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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작성자어진뿌리|작성시간10.11.11|조회수86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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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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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사마리아 (영화)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사마리아, 또는 소므론 (히브리어:שֹׁמְרוֹן, 아랍어: سامريّون, 또는 ألسامرة, 그리스어: Σαμάρεια)는 전통적으로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북쪽으로는 갈릴리와 남쪽으로는 유대와 경계를 나누는, 산지가 많은 지방을 일컫는 지리적 용어이다. 역사적, 정치적, 자연적으로 다른 지방과 구분되는 지역이며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땅의 중앙부분이다.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열왕기상 16:24 에서 유래한다. 구약성경의 그 기록에 따르면, 북이스라엘 왕국의 여섯 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그 땅의 주인인 "세멜"로부터 사마리아의 산지를 샀는데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그"세멜"에서 따왔다고 한다.

지리적 위치

북쪽은 갈릴리, 서쪽은 지중해, 동쪽은 요단강, 남쪽은 유대와 경계를 이룬다. 사마리아는 대부분이 그렇게 높지 않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간히 해발 800m를 넘는 부분도 있다. 산지는 남쪽 유대까지 특별한 경계를 이루지 않고 이어져 있다.

 

신약시대의 유대지방

역사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왕국은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의 여섯 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세멜"(세멜이 개인인지 어떤 부족인지는 확실치 않다)로부터 이 지역을 은화 두달란트에 사들여 사마리아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기원전 884년경) 이 도시는 바위산의 정상에 세워졌는데 고대의 포도주와 기름의 생산지로 현대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실체가 밝혀졌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왕인 호세아왕 때 앗시리아가 사마리아를 침공해 도시를 점령하고 모든 사마리아 지역의 거주민을 앗시리아로 포로로 강제이주시켰고 바빌론과 쿠다(Cuthah)등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거주시켰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자신들과 구별해 쿠다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쿳팀" 이라고 부르며 이는 경멸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이다.)

이후 바빌론시대와 페르시아 시대를 거치면서 사마리아는 도시로 존재했고 기원전 332년경 수천명의 마케도니아병사들이 반란을 진압하러 와서는 그곳에 정착해 헬레니즘의 도시가 되었다. 그 시대에 성전과 거대한 도시성벽이 보강되었는데 기원전 108년 유대의 왕인 요한 히르카누스가 침공하여 성벽을 깨뜨리고 파괴하였다. 기원전 63년 사마리아는 로마에 의해 시리아 속주로 병합되었다.

기원전 30년 헤로데 대왕은 사마리아를 새로이 재건하여 크게 확장하고 도시 이름을 세바스테로 개명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했다. (세바스테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로 아우구스투스를 뜻한다) 헤로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한 웅장한 사원을 비롯해 약 4km 길이의 성벽과 요새를 새로 세웠으며 헬레니즘 도시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 사업이었다.

사마리아에는 세례자 요한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믿어져 왔고 나중에 세례자 요한을 위한 교회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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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Shomron.
고대 팔레스타인의 중부지역.
북쪽으로는 갈릴리, 남쪽으로는 유대아와 경계를 이룬다. 서쪽에 지중해가 있고 동쪽으로 요르단 강이 흐른다. 남부에 있는 산맥은 분명한 경계구분 없이 유대아까지 이어진다. 지금의 나불루스 근처에 있던 고대 셰켐(세겜) 지방이 중심지였다. 고대 셰켐은 도로들의 교차점이자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했을 당시 사마리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은 가나안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지에 발판을 마련했으나 이웃 평원이나 골짜기에 있던 가나안의 핵심적 거점들은 다윗 왕 시대에 와서야 차지할 수 있었다. 사마리아 지역은 요셉의 가문, 곧 에브라임 지파와 므나쎄 분파에게 할당된 곳이었다.
BC 10세기에 솔로몬 왕이 죽은 뒤 사마리아의 지파를 포함하는 북쪽 분파들은 남쪽 분파들과 갈라져서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이스라엘 왕국의 첫 수도는 티르자(디르사:오늘날의 알파리아 유적으로 짐작됨)에 있었고 이어 오므리 시대(BC 876~869 또는 BC 884경~872경)에는 당시 셰켐에서 북서쪽으로 11.2㎞ 정도 떨어진 구릉 꼭대기에 세운 새 도시 사마리아 시로 옮겨졌다. 북왕국은 대체로 남쪽의 유다 왕국보다 세력이 더 강했으며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렸지만 BC 722년 아시리아에게 망했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신약시대에 사마리아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며 어느 정도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였다. 예수는 사마리아 사람과 별로 접촉이 없었으나 사도시대에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그리스도교도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이 복음전파는 교회가 이방세계로 확장되는 전환기가 되었다. 모세 종교는 이스라엘 북부 형태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모세5경을 성서로 받아들이는 사마리아 종파의 신도가 셰켐이 있던 곳에서 가까운 나불루스에 오늘날까지 일부 남아 있다. → 사마리아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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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baste라고도 함.
오늘날의 Sabasṭiyah. 팔레스타인 중부에 있는 고대 도시.
현대 이스라엘 그리짐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있는 고개의 북서쪽에 자리한 구릉 위에 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작업(1908~10, 1931~33, 1935)으로 BC 4000년대말에도 사람이 살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므리 왕이 이곳을 히브리인이 세운 북왕국 이스라엘의 새 수도로 정하고 사마리아라고 이름붙였던 BC 880(또는 879)년경에 이르러 도시가 건설되었다. 722년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인에게 파괴당할 때까지 수도로 남아 있었다.
신약시대에 헤로데 대왕(BC 37~4)에 의해 재건되고 크게 확장되었으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그리스어로는 세바스토스)를 기념해서 이름도 세바스테로 고쳤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한 웅장한 사원과 굳건한 요새들이 세워져 있으며 그리스 도시의 여러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 왕국시대의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는 아합 왕(BC 874경~853경)의 궁전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상아조각품들과 여로보암 2세(BC 8세기) 시대의 오스트라카(글자가 새겨진 사금파리나 석회석 조각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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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 [Samarit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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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d  e  h사마리아인의 거주지 관련 위치지도

사마리아인이란 고대 이스라엘 남북왕조시대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한 북왕국 이스라엘에 이주한 아시리아인등 이민족과 이스라엘인(유대민족)의 혼혈로 나타난 종족으로, 남쪽 유대인이 배타·이민족시했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사마리아는 당시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으나, 아시리아 침략으로 멸망한 뒤에 사회지도층은 아시리아에 포로로 끌려가고 아시리아에서는 많은 이주민이 밀려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과의 통혼 및 종교 융합에 따라 유대인에 의해 이단자 또는 민족의 순수성을 더럽힌 집단이라는 배타적 대우를 받았다.

성경에도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한복음에는 물을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가 대화를 나누고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내용이 나오며, 누가복음에는 강도피해를 입고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유대교의 제사장과 레위인은 지나쳤으나 사마리아인이 구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반인의 적극적 구호행위를 장려하기 위해 자신에게 피해가 없음을 인식하고도 구호행위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고 하는데, 이 성경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사마리아인은 현재에도 종족 정체성을 지켜 오고 있으나, 그 수는 700명 남짓뿐이며, 대부분이 서안지구(West Bank)의 나불루스 시(Nablus) 근처에 있는 게리짐 산(Mount Gerizim)의 키럇 루자(Kiryat Luza)와 이스라엘홀론 시(Holon)에 살고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현대 히브리어아랍어의 팔레스타인 방언을 일상어로 쓰지만, 종교 언어로는 고대 사마리아 히브리어사마리아 아람어를 보존하고 있다. 이들 사마리아 히브리어아람어사마리아 문자를 사용하는데, 이는 초기 히브리 문자에서 갈라져 나온 독자적 문자이다.

 

 

요약
팔레스타인의 사마리아 지방에서 살던 종족, 혹은 그들이 구성한 종교공동체(宗敎共同體).
 
본문
사마리아 유월절 / 멀리서 유월절을 보내러 온 사마리아인 가족.

 

현재 요르단의 나불루스와 텔아비브야파에 소수의 가족 약 300명이 있을 뿐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10지족()이 사르곤 2세에게 정복되어 아시리아로 쫓겨났다는 《열왕기()》의 기사(열왕기하 17:23)를 부정하고 스스로 이스라엘의 자손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들만이 완전히 성서() 토라(Torah:모세의 5)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종교는 모세의 참된 가르침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스스로를 쇼메로님(Shomeronim:사마리아의 백성)이라 하지 않고 샤메림(Shamerim:참된 율법의 수호자)이라고 하였다.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은 서로 비슷한 역사적 운명을 지니면서도 아시리아의 사마리아 함락(BC 721) 이전부터 항상 적대관계에 있었고, 히르카누스가 BC 129년에 게리짐산에 있는 사마리아인의 신전을 파괴하자 대립은 절정에 달하였다.

사마리아인의 신앙을 요약하면, ① 그들의 신은 유일신이라는 것, ② 모세가 유일한 예언자라는 것, ③ 모세의 5서만이 유일불변의 계시라는 것, ④ 게리짐산이 유일한 성소()라는 것, ⑤ 천지창조에서 6,000년 후 게리짐산의 신전과 사마리아인의 번영을 회복하는 타헤브(회복자)가 나타나 새로운 통치를 시작한다는 내용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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