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sSy25Ion5o
예배영상
신 34:4, 천국에서는 그보다 큰 자다. 25-8-24
열심히 노력했으나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불운을 겪을 때 사람들은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을 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경산 하양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홍기 목사님이 향년 49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런 폐경화증. 폐 조직이 굳어져 폐 기능이 상실함으로 인하여 호흡을 할 수 없는 질환입니다. 목사님은 이곳 경상도 지역에서 목회하시는 총신대 후배 목사입니다. 그래서 더 아쉽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젊으신 목사님을 이렇게도 빨리 부르셨습니까?
제가 가장 아팠던 경험은 학부시절 함께 공부했던 선배이자 친구인 그 당시 전도사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갔다가 물놀이를 하다가 아이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던 전도사님이 아이는 구하고 끝내 자신은 차가운 시신이 되어 버린 일입니다. 온 교회와 또 신학교 친구들이 함께 장례를 치루면서 슬퍼하고 또 아파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이 세상의 소망을 두지 못하게 하십니까? 바로 신앙인들의 본향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죽음을 부활과 천국으로 승화시킵니다.
예수님은 33세에 십자가를 지시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100세 이상을 살면서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영원한 곳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라 천국에서, 또는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인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나 또는 장수와 같은 것은 축복이기는 하지만 천국에 비하면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모세처럼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왜 죽어야 하는가? 영원히 죽지 않고 축복에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영적 지도자로 활동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정말 믿음이 없는 소리일 뿐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리라 하는 땅을 보여 주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모압 땅에 있습니다. 모압은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의 동쪽에 있는 땅입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축복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리라고 약속한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요단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지도자인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모압 평지에 있는 느보산 꼭대기로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느보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신 34:1–3,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
하나님은 신앙인들에게 그들이 가야 할 땅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바라보고 가야할 땅은 바로 천국입니다. 비록 신앙인들이 이 땅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신앙인들에게 천국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33세에 죽어 그 천국에 갑니다. 또 최목사님처럼 49세에도 죽어 그가 바라보던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신 34: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천국은 신앙인들에 주리라고 한 땅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가 바라본 가나안 땅이 아니라 그보다 더 확실하고 좋은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축복입니다.
둘째. 죽어 장사되었으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죽어서도 무덤에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기록합니다. 비문에는 죽은 사람의 약력, 공적, 자손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름이 저절로 알려져야 하는데, 기록을 통해서 알리려고 하는 것은 참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죽음이 아니라 부활하셨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을 보십시오.
그는 제자들과 교회에 무덤에 비문이 아니라 묘비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합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이 어디있는지 알아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의 무덤이 우상화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에 좀 아쉬웠는지 ‘JC’라는 비문을 세웠습니다. 존 칼빈의 약자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죽으면 비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직분도 없이 죽으면 어떻게 묘비를 만드냐고 아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집사 OOO, 권사 OOO, 장로 OOO 이렇게 묘비를 만들어야 하는데, 성도 OOO라고 적혀 있으면 부끄럽지 않겠느냐고, 신앙과 믿음보다 직분을 더 중요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왜 신앙인들은 죽으면서까지도 이 땅에 이름 석자를 남기려고 그렇게도 애를 씁니까?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신앙인들의 이름이 이미 천국 생명책에 기록되어져 있는데, 무슨 이름 석자 남기려고 묘비까지 만들고, 묘를 거창하게 만들려고 합니까? 정말 천국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영적 지도자 모세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그리고 그의 묘나 묘비는 어디에 어떻게 기록되어져 있습니까? 성경은 예수님의 묘비는커녕, 그가 죽어서 어디에 묻혀 있는 지도 모른다고 설파합니다. 예수님은 무덤이 없고 살아계십니다.
신 34:5–6,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모세는 죽어서 장사되기는 했지만, 그의 무덤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죽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국에 살아있는 존재로 이름을 남긴 것입니다. 그의 묘비나 비문은 없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신앙인들 중에서 모세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어, 장사되었으나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다’. 신앙인들은 무덤을 만드는 일에 심려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천국집만 소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셋째, 신앙인들은 천국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보다 큰 자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닮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부자를, 지위가 약한 자들은 좀 더 높은 지위를 닮아가려고 합니다. 그 자리에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은 것입니다. 비록 올라가지 못할 처지와 입장이라고 할지라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인 비교를 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대적인 비교는 말 그대로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한 마디로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같은 선지자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천국에서는 누구든지 세례요한 보다 크다고 말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천국에 가면 다 해결됩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재물을 모으는 것도, 행복한 것도, 축복도 다 천국이 해결해 줍니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 요한을 보려고 그가 있는 광야까지 가서 보고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무엇을 보려고 나갔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너희가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될 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없다고 말해 버립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천국에서는 모세보다 더 큰 자입니다. 천국이 답입니다.
신 34:10–12,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누구든지 오직 천국에서 이 세상보다 더 큰 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