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시민단체 대표로 출마한 박원순이
신상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다.
그간 인터넷 매체 등이 박의 재산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의혹을 제기해 왔기 때문이다.
박은 "제가 정치판에 왔으니까 당연히 검증을 받아야 되고,
이렇게 중요한 공직 선거에서 그런 것을
피해갈 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강남 고가 아파트 거주 논란
박이 가장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부분은
'강남 고가 아파트 거주 논란'이다.
박은 서울 방배동 61평짜리 아파트에
월세 250만원(보증금 1억원)을 내고 살고 있는데,
"시민운동가의 삶과 걸맞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네티즌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에 대해 "과거 변호사를 7~8년 할 때는 돈을 벌었다.
1995년부터 변호사를 그만두면서 집을 팔고 전세로 갔고,
전세 보증금이 계속 줄어서 지금은 1억 보증금이 있다"며
"나는 이런 것이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가난해진 상황을
오히려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살지 않고 좀 저렴한 곳으로 옮길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박은 "강남에서도 내가 본래는 압구정동 살다가, 반포 살다가,
지금은 방배동에 살고 있고 계속 밀려나고 있는 단계"라며
"이사를 갈 수도 있지만 아이들 학교도 가깝고
아내 사업처가 그쪽에 있어 그렇게 (살기로) 했다"고 답했다.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구한 이유에 대해 "책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서울시장 출마를 하지 않았다면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던
경기도 수원시로 이사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그의 부인 강난희는 한양아파트에 주소지가 되어있다.
강난희의 주소지는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32동으로 되어있어
향후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한양아파트 32동은 54평형으로 전세 6억원대에 이른다.
◆ 부인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논란
뉴데일리 등 일부 인터넷 언론은 박의 부인 강난희가 세운 인테리어 회사
'P&P디자인'에 박 변호사가 이끈'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대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일부가 아내가 만든 회사에
인테리어 공사 대금 명목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현대모비스 같은 대기업이 당시 설립 1년도 안 된 강씨 회사에
2000년부터 3년여간 일감 10여건을 준 데 대해
박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아름다운재단에 교통사고 유자녀의 학자금 지원 용도로
2003년부터 총 5억7000만원을 후원했다.
박 측 송호창 대변인은 이에 대해
"아름다운가게가 전국에 130여개 있는데 2000년대 초반
시작 단계에서만 10여개 정도 부인이 도와줬을 뿐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인테리어를 했다"고 해명했다.
◆ 자녀 유학 등 논란
박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딸은 유학 가 있고 아들은 최근 군 입대 했다가
문제가 있어서 다시 나와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은 "무슨 돈으로 유학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 측 관계자는 딸이 서울미대에 2002년 입학해 다니다가
중간에 서울법대로 전과, 지난 2월 졸업했다고 밝혔다.
이어 스위스의 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1년 예정으로 유학 중이라고 했다.
박 측 관계자는, 아들이 지난 8월말 공군에 입대했다가
디스크 악화로 귀가조치된 상태라고 전했다.
10월 말경 재검 후 입대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 대기업의 후원금 논란
박은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가 대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데 대해서는 창조한국당 대표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럼 가난한 사람한테서 돈을 받으란 말이냐"고 했다.
또 포스코와 풀무원홀딩스 등 큰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면서 받은 연봉에 대해서는
"모두 희망제작소에 기부했다"고 했다.
한편 무소속 강용석 의원이 아름다운재단의 지난 8년간
재정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박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있었던
기업(포스코·풀무원)들이 박 변호사의 재직 기간에만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한 돈이 8억6504만 원에 이른다.
현행 상법은 회사와 거래 관계가 있는 법인의 이사·감사는
사외이사로 둘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박원숭을
서울 시장에?
서울시장 자리는 대통령 다음가는 자리로
나라의 앞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서울시장의 생각이 어떤가 하는 점은
그의 시정능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박원순의 지지율에는 거품이 많다.
그의 ‘아름답고 정의로운’ 이미지는 그의 진면목이 아니다.
그는 대기업을 비판하는 대가로
그들로부터의 기부를 싹쓸이했다.
참여연대의 감시 대상 11개 기업이
박원순의 ‘아름다운재단’에 148억원을 기부했다.
참여연대가 생명보험사 상장차익 배분 문제를 제기하고
교보생명으로부터 47억원을 받았고,
한화를 공격하고 10억원을,
LG를 공격하고 LG와 GS로부터 20억원을 기부받았다.
또 아름다운재단은 ‘먹튀’ 논란을 빚은
론스타로부터도 7억6000만원을 받았다.
이 행동으로 박은 시민운동의 도덕성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다.
그는 결코 정의의 화신(化身)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의 이념적 입장이다.
그가 종북(從北)좌파 세력과 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군사독재가 남긴
후유증 때문에 종북좌파가 판을 치고 있다.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학생운동은 흑백 이념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했다.
그런데 딱 맞는 이념이 없었기 때문에
학생운동은 한편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ML)로,
다른 한편으로 김일성 주체사상론(NL)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념논쟁을 했다.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주체사상파가 학생운동의 주류가 됐고
이 세력은 1987년 민주화 대항쟁의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승리의 경험을 한 주사파는
기세좋게 사회 각 분야로 진출했다.
교사가 돼 전교조를,
노동자가 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을 결성하고
시민운동·정계 등 사회 각계로 진출했다.
이들은 규모도 30만∼40만명이 되는 대한민국 최대의 세력이다.
그리고 효순·미선 촛불시위,
맥아더 동상 철거시도 사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투쟁,
광우병 촛불시위,
제주해군기지 건설반대 등
반미(反美)·반한(反韓) 투쟁을 계속해 왔다.
박은 2002년 말 효순·미선 촛불시위를 주도했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교통사고사였지만
박은 이 사건을 성조기를 불태우는 반미운동으로 확전시켰고
그렇게 해서 시민운동을 종북좌파의 앞잡이 세력으로 전락시켰다.
맥아더 동상 철거시도 사건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사건은 6·25 때 공산통일이 됐어야 했는데
맥아더 때문에 통일되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 3000명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전교조·민노당·민주노총 등은
종북좌파임을 공개적으로 자인(自認)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심상정, 노회찬 같은 이들은 민노당을 종북좌파라고
비판하면서 탈당해 진보신당을 결성하기까지 했다.
민노당이 이런 정당이기 때문에 일심회, 왕재산사건 등
계속된 간첩단 사건에도 불구하고 관련자 출당이나
대국민 사과와 같은 조치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박원순은 민노당과 서울시정 공동운영을
약속함으로써 스스로 종북좌파의 연대세력임을 명백히했다.
원래 박은 국가보안법 폐지 소신을 가진 좌파인데
이번 행보는 그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난 6월 종북 카페 운영자인 황길경 피고는
국보법 위반사건 재판중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 만세”를 외쳤다.
8월에는 좌파시위대 4000명이 보수단체의
북한 인권 영화 상영을 공격해 관람을 중단시켰다.
날이 갈수록 종북좌파의 기세가 커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국보법 폐지가 소신인
좌파 시장을 선출하란 말인가?
제 아무리 한나라당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종북좌파에게 서울시를 맡긴단 말인가?
여기가 평양인가?
서울 시민들의 양식을 믿어본다!
[TIP]
박원순은 막대한 채무를 안고 월세 250만원의 아파트에 살면서
생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박원순은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면서
자신의 부채는 5억8814만원으로, 예금 등을 빼면
3억70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내용의 재산 내역을 밝혔다.
그렇다면
◆ 생활비 어떻게 충당하나
박원순 정도의 빚을 지고 월세 250만원, 대출금 이자 294만원,
자녀 생활비 290만원에 두 대의 차량 유지비 등
생활비를 감안하면 한 달에 최소 1500만원은 써야 한다.
빚이 4억원에 가까운 사람이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지 않는가.
부인 강모씨가 빌린 ‘사인 간의 채무’ 4억2000만원에 대해 박은
“이자를 나중에 지급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빼면 매달 내야 할 이자는 86만원 수준이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강연료와 인세 등의 수입이 있어
생활비 정도는 충당할 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박 후보의 딸은 장학재단으로부터 생활비조로
매달 215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박원순은 인터뷰 등에서 생활비 충당에 대해
“부인(강모씨)이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보탰다”고 했다.
그러나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빌딩 3층에 있는
피앤피디자인 사무실의 문은 닫혀 있었다.
◆ 창녕 농지 담보로 대출받아
중앙일보 확인 결과 박원순은 5월 13일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1173-8, 1173-22 두 필지의 농지
(논, 합계 3415㎡)를 담보로 창녕 축협에서 5000만원
(채권 최고액 6500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박은 재산 공개 당시 이 대출금은 밝히지 않았다.
박 측은 최근 “2008년 부인의 사업이 잘 안 돼
창녕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등기부등본엔 해당 토지를 담보로 한 대출은
올해 5월 이전에는 없는 걸로 나와 있다.
박 측은 “재산공개에서 누락된 이유는 기준 시점이
지난해 12월 말이기 때문”이라며
“2008년이라는 시점은 실무진이 잘못 알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 딸 전과·유학 과정
한나라당은 박의 딸(28)이 서울대에 다녔을 때
전공을 바꾼 과정이 석연찮다고 주장한다.
박의 딸은 2002년 서울대 디자인학부에 입학한 뒤
2006년 법학부로 옮겼다.
2002~2009년 법학부 전과생 308명 중
미술대학 출신으론 박 후보 딸이 유일하다.
서울대의 전과생 선발 기준은
▶학업성적 ▶필기시험 ▶면접이다.
박의 딸은 전과하기 전까지 주로 교양과목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비교적 학점이 후한 과목 위주로
‘학점관리’를 한 것 같다고 학교 측 관계자는 말했다.
서울대 법학부의 안경환·한인섭·조국 교수 등은
박 후보가 속했던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학자들이다.
서울대 측은 “면접에 참가한 교수들의 명단은 밝힐 수 없지만
전과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박 후보의 딸은 한스 빌스도르프 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올해 7월부터 스위스 제네바 아카데미 법학석사(LLM) 과정에 다니고 있다.
이 재단은 스위스의 시계 업체인 롤렉스 창업자(한스 빌스도르프)가 만들었다.
장학금 규모는 3만5000스위스프랑(약 5410만원)이다.
◆도요타 후원금 친일 논란
박원순이 상임이사로 재직한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가
일본 도요타자동차측으로부터 총 6억5000만원가량을 후원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도요타재단은 좌파 진영으로부터
"친일 연구와 관련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던 곳이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아름다운재단은 2005년부터 작년까지
한국도요타(자동차)로부터 총 5억1000만원을 기부받았고,
일본 도요타재단으로부터 2008년 이후 작년까지 7920만원을 후원받았다.
일본 희망제작소는 도요타재단에서 350만엔(약 52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름다운재단측은
"한국도요타의 기부금은 저소득층 고교생 교육비로,
일본 도요타재단 기부금은 공익변호사그룹(공감)의
연구보고서 발행비용으로 지원됐다"고 밝혔다.
'공감'은 참여연대와 가까운 진보 성향 변호사들의 모임이다.
도요타재단은 도요타자동차가 설립한 재단으로
2006년 안병직·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이 재단으로부터
식민지 근대화론 관련 연구기금을 지원받았다가 좌파 진영으로부터
"일본 기업의 지원을 받아 일제 식민지 역사를 연구한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박원순은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내는 동안
친일 청산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박은 2000년 칼럼집 '악법은 법이 아니다'에서
"돈에는 (돈을 준 사람의) 의지가 있다.
돈을 받고도 모른 체할 수는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2002년 저서인
'박원순 변호사의 일본 시민사회 기행:가와리모노를 찾아서'에선
"도요타재단은 시대의 변화를 만든다"고 했고,
"일본 시민단체는 기업의 자금을 받는 것이 일상적"이라고도 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에 대해
"외국 기업의 사회 공헌활동 차원에서 후원을 받았을 뿐
친일 등 정치적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 병역 기피 의혹
41년 강제징용으로 실종됐다는 사람이 2년 뒤 직접 딸 출생신고?
“박원순 숙조부, 37년 사할린서 딸 낳고 살았다”
“출생신고는 귀신이 했는가?
모든 사실 알면서도 강제징용 됐다고 가족사 조작"
1941년 영장을 받은 형을 대신해
사할린에 강제징용 됐다는 박원순의 작은 할아버지가
훨씬 전에 사할린에서 살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박원순의 작은 할아버지인 박두책의 딸은
1937년 1월 사할린에서 태어났고
1943년 박두책 씨가 출생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박 후보의 고향인 경남 창녕 등을 취재한 결과,
박두책씨는 1943년 6월 한국 딸의 출생신고를 했다.
이는 박 측이
“1941년 할아버지에 대한 징용장이 날아왔고 할아버지 대신
작은 할아버지가 사할린으로 징용을 갔다.
작은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에 양손입양을 결정했다”고
한 해명과 시기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1937년 1월 사할린에서 딸을 낳은 만큼
박 후보의 작은 할아버지는 그 전에 한국을 떠났다는 것.
이 시기는 일제가 기업 모집(1938년 5월부터),
관의 알선(1942년 2월부터), 징용장(1939년 10월부터) 등
징용정책을 실시하기 전이다.
따라서 작은할아버지는 자발적으로
사할린으로 떠났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특히 1943년 한국에서 출생신고 된 딸은
작은 할아버지 명의로 신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박 후보의 제적부에도 기록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작은 할아버지가 한국에 돌아와 직접 신고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직접 신고했다면
‘1941년 징용을 떠나 실종됐다’는
박 후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게 된다.
실종된 사람이 어떻게 딸의 출생신고를 하는가.
출생신고는 귀신이 했는가?
박원순은 호적에 기록된 모든 사실을 정확히 알면서도
작은 할아버지가 1941년에 할아버지 대신 강제징용 됐다고
가족사를 조작한 것이다.
가지도 않은 강제 징용을 갔다고 하고,
그러다가 안간 게 문서로 밝혀지니까
'나는 모르겠다'고 하는 건
박원순의 심성이 어떤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박원순이 아름다운 재단을 운영할 때인
2002년부터 서울시장 임기를 마칠 때까지 3년 8개월동안
3억원에 가까운 월급을 아름다운 재단에 '등불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땐 서울시정 비판을 안하다가 지금 와서 정치적 입장이 달라지니까
이명박 당시시장이 서울시정을 파탄시켰다고 하는 건
배은망덕한 박원순의 심보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서 가족사 마저 조작하는
이런 사고뭉치, 거지발싸개 같은 싸가지 없는 쓰레기 좀비와
좌빨들의 일이라면 무조건 감싸주기부터 하는
아마추어 좌빨이나 거지 근성의 깽이 같은
조작의 달인이 시장에 출마를 하다니...통탄할 일이로다.
-학력? 서울대 법대는 아무것도 아니다.
조작의 달인, 부럽다...츠츠츠...-
서울시민은 더 이상의 양의 탈을 쓴 위장의 이리에게
속지 마시기 바란다.
서울시장이 이중인격자에 위장의 달인이 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울시민은 두번 다시 속지 마시고
위장의 달인에게 그가 말한대로 위장의 탈을 벗고
진실한 사람으로 돌아오도록 표로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서울시민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서울 시민의 바른 판단을 기대한다.
박원순은 2008년 도서출판 ‘웅진주니어’(발행인 최봉수)가 펴낸
아동도서 [호찌민 이야기]에서 호지명에 대해
“열정적인 생애를 살았다”,
“세계최강 대국 미국을 물리쳤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산주의자를 극찬했었다.
남을 속이는 자는 사람의 눈을 바로 보지 못한다.
이 작자들은 웃음은 가식적이며
눈초리는 항상 상대방을 피하고 있다.
이렇게 자연스런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자, 한번 자세히 보라.
눈초리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웃음은 얼마나 어색한가를...
무시 당하는 기호 10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