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참 평화 이루는 사람
지난 주말은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진 비통한 한 주였다.
이슬람국가(IS) 무장세력이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 다발로 자행한 테러로 4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4일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광주대교구 가톨릭농민회 백남기(임마누엘,68) 전 회장이 시위 도중 진압 물대포를 맞고 위중한 상태다. 경찰과 시위대 양측에서 100명 넘게 부상했다.
파리 테러 이후 유럽 공동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고 무슬림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고 있어 또 다른 폭력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국내에선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백 전 회장이 고비를 넘기지 못할 경우 과잉 진압에 대한 저항 운동이 마른 볏짚에 불붙듯 거세게 타오를 조짐이다.
일련의 폭력 참상과 잠재된 폭력 앞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세상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예언자적 실천은 없나?
세계 평화는 선의의 몇몇 사람이 이뤄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실천해야 할 소명이다. 그래서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정의와 사랑이 다스리고 이끄는 인간 사회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일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라고 했다. 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평화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질적 열망일 뿐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의 온전한 발전에 대한 의무와 권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디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인 평화를 위해 창조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라고 축복하셨다. 평화를 이루는 것이 참행복이며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씀일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료하다. 참 행복은 인류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며, 평화는 인류가 추구할 행복한 상황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평화를 이루려 한다면 무한한 기쁨의 선물을 받을 것이며 그 선물은 바로 행복한 삶이 보증되는 은총의 삶,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는 삶이라고 하셨다.
이처럼 평화는 그리스도인에게, 아닌 전 인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평화를 구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소명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평화는 인간의 잣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토대 위에서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공존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선 독단적인 상대주의와 자율적 도덕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간 존엄을 침해하는 법률이나 행정 조치들에 맞서 양심적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금 우리가 새겨야 할 말씀이다.
평화는 꿈이나 이상향이 아니다. 희망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참되고 선한 것을 이루겠다는 실천이 반드시 따라야 이뤄지는 것이 평화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불의에 저항해야 하고, 공동선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 이기주의와 폭력, 탐욕과 권력욕, 지배욕과 불용, 증오와 불의한 사회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맞서야 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인간 존엄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평화는 원대한 이상보다 소소한 일상의 실천에서 점진적으로 펴져간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단지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갈라진 우리 사회 안에 하루빨리 평화가 자리하기 위해 신앙인답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예언자적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