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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밥상의 행복과 52시

작성자안 엘리지오|작성시간23.06.12|조회수11 목록 댓글 0

밥상의 행복과 52시 




아침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의 삶은 고단하다. 체력과 정신,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1년 이상 버텨내기 힘들다. 적어도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 삶의 시계를 1년 6개월 전으로 돌려본다. 평일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눈을 떠야 한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동수원 요금소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를 재빠르게 달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적지를 향하는 차들의 행렬은 빠르게 늘어난다. 고속도로는 마치 시간과의 전투를 벌이는 차들의 전쟁터 같다.

방송국에 도착하는 시각은 새벽 6시 이전이다. 늦어도 방송 1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밤사이 새로 발생한 사건 사고나 나라 밖 소식은 없는지, 아침 신문마다 1면 머리기사를 어떻게 실었는지, 쟁점이 되는 현안이나 갈등이 심한 이슈에 어떻게 접근하고 바라보고 있는지, 대강의 흐름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놓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돌이켜보면, 2년 6개월 동안의 앵커 생활은 매 순간 긴장과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어찌 보면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 과정에서 보람도 많았지만 아쉽고 아픈 기억의 편린(片鱗)도 없지는 않았다. 평일엔 거의 예외 없이 ‘저녁마저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퇴근 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밥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상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주일 미사 중 화답송을 노래할 땐 남몰래 속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네 손으로 벌어들인 것을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이 있어라. 네 집 안방에는 아내가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네 밥상 둘레에는 아들들이 올리브 나무 햇순들 같구나.”(시편 128, 2-3)

앵커 생활을 마치고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비록 하루 한 끼 ‘혼밥’으로도 행복할 수 있음을.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을 위해 아내가 정성껏 차려주는 한 끼 밥상이 그토록 소중하고 달콤한지를.

식구라는 말은 참 정겹다. 국어사전에는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말의 품격’의 저자 이기주 작가의 말처럼, 함께 살며 같이 먹는다는 함의는 그리 간단치 않다. 식사 자리에서 같이 먹고 나누는 게 어디 끼니뿐인가. 술도 먹고 욕도 먹고 사랑도 먹고 어느새 나이도 먹는다. 그렇게 먹고 나누는 사이 켜켜이 쌓인 추억을 음미하고 공유하며 살아간다. 자식에게 또는 가까운 동료나 친구, 연인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보는 마음은 “잘살고 있느냐”는 안부 인사이자 관심과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가톨릭 신앙인에게 밥상은 생명의 식탁이다. 하느님 사랑의 은총이며 축복이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받아먹고 마시는 하늘나라 잔칫상이다. 믿는 마음이 하릴없이 무너져 내릴 때 영혼의 양식을 채워주는 보물 창고다. 허기진 육신과 지친 영혼을 달래는 생명의 약이다. 우리는 그 힘에 기대어 하루하루 신앙을 살아간다.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건 주 52시간 근로제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 한편에선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낸다고 해도 줄어드는 소득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또 다른 혼선과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 정책의 정교함과 세심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밥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구나 누리게 되는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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