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훈(安燻)-3派13世-어모장군(禦悔將軍) 부사과(副司果)

작성자바른정보(안정의)|작성시간09.07.29|조회수115 목록 댓글 0

안훈(安燻)

 

燻(훈)
字는 子昭이고 一四八七年成宗十八年丁未 生이며

禦侮將軍에副司果이다

○一五三一年辛卯에철家下鄕하여 槐山郡甘勿面鯉潭에 隱居하다

一五三五年中宗三十年乙未二月十日 卒하다
配는 淑人鷄林鄭氏이며父는郡守인懋이다 一四九○年成宗二一年庚戌 生이고

一五二七年中宗二十二年丁亥二月二十九日 卒하다有一男二女다
后配는 淑人淸州楊氏이며父는察訪인希洙이고祖는司正인悌達이며

曾祖는 兵使인怡이다 一五一二年中宗七年壬申生이며 一五七三年宣祖六年癸酉二月五日 卒하다

○墓는 槐山郡甘勿面顔谷農山酉坐上下墳이며十月六日歲祀하다

記蹟이있으며后孫참奉인式中이墓表를지으니總錄에있다

 

 

안훈(安燻)

 (1487~1535)

자(字)는 자소(子昭), 본관(本貫)은 순흥(順興), 증(贈)판서(判書) 지촌(智村) 안우하(安友夏)의 아들이다.

관직(官職)은 어모장군(禦悔將軍) 부사과(副司果)에 이르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감물면 어담에 은거(隱居)하였다.

자손(子孫)의 훈도(訓導)에 전심(專心)하여 그 자손(子孫)에 효자(孝子), 농애(農涯) 안지(安志), 증손(曾孫)에 사촌(沙村) 안덕린(安德麟)등 많은 인물(人物)을 배출하고 수백호의 대성(大姓)이 세거(世居)하게 되었다.

괴산군지(槐山郡誌) 인물(人物)

 

 

안훈(安燻)

공은 13세조이시다.

조부(祖父)는 연안부사(延安府使)와 성주목사(星州牧使)를 지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의 증직을 받으신 휘 의(誼) 이시고,

부친은 영평(永平) 함안(咸安) 군수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증직을 받으신 휘 우하(友夏)이시다.

모친은 세종의 왕자인 밀성군(密城君)의 침(琛)의 따님인데, 밀성군은 1468년 예종(睿宗) 즉위 때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오른분이다.

공은 1487년 성종 18년 정미년에 7男2女 중 넷째 아들로 탄생하셨다. 어려서부터 영리하셨다.

강수 박이원(朴以元)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과거 합격운이 없었다. 자를 자소(子昭)라 했다.

서울 남수문(南水門) 안에 살고 게셨는데 왕자의 자손인 시산정(詩山正) 이숙(李叔)과 당시 성균관의 박사(博士) 벼슬을 하고

계시던 동족(同族)인 한 살 위의 휘 처겸(處謙)과 같이 지내며 즐거운 교제를 하셨다.

외가가 왕실이라 자주 외가에 가셨을 것이고 그때마다 왕실의 분위기에 젖어 여러 예법도 익혔을 것이며,

처겸선생은 그 집안이 번성하고 다 높은 벼슬에 있었으니 자주 학문을 논하고 나라의 일을 토의하는 분위기에 쌓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무오사화, 기묘사화 등을 겪으면서 충북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에 낙향하여 충주파의 입향조가 되셨다.

 

 

순흥안씨 3파 13세 사과공 안훈 묘

 

 



어모장군(御侮將軍)을 지낸 것으로 비석에 적혀있다. 어모장군은 조선시대엔 정3품의 무관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이다. 현령이 종5품의 지방관직의 으뜸벼슬 자리에 있었음을 보면 상당히 높은 직책임을 알 수 있다. 역사 기록속의 어모장군(禦侮將軍)은 모두 60명이 넘었는데 이들은 외적의 침입에 맞서 나라를 수호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어무장군은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하관의 품계로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무산계 하계는 과의장군(果毅將軍)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무산계 하계의 과의장군은 1466년(세조 12)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개칭되어 ≪경국대전≫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그리고 정3품 당하관에 해당되는 관직으로는 첨위, 상호군, 목사, 대도호부사 등이 있다.

 

 


사과공의 묘역은 전형적인 유혈이다. 산을 찾는 여러 가지 방법중에 한가지가 바로 전순 심혈법이다. 즉, 산자락을 살펴 혈을 찾을 때, 전순이 아름다우면 혈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두고 찾아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이론이 정확하다면 사과공의 묘역이 이에 어울리는 장소라 할 것이다.



격정하여 보면 우선이 조금 퍼진 듯하여 편산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편산이라면 불가장지이다. 그러나 조금 앞으로 나가 전순에 미치지 못해 우선을 살펴보면 지각이 뻗어나간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선이 조금 펼쳐진 듯 보이는 이유는 바로 지각이 갈라져 나가기 때문이지 편산이 아니다.

 


안산은 멀리 보이는 정면의 산이다. 뒤로는 높은 2개의 산이 마치 뽐내기라도 하듯 솟아올랐는데 좌측은 일자문성이고 우측은 목형에 가까운 금형이다. 각기 귀와 부를 나누어가지고 있으니 후손의 부귀영화가 연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진다.

 


전순의 요석

전순의 뛰어남을 더해준다. 요석은 귀(貴)를 의미한다.

 


내당은 조금 넓은 듯 보이나 넓다는 것은 지극히 시각적이고 통념없는 말이다. 사과공의 묘역 하단부 전순을 살펴보면 요석이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석의 존재는 이 묘역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내당의 크기는 바로 혈의 크기와 강함, 그리고 혈이 지는 기맥에 비교된다. 내당이 크다고 보여지는 이유는 묘역 상부의 당판의 작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작은 당판이 아니며 요석으로 인해 강한 기맥으로 귀성(貴性)을 보였으니 내당이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Tong - 종린의 풍수여행

 

7세 8세 9세 10세 11세 12세 13세 14세 15세 16세
종원
경공

숭선

우하
찬 ▶
요 ▶
담 ▶

충세

덕린 ▶
조추
이언눌
습 ▶
엽 ▶
수 ▶
손부 ▶
이억수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