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쯤, 나는 미국 남부의 한 깡촌에서
학교를 다녔었다 그때 나는 거울을 보면서,
"나는 왜 까만 머리에 까만 눈을 가졌을까" 원망하며
펑펑 운 적이 있다 😢
그 이유는... 특정 수업에 들어가면 랩이 있었는데,
주로 알아서 그룹을 만들라고 자율성을 줬다
그런데 나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룹 멤버였다😅
매번 꼴찌 찌끄러기처럼 남아서, 나이 들어 뒤늦게 학교에 온 아주머니들이나 극심한 내향형 친구들 몇 명이 남아 있으면 그 그룹에 간신히 받아져 들어가곤 했다
일단 그렇게 그룹 멤버가 되면 내가 바보나 멍청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매일 예습해서 가고,
그룹 친구들에게 나의 이용 가치를 증명해야만
그 그룹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
또 한 번은 밥이 먹고 싶어서 라이스 쿠커로 밥을 했는데,
밥 냄새가 너무 싫다고 나를 기숙사 폴리스에 신고해서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
나는 빵보다 밥을 먹는 사람인데,
내 밥 냄새가 싫으면 나는 어쩌라는 건지...
그 이후에는 어차피 나랑 친구하고 싶어 하는
미국 애들도 없고, 예쁜 옷 입는 걸 좋아하기도 해서
당시 유행하던 핑크, 에버크롬비, 바나나 리퍼블릭 같은 곳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며 매일 예쁜 옷을 바꿔 입고 다녔다👗
그랬더니 학생식당에 가면 내 뒤에서 "Pretty Asian?" 이라며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곤 했지만, 정작 나에게 말을 한마디 걸지는 않았다 😅 그래도 다행인 건 거기에 ugly나 stupid 같은 형용사까지 붙었다면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파란 눈의 백인이 되고 싶어 했는데,
지금도 그런 고민을 하는 아이들이 많은가 보다
지나가다 포스터를 보니 옛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
호주에 와서는 "Go back to your country" 라는 말을 들으며 계란을 던져 맞은 적도 있었다 🥚😓
여튼 그런 뼈아픈 기억들이 포스터를 보니 다시 살아났다 ㅎ
이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직장에서 굉장히 적은 수의 하이레벨 포지션으로 승진할때
공부를 계속 많이 하면 함부로 무시당하진 않지만 어느선
이상으로 올라가려 하면 굉장히 높은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애들이 아직 나처럼
"금발에 백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치만 신기하게도 친한 베스티들은 대부분 까만 머리다
역시 자기 눈에 익은 것들이 자석처럼 끌리나보다 🧲
아시아 사람으로 서양에서 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폴은 캐나다라 좀 나았나 모르겠다 🤔
Hope 나았기를... 나는 지금도 자주 PTSD가 온다 허허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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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핑클리 작성시간 26.06.07 나도 폴짝님 괜찮아요. 잘 이겨내셨고 대단하세요. 문화와 자아정체성의 혼돈에도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시고 지금의 폴짝님이 증명인 셈이니 토닥토닥
오늘의 당신을 응원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나도폴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아.. 노력해서 백인에 블루 아이를 갖을수 있었다면 노력을 해봤을것도 같은데 얼토당토 안한일이라 포기하고 살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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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기다린날 작성시간 26.06.07 토닥토닥... 그 힘든 일 잘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신 거 정말 장하세요! (제가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호주에서 인종차별 겪은 게 지금도 생생해요) 앞으로도 잘 해내실 겁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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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나도폴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화이팅 !!! 노몰 인종차별 플리즈 한국에도 요즘 외국인노동자가 많은데 차별하지 말아주세요 플리즈 !!!! 더 살기좋은 사회를 위하여 섭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