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과 실질의 일치를 지향한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 명칭과 실질의 일치를 지향한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 명실론(名實論)이라고도 한다. 정치사상적인 것과 논리학적인 것의 두 경향이 있는데, 전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정명론의 발단은, 정치의 급선무는 이름을 올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한 공자(孔子)의 주장인데(《論語》 子路篇), 그 구체적인 내용은 예를 들어 군신부자(君臣父子)는 각기 군신부자다워야 한다는 것으로(《論語》 顔淵篇), 명칭에 어울리는 실질이면 훌륭한 통치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여씨춘추(呂氏春秋)》 <정명(正名)> <심분(審分)>이나 《신자(申子)》 <대체(大體)> 등 여러 편(篇)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치론적 정명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이름(직무)에 어울리는 형(形)·실(實;實績)을 추구하여 군주가 신하를 독책(督責)한다고 하는 형명참동(形名參同)의 정치사상을 창안한 것이 법가(法家)이다. 정치론적 정명론은 《관자(管子)》 <심술(心術)>, 《순자(荀子)》 <정명(正名)>, 《한비자(韓非子)》 <정법(定法)> 등의 여러 편에서도 볼 수 있다. 뒤에 특히 송(宋)나라 이후, 명분론(名分論)으로서 전개되었다. 한편 명가(名家)의 공손룡(公孫龍) 등이 공자의 정명사상을 일반 사물에 적용한 것이 논리학적 정명론이 된 듯하다. 《공손룡자(公孫龍子)》에는 명실론도 있는데, 즉 백마론(白馬論)에서 백마는 말이 아니라고 하거나, 견백론(堅白論)에서 견백석(堅白石;단단하고 하얀 돌)은 2개라고 하는 주장에 그 정명론의 특징이 명백히 나타나 있다. 백은 색에, 말은 형태에 속하는 것으로서 말이란 형태에 대해 말하는 것이므로 색과 형태가 합쳐진 백마는 말 곧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단단한 돌이라고 할 때에는 하얀 돌은 의식되지 않고, 하얀 돌이라고 의식할 때에는 단단한 돌은 지각(知覺)되지 않는다고 해서, 견백석은 하나 또는 셋이라고 보는 설을 부정했다. 이 백마비마(白馬非馬)에 관해 묵가(墨家)는 《묵자(墨子)》 소취편(小取篇)에서 백마를 탔거나 이마(驪馬;黑馬)를 탔거나 말을 탔다고 말하기 때문에 백마는 말이라고 순수히 논리적으로 반박하였다. 이러한 명과 실의 논리적인 논의는 《순자(筍子)》 정명편에서도 볼 수 있는데, 순자는 이러한 논의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고 분석의 정밀함은 인정하지만 불요불급한 논의라고 하여 정치적·실용적 입장에서 부정하였다. 순자 이후 정명론은 진(晉)나라 노승(禿勝) 등에게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