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운산(安雲山)-號名
안세찬(安世燦)-本名
안흥찬(安興燦)-族譜名
1派28世-판관공파
(1922~2012)
-증산도 (甑山道)태상종도사(太上宗道師)
安興燦(안흥찬)
1922년壬戌6월16일生
配 慶州金氏 1924年甲子11月12日生
종교계에 증산도의 2변과 3변을 개창한 안운산(安雲山) 태상종도사(太上宗道師)가 있다.
안운산 태상종도사는 1922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유소 시절부터 보천교普天敎를 신앙하시던 부친의 영향으로 증산 상제의 진리를 접하게 되었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아 태상종도사는 혈혈단신 세상에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선포하였다. 이때 전국을 누비며 초인적인 열정으로 수십만을 포교하여 증산도 제2변의 부흥을 열어놓았다.
1950년 6.25 동란이 터지면서 전쟁의 참화로 교단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 대휴계기大休契期를 선포하고, 대전에서 은신하였다.
그후 1974년 아들인 안경전(安耕田, 본명은 안중건(安重建) 현現 증산도 종도사와 함께 대전에서 증산도 제3변의 서막을 열었다.
현재 전세계의 일꾼들이 증산도에 모여들어 후천 5만년 새 역사의 장을 크게 열고 있다.
태상종도사는 지구촌 통일경전인 『도전』편찬, 전국 도장 순방, 태을궁 건축, 상생방송 개국 등 일꾼 양육과 증산도 세계화의 기틀을 놓고 2012년 등천登天하였다.-증산도
| 인물/근현대 인물 |
| 현대 |
| 1922년 |
| 2012년 |
|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 운산리 |
| 남성[네이버 지식백과] 안세찬 [安世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정의
해방 이후 대전에서 아들 안경전과 함께 증산교 계열의 증산도를 창립한 종교창시자.
생애
호는 운산(雲山)이다. 1922년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면 운산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보천교(普天敎)를 신봉하던 아버지 안병욱(安柄彧)의 영향을 받았다.
1945년 9월 이상호와 이정립 등이 서울에서 대법사를 창립할 때, 충청도 지방의 포교를 맡아 교화하였다. 그러나 이들과 뜻이 맞지 않아, 1951년 대법사를 떠났다. 그 후 공주와 대전 등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다가, 1974년부터 종교운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옛 연원지인 아산 · 예산 · 서산 등지에서 신도들을 모아 1978년에 대전시 대사동 자택에서 ‘대법사증산교’라는 이름으로 창교하였다. 그는 종도사(宗道師: 교주, 뒤에 太上宗道師)가 되고, 아들 중건(重建: 호 耕田)을 교화원장으로 삼아 교리강좌와 강연회 등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0년에는 대전시 중구 괴정동에 교당을 신축하여 ‘증산도장(甑山道場: 뒤에 증산도)’으로 교명을 바꾸었고, 활동지역을 서울로 옮겨 젊은 청년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개벽이다』(1983년)와 『증산도의 진리』(1984년)를 간행하여 증산도를 크게 알렸고, 이후에는 『증산도도전(甑山道道典)』 발행, 증산대학 설립, TV방송국(STB) 설립 등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였다. 2000년 이후에는 아들 중건에게 실권을 맡겼다가 2012년 대전 본부에서 사망하였다.
활동사항
증산-고부인[고판례(高判禮)]-안운산[안세찬(安世燦)]-안경전[안중건(安重建)]으로 이어지는 종통을 세웠다. 그가 만든 신당에는 중앙에 증산, 왼편에 단군왕검, 오른편에 고부인의 삼위(三位)를 각각 영정으로 모시고 그 외 여러 신들을 봉안하고 있다.
그가 정립한 교리의 핵심은 인존정립(人尊正立) · 상생조화(相生造化) · 해원보은(解寃報恩)의 법리를 심령법도(心靈法度)로 광제창생(廣濟蒼生)하는 목적과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 세상은 머지않아 가을철의 대개벽운동이 일어나 병겁(病劫)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새로운 세상이 되는데, 이런 어려운 세상을 바로잡고 인류를 구원할 사명이 증산도에 주어졌다고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세찬 [安世燦]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부(父)-27世
안병욱(安柄稶)
安柄稶(안병욱)
字는 동기(東基)
고종(高宗)戊戌년정월22일生 을미(乙未)년12월2일卒
墓대전시(大田市) 문화동(文化洞) 고촉동(高燭洞) 묘좌(卯坐)
자(子)-29世
안중건(安重建)
1954년甲午9월15일生
안경전安耕田, 본명 안중건(安重建)
안경전(安耕田)은 대한민국의 사상가이자, 증산도 최고 지도자인 종도사(宗道師)로 1974~1975년 부친인 안운산(安雲山) 태상종도사를 모시고 지금의 증산도를 개창했다.
24세 되는 해에 다가오는 대개벽 세계의 경계를 직접 체험하고 증산도 진리를 널리 전하기 위해 증산도의 진리(1981)를 펴내고 포교에 전념하였다. 그 후 이것이 개벽이다를 출간하고 1980년대 전국 대학가에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젊은 대학생들이 증산도의 주축이 되었다.
1984년 증산도대학교를 설립하고, 20년 동안 현장 답사와 증언을 토대로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의 행적과 말씀을 담은 증산도 통일 경전 도전(道典)을 발간하였다.(1992)
1998년 증산도상생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2003년 『도전』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또한 영어, 불어, 독어, 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러시아어판 『도전』을 번역했다.
2007년 STB상생방송을 개국하여 증산도 대중화의 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