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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와 사진

삼천포 - 2026 현충일

작성자산거북이|작성시간26.06.06|조회수10 목록 댓글 0

삼천포에는 벌리에 한 군데, 사천에 한 군데, 그러니까 이곳 사천시에 통털어 스타벅스가 단 두 군데다. 우리 집 주변에 온통 스벅 매장인데 비하니 갑자기 무척 낯선 시공간으로 빠져든 듯하다.

벌리의 스벅에 앉아 고팠던 커피를 마시니 한층 편안해졌다. 삼천포 용궁수산시장은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해졌다.

아침 일찍 삼천포로 진입하자 메텔의 눈에 와룡산이 먼저 들어왔다. 와룡산! 저 산릉의 발길과 호흡들이 그리워. 어? 좌룡동도 있네? 그러면 용이 누웠다 앉은 거야? ㅋㅋ

...ㅋㅋ 기발하네! 그럼 오른쪽으로 입룡마을이 벌떡 서 있을 거고...
호호호! 최종적으로 바닷가는 비룡동일지도 몰라.

키들거리며 용궁수산시장에 다다랐다. 삼천포는 모든 것이 차분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선구동의 그 문학소녀는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삼천포 나들이

부산 출신인 메텔이 결혼해서 진주에서 살림을 꾸리면서 신기했던 게 세 가지 있었다고 했다.

첫째, 새끼 조기를 반으로 깔끔하게 살을 갈라 전을 부치는 것이 맛나고 신기했고, 둘째, 탕국에 문어를 넣으니 검보라색으로 국 빛깔이 변하는 것은 적응이 안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세번째로, 반찬 투정 없는 착한 신랑은 유난히 생선을 좋아하는데, 특히 서대와 민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부 경남인들의 생선에 대한 경험을 체득하게 된다.

부산에는 좀처럼 서대를 구하기 힘들고, 진주 중앙시장은 서대가 비싸다. 요즘 기업형으로 반건조 생선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것은 상품 크기도 작고 가격도 비싸니, 생산지 삼천포가 싱싱하고 씨알 굵고 최적이다.

오늘은 그래서 오랜만에 삼천포 나들이를 한 것이다. 법정 금어기는 아니지만 여수 삼천포 일원의 서대 포획 조업 금어기(7월)가 오기 전에!

삼천포항

진영부터 함안까지 곳곳에 소나무들이 붉게 물들었다. 솔잎혹파리인지 재선충인지 참으로 지겹기도 하다. 총력적인 방제가 없었다면 벌써 소나무는 한반도에서 씨가 말랐을지도 모른다.

산허리의 밤나무들은 있는 대로 힘을 다해 아이보리 컬러의 꽃을 피우고 있어서 밤나무 분포를 쉽게 알 수 있다. 아카시꽃 피고 송홧가루 날리고 밤꽃 향기에 자극되면 불쑥 여름의 경계에 든 것이다.

항구. 삼천포항은 노산공원 좌우로 삼천포항과 팔포항이 있다. 각각 어항漁港과 여객터미널이 있는 항구인데, 산뜻하고 깔끔해졌다. 서쪽 저편의 대방은 그 옛날 쥐포를 말리던 드넓은 곳이었는데 지금도 단정한 어항이 되었다.

자연도 인간도 끊임없이 부지런하다.


70리길은 정확히 28km

국민학교 시절부터 방학이면 혼자 삼천포 큰 이모댁에 가서 며칠씩 가 있었다. 진주서 삼천포는 70리라고 들었다. 나중에 커서 진주 삼천포간 도로의 거리가 정확하게 28km인 것을 알고 놀랬다. 10리가 4km이니 딱 들어맞는 거리였다.

쓸쓸한 노년을 보내던 큰이모는 나만 보면 '공부 잘하는 일본학생' 같다고 혼잣말을 하셨다. 당신의 생애에 깊게 드리워진 쓸쓸함이 묻어있는 느낌을 눈치챘기 때문에 내게 그런 말을 하신 것은 비밀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모부는 일본에 유학했던 반도인이었고 나중에 조총련의 고위급이 된 공산주의자였던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이 땅을 밟지 못했고, 해빙(1975년 조총련 조국방문)이 되었어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내 초롱한 얼굴에서 젊은 시절의 그 이모부였던 사람의 영혼이 비쳤을까? 공부 잘하던 일본학생이라니...

70리길 거리로 멀어진 추억이 삼천포 3호 광장 교차로를 지나면 명료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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