도와 이루는 내적 일치의 원리이며, 이는 사도직 생활에서 근본적이고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6. 성품 직무로의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자유롭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선물입니다. 실제로 성소는 주님의 강요가 아니라, 우리 삶을 위한 구원과 자유의 계획을 따르라는 사랑의 제안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가 우리 삶의 중심에 주 예수님께서 계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이 사랑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온 교회는 희망과 감사가 가득한 마음으로 이 선물을 위하여 기도하고 기뻐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사제의 해’를 마치며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하느님께서 참으로 우리 가까이 계심에 기뻐하고 하느님께서 나약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맡겨 주시고 날마다 우리를 이끄시고 지켜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살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역시 젊은이들에게 사제성소가 어떠한 것인지, 곧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 친교의 봉사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하느님께서 실제로 우리가 “예.”라고 응답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하였습니다.”5)

7. 모든 성소는 지속적인 회개의 역동성 안에서 충실히 지켜져야 할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순명은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사들 특히 성찬의 희생 제사를 거행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우리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에게 다가가며, 사제적 형제애를 실천하는 가운데 길러집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을 만나는 가장 탁월한 자리인 기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사제는 날마다 마치 갈릴래아 호숫가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라는 질문에 “예.” 하며 자신의 응답을 갱신해야 합니다.6)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사제 양성이 신학교 시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22항 참조), 지속 양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 인간적, 영적, 지적, 사목적 쇄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동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제 양성 교령’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8. 그러므로 모든 사제는 성품성사를 통하여 받은 하느님의 선물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하여(2티모 1,6 참조) 언제나 자기 양성에 힘쓰도록 부름받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에 대한 충실성은 정체되거나 갇혀 있는 상태가 아니라, 받은 성소를 확인하고 성숙시키는 매일의 회개 여정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80개국에서 800명 이상의 지속 양성 담당자가 참여한 가운데 2024년 2월 6일부터 10일까지 바티칸에서 개최된 ‘사제 지속 양성을 위한 국제회의’와 같은 시도들을 장려하는 것이 매우 적절합니다. 지속 양성은 단순한 전문성 향상이나 지적 훈련을 넘어, 함께 걷는 여정 안에서 자신의 성소를 살아 있는 기억으로 간직하고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과정입니다.

9. 부르심의 순간부터 초기 양성까지, 이 여정의 아름다움과 지속성은 ‘그리스도를 따름’(sequela Christi)으로써 지켜집니다. 모든 사제는 양 떼를 이끄는 데에 헌신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 역시 다른 형제자매들과 마찬가지로 스승님의 제자임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합니다. 사제는 “평생 동안 언제나 ‘제자’가 되어 사목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리스도께 동화되기를 끊임없이 열망”7)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러한 순종적인 따름과 충실한 제자직의 관계만이 삶의 어떤 풍파 속에서도 마음과 정신이 올바른 방향을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

10. 지난 수십 년간 성직자 일부가 자행한 학대로 말미암아 발생한 교회의 신뢰 위기는 우리에게 큰 부끄러움을 안겨 주며 겸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는 풍요롭고 견고한 영성 생활과 더불어 사제직 후보자들의 인간적 성장과 성숙을 보장하는 통합적 양성의 시급함을 더욱 절감하게 했습니다.

11. 양성의 주제는 몇 년 뒤나 수십 년이 지난 뒤에 사제직을 떠나는 이들의 현상에 대처하는 데에도 핵심적입니다. 이 아픈 현실은 단순히 법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되며, 그 형제들의 역사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복합적인 이유를 세심함과 자비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에 대한 응답은 무엇보다 쇄신된 양성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마음과 지성, 자유 등 전 인격을 포괄하며, 그를 착한 목자를 닮은 모습으로 빚어내는 주님과의 친밀한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8)

12. 따라서 “신학교는 어떤 모습이든 사랑의 학교가 되어야 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사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신학생들이 삶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동기 부여에 관하여 내적으로 성찰하도록 권고합니다. “사실 여러분 안에 그 무엇도 버려질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 받아들여야 하고, 밀알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 ‘다리’가 되는, 행복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제가 되어야 합니다.”9) 오직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영적으로 견실한 사제와 축성 생활자, 곧 인간적 차원과 영적 차원이 잘 통합되어 모든 이와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독신의 의무를 책임 있게 받아들이며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을 신뢰 있게 선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3. 결국 이것은 끊임없는 회심과 새로워진 충실성의 여정을 통하여 성소를 지키고 가꾸기를 요구합니다. 이 길은 결코 순전히 개인적인 여정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공동의 소명입니다. 이러한 역동성은 언제나 은총의 활동입니다. 이 은총은 우리의 연약한 인간성을 품어 안으며 자기애와 이기심에서 벗어나도록 우리 인간성을 치유해 줍니다. 우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모든 신뢰를 주님께 두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만약 사제들의 마음 안에서 자기 중심성의 유혹이 경청과 봉사의 마음가짐에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면, 친교와 시노달리타스, 그리고 사명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강조하셨듯이, “사제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이는 존재론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의 삶이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성격을 띤다는 의미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인류를 위하여 봉사합니다. 사제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기 때문에 모든 이에게 온전히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사제는 기도 안에서, 주님과 ‘마음과 마음을 맞대고’ 머물며 그리스도의 뜻을 점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사람들의 구원과 행복, 참된 해방을 위하여 봉사하는 교역자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10)

충실성과 형제애

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들의 특수한 봉사 직무를 세례 받은 모든 이가 누리는 동등한 존엄성과 형제애라는 틀 안에 배치했습니다. ‘사제 생활 교령’이 증언하듯, “신약의 사제들은 성품성사를 받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그 백성을 위하여 가장 고귀하고 필수적인 임무인 아버지와 스승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제들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주님의 제자들이 되고, 그들을 부르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세례의 샘에서 거듭난 모든 사람과 함께 사제도 서로서로 형제이고 그리스도의 같은 한 몸의 지체입니다. 그 몸은 모든 사람이 완성시켜 나가야 합니다.”11) 이 근본적인 형제애는 세례성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느님 백성 전체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동시에 공의회는 성품성사에 기초한 성품 직무자들 사이의 특별한 형제적 유대를 강조합니다. “사제들은 서품을 통하여 사제직의 품계에 세워졌으므로, 모든 사제는 서로 친밀한 성사적 형제애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자기 주교 아래에서 한 교구에 봉사하도록 배속된 사제들은 그 교구 안에서 하나의 사제단을 형성합니다. …… 그러므로 모든 사제는 이 사제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더불어 각기 사도적 사랑과 봉사와 형제애의 특수한 관계를 맺습니다.”12) 따라서 사제들의 형제애는 완수해야 할 과업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성품성사의 은총에 내재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우리보다 앞서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의나 공동의 노력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주교의 직무에 참여하게 하고, 주교와의 친교, 그리고 동료 사제들과의 친교 안에서 실현되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15.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제들은 형제애의 은총에 응답하여, 세례성사의 은총뿐만 아니라 성품성사의 은총이 요구하는 바를 자신의 삶으로 드러내고 확증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친교에 충실하다는 것은 무엇보다 개인주의의 유혹을 극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주의는 언제나 교회 전체의 사명인 복음화 활동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제에 대하여 언급할 때 거의 언제나 복수형을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곧, 홀로 존재하는 사목자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친히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려고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습니다’(마르 3,14 참조).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분의 몸인 교회와 이루는 친교 밖에서는 그 어떤 직무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전쟁과 분열과 불화로 점철된 세상에서, 교회의 일치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13)에서 비롯된다는 인식 아래, 성품 직무의 관계적·공동체적 차원을 더욱 가시화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핵심 과제 중 하나입니다.

16. 그러므로 사제들의 형제애는 단순한 이상이나 구호가 아니라, 성직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추구해야 할 측면으로 여겨져야 합니다.14) 이러한 의미에서 ‘사제 생활 교령’(8항 참조)의 권고를 적용하는 데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본당의 사제와 부유한 공동체의 사제 사이의 경제적 균등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 국가와 교구에서 질병과 노후를 위한 보장 제도가 아직 확실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돌봄, 특히 가장 외롭고 고립된 형제들과 병들고 연로한 동료 사제들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돌보는 일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는 제가 최근 사제들의 희년 때 사제들에게 권고하였던 근본적인 핵심 중 하나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우리 사이에서 진정한 형제애의 정신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봉사자로서 어떻게 살아 있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15)

17. 많은 지역, 특히 서구에서는 현대의 유동성과 사회 구조의 파편화로 사제들의 삶에 새로운 도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는 사제들이 과거처럼 자신들의 직무를 뒷받침해 주던 결속력 있고 신앙심 깊은 공동체 안에서 더 이상 자연스럽게 머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사제들은 외로움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며, 이는 사도적 열정을 약화시키고 자기 안으로 움츠러드는 슬픈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도 전임 교황들의 지침을 따라16), 모든 지역 교회에서 가능한 형태의 공동생활을 장려하고 투자하는 데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기를 희망합니다. 이는 사제들이 “상호 부조로써 영적 지적 생활을 증진하고, 교역 수행에서 더 잘 협력하며, 고독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도록”17) 하기 위함입니다.

18. 한편, 사제들의 친교는 결코 개인의 특성이나 주님께서 각자에게 부여하신 은사와 재능을 획일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교의 식별을 통하여, 교구 사제단 안에서 이러한 선물들을 존중하면서도 친교를 유지하는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노달리타스의 학교는 모든 이가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 내적 성숙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은사들을 받아들이고 종합하여 사제단의 친교를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매우 불안정한 이 시대에, 성품성사를 받은 모든 봉사자는 본질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겸손하고 구체적인 봉사 안에서 형성되는 희망을 지키며 친교 안에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를 닮은 종신 부제직은 피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몸을 굽혀 듣고 아낌없이 내어 주는 사랑의 살아 있는 표지입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과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향한 관심으로 하나 되어 협력하는 사제들과 부제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아름다움은 친교의 빛나는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요한 13,34-35 참조), 그리스도교의 선포가 신뢰와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상호 간의 사랑에 뿌리를 둔 이러한 일치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부제 직무, 특히 가족과의 친교 안에서 살아가는 부제 직무는, 우리에게 이해되고, 존중되며, 지지받아야 할 선물입니다. 이처럼 애덕에 헌신한 이들의 겸손하면서도 본질적인 봉사는, 사명이 거창한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열정과 복음에 대한 일상의 충실성으로 완수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19. 친교에 대한 충실성을 보여 주는 참으로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모습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Epistola ad Ephesios)에서 제시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하고 있듯이, 주교의 뜻에 일치하여 함께 나아가는 것이 합당합니다. 참으로 기억될 만하고 하느님께 합당한 여러분의 사제단은, 마치 수금의 줄들이 악기에 달려 있듯 주교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일치와 화합하는 사랑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찬송을 받으십니다. …… 그러므로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일치 안에 머무는 것이 유익하니, 이는 언제나 하느님께 참여하기 위함입니다.”18)

충실성과 시노달리타스

20. 이제 저의 마음속에 특히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점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제의 정체성에 관하여, ‘사제 생활 교령’은 무엇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사명의 유대를 강조하며(2항 참조), 이어서 세 가지 근본적인 차원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주교와의 관계로, 사제는 주교의 ‘필수적인 조력자이자 조언자’로서 주교와 형제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7항 참조). 둘째는 동료 사제들과의 성사적 친교와 형제애로서, 사제는 서로 다른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하나의 동일한 사명’에 기여하고 ‘하나의 단일한 직무’를 수행하며 ‘같은 목적’을 위하여 모두 함께 일하게 됩니다(8항 참조). 셋째는 평신도와의 관계로, 사제는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형제들 중의 형제로서 평신도들 가운데 머물게 됩니다. 세례성사의 동등한 품위를 공유하며, “평신도들과 협력하고”, “인간 활동의 여러 분야에서 그들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하여 시대의 징표를 함께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사제들은 모든 일을 독점하거나 지배하려 하기보다, “평신도들이 받은 높고 낮은 여러 형태의 은사들을 신앙 감각으로 찾아내야”(9항) 합니다.

21. 이 분야에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시노드 과정의 동력은 이를 위한 단호한 발걸음을 내딛으라는 성령의 강력한 초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다시 한번 “사제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을 열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과정에 참여”19)하기를 권고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Documento Finale)는20) 관계와 과정의 회심을 제안했습니다. 모든 개별 교회에서 사제들이 이 문서의 지침들을 충분히 익히고, 교회가 시노드 방식으로 살아갈 때 맺는 풍요로움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적절한 계획들이 추진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22. 이 모든 것을 위하여 모든 수준에서의 양성, 특히 사제들의 초기 양성과 지속 양성이 필요합니다. 더욱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며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 안에서 사제 직무는 그 중요성도 시의성도 결코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유하고 특수한 과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차이를 존중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시노달리타스의 도전은, 미래의 사제들에게 핵심적인 기회로 남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최종 문서가 상기시키듯이, 사제들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모든 이를 환영하며 경청하는 태도를 지니고 시노달리타스 양식에 열려 고유한 섬김을 실천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72항). 친교의 교회론을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사제의 직무가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는 배타적 리더십 모델, 곧 사목 활동을 중앙집권화하고 모든 책임을 사제 혼자 짊어지게 만드는 리더십 모델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대신 사제와 부제, 그리고 하느님 백성 전체가 협력하여, 성령께서 주신 다양한 은사들이 상호 풍요로움의 결실을 거두는 더욱더 합의체적인 사목 운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이 상기시키듯, 직무 사제직과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닮는 일치가 성사적 권한을 권력과 동일시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제가 머리이신 그리스도, 곧 은총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자신을 다른 모든 이들 위에 드높이는 승격을 의미하지 않기”21) 때문입니다.

충실성과 사명

23. 사제의 정체성은 다른 이들을 위한 존재라는 본질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는 사제들의 사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사제의 정체성을 자신의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찾으려는 사람은, 아마도 ‘출구’라는 표지판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표지판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흠숭 안에서 하느님을 찾으러 나가고,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백성에게 주기 위하여 가거라. 그러면 너의 백성이 네가 누구인지, 네 이름이 무엇인지, 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느끼고 맛보게 해 줄 것이며, 주님께서 당신 종들에게 약속하신 백 배의 보상을 누리게 해 줄 것이다.’ 자신에게서 나가지 않으면 기름은 상하게 되고 그 도유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22)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처럼, “사제들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머리이시며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사적으로 대신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권위 있게 선포하고, 특별히 세례성사와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던 용서의 행위와 구원을 위한 봉헌의 행위들을 되풀이합니다. 또한 양 떼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 줄 정도로 사랑에 가득 찬 정성을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을 보여 주어, 양 떼를 한데 모아 일치를 이루게 하고,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로 인도해 줍니다.”23) 이처럼 사제성소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겸손한 봉사의 기쁨과 수고로움을 함께 경험하는 가운데 자라납니다. 세상은 종종 이러한 봉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사실 깊이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충실하고 자비로운 사랑을 믿는 신실한 증인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복음화의 길입니다.

24. 끊임없는 연결과 빠른 속도가 특징인 오늘날의 세상은, 사제들을 늘 분주하게 만들고 활동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사명에 대한 충실성을 약화시키는, 적어도 두 가지 유혹이 침투합니다. 첫 번째 유혹은 효율성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으로, 개인의 가치를 성과, 곧 수행한 활동과 사업의 양으로 측정하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는 ‘무엇을 하는가’(행위)가 ‘누구인가’(존재)보다 앞서게 되어, 영적 정체성의 올바른 위계질서를 뒤바꿔 버리게 됩니다. 두 번째 유혹은 그 반대로 일종의 정체된 태도로 나타납니다. 시대적 상황에 위축되어 복음화의 도전을 거부한 채 자기 안으로 움츠러들며, 나태하고 패배주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적 나약함이 존재하지만, 기쁨과 열정을 지닌 직무는 우리 사회의 모든 차원, 특히 문화·경제·정치 영역을 복음화하는 과업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고 또 반드시 감당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기 위함입니다(에페 1,10 참조). 이 두 가지 유혹을 극복하고 기쁘고 풍요로운 직무를 살아가기 위하여 모든 사제는 사제 수품 때 주교를 통하여 부여받은 은총의 선물, 곧 자신이 받은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명에 대한 충실성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제시하신 준거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분께서는 목자로서의 사랑이 사제의 삶을 하나로 통합하는 원리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24) 바로 이런 ‘착한 목자’의 사랑인 목자의 사랑의 불을 살아 있게 지킬 때, 모든 사제는 일상의 삶 안에서 균형을 찾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무엇이 유익한지, 무엇이 사제 직무의 고유한 본분(proprium) 인지를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25. 기도와 활동의 조화는 성급하게 각종 실행 계획을 도입하거나, 단순히 활동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파스카 신비의 차원을 사제 직무의 중심으로 삼는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준다는 것은 기도와 공부, 그리고 사제적 형제애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기도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지평이 되며,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이러한 방식 안에서 수품 때 한 약속들도 충실히 이행됩니다. 그 약속들은 물질에 대한 초연한 자세인 청빈과 함께, 사제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뜻을 끊임없이 찾고 그 뜻에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굳센 열망을 길러 주어,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행동을 통하여 드러나시게 합니다. 예를 들어, 직무상 역할 때문에 자기 자신을 대중에게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온갖 형태의 이기주의와 자기 과시를 피해야 합니다. 거룩한 전례에서 자신이 거행하는 신비로 자라나는 모든 사제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도록 물러나고, 그분께서 알려지시고 영광을 받으시도록 스스로 작아지며(요한 3,30 참조), 모든 사람이 그분을 알고 사랑할 기회를 가지도록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25) 그러므로 오늘날 이용 가능한 모든 소셜 네트워크나 미디어의 사용 역시, 복음화에 봉사하는가가 식별의 기준이 되어 지혜롭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1코린 6,12).

26. 어떤 상황에서든 사제들은 소박하고 정결한 삶의 증거를 통하여, 현대 사회에서 드러나는 참되고 진실한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에 실제적으로 응답하도록 부름받습니다. 또한 사제들은 교회가 “인류 가족의 유대와 관계와 형제애의 효과적인 누룩”이며, “주님과 맺는 관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 사회 집단들 사이의 관계, 종교 간 관계를 증진하는”26)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사제와 평신도 모두는 함께 협력하여 진정한 선교적 회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진정한 선교적 회심을 통하여 주교들의 인도 아래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신자들이 사회 안에서, 가정과 직장 생활에서 수행하는 사명”에 봉사하도록 이끌 것입니다. 시노드가 성찰한 바와 같이 “본당은 자신을 중심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선교를 지향하고, 여러 방식으로 살아가며 일터에서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활동 안에서 신앙을 증언하는 많은 사람의 노력을 지원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27)

충실성과 미래

27. 저는 공의회 두 교령의 반포 기념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그 가르침을 구체화하고 오늘의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가 함께 걸어가도록 부름받은 이 여정으로, 교회 안에서 ‘새로운 성소의 성령 강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거룩하고 항구한 사제성소들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밭에 수확할 일꾼이 결코 부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서 성소 증진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고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려는 의지가 깨어나기를 소망합니다(마태 9,37-38 참조).

28. 그러나 기도와 더불어, 특히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사제성소의 부족은, 교회의 사목적 실천이 얼마나 생명력을 낳고 있는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성찰을 요구합니다. 이 위기의 원인들이 종종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특히 사회·문화적 환경에 좌우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힘을 주고 해방을 가져다주는 제안을 용기 있게 내놓아야 합니다. 또한 개별 교회 안에 “복음 중심의 청년 사목 환경과 형태가 마련되어, 그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부르심이 싹트고 성숙할 수 있도록”28)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부르심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확신 안에서(요한 11,28 참조), 모든 사목 분야, 특히 청년 사목과 가정 사목에서 언제나 성소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억합시다. 모든 성소를 소중히 키워 내지 않는다면 미래도 없습니다!

29. 끝으로 저는 언제나 당신 백성 곁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걸으시고, 우리 마음을 모든 이에게 전할 희망과 평화로 채워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첫 번째 큰 바람은 하나 된 교회, 일치와 친교의 표징이며 세상의 화해를 위하여 누룩이 되는 교회입니다.”29) 또한 공의회의 두 교령인 ‘사제 생활 교령’과 ‘사제 양성 교령’의 예언적 메시지에 마음과 정신을 열고, 교회의 여정을 위하여 그 교령들 안에서 함께 양분과 영감을 길어 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제들과 평신도 여러분 모두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모든 신학생과 부제, 사제를 착한 의견의 어머니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와,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이자 모든 사제의 모범인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전구에 맡깁니다. 아르스의 본당 신부 비안네 성인이 늘 말하였듯이, “사제직은 예수 성심의 사랑입니다.”30) 이 사랑은 타성과 낙담, 고독의 구름을 흩뜨려 버릴 만큼 강력하며,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에게 충만히 주어지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곧 성체의 사랑이며 사제의 사랑입니다.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재위 제1년인 2025년 정기 희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레오 14세 교황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otius: 이하 ‘사제 양성 교령’), 서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한글판, 2017(제3판).
2) 성 요한 헨리코 뉴먼, 「그리스도교 교리의 발전에 대한 논고」(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 노트르담, 2024 참조. 이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 학문의 쇄신과 증진을 촉구한 ‘사제 양성 교령’ 16항의 호소를 상기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3)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예비 문서, 2021.9.7., 1항; 프란치스코, 세계주교시노드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 2015.10.17.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64호(2021), 99면 참조.
4)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12.2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 1항.
5) 베네딕토 16세, 사제의 해 폐막 미사에서 하신 강론, 2010.6.11.
6)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제자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깊은지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사제직」(De sacerdotio), 제2권, 1항, 『그리스도교 원전』(Sources Chretiennes: SCh), 272, 파리, 1980, 104, 48-51).  
7) 교황청 성직자성, 사제 양성의 기본 지침 「사제성소의 선물」(The Gift of the Priestly Vocation), 2016.12.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8(제1판), 57항.
8) 레오 14세, 신학생들의 희년과 사제들의 희년을 맞아 교황청 성직자부가 “기쁨의 사제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모임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2025.6.26.
9) 레오 14세, ‘신학생들의 희년’ 묵상, 2025.6.24.
10) 베네딕토 16세, 수요 일반 알현, 2009.6.24. 
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Presbyterorum Ordinis: 이하 ‘사제 생활 교령’), 9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12) 사제 생활 교령, 8항.
13) 성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De Oratione Domini), 23항, 『라틴 그리스도교 문학 전집』(Corpus Christianorum [Series Latina], 3A, Turnhout, 1976, 105.
14) 「사제 성소의 선물」, 87-88항 참조.
15) 신학생들의 희년과 사제들의 희년을 맞아 교황청 성직자부가 “기쁨의 사제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모임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16)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 1992.3.25.,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3(제1판), 61항; 베네딕토 16세, 자의 교서 「성직자 양성」(Ministrorum Institutio), 2013.1.16.,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48호(2013), 117면 참조.
17) 사제 생활 교령, 8항 참조.
18)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Epistola ad Ephesios), 4, 1-2, SCh 10.
19) 레오 14세, 시노드 팀과 참여 그룹들의 희년에서 한 연설, 2025.10.24.
20) 프란치스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 문서」(Documento Finale), 2024.10.2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제1판).
21)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013.11.2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제1판), 104항.
22) 프란치스코, 성유 축성 미사에서 하신 강론, 2014.4.17.
23) 「현대의 사제 양성」, 15항.
24) 「현대의 사제 양성」, 23항.
25) 레오 14세, 추기경단과 함께 드린 미사 강론, 2025.5.9.,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72호(2025), 16면.
26) 「최종 문서」, 20.50항.
27) 「최종 문서」, 59.117항.
28) 신학생들의 희년과 사제들의 희년을 맞아 교황청 성직자부가 “기쁨의 사제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모임 참가자들에게 한 연설.
29) 레오 14세, 즉위 미사 강론, 2025.5.18.,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72호(2025), 22면. 
30) “Le Sacerdoce, c’est l’amour du cœr de Jésus”, Bernard Nodet, Le Curé d’Ars. Sa Pensée, son Cœr, Paris, 1995, 98.

원문: Lettera Apostolica del Santo Padre Leone XIV in Occasione dei LX Anniversario dei Decreti Conciliari Optatam Totius e Presbyterorum Ordinis, Una Fedelta che Genera Futuro, 2025.12.8., 영어도 참조, 김도형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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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yeonjin40 | 작성시간 26.06.17 기쁨의 사제들 나는 너를 친구라 불렀다. (요한 복음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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