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현안과 대안
-근본원인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김관식
1. 프롤로그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건 그 시대, 그 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한국문학의 현안과 대안이라는 주제를 설정해놓고 한국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최근 우리나라 K팝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8년 상반기 빌보드 월드앨범차트 최다 1위을 차지하고, 한국가수로는 처음으로 유엔총회 연설까지 하는 등 우리나라 대중가수가 2013년 “강남스타일”로 세계인들의 인기를 끈 사이에 이어 두 번째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저력과 우리 문학계의 문제와 매우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문학의 현안을 생각해보았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라는 방탄소년단의 마지막 문구를 “한국문학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라는 명제를 바꾸어 과연 우리 한국문학은 한국문학이라고 떳떳하게 내세울만한 특수한 자기 이름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로 한국문학의 현안과 대안을 생각해보았다.
세계인들의 관심을 끈 방탄소년단의 노래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피땀눈물”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의 케이팝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것은 바로 우리 문학의 원천인 고전시가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5천년의 역사 속에서 면면이 이어온 전통이 부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민족은 노래와 춤을 즐겨하는 민족으로 고대 시가가 문학적인 것보다는 신에게 감사하는 축제를 올리는 제천의식에서 비롯된 원시종합예술의 형태로 노래와 춤이라는 노래가 우선되었다.
따라서 우리 시가가 노래에서 출발했고, 그 가사가 문학적 역할을 해왔는데, 노래와 춤이 그 수많은 역사적 전통을 이어 그 잠재적인 에너지가 오늘에서야 발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문학의 현안을 여기에서 도출해내보도록 하겠다.
2. 한국적인 전통과 현대문학과의 접목과정의 문제 성찰
한국적인 전통문학과 서구적인 현대문학이 서로 접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불운한 역사적 상황을 맞이했다. 서구의 근대화가 물결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시기에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우리는 자주적인 문화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제강점기를 맞아 그들을 통해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서구의 문예사조도 한꺼번에 일본을 통해 받아들여 현대문학으로 발전되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각이나 인식이 없이 서구의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일제에 우리의 희망을 어린이에게 거는 형식으로 아동문학계에서는 민요의 전통을 동요의 전통으로 고수하고 시단에서는 창가에서 신체시 현대시로의 전환이 이어지고 가사문학, 판소리전통, 신파극 등으로 고전문학의 전통이 이어지다가 일제강점기의 현대소설로 발전해왔다.
국권을 찬탈당한 상황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감시체제 하에서 우리 문학은 발전해왔고,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자 마자 미군정, 6·25전쟁, 남북분단으로 이어져 가장 중요한 시기에 민족문학으로 성숙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전통과 현대의 접목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기초가 부실한데 모든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 문학의 특수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며, 그것이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나아가지 못해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어버린 결과이다.
또한 우리문학은 문학을 교육하는 학자들간에 밥그릇 싸움하다가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구분하여 따로 국밥으로 문학을 다루어왔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전제로 고전과 현대로 구분하는 어리석은 논리가 국문학계에 적용되었다. 따라서 고전문학은 옛날 구닥다리 문학으로 천시하고, 현대문학은 오늘의 새로운 문학으로 받들어 모시는 등 전통의 단절 상황을 그대로 노출하여 교육하는 한국문학, 여기에 문제의 근원이 있다.
따라서 고전문학하는 사람들은 고전문학만 하고 있고, 현대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현대문학만을 하고 있는 전통과 현대가 단절된 따로 국밥으로 어찌 한국적인 문학을 세계적인 보편적인 문학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문학작품이 나올 수 있겠느냐하는 문제이다.
가장 한국적인 개별적이고 특수적인 문학이 창작되려면 작가가 고전문학의 전통과 현대문학적인 맥락을 꿰뚫어 작품을 창작해야만이 세계보편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문학이 되는 것인데 우리는 이러한 기본적인 틀을 소홀히했다는 데에서 노벨문학상의 작품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은 가장 인간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나의 작가가 그 사회문화적인 특수한 환경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통해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문학작품으로로 승화하여 보여주었을 때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써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인데, 우리문학은 그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젊은 세대들의 자유분망한 연애경험을 솔직담백한 가사와 말춤에 의해 잠재되었던 우리 민족의 에너지를 보여줌으로써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았고, 방탄소년단이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하는 젊은 세대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던지며 피땀눈물이라는 호소력으로 빠른 현란한 동작의 춤으로 세계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에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케이팝은 우연한 것들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5천년동안 피속에 흐르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다시 재현된 것이다. 노래나 예술작품은 당대의 살아가는 사람의 욕망을 압축해서 보여주나 여기에는 그 노래나 예술작품이 상대적인 문화 역량을 결집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우리 문학도 전통과 현대의 잘못된 접맥을 청산하고 우리 고전적인 전통을 살려 현대적인 것으로 치열한 작가의식을 보여줄 때 세계적인 문학작품으로 자리를 잡아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3. 한국문학의 현안을 파생한 근본원인 탐색
한국문학의 현안은 불과 서구 문예사조가 도입된지가 110년의 문학사에서 우리문학은 한국적인 전통을 이어오는 일제강점기 시인 작가들을 기억하고, 일제강점기의 트라우마성 작품들이 교과서로 자리잡아 그것을 마치 위대한 작품으로 알고 온 국민들이 현대문학으로 인식하고 있고, 최근에 대중들이 선호하는 작품으로 인기 시인이나 작가로 각광을 받고 있는 현상은 우리 문학이 너무나 우리 전통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 문화적 전통이 집권세력의 이분법적 이념이 많이 개입되어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쳐왔고, 오늘날까지도 정치적, 이념적, 경제적, 문화적 이분법적 논리가 당대를 이끌어가는 지배세력들은 물론 문학인들의 심층적인 의식의 기저에 자리잡음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념을 내세워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허위의식이 진정한 작가의식을 낳는데 제어작용을 해왔다.
한국문학은 한국문화을 반영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융합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내어야 비로서 한국적인 특수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김치문화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김치는 본래 우리의 식문화가 아니었다.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중국의 북ꥡᅮ지방이 원산지인 배추와 중앙아시아 지중해 연안이 원신지인 무가 고대부터 소금에 얼간한 지로 담아서 먹어왔던 것을 중앙아메리카 원산지인 고추가 17세기 초엽 중국과 일본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해왔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우리의 식성에 맞게 김치를 담아 우리의 식문화를 창조해냈듯이 외국의 문학사조를 받아들여 이러한 우리 문화로 완전히 융합되어야 비로소 새로운 우리만의 한국적인 문화로 자리잡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문학은 현재 사회 모든 분야가 이념적인 이분법논리로 분화되어 융합되지 못해 한국적인 문학이 특수성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문학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우리 문학 전통을 바로 이어나가지 못한 데에서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문화로 오랫동안 자리잡은 우리 문화작 특수성을 떡문화로, 서양의 개인주의적인 현대적인 문화를 가루문화로 집약하여 한국문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도출해보고자 한다.
1) 떡문화와 가루문화에 대한 바른 인식
동양의 문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떡문화다. 떡문화는 우리 조상들의 공동체 문화의 바탕을 형성해왔다.
떡은 수렵어로를 중심으로 한 고대 원시사회와 신석기 이후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살기 시작한 때부터 근대까지는 떡 문화가 중심이 되는 시대였다. 떡은 농사지은 여러 가지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다시 물을 섞고 불로 익히면 끈끈하게 달라붙는 형태의 음식이 만들어지는데 바로 이것이 떡이다. 쌀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쌀을 물과 섞어 그 상태로 가공하지 않고 불로 익히면 밥이 되나 떡은 쌀을 가루로 만드는 노동이 첨가 되는 약간의 가공이 첨가되어야 만들어지는 음식이다.
서양에서는 밀농사를 주로 짓기 때문에 밀을 그대로 물과 섞어 불로 익혀 밀밥을 만들어 먹기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가루로 빻아 빵을 만들어 먹어왔다. 동양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그대로 썩어 물고 섞어 요리하는 칼국수를 만들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팥과 섞어 팥죽을 끓여 먹어왔다.
떡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생활문화로 자리잡아왔다. 명절날인 설날에는 떡국을 먹는 풍습, 단옷날 수리 떡을 해먹었으며, 추석날은 송편을 만들어 먹었으며, 생일, 돌잔치, 관혼상제 등에서 떡은 빠뜨리면 안 되는 음식으로 자리잡아왔다.
오늘날도 시장에 나가면 떡방아간이나 떡집이 있으며, 간식용으로 만들어 팔고 있고, 지방에 따라 향토음식으로 한산 모시송편, 영광 모시잎송편, 의령망개떡, 쑥떡, 제주도의 오메기떡 , 전주망개떡, 강릉찹쌀떡, 궁중떡집 등 향토음식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 조상들의 떡에 관한 속담이 많은 것으로 보아 떡은 오랫동안 우리의 음식문화의 중심이었다.
18세기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떡의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19세기 산업 혁명이후 점차 떡의 문화는 가루의 문화로 변화해갔다.
떡의 의미는 “함께”, “다같이”라는 공동체문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떡을 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어떤 일을 하는데 양적으로 충분한 정도가 되다.”, “풍족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떡’은 우리나라 조상들의 전통적인 먹을거리였다. 원래 “떡을 친다”라는 말은 떡을 만드는 과정으로서 쌀가루를 찐 것을 여러 번 떡메로 쳐서 차지게 해야 하는데, 양식이 부족하던 과거에 떡은 어쩌다가 잔치가 벌어지거나 제사지내는 날이나 맛을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당시 살림이 넉넉하지 않고서는 떡도 마음대로 해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속된 표현으로 ‘돈이 충분해서 쓰고도 남을 정도이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는 떡의 문화가 지배해왔다. 그 오랜 역사를 함께 한 떡의 문화는 서양보다는 동양의 문화에 적합했다. 쌀농사 짓고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권문화는 엄밀히 말해 떡의 문화다. 양과 가축을 기르고 그 젖과 고기, 그리고 밀을 생산하여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었던 서양의 역사는 가루문화가 지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밀을 빻아 밀가루로 만들고 이것을 이용하여 빵을 만드는 과정은 쌀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 이것을 수증기로 쪄서 만들어내는 떡과 유사한 제작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밀은 그대로 밥을 지을 수가 없다. 반드시 빻아서 가루를 만들지 않고서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없다. 가루로 만들지 않고 요리하려면 통밀이나 아마씨, 귀리 같은 것을 발효시켜 화덕에 구워내는데 이것이 아르메니아의 라뷔쉬 빵이고, 러시아는 밀가루를 이용하여 얄팍한 팬케이크을 만들었는데,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아주 많은 양의 물과 함께 반죽해서 위의 사진과 같이 아주 얇게 만들어 구워서 만들었다.
쌀가루와 밀가루의 재료에 따라 떡이 되고 빵이 되지만 떡은 점도가 있어 서로 달라붙은 성질이 강하다. 찹쌀은 점도가 높아 더 끈끈하다. 이러한 쌀과 잡곡을 섞어 떡을 만들게 되는데, 가장 간단한 요리과정을 거치는 것이 둥글게 돌돌 말아서 일정한 간격으로 썰어서 고춧가루를 넣고 요리하는 것이 떡볶이이고, 동전처럼 잘게 썰어 물을 붓고 소고기, 꿩고기 등을 넣어 요리하는 것이 떡국이었다.
떡국은 설날 먹는 전통음식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잡아왔고, 쌀가루를 작은 원모양으로 만들어 거기다가 팥이나 콩고물을 넣어 쪄내는 요리가 송편이다. 쌀가루에 어떤 가루를 같이 섞어 넣느냐에 따라 송편의 종류가 달라지는데, 모시잎을 빻아 섞어서 넣어서 만든 것은 모시잎송편, 뽕잎을 넣으면 뽕잎송편, 솔잎을 넣으면 솔잎송편이 되는데 주로 가운데 넣는 고물의 종류에 따라 콩고물송편, 팥고물송편, 꿀송편이 된다. 모양은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빚고 주로 추석날의 전통음식으로 조상 대대로 만들어 먹어왔다.
이와 유사한 떡이 꿀떡이 있는 작은 원통모양에 꿀이나 설탕을 넣어 꿀떡을 만들기도 해서 명절날이 아닌 평상시에 만들어 먹기도 했다.
시루떡의 경우 떡가루를 그냥 넣고 찌면 백설기가 되고, 층을 구분하여 쌓아서 쪄내면 시루 떡이 되는데, 위층과 아래층이 달라붙지 않고 경계를 구분 짓기 위해 삶은 팥을 으깨어 넣거나 콩가루를 넣어 층을 이루도록 경계를 지었다. 밀가루를 송편처럼 여러 가지 야채와 고기를 넣어 만든 것이 중국의 만두다. 팥을 넣어 쪄내면 찐빵이 된다.
동양은 떡과 만두, 찐빵을 만들 때 반드시 수증기로 쪄내는 방법을 택하였고, 서양은 불에 직접 굽는 과정을 거친다. 동양에서 수증기를 이용하여 중탕하는 원리를 서양에서 받아들여 19세기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증기기관차의 발명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모든 과학적인 원리의 그 배경은 동양에서 적용하는 생활문화를 서양 사람들이 그 속에 숨어있는 원리를 응용하여 새로운 과학혁명을 일으켰다. 최무선이 화약을 세계최초 만들어 서양에서 더욱 개발해서 무기 산업이 발달했고, 중국의 후한 때 채윤이 종이를 발명한 이후 삼 · 뽕나무 · 퉁나무 등을 원료로 당나라 때에는 종이가 많이 생산되어 평민들까지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당나라가 이슬람과의 전쟁을 치렀을 때 포로가 된 당나라 병사 가운데 종이 만드는 기술자들에 의해 이슬람 제국에 종이기술이 전파되어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의 화약, 나침반, 종이, 인쇄술 등 4대 발명품이 서양에서 더욱 발전시켰을 뿐이고, 서양에서 중국의 발명품을 더 정밀하게 발전시켜 다시 동양에 전파되는 괴정을 거쳤을 뿐이다. 여기에 인쇄술은 우리나라 고려의 활자술이 구텐베르크남작의 활자 발명보다 200년이 앞섰다는 사실은 모든 문화는 공동체가 다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는 동양의 떡문화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한글이 창제된 것도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쉽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발명하겠다는 의지로 집현전을 두고 학자들과 연구를 거듭한 결과 독창적인 한글을 발명하게 된 것은 떡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떡문화는 동양의 문화이고, 우리 조상들의 전통문화이다. 떡문화는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쳐 심지어 여자가 시집가면 시댁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칭호가 주로 여자의 친정 마을 이름을 댁호로 칭하는데, 宅이라는 말은 집을 의미하는 작은 분리개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댁호를 부를 때 지방에 따라 분리개념보다는 공동체개념을 적용한 사례를 보면, 댁호의 댁은 한자어이지만 지방에 따라 댁을 부를 때 ‘서울떡’, ‘부산떡’으로 떡이라는 말로 부리는 것은 떡이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의미하고 떡을 만드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와전되어 불러온 것으로 추정된다.
떡문화는 원시사회에서부터 농본사회의 공동체문화의 소산이다. 오늘날 친구들끼리 친밀해지기 위해 술을 같이 나누어 마시는데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셨다’라는 말은 떡문화를 의미한다. 떡문화는 훈훈한 인간미가 넘치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이다.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울타리를 경계로 울타리너머로 떡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이웃과 다 같이 정겹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아름다운 문화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돌잔치 때 떡을 만들어 이웃집에 떡을 돌리는 풍습이랄지 이사 온 사람이 떡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돌리는 풍습은 인간미 넘치는 더불어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공동체문화이며, 생태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물질문명에 의해 아파트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는 것이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서양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서로 가루가 되어 삭막한 황사모래처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떡문화는 우리가 이어나가야 할 아름다움 우리의 전통문화이며, 문학작품도 결국 떡문화에 바탕을 둔 문학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2) 가루문화와 개인주의
가루문화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떡문화와는 달리 개별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 문화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이 일어나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산업혁명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경제문화의 혁명이다. 앞서 언급한 떡문화에서 떡을 만들 때 솥 위에 시루를 얹어 불을 가하여 수증기로 떡을 만드는 원리를 서양에서 증기로 움직일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증기기관이다. 증기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 발명된 기계와 기술 혁신에 힘입어 소규모 수공업 생산 방식이 대규모 공장제 생산 방식으로 전환되고, 이로 인해 생산성 증대와 자본주의 체제를 성립시킨 산업상의 변혁을 가져왔다. 교통수단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와 증기기관차, 증기기관, 풍력을 이용하기 위해 돛을 만들어 운행하던 배에서 증기선을 만들어 대량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생산제품을 운송하는 등이 발달하게 되었다.
가내수공업의 형태에서 대량생산체제로의 탈바꿈은 인도를 비롯한 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목화를 가져와 면직물을 대량으로 만들어 자국은 물론 식민지에 되팔기 위한 생산체제로 결국 부의 축적을 가져오게 된다. 19세기 중반 무렵에는 프랑스, 독일, 미국이 산업화의 세례를 받았고, 19세기 후반에는 러시아와 일본 등도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 결과 세계 각국은 속속 자본주의 체제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서구중심의 제1차 및 제2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받아들여 전기와 전기통신업의 발달과 더불어 저렴한 인건비를 경쟁력으로 값싼 제품의 단순 경공업제품을 수출하면서 산업화가 이루었고, 고속도로와 산업단지의 조성 등 산업화 사회의 성장 토대를 만들고, 독일간호사, 월남전 파병 등으로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다.
1970년에 들어서 미국 및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제3차 산업기술의 도입과 더불어 건설, 철강,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중공업 분야로의 산업영역이 크게 확대 발전했다. 제3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컴퓨터를 주축으로 하는 각종 설계 및 생산자동화, 국가 행정전산망구축과 각 기업들의 경영관리정보화기술 등에서 선진국을 추월하면서 국내 전 산업분야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향상됨에 우리나라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했다.
산업사회 시대의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영향은 대중들의 사고방식과 취미, 그리고 심지어 생활방식까지 평균화하게 되었고, 개인적인 자주성과 책임성, 자발성의 상실로 나타나는 ‘개성의 빈곤’을 초래했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전자매체의 발달은 가루문화의 특징인 Maletzke의 ‘분산된 공중’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분산된 공중’은 구성원들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수용자들이 서로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고, 익명인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메시지를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대중 매체 또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은 문자나 그림 또는 소리를 ‘불특정 다수인’들에게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매개하는 모든 미디어들을 일컫는다.
컴퓨터, 스마트폰 등 전자매체는 대중을 개개인으로 분산하는 가루문화다. 우리는 가루문화 속에서 매스 커뮤니케이션에 움직이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컴퓨터 통신, 스마트폰특정한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구축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인 SNS,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온 정보에 의해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임시적으로 공유 집단이 되었다가 뿔뿔이 흩어져 떡메를 치고는 떡을 만들어보지 않는 체 떡이 잡시 되는가 싶다가 떡이 되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버리는 즉 빵이 되었다가 빵부스러기로 전락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에 의하면 새로운 미디어 형태는 대량생산 이후의 경제적 필요를 반영하여 영상제품을 부문 생산하여 여러 다른 영상이나 아이디어, 상징물을 일정한 표적층, 시장, 연령계층 전문직업인 사회 등에 내보내게 된다. 이러한 영상제품을 토플러는 ‘제3의 물결 미디어’라고 말하고 있다. 제3의 물결의 주요한 특징은 상호 작용성, 이동성, 전환성, 접속성, 편재성 등을 말한다. 그는 이 다섯 가지의 특징적 원리들이 작동할 때 인간이 매시지를 상호 교환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방식과 세계관, 그리고 여러 가지 정부와의 관계를 보는 입장에서도 전면적으로 변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한다.
이의 주장은 결국 가루문화가 미래사회에 다양하게 전개될 것을 예측하는 말이다. 가루문화는 가루를 생산하는 주체자에 의해 가루문화를 결집 시키기도 하고 흩어 놓기도 한다. 매스 미디어는 대자본가나 제작자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게 되고 그 계획된 의도에 의해 대중들은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그데로 수용한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에 방송이 영상으로 특정 고장의 관광지와 먹거리를 방영하면, 대중들은 그곳을 너도나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멋진 감성적인 영상으로 특정제품을 광고하면 시청자들은 모두 그 제품을 구입하려는 잠재적인 욕구와 충동을 가진 소비자로 전락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 제품을 구입하게 되는 세뇌를 받게 된다. 또한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의 의상과 촬영장소의 건축물의 내부 장식이랄지 배우가 먹는 음식 등을 선호하여 잠재적인 고객이 되어버리는 매스 미디어의 정보에 움직이는 수동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스 미디어의 노예가 되어버렸고, 그 편리함과 안락함에 길들여져 인간의 주체적인 삶을 포기해버리고 살아간다.
모든 것을 주체적인 의사결정과 판단을 미디어에 맡기는 신종 노예로 전락하여 수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일만 충실히 해야 노예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가미하여 제 맘대로 시키지 않는 일을 했을 때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가미하여 일한 결과 더 낳은 성과를 가져왔다면 똑똑한 노예로 주인의 칭찬을 받겠지만, 만약 실패 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받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가루는 가루로 존재해야지 가루끼리 붙어서 굳어버리거나 썩게 되면 주인은 그 가루로 음식을 요리하지 않고 가축들의 사료로 처분하거나 썩혀서 거름으로 이용하게 될 것이다.
뉴미디어시대 가루문화가 통용화 되면서 각 가정마다 컴퓨터 이메일 주고받는 등 컴퓨터 글쓰기가 생활화하면서 누구나 글쓰기를 하는 일종의 작가가 된 셈이다. 그러나 시인이나 작가가 일반인과 구별점이 모호해지고 있다. 그에 부응하여 대중들도 그룹을 형성하여 글을 발표하는 컴퓨터 동호인 글쓰기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동인지를 출판하고, 일부 몰지각한 인쇄업자들은 잡지 매체를 만들어 등단제도로 시인 작가의 칭호를 부여하여 잇속을 챙기는가 하면 낭송대회를 개최하여 시적인 분위기로 자신이 시인 된 듯한 환상을 제공하고, 여러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명리적 가치를 도모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시인의 시와 서발턴들의 시들과 경계가 모호해져버렸다. 그러나 분명 대중들이 즐기는 시는 현대시의 경향이 아니라 낭만주의 시대 주관적인 감정토로를 일삼는 문학성과는 거리가 먼 그냥 가볍게 즐기는 시를 원하고, 그러한 허영심을 부추기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문단상황은 바로 끼리끼리 어울리는 떡문화에서 시커먼 커피를 즐겨 마시며 빵을 즐기는 가루문화가 빚어낸 결과다.
누구나 시인이나 작가가 될 수는 있다. 대중들에게 널리 감동을 주면서도 문학성이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 좋은 시인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신문학이 들어온 역사가 110여년 그것도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저항적인 문학작품이 많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지 못한 군사독재의 질곡에서 문학 활동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해왔다는 데도 원인이 있지만, 산업화 이후 부를 축적하여 먹고 살만하게 되자 문화욕구를 충족할만한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 못한 탓도 영향이 크지만, 매스 미디어에 의존하는 수동적으로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지 못한 탓이며, 모든 가치를 물질로 환상하려는 물질주의 사고방식에 의해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시인이나 작가까지도 살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명리적인 허영의 욕구를 채우기 성숙하지 못한 국민의식이 문단의 상황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시인이 시를 쓰지 않고 작가가 작품을 쓰지 않고 문학단체에 감투를 써서 시인 행세 작가행세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서로 감투놀음에 경쟁을 하는 참으로 미개하고 천박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최근에 시적인 분위기와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시 쓰는 능력보다는 시인 칭호를 획득한 수많은 시 애호가들이 유명시나 자작시를 낭송하는 분위기의 팽창은 우리 국민들이 그만큼 문화를 사랑하는다는 증거이나 자칫 문학작품의 본질을 왜곡할 우려를 낳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시를 사랑하는 시적 분위기 조성은 매우 중요한 사회교육의 장이 될 것이나 이들이 자신의 명리적 가치 실현에 만족할 뿐 문학에 대한 편협한 시각은 문학의 본질을 왜곡할 우려를 낳고 있고, 시인 작가의 가치평가를 하락시킬 우려를 낳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예술문화계에 황사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이다. 문화예술 단체 집단은 악취를 생산하는 쓰레기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문화예술집단이 가루가 되고 있는 증거요 치열한 작가의식의 부재와 자기만의 명리적 가치를 실현을 위한 이기주의적 사고와 생활태도가 가져온 문단의 병폐일 것이다.
4. 한국문학의 현안과 대안
한국문학의 전통적인 특수성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위해 떡문화와 가루문화로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해보았다. 오늘날의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루문화가 확산되어 있으며, 떡문화에 대한 향수로 작용하는 문학작품이 그 나라 그시대의 특수성을 배경으로 세계 보편적인 문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문화상대주의 측면에서 우리문학은 한국적인 문화배경을 바탕으로 창작되고 우리의 글인 한글로 탄생된 문학작품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한 가지 사물을 다양하게 표현이 가능한 우수한 글이다. 다만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로 대체되고 우리 한글이 30%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활용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문학인들이다. 문학인들이 문학작품을 쓸 때 우리 말로 표현했을 때 한국적인 특수성으로 자리잡아가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백석 시인의 시인의 시가 주목을 받는 까닭은 평안도 토속적인 방언들을 생생하게 시로 표현함으로써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최근 들어서 국민들이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됨에 따라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위해 각종 등산, 레져 스포츠 활동과 대중문화, 여행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으나 우리의 정신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예술작품이나 문학작품의 소비에는 등한한 결과 우리의 예술과 문학작품의 발전에 그 역량이 집약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그 우리의 예술과 문학이 발전하게 될 원동력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고, 취미활동으로 우리의 예술과 문학을 스스로가 즐기고 격상된 문화욕구에 대한 열망이 신분상승의 문화욕구로 작용하여 나도 시인이나 작가가 되겠다는 의욕이 넘쳐나고 있다. 스스로가 예술활동과 문학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으나 문학활동을 취미활동으로 여기고 치열한 작가의식이 없이 생산한 자기만족의 문학작품이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굶주린 문화욕구는 능력을 고사하고 시인 작가가 되겠다는 허명의식이 자리잡게 되고 그 허명욕구를 채워줄 영세한 출판업자들의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다량의 공신력없는 시인과 작가의 칭호를 주어 배출해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이렇게 동인의 연대의식으로 창간된 문예지들이 자기네들이 생산한 문학작품을 발표하고 그들의 문화욕구를 채워줄 문학잡지를 통해 저작권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히려 게재료를 받아 작품을 게재하고 문학단체를 만들어 유지하면서 거짓 시인 작가 행세를 하는 문인들을 대거 배출하여 문학의 질적인 품격까지 떨어뜨리고 있는 한국문학계의 현실은 속물적인 대중문화의 한 경향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치열한 작가의식이 전제되지 못한 취미활동의 문학은 소모적인 자기만족이나 과시형의 작품생산을 재생산하는 구조일뿐 진정한 한국적 문학이라고 볼 수 없는 일시적인 문화현상일 수 밖에 없다.
문학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 좋은 작품이 독자들이 구입함으로써 출판사와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나, 시장원리가 전혀 없어진 경쟁력없는 싸구려 문학작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읽어달라고 사정하는 강요된 문학작품은 문학작품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사유물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모두가 문학인이 되겠다는 의욕은 좋으나 좋은 작품을 써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을 남기겠다는 치열한 작가의식이나 문학단체가 바로 서지 못하고 이들과 야합하여 명리적 가치 실현이나 영리를 도모하겠다는 문학단체로의 전락은 문학외적인 소모적인 에너지를 낭비하는 결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적인 위대한 문학작품이 나오지 못할 문학적 배경의 재생산 구조을 청산하는 길만이 한국적인 특수성을 인류 보편적 정서로 승화시킬 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중가수들의 세계 진출 등 우리의 문화역량의 DNA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념적인 이분법적인 사고로 진정한 자기내면에 대한 성찰의식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세계적인 문학작품이 나오지 못한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의 표현의 다양성을 외국어로 적합하게 번역하지 못해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사회문화적인 환경적인 문화배경이 성숙되지 못했다는 점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으나 그 지적도 일리는 있지만, 그 보다 문학발달사적인 측면에서 전통의 현대화 작업에 부실함에 따라 문학작품이 세계인의 공통적인 감수성인 인간의 원초적인 신명을 자극할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창작되지 못했다는 점을 크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문학작품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에 입각한 작품들이다. 그러한 작품들은 인간의 꿈과 이상을 담은 신화적인 상상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휴머니즘적인 문학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시인들이 시적 상상력이 풍부한 인류 보편적인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신화를 바탕으로 한 고전에서 문학정신의 전통을 찾아 현대적인 창조적 상상력을 발현하는 문학창작 작업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세계적인 우수한 작품이 창작될 것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가루문화로 전락한 문학단체는 문학인들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여건을 제고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능력있는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인프라사업을 전개하여 우수 문예지 지원책과 우수작가 발굴 및 연수 활동에 대한 지원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 문화, 사회의 제도적인 민주화와 아울러 문예지원책의 장기적인 대책의 강구 및 합리적인 운영, 작가들의 부단한 우리 것에 대한 연수기회의 확대하는 문학단체의 문학본질적인 가치 지향과 민주적인 운영으로 회원들의 신뢰성을 구축하여야 하며, 개인의 명리적 가치 실현보다는 역량있는 작가들을 배출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모두가 합심하여야 한국적인 문학작품은 물론 세계적인 위대한 작가가 탄생하리라 확신한다.
5. 에필로그
오늘날은 기술이 진보하여 4차 산업의 시대다. 3차 산업이란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바이오산업, 물리학 등 3개 분야의 융합된 기술들이 경제체제와 사회구조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기술혁명'의 시대로 로봇이 일하는 시대이다. 인간은 더욱 로봇처럼 시키는 명령에 따라 정확하게 일을 해내는 분자의 기능으로 전락하게 되는 가루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이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는 일은 경제적인 풍요와 안락한 생활이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품위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정을 나누며 더불어서 서로 돕고 살아가는 떡을 나누어 먹는 공동체의 문화속의 삶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각각의 개인으로 철저히 분리되어 살아가는 가루문화의 사회로 전락했다. 따라서 모든 문화예술도 분화되어 전자매체로 결집되는 익명성에 의해 잠정적으로 결집되었다가 경제적 이익이나 명리적 가치가 하락하면 뿔뿔이 흩어지는 증권시장화가 되어가고 있다. 증권시장은 바로 가루문화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간만이 잘 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여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할 결과, 자연은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건 등의 대재앙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각종 기상이변, 플라스틱 쓰레기 뒤덮은 바다의 해양오염으로 인한 바다생명체의 죽음, 미세먼지, 소음공해, 각종 수질오염 등등 자연환경의 파괴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종교분쟁, 종족분쟁 등으로 인한 전쟁과 빈번한 테러 사건에서부터 물질적, 명리적인 부를 쟁취하기 위한 극도의 이기심에 의한 개인과 개인 간의 경쟁과 집단의 횡포로 인해 잡음이 끊일 날이 없다. 한국사회는 전통적인 떡문화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고 서구의 과학문명에 의한 편리한 가루문화를 무조건 쫓아가는 주체성 없는 문화사대주의는 결국 우리의 문화를 하위문화로 전락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심지어 거리의 간판까지도 외래어로 써야 직성이 풀리고 대중문화의 노랫말까지도 영어를 섞여 도대체 가사 내용이 무슨 의미를 지닌 지도 모르고 리듬에 따라 춤을 추는 문화는 바람에 가루가 흩어져 날아가는 모습을 방불케 한다.
떡문화와 가루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잘 구별하여 동질성을 찾아가는 길만이 현대에 맞는 문화예술을 발전하는 길일 것이다. 현대는 융합의 시대이다. 떡문화의 장점과 가루문화 장점을 융합하여 심혈을 기울인 문학작품이 독자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될 것이다. 이제 시인과 작가도 통찰력과 예지력이 있는 전문가에 맡겨져야 할 것이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아무리 그 시대에 인기를 누린 문학작품도 완벽할 수는 없다. 세상을 보는 안목은 물론 예술작품 그리고 문학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기지 않고 좋은 예술작품 문학작품이 나올 수 없다. 최근 서발턴들의 글쓰기가 성행하는데, 이들의 소수 작품들이 문학성을 인정받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제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할 때이다. 단체의 감투자리에 연연하는 행위는 단체의 기득권을 행사하여 명리적 가치 실현이나 회비를 제 마음대로 운용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거나 가진 자의 우월감을 누리고자 할 회원들의 실익보다는 자기만의 기회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남기려는 치열한 작가의식은 모든 이들에게 맛있는 떡을 나누어주겠다는 휴머니즘적인 인간미의 실현이며, 우리 조상들이 나라를 지켜온 선비정신인 것이다. 가루문화의 독특한 개성과 다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문화인 떡문화가 융합한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정신자세가 선행되어야 문화예술은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문학은 우리의 한글이 갖는 표현미학의 우수성을 살리고 고전의 문학전통을 되살려 떡문화의 공동체적인 문화를 바탕 한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우리 선인들의 DNA가 잘 반영된 한국적인 특수문학으로써의 보편적인 문학으로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낼 수 있는 것이다. 편협된 이념의 도그마에서 탈피하고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당당하게 그려냈을 때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시학 2018년 가을호 발표)
이 원고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2018 추계 예술평론심포지엄 “문화예술계의 현황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10월 20일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에서 문학부분의 발표원고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임홍순(서경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주제발표가 진행되었는데 장석용 회장(문화평론가, 무용평론가)의 인사말과 기조발제 “문학예술계의 현황과 대안”, 문학부문은 김관식(문학평론가)의 “한국문학의 현안과 대안-근본원인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미술부문에는 박화선(미술평론가)의 “조영남 대작 사건과 미술에 대한 소고”, 연극부문에는 정중헌(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의 “연극예술진흥원 설립으로 한국연극을 살리자”, 영화부문에는 육정학(영화평론가)의 “한국연화계의 현안과 과제”, 음악부문에는 김진묵(음악평론가)의 “노래를 통한 동질성 회복과 신뢰 구축” 등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