擊蒙要訣
1. 서문(序文) - 始.
擊蒙要訣 序
人生斯世에 非學問이면 無以爲人이니 所謂學問者는 亦非異常別件物事也라 只是爲父當慈, 爲子當孝, 爲臣當忠, 爲夫婦當別, 爲兄弟當友, 爲少者當敬長, 爲朋友當有信이니 皆於日用動靜之間에 隨事各得其當而已요 非馳心玄妙하여 希 奇效者也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이 아니면 사람 구실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에서 벗어나거나 <일상 생활과 벗어나> 별도로 존재하는 일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부모를 사랑하며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임금에게 충성하며 부부 사이에서는 마땅히 내외를 구별하고 형제간에는 마땅히 서로 우애하고 어린 사람이 되어서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사이에는 마땅히 신의를 지키는 것이므로 모두 일상 생활 속에서 일에 따라 각각 그 마땅함을 얻는 것일 뿐이요 현묘(玄妙)한 곳에 관심을 집중시켜서 기이한 효력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但不學之人은 心地茅塞하고 識見茫昧라 故로 必須讀書窮理하여 以明當行之路然後에 造詣得正而踐履得中矣리라 今人은 不知學問이 在於日用하고 而妄意高遠難行이라 故로 推與別人하고 自安暴棄하니 豈不可哀也哉아
다만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식견이 어둡게 된다. 그 때문에 반드시 독서를 통해 이치를 궁구함으로써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밝힌 뒤에 조예가 올바름을 얻어서 실천함이 중도에 부합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 생활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고원(高遠)해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학문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버리고 스스로 포기함을 편안히 여기니 어찌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余定居海山之陽할새 有一二學徒 相從問學하니 余慙無以爲師요 而且恐初學이 不知向方하고 且無堅固之志而泛泛請益이면 則彼此無補하고 反貽人譏라 故로 略書一冊子하여 粗敍立心飭躬奉親接物之方하고 名曰擊蒙要訣이라하여 欲使學徒觀此하고 洗心立脚하여 當日下功하고 而余亦久患因循하여 欲以自警省焉하노라
丁丑季冬에 德水李珥는 書하노라
내가 해산(海山 : 海州)의 남쪽에 거처를 정하자, 한 두 명의 학도(學徒)들이 서로 따라와 배우기를 요청하니, 내가 스승이 될 만한 자질이 없는 것이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초학자(初學者)들이 학문의 올바른 방향을 알지 못하고 또 견고한 뜻없이 대충대충 배우고서 더 가르쳐주기를 요구하면 피차간에 도움됨이 없고 도리어 남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웠다. 그 때문에 간략하게 책 한 권을 써서 뜻을 세우고, 몸을 가다듬고, 어버이를 봉양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거칠게나마 서술하여 이름을 《격몽요결(擊蒙要訣)》이라고 하여 학도들이 이를 보고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새롭게 출발하여 그 날로 공부에 착수하게 하고 나 또한 오랫동안 그럭저럭 옛 것을 답습하는 태도를 근심했는데 이로써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정축년(1577) 계동(季冬 : 섣달)에 덕수(德水) 이이(李珥)는 쓰노라
2. 입지(立志).
立志章 第一
初學이 先須立志하되 必以聖人自期하여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이니라 蓋衆人與聖人이 其本性則一也라 雖氣質은 不能無淸濁粹駁之異나 而苟能眞知實踐하여 去其舊染而復其性初면 則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리니 衆人이 豈可不以聖人自期乎아 故로 孟子道性善하시되 而必稱堯舜以實之曰 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시니 豈欺我哉시리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하여,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겨서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보통사람이나 성인이나 그 본성은 마찬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림과 순수하고 잡됨의 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하여 옛날에 물든 나쁜 습관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도 보태지 않고서 온갖 선이 넉넉히 갖추어질 것이니, 보통사람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맹자께서는 모든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주장하시되 반드시 요 임금과 순 임금을 일컬어 실증하시며 "사람은 모두 요 임금이나 순 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이시겠는가?
當常自奮發曰 人性本善하여 無古今智愚之殊어늘 聖人은 何故獨爲聖人이며 我則何故獨爲衆人耶아 良由志不立, 知不明, 行不篤耳라 志之立, 知之明, 行之篤이 皆在我耳니 豈可他求哉리오 顔淵曰 舜何人也며 予何人也오 有爲者 亦若是라하시니 我亦當以顔之希舜爲法이니라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善)하여 고금(古今)과 지우(智愚)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시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이는 진실로 뜻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을 도타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미암은 것일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도타이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안연(顔淵)은 '순(舜)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행동을 하는 자는 또한 순임금과 같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이 순임금이 되기를 바란 마음가짐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人之容貌는 不可變醜爲姸이며 力은 不可變弱爲强이며 身體는 不可變短爲長이니 此則已定之分이라 不可改也어니와 惟有心志는 則可以變愚爲智하며 變不肖爲賢이니 此則心之虛靈이 不拘於稟受故也라 莫美於智하며 莫貴於賢이어늘 何苦而不爲賢智하여 以虧損天所賦之本性乎아 人存此志하여 堅固不退면 則庶幾乎道矣리라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만들 수 없으며, 체력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것들은 <타고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심지(心志)만은 어리석은 것을 바꾸어 슬기롭게 할 수 있으며,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허령(虛靈)한 지각능력은 태어날 때 부여받은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아니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뜻을 마음속에 보존하여 굳게 지켜 물러서지 않는다면 거의 도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凡人이 自謂立志하되 而不卽用功하고 遲回等待者는 名爲立志나 而實無向學之誠故也라 苟使吾志로 誠在於學이면 則爲仁由己라 欲之則至니 何求於人이며 何待於後哉리오 所貴乎立志者는 卽下工夫하여 猶恐不及하여 念念不退故也라 如或志不誠篤하여 因循度日이면 則窮年沒世인들 豈有所成就哉리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말하되, 곧바로 공부하지 않고 미적거리면서 뒷날을 기다리는 까닭은 말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나 실제로는 배움을 향한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뜻으로 하여금 진실로 배움에 있게 한다면 인(仁)을 실천하는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는 것이어서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인이 곧바로>이르게 되니, 어찌 남에게서 구하며 어찌 후일을 기다리겠는가. 입지를 중시하는 까닭은 <입지를 확고히 하면> 곧바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염려해서 항상 공부할 것을 생각하여 물러서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고 독실하지 못하여 그럭저럭 옛습관을 답습하면서 세월만 보낸다면 수명을 다하여 세상을 마친들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는가.
3. 혁구습(革舊習).
人雖有志於學이나 而不能勇往直前하여 以有所成就者는 舊習이 有以沮敗之也라 舊習之目을 條列如左하노니 若非勵志痛絶이면 則終無爲學之地矣리라
사람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었다 하더라도 용감하게 곧바로 전진하여 <학문을> 성취하지 못하는 까닭은 구습이 <학문하겠다는 결심을> 가로막고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구습에 해당하는 항목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으니, 만약 뜻을 더욱 굳게 세워 뼈아프게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을 할 터전이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其一은 惰其心志하고 放其儀形하여 只思暇逸하여 深厭拘束이요
其二는 常思動作하여 不能守靜하고 紛 出入하여 打話度日이요
其三은 喜同惡(오)異하여 汨於流俗하여 稍欲修飭이나 恐乖於衆이요
其四는 好以文辭로 取譽於時하여 剽竊經傳하여 以飾浮藻요
其五는 工於筆札하고 業於琴酒하여 優游卒歲하여 自謂淸致요
其六은 好聚閒人하여 圍棋局 하여 飽食終日하여 只資爭競이요
其七은 歆羨富貴하고 厭薄貧賤하여 惡衣惡食을 深以爲恥요
其八은 嗜慾無節하여 不能斷制하여 貨利聲色을 其味如蔗니라
첫째는, 자신의 심지(心志)를 게을리 하고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 단지 한가하고 편안하기만을 생각하여 구속당하기를 매우 싫어하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동작할 것을 생각하여 고용함을 지키지 못하고, 어지럽게 드나들면서 말만 하면서 세월만 보내는 것이요.
셋째는, <여러 사람들과 의견이> 같은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싫어하여 세속에 빠져 조금 행실을 닦고 삼가려 하나 남들과 괴리될까 두려워하는 것이요.
넷째는, 문장으로 당시 세상에서 이름나기를 좋아하여, 경전의 내용을 표절해서 부조(浮藻 : 쓸데없이 화려하기만한 문장)를 꾸미는 것이요.
다섯째는, 글짓는 일에만 힘을 기울이고, 거문고 타기와 술 마시는 것을 업으로 삼아 한가히 놀면서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는 깨끗한 운치(韻致)라고 여기는 것이요.
여섯째는, 한가한 사람을 모아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서 배불리 먹고 하루를 마쳐 다만 남과 다투는 데만 힘을 보태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귀를 부러워하고,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여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 먹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요.
여덟째는, 즐겨하고 좋아하는 욕심을 절제함이 없어 끊어 억제하지 못해서 재리와 음악과 여색에 빠져 그 맛을 사탕처럼 달게 여기는 것이다.
習之害心者 大槪如斯하니 其餘는 難以悉擧라 此習이 使人志不堅固하고 行不篤實하여 今日所爲를 明日難改하고 朝悔其行이라가 暮已復然하나니 必須大奮勇猛之志하여 如將一刀하여 快斷根株하고 淨洗心地하여 無毫髮餘脈하며 而時時每加猛省之功하여 使此心無一點舊染之汚然後에 可以論進學之工夫矣리라
습관 중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방해되는 것이 대개 이와 같으니, 그 나머지는 이루 다 들기 어렵다. 이러한 습관이 사람으로 하여금 뜻을 견고하지 지키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독실하지 실천하지 못하게 하여, 오늘 저지른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쳤다가 저녁에는 이미 다시 그렇게 하나니,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분발해서 마치 칼을 가지고 단칼에 뿌리를 깨끗이 끊어버리듯이 하고,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어 털끝만치라도 남은 맥이 없게 하며, 때때로 매양 크게 반성하는 공부를 더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한 점이라도 옛날에 물든 더러움이 없게 한 뒤에야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4. 지신(持身).
持身章 第三
學者必誠心向道하여 不以世俗雜事로 亂其志然後에 爲學有基址라 故로 夫子曰 主忠信이라하시니 朱子釋之曰 人不忠信이면 事皆無實하여 爲惡則易하고 爲善則難이라 故로 必以是爲主焉이라하시니 必以忠信爲主而勇下工夫然後에 能有所成就니 黃勉齋所謂眞實心地, 刻苦工夫兩言이 盡之矣로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진실한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 자신의 뜻을 어지럽히지 않은 뒤에야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충(忠)과 신(信)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으니, 주자께서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충과 신이 없으면 하는 일이 모두 진실함이 없어서 악(惡)을 저지르기는 쉽고 선(善)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를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고 하셨으니, 반드시 충과 신을 중심으로 삼고 용감하게 공부에 착수한 뒤에야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면재(勉齋) 황간(黃 )이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라."는 두 마디 말씀이 그 뜻을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
常須夙興夜寐하여 衣冠必正하고 容色必肅하여 拱手危坐하고 行步安詳하며 言語愼重하여 一動一靜을 不可輕忽苟且放過니라
모름지기 항상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의관을 반드시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반드시 엄숙하게 하여 두 손을 모으고 무릎꿇고 앉으며, 걸음걸이를 편안하고 조심스럽게 하며, 언어를 신중히 하여 일동일정을 가볍고 소홀히 하여 구차스럽게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收斂身心은 莫切於九容이요 進學益智는 莫切於九思하니 所謂九容者는 足容重,[不輕擧也 若趨于尊長之前 則不可拘此] 手容恭,[手無慢弛 無事則當端拱 不妄動] 目容端,[定其眼睫 視瞻當正 不可流眄邪 ] 口容止,[非言語飮食之時 則口常不動] 聲容靜,[當整攝形氣 不可出 咳等雜聲] 頭容直,[當正頭直身 不可傾回偏倚] 氣容肅,[當調和鼻息 不可使有聲氣] 立容德,[中立不倚 儼然有德之氣像] 色容莊이요[顔色整齊 無怠慢之氣]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방법은 구용보다 더 친절한 것이 없고, 배움을 진보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방법은 구사보다 더 친절한 것이 없다. 이른바 구용이라는 것은, 발의 움직임을 무겁게 하고,(가볍게 거동하지 않음이다. 어른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걸을 적에는 이 조목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손 모양을 공손히 하고,(손을 함부로 늘어뜨리지 않음이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단정히 손을 모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눈 모양을 단정히 하고,(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시선을 바르게 할 것이요, 흘려보거나 훔쳐보아서는 안 된다.) 입은 꼭 다물고,(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은 항상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조용히 하고,(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머리는 곧게 세우고,(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서는 안 된다.) 숨쉬기는 조용하게 하고,(호흡을 고르게 하여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럽게 하고,(똑바로 서고 치우치지 않아서 엄숙하게 덕스러운 기상을 지녀야 한다.) 얼굴 모양을 장엄하게 하는 것이요.(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所謂九思者는 視思明,[視無所蔽則明無不見] 聽思聰,[聽無所壅則聰無不聞] 色思溫,[容色和舒 無忿 之氣] 貌思恭,[一身儀形 無不端莊] 言思忠,[一言之發 無不忠信] 事思敬,[一事之作 無不敬愼] 疑思問,[有疑于心 必就先覺審問 不知不措] 忿思難,[有忿必懲 以理自勝] 見得思義니라[臨財必明義利之辨 合義然後取之]
이른바 구사라는 것은, 볼 때는 분명하게 볼 것을 생각하고,(사물을 볼 때 시선에 가리는 바가 없으면 분명하여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들을 때는 분명히 들을 것을 생각하고,(들을 때 막히는 바가 없으면 분명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얼굴빛을 온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화를 내거나 사나운 기색이 없어야 한다.)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일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한 마디 말이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일은 신중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한 가지 일이라도 신중하고 조심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의심이 나면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마음속에 의심이 있으면 반드시 선각자에게 나아가 자세히 물어서 모르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분할 때는 환난을 생각하고,(분이 나면 반드시 징계하여 이치로써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이다.(재물을 마주했을 때는 반드시 의와 리를 분명히 구분하여, 의에 부합된 뒤에야 취한다.)
常以九容九思로 存於心而檢其身하여 不可頃刻放捨요 且書諸座隅하여 時時寓目이니라
항상 구용과 구사를 마음속에 붙잡아 두어 자기 몸을 단속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놓아버리지 말 것이요, 또 이것을 앉는 자리의 귀퉁이에 써 붙여놓고 때때로 눈을 붙여 보아야 할 것이다.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는 修身之要也라 禮與非禮를 初學이 難辨이니 必須窮理而明之하여 但於已知處에 力行之면 則思過半矣리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네 가지 조목은 몸을 수양하는 요점이다. 예와 예가 아닌 것을 처음 배우는 이가 분별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밝혀서 다만 이미 아는 부분을 힘써 실천한다면 생각함이 반을 넘을 것이다.(깨달은 바가 이미 많을 것이다.)
爲學이 在於日用行事之間하니 若於平居에 居處恭하며 執事敬하며 與人忠이면 則是名爲學이니 讀書者는 欲明此理而已니라
학문을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 속에 있으니, 만약 평소 생활할 때에 거처함을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하기를 공경히 하고, 남과 함께 할 때 진실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학문이라 하는 것이니,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衣服은 不可華侈라 禦寒而已요 飮食은 不可甘美라 救飢而已요 居處는 不可安泰라 不病而已니 惟是學問之功, 心術之正, 威儀之則은 則日勉勉而不可自足也니라
의복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움을 추구해서는 아니 되고 추위를 막을 정도면 그만이요, 음식은 달고 맛있기를 추구해서는 아니 되고 굶주림을 면할 정도면 그만이요, 거처는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아니 되고 병들지 않을 정도면 그만이다. 오직 학문하는 힘과 마음을 수양하는 올바른 방법과 몸가짐을 단속하는 법칙은 날마다 부지런히 힘써,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克己工夫 最切於日用하니 所謂己者는 吾心所好 不合天理之謂也라 必須檢察吾心이 好色乎아 好利乎아 好名譽乎아 好仕宦乎아 好安逸乎아 好宴樂乎아 好珍玩乎아하여 凡百所好 若不合理어든 則一切痛斷하여 不留苗脈然後에야 吾心所好 始在於義理하여 而無己可克矣리라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극기 공부가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다. 이른바 己라는 것은 내 마음이 좋아하는 바가 천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드시 내 마음이 여색을 좋아하는가, 이익을 좋아하는가, 명예를 좋아하는가, 벼슬하기를 좋아하는가, 편안하게 지내기를 좋아하는가, 잔치하고 즐기기를 좋아하는가, 진귀한 보배를 좋아하는가를 검찰하여, 여러 가지 좋아하는 바가 만일 이치에 부합하지 않거든, 일절 통렬히 끊어서 싹이나 맥을 남겨두지 않은 뒤에야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비로소 의리에 부합되어서 이길 만한 사욕이 없게 될 것이다.
多言多慮 最害心術하니 無事則當靜坐存心하고 接人則當擇言簡重하여 時然後言이면 則言不得不簡이니 言簡者近道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은 마음을 수양하는 데 가장 해롭다. 일이 없으면 마땅히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보존하고, 사람을 만날 때는 마땅히 말을 가려서 간략히 하고 신중히 하여, 때에 맞은 뒤에 말하면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 간략한 자가 도에 가깝다.
非先王之法服이어든 不敢服하며 非先王之法言이어든 不敢道하여 非先王之德行이어든 不敢行이니 此當終身服膺者也니라
선왕의 법도에 맞는 옷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아니하며, 선왕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아니하며,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마땅히 몸을 마칠 때까지 가슴속에 넣어두어야 할 것이다.
爲學者一味向道하여 不可爲外物所勝이니 外物之不正者를 當一切不留於心하여 鄕人會處에 若設博奕樗蒲等戱어든 則當不寓目하여 逡巡引退하고 若遇倡妓作歌舞어든 則必須避去요 如値鄕中大會하여 或尊長强留하여 不能避退어든 則雖在座나 而整容淸心하여 不可使奸聲亂色으로 有干於我며 當宴飮酒에 不可沈醉요 浹洽而止 可也니라 凡飮食은 當適中이니 不可快意有傷乎氣며 言笑는 當簡重이니 不可喧譁以過其節이며 動止는 當安詳이니 不可粗率以失其儀니라
배움을 추구하는 이는 한결같이 도를 향하여 외물이 이기는 바를 당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외물 중에서 바르지 못한 것은 마땅히 일절 마음에 두지 않아야 한다. 고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만일 장기나 바둑, 저포 같은 놀이를 벌려 놓았거든 마땅히 눈을 붙여 보지 말고 뒷걸음질쳐 물러나고, 만일 기생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피해 가야 할 것이요, 만일 고을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상황을 만나 혹 존장이 억지로 만류하여 피해 물러갈 수 없으면, 비록 그 자리에 있을지라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색으로 하여금 나를 침범함이 있지 않게 할 것이며, 잔치를 만나 술을 마실 때에는 빠지도록 취해서는 안 되고, 술기운이 무젖으면 그만 마시는 것이 옳다. 모든 음식은 마땅히 알맞게 먹어야 할 것이니, 뜻대로 실컷 먹어서 기를 손상시키지 말 것이며, 말과 웃음은 마땅히 간략하고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니, 시끄럽게 떠들면서 절도를 넘어서지 말 것이며, 행동거지는 마땅히 편안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이니, 거칠고 경솔하게 하여 몸가짐을 잃어서는 안 된다.
有事則以理應事하고 讀書則以誠窮理하여 除二者外엔 靜坐收斂此心하여 使寂寂無紛起之念하고 惺惺無昏昧之失이 可也니 所謂敬以直內者如此니라
일이 있으면 사리대로 일을 처리하고, 책을 읽을 때는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조용히 앉아 이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하고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잡념이 없게 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서 어두워지는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이 옳으니, 이른바 경으로써 마음속을 곧게 한다는 것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當正身心하여 表裏如一이니 處幽如顯하며 處獨如衆하여 使此心如靑天白日을 人得而見之니라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겉과 속이 한결같게 하여야 할 것이니, 깊숙한 곳에 있더라도 드러난 곳에 있는 것처럼 하고, 혼자 있더라도 여럿이 있는 것처럼 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푸른 하늘의 밝은 해를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것처럼 하여야 한다.
常以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라도 不爲底意思로 存諸胸中이니라
항상 한 가지라도 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가슴속에 두고 있어야 한다.
居敬以立其本하며 窮理以明乎善하며 力行以踐其實이니 三者는 終身事業也니라
경을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하고, 이치를 궁구함으로써 선을 밝히고, 힘써 행함으로써 그 진실을 실천하여야 하니, 이 세 가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사업이다.
思無邪, 毋不敬只此二句는 一生受用이라도 不盡이니 當揭諸壁上하여 須臾不可忘也니라
"생각에 부정함이 없다."는 것과 "공경하지 아니치 말라."는 오직 이 두 구절만은 일생토록 받아쓰더라도 다하지 않을 일이니, 마땅히 이것을 벽 위에 써 붙여서 잠깐 동안이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每日에 頻自點檢하여 心不存乎아 學不進乎아 行不力乎아하여 有則改之하고 無則加勉하여 孜孜毋怠하여 斃而後已니라
매일 자주 스스로 점검하되 마음을 보존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학문이 진전되지 않음이 있었던가, 행실을 힘쓰지 않음이 있었던가 반성하여,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없으면 더 힘써서, 부지런히 힘써서 게을리 하지 말아서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다.
5. 독서(讀書).
讀書章 第四
學者常存此心하여 不被事物所勝이요 而必須窮理明善然後에 當行之道 曉然在前하여 可以進步라 故로 入道莫先於窮理하고 窮理莫先乎讀書하니 以聖賢用心之迹과 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니라
배우는 자는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사물에게 이김을 당하지 않게 하고,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여 선을 밝힌 뒤에야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가 분명하게 앞에 나타나게 되어서 진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감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함은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성현들께서 마음을 쓴 자취와 선과 악 중에서 본받고 경계해야 할 것이 모두 책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凡讀書者 必端拱危坐하여 敬對方冊하여 專心致志하고 精思涵泳하여[涵泳者 熟讀深思之謂] 深解義趣하고 而每句에 必求踐履之方이니 若口讀而心不體, 身不行이면 則書自書, 我自我니 何益之有리오
무릇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마주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극진히 하며 자세히 생각하고 함영하여,(함영이라는 것은 익숙히 읽고 깊이 생각함을 이른다.)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구해야 하니, 만일 입으로만 읽고 마음에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이고 나는 나대로 일 것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先讀小學하여 於事親, 敬兄, 忠君, 弟長, 隆師, 親友之道에 一一詳玩而力行之니라
次讀大學及或問하여 於窮理, 正心, 修己, 治人之道에 一一眞知而實踐之니라
次讀論語하여 於求仁爲己, 涵養本原之功에 一一精思而深體之니라
次讀孟子하여 於明辨義利, 人慾, 存天理之說에 一一明察而擴充之니라
次讀中庸하여 於性情之德, 推致之功, 位育之妙에 一一玩索而有得焉이니라
먼저 ≪소학≫을 읽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사귀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익혀서 힘써 실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과 ≪대학혹문≫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자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참되게 알아서 진실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논어≫를 읽어 인을 구하고, 참된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고,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생각하고 깊이 체득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맹자≫를 읽어, 의리와 이익을 분명하게 분별하는 일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내용에 대해 일일이 밝게 살펴서 확충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용≫을 읽어, 성정의 올바른 뜻과 미루어 지극히 하는 공부와 천지가 제 자리를 얻고 만물이 생육되는 미묘한 이치에 대해 일일이 깊이 음미하고 탐색하여 터득함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次讀詩經하여 於性情之邪正, 善惡之褒戒에 一一潛繹하여 感發而懲創之니라
次讀禮經하여 於天理之節文, 儀則之度數에 一一講究而有立焉이니라
次讀書經하여 於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에 一一領要而遡本焉이니라
次讀易經하여 於吉凶存亡進退消長之幾에 一一觀玩而窮硏焉이니라
次讀春秋하여 於聖人賞善罰惡, 抑揚操縱之微辭奧義에 一一精硏而契悟焉이니라
다음으로 ≪시경≫을 읽어, 성정의 간사하고 바름과 선악을 칭찬하고 징계함에 대해 일일이 깊이 생각하여 선한 마음을 감발하고 악한 마음을 징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예경≫을 읽어, 천리의 절문과 의칙의 도수에 대해 일일이 강구해서 확립함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서경≫을 읽어, 이제와 삼왕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에 대해 일일이 요령을 터득하여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다음에 ≪역경≫을 읽어, 길흉과 존망, 진퇴와 소장의 기미에 대해 일일이 관찰하여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춘추≫를 읽어, 성인이 선을 기리고 악을 벌하며, 억양하고 조종하는 은미한 말씀과 오묘한 뜻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연구하여 정확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五書五經을 循環熟讀하여 理會不已하여 使義理日明하고 而宋之先正所著之書에 如近思錄, 家禮, 心經, 二程全書, 朱子大全, 語類와 及他性理之說을 宜間間精讀하여 使義理常常浸灌吾心하여 無時間斷하고 而餘力에 亦讀史書하여 通古今, 達事變하여 以長識見이니 若異端雜類不正之書는 則不可頃刻披閱也니라
이상의 오서와 오경을 돌려가며 익숙히 읽어 이회(理會)하기를 그만두지 않아서 의리로 이치로 하여금 날로 밝아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송나라의 선현들이 지은 책으로서 이를테면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류≫ 및 기타 성리설 같은 책을 마땅히 틈틈이 정독해서 의리로 하여금 항상 내 마음속에 젖어들어 어느 때고 끊어짐이 없도록 하고,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책을 읽어 고금의 사변을 통달하여 식견을 신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단이나 잡류로 바르지 못한 책 같은 경우는 잠깐 동안이라도 펼쳐 보아서는 안 된다.
凡讀書에 必熟讀一冊하여 盡曉義趣하여 貫通無疑然後에 乃改讀他書요 不可貪多務得하여 忙迫涉獵也니라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한 책을 익숙히 읽어서 의미를 다 깨달아 꿰뚫어 통달하고 의심스러운 것이 없어진 뒤에야 비로소 다시 다른 책을 읽을 것이요, 많이 읽기를 탐내고 얻기를 힘써서 바삐 섭렵해서는 안 된다
6. 사친(事親).
事親章 第五
凡人이 莫不知親之當孝로되 而孝者甚鮮하니 由不深知父母之恩故也라 詩不云乎아 父兮生我하시고 母兮鞠我하시니 欲報之德인댄 昊天罔極이라하니 人子之受生에 性命血肉이 皆親所遺라 喘息呼吸에 氣脈相通하니 此身이 非我私物이요 及父母之遺氣也라 故로 曰 哀哀父母여 生我 勞라하니 父母之恩이 爲如何哉아 豈敢自有其身하여 以不盡孝於父母乎아 人能恒存此心이면 則自有向親之誠矣리라
무릇 사람들이 부모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되 효도하는 자가 심히 드무니, 이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연고이다. 《시경》에 이르지 않았던가. "아버님!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 나를 기르시니, 그 은덕을 갚고자 할진댄 하늘같아 다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자식이 생명을 받을 적에 성명과 혈육이 모두 어버이가 남겨주신 것이다. 숨을 쉬어 호흡함에 기맥이 서로 통하니, 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요, 바로 부모께서 남겨주신 기운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도다."하였으니, 부모의 은혜가 어떠한가. 어찌 감히 스스로 자기 몸을 사유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항상 이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생길 것이다.
凡事父母者 一事一行을 毋敢自專하여 必稟命而後行이니 若事之可爲者를 父母不許어시든 則必委曲陳達하여 可而後行이요 若終不許라도 則亦不可直遂其情也니라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행실을 감히 스스로 오로지 하지 말아, 반드시 부모에게 명령을 받은 뒤에 시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일 중에서 해야 할 것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거든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서 허락하신 뒤에 시행할 것이요,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또한 곧바로 자기 뜻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每日未明而起하여 櫛衣帶하고 就父母寢所하여 下氣怡聲하여 問 寒安否하며 昏則詣寢所하여 定其褥席하고 察其溫凉하며 日間侍奉에 常愉色婉容하여 應對恭敬하고 左右就養하여 極盡其誠하며 出入에 必拜辭拜謁이니라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띠를 띠고서 부모의 침소로 나아가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더우시거나 추우신 지와 편안하신 지 그렇지 않은지를 여쭙고, 날이 어두워지면 침소에 나아가 이부자리를 정해 드리고, 따뜻한지 서늘한지를 살펴보며, 낮 동안 받들어 모실 적에는 항상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용모를 공손히 하여 응대하기를 공경히 하고,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여 그 정성을 극진히 하며, 나가고 들어올 적에는 반드시 절하고 하직하며, 절하고 뵈어야 한다.
今人이 多是被養於父母하고 不能以己力養其父母하니 若此奄過日月이면 則終無忠養之時也리라 必須躬幹家事하여 自備甘旨然後에 子職乃修니 若父母堅不聽從이면 則雖不能幹家나 亦當周旋補助하여 而盡力得甘旨之具하여 以適親口 可也니라 若心心念念이 在於養親이면 則珍味를 亦必可得矣리라 每念王延이 隆冬盛寒에 體無全衣호되 而親極滋味하여 令人感歎流涕也리라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양육을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하여 어느덧 세월을 보낸다면 끝내 정성으로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몸소 집안 일을 담당하여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자식의 직분이 비로소 닦여지는 것이니, 만일 부모님께서 굳이 들어주지 않으시면 비록 집안 일을 담당하지는 못하나, 또한 마땅히 이리저리 움직여 도와드려서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얻어, 어버이의 입맛에 맞도록 함이 옳다. 만일 마음과 생각이 항상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있다면, 진미를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양 왕연이 한겨울 몹시 추운 때에 자기 몸에는 성한 옷이 없었으되 어버이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극진하게 대접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人家父子間에 多是愛逾於敬하니 必須痛洗舊習하여 極其尊敬이니 父母所坐臥處에 子不敢坐臥하며 所接客處에 子不敢接私客하며 上下馬處에 子不敢上下馬 可也니라
사람들 집안에서 부자간에 대부분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치니, 반드시 옛습관을 통렬히 씻어버려, 존경을 극진히 하여야 한다. 부모가 앉고 누우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앉고 눕지 않으며, 부모가 손님을 접대하시는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사사로운 손님을 접대하지 않으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는 것이 옳다.
父母之志 若非害於義理어든 則當先意承順하여 毫忽不可違요 若其害理者는 則和氣怡色柔聲以諫하여 反覆開陳하여 必期於聽從이니라
부모의 뜻이 만일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마땅히 부모의 뜻을 따라 부모의 뜻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받들어 순종하여 조금이라도 어기지 말 것이요, 만일 의리에 해로운 것이면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음성을 따뜻하게 하여 간해서, 반복하여 아뢰어 반드시 들어 따르시게 하기를 기약하여야 한다.
父母有疾이어시든 心憂色沮하여 捨置他事하고 只以問醫劑藥爲務니 疾止어시든 復初니라
부모께서 병환이 걸리시면 마음으로도 근심하고 얼굴빛으로도 근심하여, 다른 일은 버려두고 다만 의원에게 묻고 약을 짓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니, 병이 그치면 평소대로 돌아간다.
日用之間, 一毫之頃을 不忘父母然後에 乃名爲孝니 彼持身不謹하며 出言無章하여 嬉戱度日者는 皆是忘父母者也니라
일상 생활하는 사이와 잠깐 동안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은 뒤에야 효도한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저 몸가짐을 삼가지 않으며 말을 함에 법도가 없어 장난이나 치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는 모두 부모를 잊어버린 것이다.
日月이 如流하여 事親을 不可久也라 故로 爲子者須盡誠竭力하여 如恐不及이 可也니라 古人詩曰 古人一日養을 不以三公換이라하니 所謂愛日者如此니라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버이를 섬기기를 오래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식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듯 함이 옳다. 옛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옛날 사람은 하루의 봉양을 삼공과도 바꾸지 않는다."하였으니, 이른바 날을 아낀다는 것이 이와 같다.
7. 상제(喪制).
喪制章 第六
喪制는 當一依朱文公家禮니 若有疑晦處어든 則質問于先生長者識禮處하여 必盡其禮 可也니라
상제는 마땅히 한결같이 주문공의 가례를 따라야 하니, 만일 의심스럽거나 모르는 곳이 있거든 선생이나 어른으로서 예를 아는 곳에 질문해서 반드시 그 예를 다하는 것이 옳다.
復時에 俗例必呼小字하니 非禮也라 少者則猶可呼名이어니와 長者則不可呼名이요 隨生時所稱이 可也니라[婦女尤不宜呼名]
사자의 혼을 부르는 복을 할 때 세속의 관례에는 반드시 소자(어린 시절의 이름)를 부르니, 예가 아니다. 어린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래도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어른일 경우에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고 살았을 적에 일컫던 바를 따르는 것이 옳다.(부녀자의 경우는 더더욱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母喪에 父在則父爲喪主니 凡祝辭를 皆當用夫告妻之例也니라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에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가 되니, 모든 축사를 모두 마땅히 남편이 아내에게 고하는 예를 써야 한다.
父母初沒에 妻妾婦及女子는 皆被髮하고 男子則被髮扱上 徒跣이니라[小斂後 男子則袒括髮 婦人則 ]若子爲他人後者와 及女子已嫁者는 皆不被髮徒跣이니라[男子則免冠]
부모가 막 돌아가셨을 때에는 아내와 첩, 며느리와 딸은 모두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머리를 풀고 옷깃을 걷어올리고 맨발을 한다.(소렴을 한 뒤에는 남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으며 부인은 머리를 묶는다.) 만일 아들로서 남의 양자가 된 자와 딸로서 이미 출가한 자일 경우에는 모두 머리를 풀거나 맨발을 하지 않는다.(남자는 관을 벗는다.)
尸在牀而未殯엔 男女位于尸傍이면 則其位南上이니 以尸頭所在爲上也요 旣殯之後엔 女子則依前位于堂上호되 南上하고 男子則位于階下호되 其位當北上이니 以殯所在爲上也요 發引時엔 男女之位 復南上이니 以靈柩所在爲上也니 隨時變位而各有禮意니라
시신이 침상 위에 있고 아직 빈소를 차리지 않았을 때에 남녀가 시신 곁에 자리하게 되면 그 위치는 남쪽을 상석으로 삼으니, 이는 시신의 머리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고, 이미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들은 앞서 대로 당의 위에 자리하되 남쪽을 상석으로 삼고, 남자들은 뜰 아래에 자리하되 그 위치는 마땅히 북쪽을 상석으로 삼아야 하니, 빈소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고, 발인할 때에는 남녀의 위치가 다시 남쪽을 상석으로 삼으니, 영구가 놓여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되 각각 그에 적절한 예의 뜻이 있는 것이다.
今人이 多不解禮하여 每弔客致慰에 專不起動하고 只俯伏而已하니 此非禮也라 弔客이 拜靈座而出이어든 則喪者當出自喪次하여 向弔客하여 再拜而哭이 可也니라[弔客當答拜]
지금 사람들이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매양 조문객이 위로할 때에 전혀 기동하지 않고 다만 엎드려 있을 뿐이니,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문객이 영좌에 절하고 나오거든 상주는 마땅히 상차로부터 나와서 조객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곡함이 옳다.(조객도 마땅히 답절해야 한다.)
衰 은 非疾病服役이면 則不可脫也니라
상복과 수질이나 요질은 질병에 걸리거나 일하는 경우가 아니면 벗어서는 안 된다.
家禮에 父母之喪엔 成服之日에 始食粥하고 卒哭之日에 始疏食[ 飯也] 水飮하고[不食羹也] 不食菜果하며 小祥之後에 始食菜果하니[羹亦可食] 禮文如此하니 非有疾病이면 則當從禮文이니라 人或有過禮而 粥三年者하니 若是誠孝出人하여 無一毫勉强之意면 則雖過禮라도 猶或可也어니와 若誠孝未至어늘 而勉强踰禮면 則是自欺而欺親也니 切宜戒之니라
가례에 부모의 상에는 상복을 갖추어 입는 날에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하는 날에 비로소 거친 밥(곱게 쓿지 않은 곡식으로 지은 밥이다.)과 물만 마시고(국을 먹지 않는다.)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으며, 소상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국도 먹을 수 있다.) 예법이 이와 같으니,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당연히 예법을 따라야 한다. 사람들 중에는 혹 예법을 지나쳐서 3년 동안 죽만을 먹는 자가 있으니, 만일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 조금도 힘써서 억지로 하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예법을 지나치더라도 그런대로 괜찮지만, 만일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힘써 억지로 하여 예법을 지나친다면 이것은 자신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니, 의당 절실하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今之識禮之家 多於葬後返魂하니 此固正禮로되 但時人效 하여 遂廢廬墓之俗하고 返魂之後에 各還其家하여 與妻子同處하여 禮坊大壞하니 甚可寒心이라 凡喪親者 自度(탁)一一從禮하여 無毫分虧欠이어든 則當依禮返魂이어니와 如或未然이면 則當依舊俗廬墓 可也니라
요즘 예법을 아는 집안들이 대부분 장사지낸 뒤에 반혼하니, 이것은 진실로 바른 예이다. 다만 요즈음 사람들은 남의 흉내를 내어 마침내 여묘하는 풍속을 버리고 반혼한 뒤에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 처자식들과 함께 생활하여 예방이 크게 무너졌으니, 몹시 한심스러워 할 만하다. 무릇 어버이를 잃은 자는 일일이 예를 따랐는가를 스스로 헤아려 조금도 모자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마땅히 예를 따라 반혼할 것이요, 만일 혹 그렇지 못하면 옛 풍속을 따라 여묘하는 것이 옳다.
親喪엔 成服之前에 哭泣을 不絶於口하고[氣盡則令婢僕代哭] 葬前에 哭無定時하여 哀至則哭하며 卒哭後則朝夕哭二時而已니 禮文이 大槪如此어니와 若孝子情至면 則哭泣이 豈有定數哉아 凡喪은 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론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니 喪事는 不過盡其哀敬而已니라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에 상복을 갖추어 입기 전에는 곡하고 우는 것을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고,(기운이 다하면 하인으로 하여금 대신 곡하게 한다.) 장사지내기 전에는 곡을 함에 일정한 때를 정함이 없어서 슬픔이 일어나면 곡하며, 졸곡을 지낸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때에만 곡할 뿐이다. 예법이 대개 이와 같거니와, 만일 효자로서 정이 지극하면 곡하고 욺에 어찌 일정한 수가 있겠는가? 무릇 초상에는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넉넉한 것이 예가 부족하고 슬픔이 넉넉한 것만 못하니, 상사는 그 슬픔과 공경을 다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曾子曰 人未有自致者也나 必也親喪乎인저하시니 送死者는 事親之大節也니 於此에 不用其誠이면 惡(오)乎用其誠이리오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스스로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경우가 있지 않으나, 반드시 어버이의 상에는 지극히 해야 할 것이다."하셨으니,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이 일에서 그 정성을 쓰지 않는다면 어디에 그 정성을 쓰겠는가.
昔者에 小連大連이 善居喪하여 三日不怠하고 三月不懈하고 期悲哀하고 三年憂하니 此是居喪之則也라 孝誠之至者는 則不勉而能矣어니와 如有不及者는 則勉而從之 可也니라
옛날에 소련과 대련은 상사를 잘 치러서 3일 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석달 동안 태만히 하지 않고, 1년간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상사를 치르는 법칙이다. 효성이 지극한 자는 힘쓰지 않아도 잘 할 수 있거니와, 만일 미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힘써서 예를 따름이 옳다.
人之居喪에 誠孝不至하여 不能從禮者는 固不足道矣어니와 間有質美而未學者하여 徒知執禮之爲孝하고 而不知傷生之失正하여 過於哀毁하여 羸疾已作호되 而不忍從權하여 以至滅性者 或有之하니 深可惜也라 是故로 毁瘠傷生을 君子謂之不孝니라
사람이 상사를 치를 때에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예법을 따르지 못하는 자는 진실로 말할 것이 없거니와, 간혹 자질은 아름다우나 배우지 못한 자가 있어 한갓 예를 행하는 것이 효도가 되는 줄만 알고, 자신의 생명을 손상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를 잃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슬퍼하고 훼손하기를 지나치게 해서 파리한 병이 이미 나타났는데도 차마 권도를 따르지 못하여 생명을 잃는 데 이르는 자가 간혹 있으니, 심히 애석하다. 그러므로 몸을 훼손하고 수척하게 하여 생명을 손상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 이르는 것이다.
凡有服親戚之喪에 若他處聞訃어든 則設位而哭이니 若奔喪이면 則至家而成服하고 若不奔喪이면 則四日成服이니라 若齊衰之服이면 則未成服前三日中에 朝夕爲位會哭이니라[齊衰降大功者亦同]
무릇 복을 입어야 할 친척의 상을 당했을 때에 만일 다른 곳에서 부음을 들었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을 한다. 만일 초상에 달려가야 할 경우이면 집에 이르러 상복을 갖추어 입고, 만일 초상에 달려가지 못할 경우이면 4일 만에 상복을 갖추어 입는다. 만일 자최복을 입어야 할 초상이면 상복을 갖추어 입기 전 3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모여 곡한다.(자최복으로서 대공으로 낮추어진 경우도 이와 같다.)
師友之義重者와 及親戚之無服而情厚者와 與凡相知之分密者는 皆於聞喪之日에 若道遠하여 不能往臨其喪이면 則設位而哭이니라 師則隨其情義深淺하여 或心喪三年, 或期年, 或九月, 或五月, 或三月이요 友則雖最重이나 不過三月이니라 若師喪에 欲行三年期年者 不能奔喪이어든 則當朝夕設位而哭하여 四日而止니라[止於四日之朝 若情重者則不止此限]
스승과 벗 중에서 정의가 무거운 자와, 친척으로서 상복을 입지 않는 관계이지만 정의가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알고 지내는 자로서 교분이 친밀한 자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초상에 가서 참여할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스승일 경우에는 그 정의가 깊고 얕음에 따라 혹은 심상 3년, 혹은 1년, 혹은 9개월, 혹은 5개월, 혹은 3개월을 할 것이요, 친구일 경우에는 비록 가장 두터운 관계라 하더라도 3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만약 스승의 상에 3년복이나 기년복을 행하고자 하는 자가 초상에 참여할 수 없거든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곡하여, 4일만에 그친다.[나흘 째 되는 날 아침에 곡을 그친다. 만약 정의가 두터운 관계일 경우에는 이 한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凡遭服者 每月朔日에 設位服其服而會哭하고[師友雖無服亦同] 月數旣滿이면 則於次月朔日에 設位服其服하고 會哭而除之니 其間哀至則哭이 可也니라
무릇 상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입어야 할 상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며,(스승이나 친구로서 복이 없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달수가 차고 나면 다음 달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입어야 할 상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고는 상복을 벗어야 할 것이니, 그 사이에 슬픔이 일어나면 곡하는 것이 옳다.
凡大功以上喪은 則未葬前에 非有故어든 不可出入이며 亦不可弔人이요 常以治喪講禮爲事니라
무릇 대공 이상의 상을 당했을 때에 장사를 지내기 전에는 연고가 없거든 밖에 출입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남에게 조문하러 가서도 아니 되고, 항상 상사를 다스리고 예를 강론하는 것을 일삼아야 한다.
8. 제례(祭禮).
祭禮章 第七
祭祀는 當依家禮하여 必立祠堂하여 以奉先主하고 置祭田, 具祭器하여 宗子主之니라
제사는 마땅히 주자가례를 따라 반드시 사당을 세워서 선조의 신주를 받들고, 제전을 설치하고 제기를 갖추어서 종자가 이를 주관해야 한다.
主祠堂者는 每晨에 謁于大門之內하여 再拜하고[雖非主人 隨主人同謁 無妨] 出入에 必告이니라
사당을 주관하는 자는 매일 새벽마다 대문 안에서 배알하여 두 번 절하고(주인이 아니더라도 주인을 따라 함께 뵙는 것은 무방하다.) 출입할 때는 반드시 아뢴다.
或有水火盜賊이어든 則先救祠堂하여 遷神主遺書하고 次及祭器하고 然後及家財니라
혹 수재나 화재나 도적이 있으면 먼저 사당을 구원하여 신주와 유서를 옮기고, 다음에 제기에 미치고 그런 뒤에 가재에 미쳐야 한다.
正[正朝]至[冬至]朔[一日]望[十五日]則參(참)하고 俗節則薦以時食이니라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과 초하루와 보름날이 되면 사당에 참배하고, 속절일 경우에는 그 때에 맞는 음식을 올린다.
時祭則散齊四日하고 致齊三日하며 忌祭則散齊二日하고 致齊一日하며 參禮則齊宿一日이니 所謂散齊者는 不弔喪, 不問疾, 不茹 , 飮酒不得至亂하며 凡凶穢之事를 皆不得預요[若路中猝遇凶穢 則掩目而避 不可視也]所謂致齊者는 不聽樂, 不出入하고 專心想念所祭之人하여 思其居處하며 思其笑語하며 思其所樂(요)하며 思其所嗜之謂也라 夫然後에 當祭之時하여 如見其形하고 如聞其聲하여 誠至而神享也니라
시제를 지낼 경우에는 산재를 4일간 하고 치재를 3일간 하며, 기제를 지낼 경우에는 산재를 2일간 하고 치재를 1일간 하며, 참례할 경우에는 미리 재계하기를 1일간 한다. 이른바 산재라는 것은 남의 초상에 조문하지 않고 질병을 문병하지 않으며,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을 마시되 취하는 데 이르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요,(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출입하지 않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제사지낼 분을 생각하여, 그 분이 <생전에> 생활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즐기시던 것을 생각함을 이른다. 이렇게 한 뒤에야 제사 지낼 때를 맞이하여 그 모습을 보는 듯하고, 그 음성을 듣는 듯하여 정성이 지극하여 신이 흠향하는 것이다.
凡祭는 主於盡愛敬之誠而已니 貧則稱家之有無하고 疾則量筋力而行之호되 財力可及者는 自當如儀니라
무릇 제사는 사랑하고 공경하는 정성을 극진히 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을 뿐이다. 가난하면 가산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할 것이요, 병이 있으면 근력을 헤아려 치르되, 재물과 힘이 미칠 수 있는 자는 스스로 마땅히 예법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墓祭, 忌祭를 世俗이 輪行하니 非禮也라 墓祭則雖輪行이라도 皆祭于墓上하니 猶之可也어니와 忌祭는 不祭于神主하고 而乃祭于紙榜하니 此甚未安이라 雖不免輪行이나 須具祭饌하여 行于家廟 庶乎可矣리라
묘제와 기제를 세속에서 자손들이 돌려가며 지내고 있으니,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려가며 지내더라도 모두 묘소에서 제사지내니 그래도 괜찮지만, 기제는 신주에게 제사지내지 않고 지방에 제사를 지내니, 이는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려가며 지냄을 피치 못하더라도 모름지기 제찬을 갖추어 가묘에서 지내는 것이 옳음에 가까울 것이다.
喪祭二禮는 最是人子致誠處也라 已沒之親을 不可追養이니 若非喪盡其禮, 祭盡其誠이면 則終天之痛을 無事可寓요 無時可洩也니 於人子之情에 當如何哉아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歸厚矣라하시니 爲人子者 所當深念也니라
상례와 제례 두 예는 사람의 자식이 가장 정성을 다해야 할 일이다. 이미 돌아가신 어버이를 뒤쫓아 봉양할 수 없으니, 만약 상례를 치를 때 그 예를 다하고 제례를 치를 때 그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평생동안 남는 비통함을 붙일 만한 일이 없고 쏟을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니, 자식된 심정에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장례를 삼가 보시고 먼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셨으니, 자식된 자가 마땅히 깊이 생각해야 할 바이다.
今俗이 多不識禮하여 其行祭之儀 家家不同하니 甚可笑也라 若不一裁之以禮면 則終不免紊亂無序하여 歸於夷虜之風矣리라 玆 祭禮하여 附錄于後하고 且爲之圖하노니 須詳審倣行호되 而若父兄不欲이어시든 則當委曲陳達하여 期於歸正이니라
지금 세속이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같이 않으니, 심히 웃을 만한 일이다. 만약 한결같이 예법으로 제재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문란하고 차례가 없게 되어 오랑캐의 풍속으로 돌아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제례를 뽑아 뒤에 붙이고 또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으니, 반드시 자세히 살펴 이대로 따라 행하되, 만약 부형이 그대로 하려고 하지 않으시거든 마땅히 간곡히 말씀드려 바른 데로 돌아가기를 기약해야 할 것이다.
9. 거가(居家).
居家章 第八
凡居家에 當謹守禮法하여 以率妻子及家衆이니 分之以職하고 授之以事하여 而責其成功하며 制財用之節하여 量入而爲出하며 稱家之有無하여 以給上下之衣食과 及吉凶之費호되 皆有品節하여 而莫不均一하며 裁省(생)冗費하고 禁止奢華하여 常須稍存 餘하여 以備不虞니라
무릇 집에서 머물 때에는 마땅히 삼가 예법을 지켜서 처자와 집안 식구들을 거느려야 할 것이니, 그들에게 직책을 나누어주고 할 일을 맡겨주어 그 성공하기를 요구하며, 재용의 씀씀이를 절제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시행하며, 가산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옷과 음식 및 길사와 흉사의 비용을 지급하되 모두 등급대로 조절하여 균일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사치와 호화를 금지하여 항상 모름지기 다소 남음이 있게 해서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冠婚之制는 當依家禮요 不可苟且從俗이니라
관례와 혼례의 제도는 마땅히 주자가례를 따라야 할 것이요, 구차스럽게 세속을 따라서는 안 된다.
兄弟는 同受父母遺體하여 與我如一身하니 視之를 當無彼我之間하여 飮食衣服有無를 皆當共之니라 設使兄飢而弟飽하고 弟寒而兄溫이면 則是一身之中에 肢體或病或健也니 身心이 豈得偏安乎아 今人이 兄弟不相愛者는 皆緣不愛父母故也라 若有愛父母之心이면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아 兄弟 若有不善之行이면 則當積誠忠諫하여 漸喩以理하여 期於感悟요 不可遽加 色拂言하여 以失其和也니라
형제는 부모가 남겨주신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 더불어 한 몸과 같으니, 형제를 보기를 마땅히 저와 나의 구분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의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같이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이는 한 몸 가운데에 지체가 어떤 것은 병들고 어떤 것은 건강한 것과 같으니,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요즘 사람들이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그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일 좋지 못한 행실이 저지르면 마땅히 정성을 쌓아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써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게 하기를 기약할 것이요, 갑자기 노여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하여 그 화합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今之學者 外雖矜持나 而內鮮篤實하여 夫婦之間, 席之上에 多縱情慾하여 失其威儀라 故로 夫婦不相 狎而能相敬者甚少하니 如是而欲修身正家인들 不亦難乎아 必須夫和而制以義하고 妻順而承以正하여 夫婦之間에 不失禮敬然後에 家事를 可治也리라 若從前相狎이라가 而一朝에 遽欲相敬이면 其勢難行이니 須是與妻相戒하여 必去前習하고 漸入於禮 可也니라 妻若見我發言持身이 一出於正이면 則必漸相信而順從矣리라
지금의 학자들은 겉으로는 비록 엄숙한 모습을 지키나 속으로는 독실한 이가 드물어서, 부부간에 이부자리 위에서 함부로 정욕을 부려서 그 몸가짐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 친압하지 않고 서로 공경할 줄 아는 이가 매우 적으니, 이와 같이 하면서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잡고자 한들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반드시 모름지기 남편은 화합하는 태도를 지니고 올바른 도리로 제어하고, 아내는 유순하면서 올바른 도리로써 받들어 부부 사이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은 뒤에나 집안 일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종전에 서로 친압하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로 공경하고자 한다면 그 세가 행해지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아내와 더불어 서로 경계하여 반드시 전날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 예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내가 만일 내가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한결같이 올바른 도리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면 반드시 점점 서로 믿고 순종하게 될 것이다.
生子에 自稍有知識時로 當導之以善이니 若幼而不敎하여 至於旣長이면 則習非放心하여 敎之甚難이니 敎之之序는 當依小學이니라 大抵一家之內에 禮法與行하고 簡編筆墨之外에 無他雜技면 則子弟亦無外馳畔學之患矣리라 兄弟之子는 猶我子也니 其愛之, 其敎之를 當均一이요 不可有輕重厚薄也니라
자식을 낳으면 조금 지식이 생길 때부터 마땅히 선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고 이미 장성함에 이르면 그른 것을 익히고 방심하게 되어 이를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우니, 가르치는 차례는 마땅히 소학을 따라야 할 것이다. 대저 어떤 집안에 예법이 흥행하고 서간이나 책, 글씨 쓰기 이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자제들 또한 <마음을> 밖으로 달려 배움을 저버리는 병통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내 자식과 같으니, 그를 사랑하고 가르치기를 마땅히 균일하게 할 것이요, 경중과 후박을 두어서는 안 된다.
婢僕은 代我之勞하니 當先恩而後威라야 乃得其心이니 君之於民과 主之於僕에 其理一也라 君不恤民則民散이니 民散則國亡하고 主不恤僕則僕散이니 僕散則家敗는 勢所必至라 其於婢僕에 必須軫念飢寒하여 資給衣食하여 使得其所하고 而有過惡이면 則先須勤勤敎誨하여 使之改革하고 敎之不改然後에 乃施楚撻하여 使其心으로 知厥主之楚撻이 出於敎誨요 而非所以憎嫉이니 然後에 可使改心革面矣리라
비복들은 나의 수고로움을 대신하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 베풀고 난 뒤에 위엄을 부려야 비로소 그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니, 임금이 백성에게 대한 것과 주인이 비복에 대한 것은 그 이치가 똑같은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질 것이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비복을 돌보지 않으면 비복이 흩어질 것이니, 비복이 흩어지면 집이 패망하는 것은 형편상 반드시 이르는 것이다. 그 비복에 대하여 반드시 모름지기 그들의 추위와 굶주림을 깊이 염려해서 옷과 밥을 대주어 제자리를 얻게 할 것이요,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먼저 모름지기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고치게 하고,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야 초달을 가해서 그 마음으로 하여금 주인의 초달이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요, 미워해서가 아님을 알게 하여야 하니, 그런 뒤에야 마음을 고치고 얼굴을 바꾸게 될 것이다.
治家에 當以禮法으로 辨別內外하여 雖婢僕이라도 男女不可混處니 男僕이 非有所使令이면 則不可輒入內하고 女僕을 皆當使有定夫하여 不可使淫亂이니 若淫亂不止者는 則當黜使別居하여 毋令汚穢家風이니라 婢僕을 當令和睦이니 若有鬪 喧 者어든 則當痛加禁制니라
집안을 다스림에 마땅히 예법으로써 내외를 분별하여 비록 비복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거처해서는 안 된다. 남자 종은 시키는 바가 있지 않으면 함부로 안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 여자 종은 모두 마땅히 정한 남편이 있게 하여 음란하게 하지 말아야 하니, 만일 음란한 짓을 그치지 않는 자는 마땅히 내 쫓아 따로 거처하게 해서 가풍을 더럽히지 않게 해야 한다. 비복을 마땅히 화목하게 해야 할 것이니, 만일 싸우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자가 있거든 마땅히 금지와 제재를 통렬히 가해야 한다.
君子憂道요 不當憂貧이니 但家貧하여 無以資生이면 則雖當思救窮之策이나 亦只可免飢寒而已요 不可存居積豊足之念이며 且不可以世間鄙事로 留滯于心胸之間이니라 古之隱者 有織 而食者, 樵漁而活者, 植(치)杖而耘者하니 此等人은 富貴不能動其心이라 故로 能安於此하니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이면 則豈不爲心術之害哉아 學者는 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이니라
군자는 도를 근심할 것이요,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의뢰하여 살아갈 수가 없으면 비록 마땅히 빈궁에서 벗어날 대책을 생각하여야 하나 또한 다만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요, 많이 쌓아두고 풍족하게 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며, 또 세간의 비루한 일을 마음속에 머물러 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을 삼아 팔아서 먹고 산 자와 땔나무를 하거나 고기를 잡아서 생활한 자와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며 산 자가 있었으니, 이런 사람들은 부귀가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에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이니, 만일 이해를 비교하고 풍성함과 가난함을 헤아리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을 수양하는데 해롭지 않겠는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벼이 여기고 빈천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居家에 貧 면 則必爲貧 所困하여 失其所守者多矣라 學者 正當於此處用功이니 古人曰 窮視其所不爲하며 貧視其所不取라하고 孔子曰 小人은 窮斯濫矣라하시니 若動於貧 하여 而不能行義면 則焉用學問爲哉리오
집에서 생활할 때에 가난하면 반드시 가난에 찌들려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를 잃는 자가 많다. 배우는 자는 바로 이런 곳에 힘을 써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곤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바를 살펴보고, 가난할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바를 살펴본다."하였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인은 곤궁하면 넘친다."하셨으니, 만일 가난에 마음이 동요되어 올바른 도리를 행할 수 없다면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凡辭受取與之際에 必精思義與非義하여 義則取之하고 不義則不取하여 不可毫髮放過니라 若朋友는 則有通財之義하니 所遺를 皆當受로되 但我非乏而遺以米布면 則不可受也니라 其他相識者면 則只受其有名之饋하고 而無名則不可受也니 所謂有名者는 賻喪, 行, 助婚禮, 周飢乏之類 是也라
무릇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는 즈음에는 반드시 의로운가 의롭지 않은가를 자세히 생각해서 의로우면 취하고 의롭지 않으면 취하지 아니하여, 털끝만큼이라도 그대로 지나쳐버리지 말아야 한다. 친구로 말하면 재물을 통용해서 쓰는 의리가 있으니, 주는 바를 마땅히 받아야 하되, 다만 내가 궁핍하지 않은데도 쌀이나 삼베를 주면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서로 알고 지내는 자는, 다만 명분이 있는 선물을 받을 것이요, 명분이 없는 것은 받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명분이 있다는 것은 상사 때의 부의나, 여행 때의 노자나, 혼인 때의 부조나, 굶주림을 구원해 주는 것 등이 이것이다.
若是大段惡人心所鄙惡(오)者는 則其饋雖有名이나 受之면 心必不安이리니 心不安이면 則不可抑而受之也니라 孟子曰 無爲其所不爲하며 無欲其所不欲이라하시니 此是行義之法也니라
만일 대단한 악인으로서 마음에 더럽고 나쁘게 여기는 사람이면, 그 선물이 비록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받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면 그 마음을 억누르고 받아서는 안 된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고, 마땅히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의를 행하는 법이다.
中朝則列邑之宰 有私俸이라 故로 推其餘하여 可以周人之急矣어니와 我國則守令이 別無私俸하고 只以公穀으로 應日用之需어늘 而若私與他人이면 則不論多少하고 皆有罪譴하여 甚則至於犯贓하고 受者亦然하니 爲士而受守令之饋면 則是乃犯禁也라
중국에는 여러 읍의 수령들에게 사사로운 녹봉이 있다. 그러므로 그 중에서 남는 것을 미루어 남의 위급함을 도와줄 수 있거니와, 우리나라는 수령들에게 별도로 받는 사사로운 녹봉이 없고 다만 공곡으로써 일상의 수요를 충당하고 있는데, 만약 사사로이 남에게 준다면 많고 적음을 따질 것 없이 다 죄에 걸려, 심하면 장죄를 범하는 데에 이르고, 받은 사람도 또한 그러하니,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이는 바로 법금을 범하는 것이다.
古者에 入國而問禁하니 則居其國者 豈可犯禁乎아 守令之饋는 大抵難受하니 若私與官庫之穀이면 則不論人之親疏, 名之有無, 物之多寡하고 皆不可受也니라[若分厚邑宰 以衙中私財周急則或可受也]
옛날에는 다른 나라에 들어갈 때에도 그 나라에서 금하는 것을 물었으니, 그 나라에 사는 자가 어찌 법금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우니, 만일 국고의 곡식을 사사로이 준다면 관계의 친소와 명분의 유무와 재물의 다과를 막론하고 모두 받지 말아야 한다.(만일 친분이 두터운 수령이 관아에 있는 사재로 도와준다면 받을 수도 있다.)
10. 접인(接人).
接人章 第九
凡接人에 當務和敬이니 年長以倍어든 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이어든 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이어든 亦稍加敬이니 最不可恃學自高, 尙氣陵人也니라
무릇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함에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 많으면 아버지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 공경을 더할 것이니,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은 배운 것을 믿고 스스로 고상한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擇友에 必取好學, 好善, 方嚴, 直諒之人하여 與之同處하여 虛受規戒하여 以攻吾闕하고 若其怠惰, 好嬉, 柔 不直者는 則不可交也니라
벗을 가리되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하며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취하여, 그와 더불어 함께 거처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주고 경계해 줌을 받아들여 나의 결점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며 아첨을 잘하고 말재주만 뛰어나고 바르지 못한 자일 경우는 사귀어서는 안 된다.
鄕人之善者는 則必須親近通情하고 而鄕人之不善者는 亦不可惡言揚其陋行이요 但待之泛然하여 不相往來니 若前日相知者는 則相見에 只敍寒暄하고 不交他語면 則自當漸疎하여 亦不至於怨怒矣리라
고을 사람 중에 선한 자는 반드시 모름지기 가까이 지내면서 정을 통하고, 고을 사람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역시 나쁜 말로 그의 더러운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다만 대하기를 범연하게 하여 서로 왕래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전날에 서로 알고 지내던 자라면 서로 만났을 적에 다만 근황이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마땅히 점점 소원해져서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同聲相應하며 同氣相求하나니 若我志於學問이면 則我必求學問之士요 學問之士 亦必求我矣리라 彼名爲學問而門庭에 多雜客하여 喧 度日者는 必其所樂(요) 不在學問故也니라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게 되니,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을 것이요, 학문하는 선비도 또한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다. 저 말로는 학문을 한다 하나 문정에 잡객이 많아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는 반드시 그가 좋아하는 바가 학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凡拜揖之禮는 不可預定이니 大抵父之執友는 則當拜요 洞內年長十五歲以上者는 當拜요 爵階堂上而長於我十年以上者는 當拜요 鄕人年長二十歲以上者는 當拜로되 而其間高下曲折은 在隨時節中이요 亦不必拘於此例니 但常以自卑尊人底意思로 存諸胸中이 可也니라 詩曰 溫溫恭人이 惟德之基라하니라
무릇 절하고 읍하는 예는 미리 결정할 수 없으니, 대개 아버지의 집우이면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동네에서 나이가 15세 이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벼슬의 품계가 당상이고 나보다 10세 연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나이가 20세 이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하되, 그 사이에 높이고 낮추는 자잘한 예절은 때에 따라 알맞게 할 것이요, 또한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은 없으니, 다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뜻을 가슴속에 두는 것이 옳다. 《시경》에 이르기를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이 덕의 근본이다."고 하였다.
人有毁謗我者어든 則必反而自省이니 若我實有可毁之行이면 則自責內訟하여 不憚改過하고 若我過甚微而增衍附益이면 則彼言雖過나 而我實有受謗之苗脈하니 亦當 鋤前愆하여 不留毫末하고 若我本無過而捏造虛言이면 則此不過妄人而已니 與妄人으로 何足計較虛實哉리오
사람들 중에 나를 헐뜯고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 살펴야 하니, 만약 나에게 실제로 헐뜯음을 당할 만한 행실이 있었으면 스스로 꾸짖고 안으로 따져서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 것이요, 만약 나의 잘못이 매우 미미한데 더 보태어 늘렸다면 저의 말이 비록 지나치나 나에게 실제로 헐뜯음을 받을 만한 싹과 맥이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전의 잘못을 제거하여 털끝만큼도 남겨 두지 말 것이요, 만약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 거짓말을 날조했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거짓과 진실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且彼之虛謗이 如風之過耳, 雲之過空하니 於我에 何與哉아 夫如是면 則毁謗之來에 有則改之하고 無則加勉하여 莫非有益於我也리라 若聞過自辨하여 曉曉然不置하여 必欲置身於無過之地면 則其過愈甚而取謗益重矣리라 昔者에 或問止謗之道한대 文中子曰 莫如自修니라 請益한대 曰 無辨이라하니 此言이 可爲學者之法이니라
또 저의 헛된 비방은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구름이 허공을 지나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무릇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훼방이 올 때에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쓰게 되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허물을 듣고 스스로 변명하여 시끄럽게 떠들면서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여, 반드시 자신을 잘못이 없는 처지에 놓으려고 한다면, 그 허물이 더욱 깊어져 훼방을 받음이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훼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묻자, 문중자가 말하기를 "스스로 행실을 닦는 것만 못하다."하였다. 다시 더 말해주기를 청하자, 대답하기를, "변명하지 말라."하였으니, 이 말이 배우는 자들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凡侍先生長者에 當質問義理難曉處하여 以明其學하고 侍鄕黨長老에 當小心恭謹하여 不放言語하여 有問則敬對以實하고 與朋友處에 當以道義講磨하여 只談文字義理而已요 世俗鄙俚之說과 及時政得失, 守令賢否, 他人過惡은 一切不可掛口하고 與鄕人處에 雖隨問應答이나 而終不可發鄙褻之言하며 雖莊栗自持나 而切不可存矜高之色이요 惟當以善言誘掖하여 必欲引而向學하고 與幼者處엔 當諄諄言孝悌忠信하여 使發善心이니 若此不已면 則鄕俗을 漸可變也리라
무릇 선생과 어른을 모실 적에는 마땅히 의리 중에서 깨우치기 어려운 부분을 질문하여 그 배움을 분명히 해야 하고, 고을의 어르신을 모실 적에는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며 삼가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아니하여, 물으심이 있으면 공경히 사실대로 대답하여야 하고, 붕우와 함께 거처할 적에는 마땅히 도의를 강마하여, 다만 문자와 의리를 말할 뿐이요, 세속의 더러운 말과 당시 정치의 잘잘못과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타인의 허물과 악행을 일절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하고, 고을 사람과 함께 거처할 적에는 비록 물음에 따라 응답하더라도 끝내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아니 되며, 비록 엄숙한 몸가짐을 스스로 지키더라도 절대로 자랑하고 고상한 체하는 기색을 지니지 말고, 오직 마땅히 좋은 말로 타이르고 이끌어서, 반드시 그를 인도하여 학문으로 향하게 하고자 하며, 어린아이와 함께 거처할 적에는 마땅히 간절하게 효제충신의 도리를 말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해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마지않는다면 고을의 풍속을 점점 변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常以溫恭慈愛, 惠人濟物爲心이니 若其侵人害物之事는 則一毫不可留於心曲이니라 凡人이 欲利於己인댄 必至侵害人物이라 故로 學者先絶利心然後에 可以學仁矣리라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일을 이루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 남을 침노하고 일을 해치는 일일 경우에는 털끝만큼이라도 마음 한 구석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는 데 이른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먼저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끊어버린 뒤에야 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居鄕之士는 非公事禮見及不得已之故면 則不可出入官府니 邑宰雖至親이라도 亦不可數數(삭삭)往見이어든 況非親舊乎아 若非義干請은 則當一切勿爲也니라
고을에 머물고 있는 선비는 공사나 예의석상에서 만나보는 것, 및 부득이한 연고가 아니면 관청에 드나들어서는 아니 되니, 고을 원이 비록 지극히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또한 자주 찾아가 만나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친구가 아님에랴. 도리에 맞지 않는 청탁 같은 것은 마땅히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11. 처세(處世) - 終.
處世章 第十
古之學者 未嘗求仕로되 學成則爲上者 擧而用之하니 蓋仕者는 爲人이요 非爲己也라 今世則不然하여 以科擧取人하여 雖有通天之學, 絶人之行이라도 非科擧면 無由進於行道之位라 故로 父敎其子하고 兄勉其弟하여 科擧之外엔 更無他術하니 士習之偸 職此之由라 第今爲士者 多爲父母之望, 門戶之計하여 不免做科業이나 亦當利其器, 俟其時하여 得失을 付之天命이요 不可貪躁熱中하여 以喪其志也니라
옛날의 학자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되 학문이 이루어지면 윗사람이 된 자가 천거해서 등용하였으니, 벼슬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요,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아니하여, 과거로써 사람을 뽑아, 비록 하늘의 이치를 통달한 학문과 남보다 빼어난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치도를 실천할 수 있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거공부를> 시키고 형은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하여, 과거 이외에는 다시 다른 학술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관이 각박해지는 것은 오로지 이에 연유한다. 다만 요즘 선비가 된 자들은 대부분 부모의 바램과 가문의 계책을 위하여 과거공부를 함을 피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기구를 갈고 닦으며 그 때를 기다려, 급제와 낙방을 천명에 맡길 것이요, 벼슬을 탐하고 조급해 하고 마음을 끓어오르게 해서 자신의 뜻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人言科業爲累하여 不能學問이라하니 此亦推託之言이요 非出於誠心也라 古人養親에 有躬耕者하며 有行傭者하며 有負米者하니 夫躬耕, 行傭, 負米之時에 勤苦甚矣니 何暇讀書乎아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공부에 얽매여서 학문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 또한 미루어 핑계 대는 말이요 성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옛날 사람은 부모를 봉양함에 몸소 밭을 갈았던 이도 있었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품팔이한 이도 있었으며, 쌀가마니 지는 일을 한 이도 있었으니,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질 때에 근고가 심하였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겠는가.
惟其爲親任勞하여 旣修子職하고 而餘力學文이로되 亦可進德이어든 今日之爲士者는 不見爲親任勞를 如古人者하고 只是科業一事 是親情之所欲이라하여 今旣不免做功하니 則科業이 雖與理學不同이나 亦是坐而讀書作文이라 其便於躬耕, 行傭, 負米 不翅百倍라 況有餘力하여 可讀性理之書哉아
오직 그 부모를 위해 수고로움을 자임하여 이미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은 여가에 글을 배웠는데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가 있었거든, 요즈음 선비된 자들은 어버이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맡기를 옛날 사람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겠고, 다만 과거공부 한 가지 일이 곧 어버이의 마음이 바라는 것이라 하여 이제 이미 과거공부함을 면하지 못하니, 그렇다면 과거공부가 비록 이학과는 같지 않으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이어서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지는 일보다 편함이 백 배일 뿐만이 아니다. 하물며 남은 여가에 성리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음에랴.
只是做科業者는 例爲得失所動하여 心常躁競하여 反不若勞力之不害心術이라 故로 先賢曰 不患妨功이요 惟患奪志라하니 若能爲其事而不喪其守면 則科業理學이 可以竝行不悖矣리라
다만 과거공부를 하는 자들은 으레 과거에 급제하느냐 낙방하느냐에 동요되어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다투어, 도리어 수고롭게 일함이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를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의 말씀에 "<과거공부가> 공부에 방해될까를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뜻을 빼앗길까를 걱정해야 한다."고 하셨으니, 만약 과거 공부하는 일을 하면서도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공부와 이학공부를 병행해도 서로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今人은 名爲做擧業而實不著功하고 名爲做理學而實不下手하여 若責以科業이면 則曰 我志於理學하여 不能屑屑於此라하고 若責以理學이면 則曰 我爲科業所累하여 不能用功於實地라하여 如是兩占便宜하여 悠悠度日이라가 卒至於科業理學이 兩無所成하니 老大之後에 雖悔인들 何追리오 嗚呼라 可不戒哉아
요즘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과거공부를 하지 않고, 말로는 이학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착수하지 아니하여, 만약 과거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이학에 뜻을 두고 있어서 이런 데에 연연해 할 수 없다."고 하며, 만약 이학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과거공부에 얽매여서 실지에 힘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양쪽으로 편리한 처지를 차지하여 하는 일없이 하루하루 세월만 보내다가 마침내는 과거공부와 이학공부 두 가지 다 이루는 바가 없음에 이르니, 늙은 뒤에 비록 뉘우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人於未仕時엔 惟仕是急하고 旣仕後엔 又恐失之하나니 如是汨沒하여 喪其本心者 多矣라 豈不可懼哉아 位高者는 主於行道하니 道不可行이면 則可以退矣요 若家貧하여 未免祿仕면 則須辭內就外하고 辭尊居卑하여 以免飢寒而已라 雖曰祿仕나 亦當廉勤奉公하여 盡其職務요 不可曠官而 也니라
사람들이 아직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무로 여기고, 이미 벼슬에 오른 뒤에는 또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니, 이와 같이 골몰하여 그 본심을 잃는 자가 많다. 어찌 두려워 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자는 치도를 베푸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니, 치도가 베풀어질 수 없으면 물러나야 할 것이요, 만일 집이 가난하여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을 면치 못한다면, 모름지기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으로 나가며,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이라고 하나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를 받들어 행하여 그 직무를 다해야 할 것이요, 직분을 버려두고 먹고 마시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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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풀이"
서(序)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학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역시 이상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아비가 되어서는 자애롭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하고,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고, 형제간에는 우애롭고,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간에는 신의를 두는 것으로서 일용의 모든 일에 있어 그 일에 따라 각기 마땅하게 할 뿐이요,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것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문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식견이 좁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글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땅히 향할 길을 밝힌 연후에야 조예가 올바르고 실천에 중도를 얻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 생활에 있는 줄은 모르고 망령되어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는 자포자기한다. 이 어찌 불쌍한 일이 아니랴.
내가 해산(海山)의 남쪽(해주의 석담을 가리킴)에 거처를 정하자 한두 학도가 추종하여 학문을 청해 왔다. 내가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또한 초학(初學)이 향방을 모를 뿐 아니라, 굳은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면 피차에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까 염려되었다.
이에 간략하게 한 책을 써서 대략 마음을 세우는 것,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 부모를 봉양하는 법,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를 「격몽요결」이라 이름해서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아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고, 나 역시 오랫동안 구습에 얽매어 괴로워하던 차에 이것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코자 하노라.
정축 늦겨울 덕수(德水) 이이 씀.
제1장 입지(立志) : 뜻을 세우자
입지란 올바른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는 확고한 마음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율곡의 입지는 어디까지나 실천도덕의 입지이기 때문에 그의 입지 목표는 당연히 성인에 두고 있는 것이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먼저 뜻을 세워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고 결심할 것이요, 조금이라도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포기하거나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대개 보통 사람과 성인을 비교해보면 그 본성은 똑같으나, 다만 기질은 맑음과 흐림, 순수함과 잡됨의 차이가 있다. 다만 참답게 알고 실천을 통하여 젖어온 구습을 버리고 타고난 본래의 성품을 회복한다면, 털끝만치 보태지 않아도 온갖 착함이 구비됨에 족할 것이니, 보통 사람이라도 어찌 가히 성인을 스스로의 목표로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입지(立志), 명지(明知), 독행(篤行)
그러므로 맹자는 성(性)이 선하다고 말하시며 늘 요순을 들어 실증하면서 말씀 하시되 '사람은 다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어찌 우리를 속이셨으랴. 항상 마땅히 분발하여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성품은 본디 착하여 예나 이제나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구별이 없거늘, 성인은 왜 혼자 성인이 되며 나는 왜 홀로 중인이 되는가? 진실로 뜻이 확립되지 않고, 아는 것이 분명하지 않고, 행함이 독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뜻을 확립시키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도탑게 하는 것은 다 나에게 있다. 어찌 다른 데에서 구하랴.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려드는 사람은 또한 그같이 된다.' 하였으니, 나도 당연히 순과 같이 되기를 바랐던 것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모습을 아름답게 고칠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세어지게 고칠 수 없으며, 키는 작은 것을 크게 고칠 수 없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고칠 수 없어서이다.
그러나 심지(心志)는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 어질지 못한 것을 현숙하게 바꿀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허령(虛靈)은 타고난 것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서이다. 대체 지혜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짊보다 귀한 것은 없다. 왜 그다지도 어질고 지혜로와지려 들지 않고 하늘이 태워 준 본성만 손상하고 있는가. 사람이 이 뜻을 간직하고 굳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거의 도(道)에 가까우리라.
보통 사람들이 제 자신 뜻을 세웠다면서도 바로 노력하려 들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면서도 실상 배움에 향하려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 뜻이 학문에 두어졌다면, 인(仁)을 행함은 나에게 있어 하려고 하면 이를 수 있는 것인데, 왜 뒷날로 미루겠는가.
뜻을 세움이 귀하다는 것은 곧 공부를 시작하여 미치지 못할가 두려워하여 생각마다 물러서지 않으려 한 까닭에서이다. 만일 뜻이 정성스럽고 도탑지 못하여 그대로 날만 보낸다면 나이가 차 죽는 날까지도 어찌 성취가 있으랴.
율곡은 더 나아가 입지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병적 원인이 셋이 있다고 말하면서 첫째는 불신(不信)이요, 둘째는 부지(不智)요, 셋째는 불용(不勇)이라고 한다.
불신(不信)이란 무엇인가?
성현이 우리에게 일깨워 알게 해준 것이 명백하고 친절하여 진실로 그 말의 순서를 따라 점차 나아가면 우리도 성현이 되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고 그렇게 해서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현의 말은 사람들을 권유하기 위한 것이라 하여 믿지 않고 그 성현들의 글만 완독(玩讀: 비판적으로 책을 읽지 않고 다만 마구 읽어나감)하고 몸으로써 실천하지 않고 있으니, 그 읽고 있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만 몸소 실천하는 것은 속된 유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부지(不智)란 무엇인가?
사람이 타고난 성질이 만 가지로 다르나 힘써 알고 힘써 행하면 성공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혜롭지 못한 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의 자질이 부족함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알고 뒤로 물러서서 안일하게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도 심지를 바르게 바꾸고 노력하면 성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열심히 읽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불용(不勇)이란 무엇인가?
성현이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과 우리가 힘써 배우고 실천하면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알고 있다해도 항상 하던 버릇이 습관이 되어 힘을 내 일어나지 못한다. 어제 한 것을 오늘 고치기 어렵게 여기고 오늘 한 것을 내일 고치기를 꺼려하며 인순고식(因循姑息: 낡은 폐습을 버리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 바람)하여 한 발 앞으로 나갔다가 열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은 용기 없는 불용의 소치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읽는 것은 성현의 글이지만, 편안함을 바라는 것은 과거의 폐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장 혁구습(革舊習) : 구습(舊習)을 버리자.
사람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고서도 능히 용맹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성취함이 있도록 하지 못하는 것은 구습이 막아서서 방해하는 까닭이다. 구습의 명목을 다음과 같이 열기(列記)하노니, 만일 뜻을 가다듬어 매섭게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의 바탕은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1. 마음가짐을 게을리 하고 몸가짐을 함부로 하여 다만 편하게 놀기만을 생각하고 절제하기를 매우 싫어하는 것.
2. 항상 일이나 꾸미려 하고 조용히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여 분주히 드나들면서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는 것.
3. 함께 휩쓸리기를 즐기고 혼자 달르게 행동하기를 싫어하여 속된 무리들 속에 빠지는 것과, 조금 몸을 닦거나 조심을 해보려다가도 여러 사람들과 틀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왕따에 대한 두려움)
4. 문장이나 보기좋게 꾸며 세상의 명예나 취하려 하고, 옛글을 따다가 화려한 문장이나 꾸며 만드는 것.
5. 편지나 글씨에 공을 들이고, 음악이나 술마시기를 일삼으며, 공연히 놀며 세월을 보내면서 자기만이 맑은 운치를 가지고 사는 체 하는 것.
6. 한가롭게 아무 일도 없는 사람들을 모아 바둑, 장기나 두고 즐기면서 종일토록 배불리 먹고 내기를 다투는 것.
7. 부귀를 부러워하고 빈천을 싫어하여 좋지 못한 옷과 좋지 못한 음식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
8. 즐기고 욕심내는 것에 절도가 없어 능히 이를 끊고 억제하지 못하면서, 재물과 이익, 노래와 색(色)을 꿀맛같이 여기는 것.
버릇이 마음을 해롭게 하는 것들은 이같은 것이다. 그 나머지는 다 열거하기 어렵다.
이런 버릇이 사람들에게 뜻을 굳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도탑지 못하게 만들어, 오늘 한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치고서 저녁에 다시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떨쳐서 마치 한 칼에 뿌리째 끊어버리듯 마음을 깨끗이 씻어 털끝만큼도 남음이 없게 하고, 때때로 늘 깊이 반성하는 공을 들여 마음에 한 점 더러운 예전 버릇이 없게 하고서야 진학하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제3장 지신(持身) :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자.
이 장에서는 자기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는데 필요한 요목을 말하고 있다.
학문하는 자가 자기 몸을 올바로 갖는데 제일 중요한 것으로 공자는 "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을 주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자가 해석하기를, “사람이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이 없으면 일마다 모두 실상이 없어, 악하여지기는 쉽고 선하여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고 했다. 반드시 충신으로 주장을 삼고서 용맹스럽게 공부를 하고 난 뒤라야 성취가 있을 수 있다. 황 면재(黃勉齋)1)의 이른바, “진실한 마음가짐과 각고(刻苦)의 공부.”라는 두 마디가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성의를 다하는 마음과 진실하고 거짓 없는 마음을 가지고 용맹스럽게 공부를 해나간 뒤라야 능히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장에서는 구용(九容), 구사(九思)로부터 시작하여 사물(四勿), 즉 네 가지 해서는 안될 일과 칠호(七好), 즉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될 일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구용(九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고, 또 학문을 진보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데 있어서는 구사(九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한다.
구용(九容)
1. 족용중(足容重) : 발 거동은 무겁게 하고,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다. 장자(長者) 앞에서 걸을 적에는 여기에 구애될 수 없다.
2. 수용공(手容恭) : 손 거동은 공손하게 하며, 손 놀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손을 모으고 망동하지 않는다.
3. 목용단(目容端) : 눈 거동은 단정히 하고, 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바르게 보아야 하며 흘겨 보거나 째려 보아서는 아니된다.
4. 구용지(口容止) : 입 거동을 그치며,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항시 움직이지 않는다.
5. 성용정(聲容靜) : 소리 거동은 고요히 하고, 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야 하며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어서는 아니된다.
6. 두용직(頭容直) : 머리 거동을 곧게 하며, 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하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아니된다.
7. 기용숙(氣容肅) : 기운의 거동은 엄숙히 하고, 마땅히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하며 거친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아니된다.
8. 입용덕(立容德) : 서는 거동은 덕 있게 해야 하며, 똑바로 서고 않아서 엄연히 덕 있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얼굴 거동은 씩씩하게 해야 하는 것들이다.
9. 색용장(色容壯) : 얼굴 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閑談敍話可起風塵 閑談敍話能消風塵
한담서화가기풍진 한담서화능소풍진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가히 풍진을 일으키고, 한가로이 오가는 말이 능히 풍진을 없앤다.
一身收拾重千金 頃刻安危在處心
일신수습중천금 경각안위재처심
자기 한 몸 수습하기를 천금같이 무겁게 하라. 한 순간의 편안함과 위태로움도 마음가짐에 있다.
心深黃河水 口重崑崙山
심심황하수 구중곤륜산
마음을 황하수같이 깊게 하고, 입은 곤륜산같이 무겁게 한다.
구사(九思)
1. 시사명(視思明) : 눈으로 볼 때는 밝고 바르게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물을 볼 때 가리운 바가 없으면 밝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2. 청사총(聽思聰) : 귀로 들을 때는 그 소리의 참뜻을 발게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들을 때 막힌 바가 없으면 총명하여 들리지 않은 것이 없다.
3. 색사온(色思溫) : 표정을 지을 때는 온화하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얼굴 빛을 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골내고 성내는 기색이 없어야 한다.
4. 모사공(貌思恭) : 몸가짐이나 옷차람은 공손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5. 언사충(言思忠) : 말할 때는 참되고 거짓 없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를 하더라도 충성되고 신의가 있지 않은 것이 없게 한다.
6. 사사경(事思敬) : 어른을 섬길 때는 공경스럽게 할 것을 생각하며, 한 가지의 일을 하더라도 공경하거나 조심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
7. 의사문(疑思問) : 의심나고 모르는 일이 있을 때는 물어서 완전하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 속에 의심이 생기면 반드시 먼저 깨달음이 있는 이에게 잘 물어서 모르는 그대로 두어서는 아니된다.
8. 분사난(忿思難) : 분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어려움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분이 나면 중계하여 이성으로 스스로 견뎌야 한다.
9. 견득사의(見得思義) :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보았을 때는 그것이 의(儀)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이상에서 말한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는 항상 마음속에 두면서 자기 몸과 마음을 살피고 한시라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사물(四勿)
1. 비례물시(非禮勿視) : 예가 아니면 눈으로 보지 말라.
2. 비례물청(非禮勿聽) :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
3. 비례물언(非禮勿言) :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4. 비례물동(非禮勿動) :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이상 네 가지는 곧 자기 몸을 닦아나가는 요점이다. 이 예와 예가 아닌 것에 대해서 처음 배우는 자는 분별하기 어려운 것이니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이미 아는 바를 힘써 행한다면 그 생각하는 것이 전체의 예의에 반은 넘을 것이다.
학문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 있다. 만약 평소에 거처를 공손히 하고 일처리를 공경히 하고 남과의 접대에 성실했다면 이는 학문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것뿐이다.
의복은 호화로운 것을 입지말고 추위를 막을 뿐이며, 음식은 감미로워서는 아니 되며 주림을 채우면 그만이며, 거처는 편안하게 해서는 아니 되며 병나지 않게 하면 그만이다. 오직 이 학문의 공과 심술(心術)의 올바름과 위의(威儀)의 법칙에는 날마다 힘쓰고 힘써서 스스로 만족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칠호(七好) : 극기(克己) 공부로서 일곱 가지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일
1. 호색호(好色乎) : 색(色)을 좋아하지 않는가
2. 호리호(好利乎) :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가
3. 호명예호(好名譽乎) : 명예를 좋아하지 않는가
4. 호사환호(好仕宦乎) : 벼슬을 바라지 않는가
5. 호안일호(好安逸乎) : 안일한 것을 바라지 않는가
6. 호연락호(好宴樂乎) : 잔치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가
7. 호진완호(好珍玩乎) : 진기하고 볼 만한 물건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가
극기(克己) 공부가 일용(日用)에 가장 절실하다. 이른바 기(己)라 함은 내 마음에 좋게 느껴진 것이 천리(天理)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극기 공부는 사욕을 이겨나가는 공부로서 날마다 행동하는 일을 삼가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는 것이다.
말 많고 생각 많은 것이 심술(心術)에 가장 해롭다. 일이 없으면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지키고, 남을 접대할 적에는 말을 가려서 간중(簡重)히 하며 말 차례가 되었을 때 말을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말이 간결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이 간결한 자는 도(道)에 가까워 질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도(道)에다 마음을 쏟아 외물(外物)에 빼앗긴 바가 되어서는 안되며, 외물의 바르지 못한 것은 일체 마음에 유념하지 말아야 한다. 고을 사람이 모인 곳에서 만약 박혁(博奕)이나 저포(樗蒲) 따위의 놀음을 벌렸거든 마땅히 눈여겨 보지 말고 못본 체 물러나와야 하며, 만약 창기(娼妓)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만났거든 반드시 피해야 한다.
만약 향중(鄕中)의 큰 모임을 당하여 혹 존장(尊長)이 굳이 만류하여 피할 수 없거든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몸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악한 소리나 음란한 여색이 나에게 범접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잔치를 당하여 술을 마시더라도 만취가 되도록 마시면 아니되며 적당할 때 그만 마시는 것이 좋다.
모든 음식은 마땅히 알맞게 먹을 것이요 입맛대로 먹다가 기(己)를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말과 웃음은 마땅히 간중(簡重)히 할 것이요 시끄럽게 떠들어서 절도에 벗어나서는 아니되며, 행동거지는 마당히 점잖게 할 것이요 경솔하여 그 위의를 잃어서는 아니된다.
일이 있으면 그 이치로 일에 대응하고 글을 읽으면 정성으로 궁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밖에는 조용히 앉아서 마음을 거두어 잡아 이 마음이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이 없게 하고 환히 빛나서 혼매한 잘못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니, 이른바 '경으로 마음을 곧게 한다〔敬以直內〕'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안팎을 한결같이 해야 한다. 어두운 곳에 거처해서도 밝은 곳에 있듯이 하고, 홀로 있을 적에도 뭇 사람이 있는 곳에 있듯이 하여 내 마음을 마치 푸른 하늘에 밝은 해처럼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항시 한 가지의 의롭지 못한 일을 하거나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지라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가슴 속에 간직해야 한다.
거경(居敬)으로 그 근본을 세우고, 궁리(窮理)로 선2)을 밝히고, 역행(力行)으로 그 진실을 실천한다는 세 가지는 종신의 사업인 것이다.
생각에 사(邪)가 없을 것, 공경하지 않음이 없을 것, 이 두 글귀는 일생 동안 받아들여 사용해도 끝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벽 위에 걸어두고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된다.
매일마다 마음이 간직되지 않았는가, 학문이 진전하지 않았는가, 행실을 힘쓰지 않았는가를 스스로 점검하여 있었다면 고치고 없었다면 더욱 힘써 부지런히 하고 게을리함이 없어서 죽은 뒤에 그만두어야 한다.
< 주 >
1) 중국 송(宋)의 황간(黃幹)을 말함. 민현(縣) 사람으로 자는 직경(直卿). 학자들이 면재(勉齋) 선생이라 칭하였다. 젊어서 주자(朱子)에게 사사하였는데 주자는 그의 심지가 견실함을 칭하여 사위를 삼았다. 《宋元學案 卷六十三》
2) 이는 지선(至善), 곧 인심(人心)과 천명(天命)의 본연(本然)을 이르는 하나의 큰 덕목(德目)이다. 「중용(中庸)」20장에 “선을 밝히지 못하면 몸을 성실히 할 수 없다〔不明乎善 不誠乎身矣〕” 하였고 그 주석에 선(善)을 성(性)의 원두처(源頭處)라 하였다.
제4장 독서(讀書) : 책을 읽어서 이치를 구하자.
이 장에서는 독서의 의의와 자세, 그리고 독서의 순서, 방법을 말하고 있다.
1. 독서의 의의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에라야 자신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가 뚜렷하게 보여 진보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에 들어가려면 먼저 근본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현들의 마음쓴 자취와 착한 일을 본받는 것과 악한 일을 경계할 것들이 모두 이 글 속에 있기 때문이다.
2. 독서의 자세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마주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모으고 뜻을 극진히 하여 골똘히 생각하고 깊이 연구하여 의의와 취지를 깊이 이해하되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만일 입으로만 읽고서 마음으로도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도 실행하지 않으면 글은 글대로 나는 나대로 될 것이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3. 독서의 순서
소학(小學)으로부터 읽기 시작하여 오서 오경(五書五經: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과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를 골고루 다 읽은 후에 송나라 성현들이 저술한 성리학에 관한 글을 읽어야 한다.
먼저 「소학(小學)」을 읽어서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고 군주에게 충성하고 어른께 공경하고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근히 하는 도리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음미하고 힘써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대학(大學)」과 「대학혹문(大學或問)」을 읽어서 궁리(窮理)·정심(正心)·수기(修己)·치인(治人)의 도리에 관하여, 하나하나 참답게 알고 실행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논어(論語)」를 읽어서, 인(仁)을 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관하여, 하나하나 골똘하게 생각하여 깊이 체득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맹자(孟子)」를 읽어서, 의(義)와 이(利)를 분명히 가리고, 인간의 욕심을 막고 하늘의 이치를 유지하는 설(說)들에 관하여, 하나하나 밝게 살피고 확충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중용(中庸)」을 읽어서, 성정(性情)의 덕과, 미루어서 이루는 공효와 천지가 안정하고 만물이 생육하는 묘리를 하나하나 완색(玩索)하여 얻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시경(詩經)」을 읽어서, 성정의 사정(邪正)과 선악의 포계(戒)에 관하여, 하나하나 찬찬히 풀어서 감동을 일으키고 징계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예경(禮經)」을 읽어서, 천리의 절문(節文)과 의칙(儀則)의 제정된 차례에 관하여, 하나하나 강구하여 확립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다음에는 「서경(書經)」을 읽어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경륜과 큰 법칙에 관하여, 하나하나 요령을 터득하고 근본을 거슬러올라가 찾아야 한다.
다음에는 「역경(易經)」을 읽어서, 길흉·존망·진퇴·소장(消長)의 기틀에 관하여 하나하나 살피고 음미하며 궁구하고 연마하여야 한다.
다음에는 「춘추(春秋)」를 읽어서 성인이 선을 상찬하고 악을 징벌하는 억양조종(抑揚操縱)의 은미한 말과 깊은 의의에 관하여, 하나하나 정밀히 연구하여 적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위의 오서(五書)·오경(五經)을 돌려가며 익히 읽고 이해하기를 그치지 않아 의리가 날로 밝아지게 해야 하며, 송대(宋代)의 선현이 저술한 「근사록(近思錄)」·「가례(家禮)」·「심경(心經)」·「이정전서(二程全書)」·「주자대전(朱子大全)」·「주자어류(朱子語類)」와 그 밖의 성리학설(性理學說)들을 마땅히 틈틈히 정독하여, 의리가 항상 마음에 젖어듦이 사이 뜰 순간이 없게 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 남은 힘이 있으면 역사책을 읽어서 고금의 역사와 일이 변화하는 이치를 꿰뚫고 모두 알아내어 식견으로 기르되 이단(異端) · 잡류(雜類)의 올바르지 못한 글은 잠시도 보지 않아야 할 것이다.
4. 독서의 방법
무릇 독서하는 데는 반드시 한 책을 숙독하여 뜻을 다 알아내고 꿰뚫어 의심이 없고 난 뒤에 다른 책을 바꾸어 읽어야 한다. 많이 읽으려고 바쁘게 책장을 넘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제5장 사친(事親) : 부모에게 효도하자.
무릇 사람이 부모에게 당연히 효도하여야 함을 모르지는 않으나 효도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한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은덕을 갚으려 해도 하늘과 같아 끝이 없네”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식으로서 삶을 받음에 성명(性命)과 혈육(血肉)은 모두 부모가 끼쳐 준 것이므로 호흡, 기운과 맥박이 서로 연이어져 있다. 이 몸은 내 사사로운 것이 아니고 부모가 끼쳐 준 기(氣)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시경」에 “애달파라,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수고로우셨네” 하였으니, 부모의 은혜를 무어라 이르랴! 어찌 감히 몸을 제 것으로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하게 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늘 이러한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절로 부모에 대한 정성이 생길 것이다.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 한 가지 행동이라도 감히 제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명령을 받고서 행하여야 한다. 만일 당연히 할 만한 일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 승낙을 얻은 뒤에 행해야 하고,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곧바로 제 생각대로 하여서는 안된다.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부모의 침소에 가서 호흡을 낮추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옷이 더우신지 찬지와 몸의 안부를 물을 것이며, 저녁이면 침소에 가서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고 따뜻한가 써늘한가를 살피며, 낮에 모실 때에도 항상 부드러운 낯빛과 온순한 용모로 공경히 응대하고, 오른쪽이며 왼쪽 필요해 하시는 곳을 좇아 봉양하면서 극진히 그 정성을 다하고, 나들이할 때에는 반드시 절하고 아뢰고 절하고 뵈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양육되고서도 자기의 힘으로 부모를 봉양하지 않고 있다. 이렇듯 세월만 넘기다가는 끝내 부모를 정성껏 봉양할 시절이 없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살림을 몸소 주관하여 스스로 맛있는 반찬을 준비하고 난 뒤라야 자식의 직분을 닦았다 할 것이다. 만일 부모가 굳이 따라주시지 않으면, 비록 살림은 주관하지 못하더라도 당연히 주선해드리고 도와드리면서 힘을 다 쏟아 반찬을 맛있게 할 재료들을 구하여 어버이의 구미에 맞게 해 드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생각이 늘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에만 있다면 진미(珍味)도 반드시 얻어질 것이다. 예전에 왕 연(王延)3)이 한겨울 큰 추위에 자신은 온전한 옷을 입지 못하고서도 부모에게는 맛난 음식을 극진하게 해 드렸다는 것을 늘 생각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과 눈물을 흘리게 한다.
보통 가정에서 부자간의 사랑이 공경보다 넘치고 있으니, 반드시 예전 버릇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존경을 극진히 하여야 할 것이다. 부모가 앉고 눕던 자리는 자식이 감히 자기의 손님을 접대치 않아야 하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던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아야 한다.
부모의 뜻하신 바가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당연히 말씀하기 전에 받아들여 조금도 어겨서는 안되고, 이치에 해로운 일일 것 같으면 화평한 기색과 좋은 낯빛,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언하되 반복하여 아뢰어서 꼭 들어 주시도록 하여야 한다.
부모에게 병환이 있으시면 마음은 우울해 하고 기색은 꺾여 다른 일은 버려둔 채 다만 의원을 데려오고 약을 짓기에만 힘쓰다가 병이 나으시면 평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날마다 생활하는 중에 잠시라도 부모를 잊지 않고 난 뒤라야 효자라고 이름할 것이다. 저들 몸가짐을 삼가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면서 유희로 날을 보내는 자는 다 부모를 잊은 자들이다.
세월은 물 흐르듯 하여 어버이 섬김도 오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식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치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듯이 해야 한다.
옛 사람의 시에 "옛 사람이 하루 동안 그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三公: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의 부귀와 바꿀 바 아니다" 라고 하였으니 부모에게 날짜를 하루하루 아껴가면서 효도를 다한다는 애일지성(愛日之誠)4)은 이와 같은 것이다.
< 주 >
3) 중국 진(晉)나라 서하(西河) 사람으로 효행이 특히 뛰어났다. 《小學 六〉
4) 효자가 하루하루 세월이 흘러 어버이가 늙어가는 것을 애석해 하여 하루하를 아낀다는 말이다. 「논어(論語)」이인(里仁)의 “부모의 연세는 ……〔父母之年〕” 주석에 '날짜를 아끼는 정성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愛日之誠 自有不能己者〕'고 하였다.
제6장 상제(喪制) : 상례를 다하자.
율곡은 "대체로 초상이란 그 슬퍼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예법에만 충실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예법에는 부족하더라도 슬퍼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초상 치르는 일이란 그 슬퍼하고 공경하는 것을 다할 뿐이다" 라고 강조한다.
또 부모의 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슬퍼하여 생명을 잃는 것이 큰 불효라며 경계하고 있다.
상제는 의당 한결같이 주 문공(朱文公:朱熹)의 「가례(家禮)」를 따르되 만일 의심나고 모를 것이 있으면, 예를 아시는 선생이나 어른에게 물어서 반드시 예를 다하여야 옳다.
복(復)5)할 때에 세속에서 으례 이름을 부르는데 이는 예가 아니다. 젊은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도 있겠으나, 어른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것이니 생시에 부르던 호칭대로 부르는 것이 옳다. 부녀자라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더욱 마땅하지 않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喪主)가 되어, 모든 축문에 다 지아비가 아내에게 고하는 식례를 써야 한다.
부모가 처음 돌아가시면 처 · 첩과 며느리 및 여자들은 다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머리를 풀고 웃옷섶을 띠에 끼우고 버선을 벗어야 한다. 소렴(小斂)을 하고서는 남자는 왼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으며 부인네도 머리를 묶는다 만일 남에게 양자간 아들이나 시집간 딸은 다 머리를 풀거나 버선을 벗지 않는다. 남자는 관을 벗는다.
시체가 방에 있고 아직 빈소를 차리기 이전 남녀가 시체곁에 있을 때에는 그 석차가 남쪽이 웃사람의 석차가 되니, 시체의 머리가 두어진 곳으로 윗자리를 삼아서이다.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는 여전히 당상에서 남쪽을 윗자리로 하고 남자는 뜰에서 북쪽을 윗자리로 해야 하니, 빈소가 있는 쪽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발인(發引)할 때에는 남녀의 석차가 다시 남쪽을 윗자리로 삼으니, 영구가 있는 곳이 윗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면서도 각기 예의가 담겨져 있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예를 모르고서, 조객이 위문할 때마다 전혀 일어나 움직이려 않고 단지 엎드려 있기만 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객이 영좌(靈座)에 절하고서 나오면 상주는 당연히 상차(喪次)에서 나와 조객에게 재배하고 곡하여야 한다. 조객도 답배하여야 한다.
상복은 질병이나 일할 때가 아니면 벗을 수 없다.
「가례(家禮)」에, “부모의 상을 당하면 성복(成服)6)하는 날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卒哭)하는 날 비로소 소식(蔬食)에 곱게 봐?않은 곡식으로 지은 밥. 물만 마시고 국을 먹지 않음. 채소·과실은 먹지 않다가, 소상(小祥) 뒤에 비로소 채소와 과실을 먹는다.” 국도 먹을 수 있다. 하였다. 예문(禮文)이 이와 같으니 병이 없으면 예문대로 따라야 한다. 어떤 사람은 예에 지나쳐서 3년토록 죽만 먹는 이가 있으나 만일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서 조금도 억지로 하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면, 비록 예에 지나치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고 부모를 속이는 것이다. 절대 삼가야 한다.
지금 예를 아는 집에서는 흔히 장사지낸 뒤에 반혼(返魂)7)한다. 이것은 정말 바른 예이다. 다못 세속 사람들이 잘못 본따 여묘살이8)하는 풍속을 폐지하고 반혼한 뒤에 각기 제집으로 돌아와 처자와 한데 거처하여서 예법을 크게 무너뜨리니 매우 한심하다. 모든 부모상을 당한 사람은 스스로 헤아려보아 하나하나 예문에 따라 조금도 부족이 없을 자신이 있으면 예대로 집에 반혼하고, 혹시 그렇지 못하면 옛풍속대로 여묘살이를 하는 것이 옳다.
어버이의 상에 성복 전에는 울음이 입에서 그치지 않고 기진하면 하인이 대신 곡하게 한다. 장사지내기 전에는 때를 정하지 않고 슬퍼지면 곡하며, 졸곡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때만 곡한다. 예문은 대개 이러하나, 만일 효자가 정이 지극하다면 울음이 어찌 정한 횟수가 있으랴. 초상에 애통이 부족하고 예절이 넉넉한 것보다는 차라리 예절이 부족되고 애통이 넘치는 것이 낫다. 상사는 애통과 공경을 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증자(曾子)의 말에, “사람이 스스로 그 극진한 정성을 다할 자 있지 않으나 반드시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때에는 정성을 다한다." 하였으니, 상사는 부모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여기에 정성을 쓰지 않으면, 어디에 정성을 쓰겠는가. 예전에 소련(少連) · 대련(大連)이 거상(居喪)을 잘하여, 3일 동안 게을리하지 않고 3개월 동안 늦추지 않고 1년 동안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였으니9) 이것이 바로 거상하는 방법이다. 효성이 극진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이렇게 할 수 있으나 미치지 못하는 자는 힘써 이것을 따라야 한다.
거상하는 사람으로서 간혹 자질은 훌륭하나 배우지 못한 자가 그저 대대로 지키는 것만이 효도인 줄만 알고 몸을 상하는 것이 바른 도리를 잃은 것인 줄 몰라 지나친 슬픔으로 몸을 상해 병이 벌써 생겼는데도 권도(權道: 임시 변통의 방법. 병이 나면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를 차마 따르지 못하다가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는 사람이 혹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슬픔에 몸을 여위어 생명을 손상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고 한다.
무릇 복을 입을 친척의 상사를, 만약 객지에서 부음을 들었으면 위패를 마련하고서 곡을 해야 한다. 만일 분상(奔喪)을 하게 되면 집에 와서 성복하고, 만일 분상을 못하면 4일 만에 성복하고, 만일 재최복(齊衰服)10)이면 아직 성복하기 이전의 3일 중에는 조석으로 위패를 뫼시고서 곡하여야 한다. 재최복으로서 대공(大功 : 9개월)11)으로 낮추어진 자도 이와 같다.
사우(師友)로서 의리가 중한 이와, 친척으로서 복은 없지만 정분이 두터운 이와 서로 사귀는 교분이 친밀한 이는 모두 부음을 들은 날 만일 길이 멀어서 갈 수 없으면 위패를 마련하고서 곡하여야 한다. 스승은 정의(情義)의 엷고 깊음에 따라 혹 심상(心喪)12)으로 3년 하기도 하고 1년 하기도 하고 9개월 하기도 하고 5개월 하기도 하고 3개월 하기도 하며, 벗은 가장 중하게 하여도 3개월을 넘길 수 없다. 만일 스승의 상에 3년이나 1년의 복을 입으려는 자가 분상하지 못하면 조석으로 위패를 마련하고서 4일간 곡하다가 그쳐야 한다. 4일째 아침에 그친다. 정이 중한 자라면 이 한정에 구애되지 않는다.
무릇 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룻 날 정하여진 복을 입고서 회곡(會哭)한다. 사우(師友)에는 복이 없으나 역시 이와 같다. 복을 입을 달수가 다 차면 다음 달에 회곡하고 복을 벗는다. 그 사이에도 슬퍼지면 곡하는 것이 좋다.
무릇 대공(大功)13) 이상의 상사에 장사하기 이전에는 일 없이 나들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남에게 조상하는 것도 옳지 않다. 늘 상사를 주선하고 예문을 강구하기를 일삼아야 한다.
< 주 >
5) 사람이 막 숨졌을 때 죽은 사람이 평소에 입었던 저고리를 들고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저고리의 동정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저고리의 허리춤을 잡고서 죽은 사람의 평소의 호칭을 세 번 부르는 초혼의식. 이미 떠난 영혼이 행여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시이다. 세속에서는 혹 그 옷을 지붕 위에 한참 그대로 두기도 하나 이는 잘못이며 지붕에서 내려올 때 그 옷도 가지고 내려와 시체를 덮는 것이 옳은 일이다. 《四禮便覽 喪禮 復》
6) 사람이 죽은 지 나흘 째 되던 날 새벽에,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복을 차려 입는 것. 3년·1년·9개월, 5개월·3개월 등의 차등에 따라 입는 옷도 서로 다르다 《四禮便覽喪禮 成服》
7) 묘소에서 신주를 몸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이 신주를 3년 동안 모시고 제를 올린다. 《四禮便覽 喪禮 反哭》
8) 묘소에 움막을 짓고서 3년 동안 지내는 일. 이 때는 물론 반혼(返魂)하지 않으며 또 남자만이 이 움막에서 거처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른 예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자공(子貢)이 공자가 돌아가셨을 때 시행한 것이 기록에 보이고 그 뒤로는 한·당(漢唐)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孟子 文公上》·《四禮便覽 喪禮 反哭注》
9) 이 대문은 「예기(禮記)」잡기(雜記) 하에 보인다. 소련(少連)·대련(大連)은 어느 때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동이족(東夷族)이라고만 밝혀져 있다.
10) 여기에는 3년과 1년·5개월·3개월 등의 나뉨이 있다. 곧 1년을 이른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11) 원래는 1년 복에 해당하나 어떤 경우로 9개월로 낮추어 진 것을 이른다. 그것은 양자간 사람이나 시집간 사람들의 경우에서만 생겨난다. 본래 양자가지 않고 시집가지 않았으면, 으례 1년을 복상(服喪)하여야 할 사람들에게 환경의 변화로 한 등급을 내려 입음을 이른 것이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12) 스승의 죽음에 제자들이 마음으로 입는 상(喪)이다. 부모의 상과 똑같이 하면서 오직 바깥으로 드러난 옷가지 등의 예절이 없어 붙여진 말이다. 《禮記 檀弓 上》
13) 9개월 복을 이른다. 4촌 형제가 그에 해당한다. 《四禮便覽 喪禮 成服》
제7장 제례(祭禮) : 제사에 정성을 다하자.
제사는 의당 「가례(家禮)」에 따라, 반드시 사당을 세워서 선대의 신주를 모시고 위토답(位土畓:제전)을 마련하고 제기(祭器)를 갖춘 다음 종자(宗子)가 이것을 주관하여야 한다.
사당을 주관하는 이는 매일 새벽에 대문 안에서 재배하고 주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관하는 사람을 따라 함께 뵙는 것도 무방하다. 나들이 할 때는 반드시 고하여야 한다.
혹 수재(水災)나 화재(火災)가 생기거나 도둑이 들면 먼저 사당부터 구하여 신주와 물려온 책들을 옮기고 다음으로 제기를 치우고 난 뒤에 집안의 재물을 구하여야 한다.
설날 · 동지· 초하루 · 보름에는 사당에 참례하고, 단오 · 추석 등 풍속상의 명절에는 그 계절의 음식을 올려야 한다.
시제(時祭)14)에는 산재(散齋)를 4일 하고 치재(致齋)를 3일 하며, 기제(忌祭)에는 산재를 2일 하고 치재를 1일 하며, 참례(參禮)15)에는 재숙(齋宿) 1일을 한다.
산재라는 것은 조문하지 않고 문병하지 않고 육식(肉食)하지 않고 술마셔도 취하기까지 하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나들이하지 않고 전심으로 제사 받을 부모나 조상만을 생각하여, 거처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웃고 말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좋아하시던 것을 회상하고 즐기시던 음식을 회상하는 것을 이른다.
이렇게 하고서야 제사를 드릴 때에 형용이 보이는 듯하고 음성이 들리는 듯할 것이다. 정성이 지극해야 신이 흠향하신다.
대체로 제주(祭主: 제사의 주장이 되는 사람)는 사랑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정성을 다할 뿐이다. 가난하면 집의 형편에 어울리게 하고, 병이 있으면 자신의 기운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야 한다. 재물과 자신의 기운이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의당 의식대로 행해야 한다.
묘제(墓祭)와 기제를 세속에서 자손간에 돌려가며 지내는데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아가며 지낸다 하더라도 모두 묘소에서 제사를 올리니 그런대로 괜찮으나 기제는 신주(神主)에 제사 지내지 않고 지방(紙榜)에 제사를 지내야 하니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아가며 지내더라도 제물을 갖추어 가묘(家廟)에서 지낸다면 거의 괜찮을 것이다.
상제(喪祭)는 두 가지 예절에는 자손으로서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할 부분이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는 다시 봉양할 수 없으니, 만일 초상에서 예를 다하지 않고 제사에서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면 그 영원한 애통을 붙일 곳이 없고 흘려버릴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다. 자식된 정의에 어떠하겠는가. 증자(曾子)의 말에, “신종(愼終:초상에 예를 다함)하고 추원(追遠:조상을 추모하여 제사 지내는 것)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간다." 하였으니, 아들된 자는 의당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
요즈음 풍속에서 흔히 예를 몰라, 제사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다르니 심히 가소롭다. 만일 예법대로 한번 제재하지 않게 되면 끝내는 문란하고 질서가 없어 오랑캐의 풍속이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제례를 초록하여 뒤에 부록으로 붙이고 또 그것을 위해 도식을 마련했다. 자세히 살펴 본떠 행하되 만일 부형이 들어 주시지 않거든 곡진히 아뢰어서 기필코 바르게 되도록 해야 한다.
< 주 >
14) 사시제(四時祭)가 원 말이다. 사시제는 매 계절의 중간 달에 정침(正寢)에서 지내는 제사로 육갑(六甲)으로 따져 천간(天干)에 정(丁)이 드는 날이나 지지(地支)에 해(亥)가 드는 날을 가려 지낸다. 세속에서 5대가 넘어 묘제(墓祭)로 지내는 제사를 시제(時祭)라 하니 잘못이다. 《四禮便覽 祭禮 四時祭》
15) 이는 설날·동지·초하루·보름 등에 사당을 참배하는 예절이다. 이때 조상들에게 새로 난 과실들을 올리기도 한다. 《四禮便覽 祭禮 祠堂》
제8장 거가(居家) : 집안을 편안히 하자.
집에 있을 때 다스리고 또 지켜야 할 일을 열거하고 있다.
무릇 집에 있을 적에는 신중히 예법(禮法)을 지켜 처자와 집안 사람들을 거느려야 한다. 직분을 나누고 일을 주어 성공을 책임지우고, 재용(財用)의 씀씀이를 제정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하고, 가산(家産)의 정도에 맞추어 위아래 사람들의 의식(衣食)과 길흉의 비용을 충당하되 모두 품절(品節)을 두어 고르게 해야 하고, 낭비를 줄이고 사치를 막아 늘 조금의 여분을 두고 뜻밖의 일에 대비하여야 한다.
1. 형제에 대하여
형제는 같은 부모에게서 몸을 물려받은 자들이니 모두 한 몸과 같은 것이다. 당연히 저와 나의 간격이 없이 생각하여 음식과 의복을 있고 없는 대로 모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만일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곧 한 몸 가운데서 팔다리와 몸이 한 군데는 병들고 한 군데는 건강한 것이다. 몸과 마음이 어찌 한 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이 형제 사이에 서로 우애하지 않는 것은 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에게 만일 착하지 못한 행실이 있으면 의당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진정으로 규간하여 차츰 이치를 깨달아 기어코 감동케 해야 한다. 갑자기 성난 기색과 거슬리는 말을 나타내 화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2. 부부에 대하여
부부사이에도 잠자리에서 흔히 정욕에 방종하여 위의를 잃는다. 때문에 부부가 서로 버릇없이 굴지 않고 잘 서로 공경하는 이가 매우 적다. 이와 같고서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바로잡으려면 어렵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지아비는 따뜻하면서도 의(義)로써 규제하고, 아내는 유순히 올바르게 받들어 부부간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아야만 가정의 일이 다스려 질 수 있다.(부부유별) 만일 이제까지 서로 버릇없이 굴다 갑자기 서로 공경하려면 그것은 쉽게 행하여 지지 않는다. 모름지기 아내가 만일 나의 몸가짐과 말이 한결같이 바른 것을 보게 되면 반드시 차츰 미더워하면서 순종할 것이다.
부부간에 너무 지나치게 친밀하다보면 위엄있는 몸가짐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수가 많으니 친밀한 중에도 서로 공경하는 생활을 반드시 해야 한다.
3. 자식에 대하여
자식이 자라서 조금 지식이 있게 되면 마땅히 착한 길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고 벌써 성장하여 버리면 그른 것에 물들고 마음이 흩어져 가르치기 매우 어렵다. 가르치는 차례는 당연히 「소학」에 따라야 할 것이다.
무릇 한 가정에서 예법(禮法)이 성행하고 글을 읽고 글씨 쓰는 이외의 다른 잡기(雜技)가 없으면 자제들도 밖으로 쏠리거나 학문을 버리게 되는 염려는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도 내 자식과 같으니, 그를 사랑하고 교육하는 것을 당연히 균일하게 하여야 할 것이요, 경중(輕重)과 후박(厚薄)을 두어서는 안된다.
4. 가난에 대하여
집안이 가난하고 궁색하면 반드시 이 가난에 쪼들려 괴롭기 마련이다. 이래서 필경 자기 자신이 지켜왔던 올바른 마음을 잃는 수가 많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궁해도 하지 못할 일은 하지 말 것이요, 가난해도 취하지 못할 물건은 취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군자는 도(道)를 터득하지 못하였음을 걱정하고 가난을 근심하여선 안된다.
만일 집이 가난하여 살아갈 수 없으면 당연히 곤궁을 구제할 계책을 생각하여야 하나, 굶주림과 추위를 벗어날 뿐 쌓아두고 넉넉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두어선 안된다. 또한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속에 담아 두어선 안된다.
예전의 은자(隱者)는, 신을 삼아서 먹고 산 자도 있고, 나무하고 고기 잡아 살아간 자도 있고, 지팡이를 꽂아 두고 김을 매던 사람도16)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부귀가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까닭에 이같은 생활에도 마음이 편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해와 빈부를 헤아리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의 해가 되지 않겠는가.
학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벼이 여기고 빈천을 지키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살아가기가 구차하면 반드시 가난에 시달려 그 지킬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학자는 바로 이 점에 노력하여야 한다. 옛사람의 말에, “곤궁할 때에 그가 하지 않는 바를 보고 가난할 때에 그가 취하지 않는 바를 보라." 하였고, 공자는 이르기를, “소인은 궁하면 도리에서 벗어난다." 하였다.
그러니 만일 가난하고 궁색한 것에 마음이 동요되어서 의리를 행하지 못한다면 학문을 해서 무엇에 쓸 것인가?
5. 벼슬아치가 남을 도와주는 경우
벼슬아치가 국가에서 받는 봉급을 자기가 쓰고 남아서 남의 급한 일에 돌봐주는 것은 좋으나 공금(公金)이나 공곡(公穀)을 가지고 남을 위하여 쓴다면 이것은 받는 사람까지도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율곡은 경계하고 있다.
무릇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는 경우에 반드시 의로운가 아닌가를 냉정하게 생각하여, 의롭거든 취하고 의롭지 않거든 취하지 않아 털끝만큼도 허술히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견득사의) 친구 사이에는 재물을 통용하는 의리가 있으니 주는 것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 다만 내가 못살게 가난하지 않은데 주는 쌀이나 옷감이면 받을 수 없다. 명분에 서는 것은 상사에 부의, 여행에 노자, 혼사에 부조, 양식이 없을 때에 보조하는 따위들이다.
이와 같더라도 만일 대단히 약한 삶으로서 내 마음에 더럽고 미웁게 여겨지던 사람이라면, 그가 주는 것에 명분이 서더라도 그것을 받으면 마음이 불안할 것이다. 마음에 불안하면 억지로 받지 않아야 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하지 못할 일을 하려 말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것이 곧 의(義)를 행하는 방법이다.
중국에서는 각 읍의 수령에게 사봉(私俸)이 있으므로 그 여유를 남겼다 남의 곤궁을 도와 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령에게 따로 사봉이 없고 다만 공곡(公穀)으로 일용의 수요를 이바지하므로, 만일 개인적으로 남에게 주면 다소를 막론하고 다 죄책이 따른다. 심하면 장죄(贓罪)를 지기까지 하여 받은 자도 그렇게 된다.
선비로서 수령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은 곧 금지된 령을 범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의 나라 국경에 들어가면서 금하는 법령이 무엇인가를 묻는다고 하였다. 그 나라에 살면서 어찌 금하는 법령을 범하랴. 수령이 주는 것은 대체로 받기 어렵다. 만일 관고(官庫)의 물건을 개인적으로 주거든, 그 사람과의 친의와 명분의 유무와 수량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말고 모두 받지 않아야 한다. 친분이 두터운 수령이 도와 준다면 받을 수도 있다.
< 주 >
16)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자로(子路)가 뒤쳐져 지팡이로 삼태기를 멘 자를 만나 선생님을 보았느냐고 묻자, '손발을 움직이지 않고 오곡을 분간하지 못하는데 누가 스승이란 말인가' 하고 지팡이를 땅에 꽂아 두고 김을 매더라고 하였다. 이 말을 공자께 아뢰자 공자는 '은자(隱者)'다고 하였다" 했다.
제9장 접인(接人) : 대인관계에 공경을 다하자.
이 장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경우를 말하고 있다.
1. 연령에 대하여
무릇 사람을 접대함에는 온화하고 공경하기를 힘써야 한다.
나이가 자기보다 스무살이 위이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섬기고, 10년이 위이면 형으로 섬기고, 5년이 위라도 조금은 공경하여야 한다. 가장 몹쓸 것은 자신의 학문을 믿고서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기운이 세다고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2. 친구를 택하는 것에 대하여
친구를 선택하는 데는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착한 일을 좋아하며 방정하고 엄숙하고 곧고 진실한 사람을 골라서,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규제(規戒)를 허심(虛心)으로 받아들여 나의 결함을 다스리고, 만일 게으르고 장난을 좋아하며 유약하여 말이나 잘 꾸미고 정직하지 못한 자와는 사귀지 말아야 한다.
마을 사람으로서 착한 자와는 반드시 친근히 하며 서로의 사정을 얘기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착하지 못한 자라도 나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위를 드러내지 말며 다만 범연히 대접할 뿐 서로 왕래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전에 서로 알던 사이라면 만날 때에 안부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 받지 않으면 자연히 차츰 멀어지되 원망이나 성을 내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다.
소리가 같으면 서로 응하고, 기상이 같으면 서로 찾게 되는 것이다.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면 내가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게 되고, 학문하는 선비도 역시 나를 찾을 것이다. 저들 학문한다고 내세우면서 집에 잡된 손님이 들끓고 시끄러이 날을 보내는 것은 반드시 그가 즐기는 것이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절하거나 읍(揖:)하는 것에 대하여
무릇 절하고 읍(揖: 손을 마주잡고 머리 위까지 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예)하는 것을 미리 정할 수는 없다. 대개 아버지의 친구이면 절하고, 동네에서 나이가 자기보다 15세 위인 사람에게는 절하고, 벼슬이 당상(堂上)에 오르고 나보다 10년이 위이면 절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나이가 20세 위인 사람이면 당연히 절해야 한다. 그 사이에 높이느냐 내리느냐의 세세한 결단은 때에 따라 맞출 것이지 꼭 이 등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생각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옳다. 「시경」에, “다사롭게 공손한 사람이여, 덕의 기틀이고녀.” 하였다.
4. 남이 나를 헐뜯는 경우에 대하여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만일 나에게 참으로 비방받을 만한 허물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꾸짖어 마음 속으로 시비를 가려 잘못을 고칠 것이요, 만일 나의 허물이 매우 작은데도 그가 주워모으고 덧붙였다면 그의 말은 비록 지나친 것이나 내게 실상 비방받을 근거가 있었으니, 역시 전의 잘못을 매섭게 끊어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하고, 만일 내게 본디 허물이 없는데 헛된 말을 꾸몄다면 그는 망령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망령된 사람과 무슨 거짓과 참을 따지겠는가. 또한 그런 헛된 비방은 마치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구름이 허공을 지낸 것과 같다.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처신하여 비방이 생겼을 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써 노력할 것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유익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을 듣고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시끄러움도 마지 않고 기필코 자기가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은 더욱 늘어난다.
옛날 어떤 사람이 남에게 비방을 듣지 않는 방법을 물으니 문중자(文中子:수나라의 왕릉)가, “그것은 자기 몸을 스스로 닦는 것이 제일 좋다.” 하였으며, 덧붙여 주기를 청하자, “변명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이야말로 배우는 사람이 본받을 법이라 할 것이다.
5. 기타에 대하여
무릇 선생 · 장자(長者)를 모시고서는 의리의 깨닫기 어려운 점을 질문하여 학문을 밝히고, 향당(鄕黨)의 장로(長老)를 모시고는 공손히 조심하며 함부로 말하지 말고 묻는 것이 있으시면 공경히 사실대로 대답하여야 한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에는 도의를 강마(講磨)하고 글얘기와 의리만을 말할 뿐이지, 세속의 비루한 말, 당면한 정치의 잘잘못, 수령의 어짊과 그름, 남의 잘못은 일체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고장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에는 묻는 데에 따라 응답은 하더라도 끝까지 비루한 말을 꺼내지 않아야 하며, 점잖은 몸가짐을 유지하면서도 절대 스스로 높은 체하는 기색을 가져서는 안된다. 오직 착한 말로 달래어 기필코 이끌어 학문에 향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
어린이들과는 차근차근 효(孝)·제(悌)·충(忠)·신(信)을 설명하여, 착한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를 마지않으면 고장의 풍속은 점점 변화할 것이다.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며 또 자애스러워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고 사물을 건져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남을 침해하고 사물에 손해끼치는 따위 일은 터럭만큼도 하지말고 마음에 두지도 말아야 한다. 무릇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롭다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기까지 한다. 때문에 학자는 먼저 이욕을 끊고서야 인(仁)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시골에 사는 선비는 공무나 의례상 뵙거나 마지못할 일이 아니면, 관부(官府)에 드나들어선 안된다. 수령이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도 역시 자주 가서 볼 수는 없다. 더구나 친구도 아닌 바이겠는가. 의리에 어긋나는 청탁은 일체 하지 않아야 한다.
제10장 처세(處世) : 처세는 자신을 수양하고 천명에 순응하자.
이 처세장에서는 주로 과거와 벼슬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특히 벼슬을 하기 위해 과거 공부에만 매달리는 폐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전 학자는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학문이 성취되면 웃사람이 들어 등용하였다.
대개 벼슬이라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요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예전같지 않고 과거(科擧)로 사람을 뽑아 비록 하늘을 관통하는 학식과 남이 따르지 못할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고서는 도(道)를 펼 직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때문에 아비가 자식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에게 권하는 것이 과거 밖에 다시 다른 방법이 없게 되었다. 선비의 습속이 변한 것은 주로 이 때문이다.
다만 요즈음의 선비로 흔히 부모의 희망과 문호(門戶)의 계책을 위해 과거 공부를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수양하고 때를 기다려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천명에 맡길 것이요, 탐내고 조급하고 애태워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공부가 거치적거려 학문에 전념하지 못하였다.”고 하나, 이것은 핑계의 말이요 성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다. 옛사람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몸소 농사를 지은 자, 품팔이를 한 사람, 쌀을 지고 다닌 이가 있었다. 농사짓고 품팔고 쌀을 등에 졌을 시절에 그 노고가 심하였을 것이다.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어버이를 위하여 친히 노력하며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은 힘으로 글을 배워 덕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 선비들은 옛 사람같이 부모를 위하여 친히 노력하는 자를 볼 수 없다. 다만 과거 공부 한 가지만이 그 부모의 바라는 것으로서 이에 벗어나지 못하고 공부해야 한다. 과거 공부가 비록 이학(理學)과는 다르나, 역시 앉아서 글을 읽거나 글을 짓는 일이다. 농사 짓고 품 팔고 쌀을 등에 지기보다는 편하기가 백배 뿐 아닐 것이다. 더구나 남은 힘으로는 성리(性理)에 관한 서적을 읽을 수도 있음이랴.
다만 과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으례 득실에 마음이 동요되어 항상 조급하므로 도리어 힘을 들이는 일이 심술을 해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의 말에, “공정(功程: 공부하는 과정)에 방해될까 염려가 아니라, 뜻을 빼앗길까 걱정이다.”고 하였다. 만일 능히 과거 공부를 잘 해내면서도 마음에 지킴을 잃지만 않는다면, 과거 공부와 이학(理學)이 병행하여도 서로 어긋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사람은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힘을 쏟지 않고, 이학을 한다하면서 실지로는 마음 쓰지 않고 있다. 만일 과거 공부를 책임 지우면 “나는 이학에 뜻을 두어서 그것에는 잘 마음 내키지 않는다” 하고, 만일 이학을 책임 지우면 “나는 과거 공부가 거리적거려 진실된 공부에 힘을 쏟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편리한 두 곳을 차지하고서 일 없이 날만 보내다 마침내는 과거 공부와 이학 두 가지 모두 성취된 바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늙고 나서 뉘우친들 어떻게 되돌이키랴. 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만을 급급해 하고 벼슬에 오른 뒤에는 또 잃을까 걱정한다. 이같이 골몰하여 본심을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찌 두렵지 않으랴.
벼슬이 높은 자는 도를 행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도를 행할 수 없으면 물러가야 한다.
만일 가난하여 생활을 위해 벼슬하지 않을 수 없다면, 모름지기 중앙의 관직을 사양하고 지방의 관직을 구하며, 높은 지위를 사양하고 낮은 지위를 구하여 굶주림과 추위나 면해야 한다. 비록 생활을 위한 벼슬이더라도 청렴하고 부지런하게 공무를 받들어서 직무를 다하여야 하며, 직분을 헛되게 하고서 놀고 먹기만 하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