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삼, <입시명문사립정글고등학교> 4화 <이사장 선생님>편 중, 2006. 2. 6.
네이버에 인기리에 연재되는 만화가 있다. 김규삼의 <입시명문사립정글고(정글고)>다. <정글고>는 대한민국 입시교육을 풍자한다. 이사장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호화생활을 누린다. 이사장의 친척은 형편없는 식품을 파는 매점을 운영하면서 폭리를 취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수시로 매질한다. 두발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시험점수가 형편없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폭행당한다. 그러나 정글고는 '입시명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다잡아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때문이다. 정글고의 급식이 아무리 형편없고, 선생들의 교육이 폭압적이더라도 정글고의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곳의 대학진학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학교가 현실에 존재한다. 광명 소재 진성고등학교다. 경기도권에서 '입시명문'으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2008학년도 대학입시 현황을 보자. 서울대 9명, 연세대 41명, 고려대 42명이다. 이 학교 3학년 학생이 약 337명이다. 거의 10%에 육박하는 학생이 소위 SKY 대학에 진학했으니 인근 수도권 학부모들이 이곳에 자녀들을 보내려 기를 쓰는 이유를 알 만하다. 진성고는 1993년에 설립됐다. 15년밖에 되지 않은 학교가 놀랄 만한 입시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한 반이 모두 한 방에서 생활한다. '1반 1실' 정책이다. <한국일보> 2007년 1월 28일자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전교생이 ‘1반 1실 기숙사 생활’ 을 하고 있는 이 학교는 ‘아침 6시 기상, 0시 취침’을 철저히 따른다. 군대 점호 격인 아침ㆍ야간 인원점검도 매일 빼 놓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군대’와도 같은 이 학교를 여학생들이 점령해 버린 이유는 뭘까. 1학년 정다운양은 “부모님이 먼저 안심하고 보내주는 ‘안전지대’ 같은 곳”이라며 “24시간 내내 친구들과 생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공부나 특기 적성 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중략)
기사만 보면 성적뿐 아니라 인성까지 함양하는 '명문'으로 보인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듯, 진성고는 이 기사를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두었다. (http://www.jinsung.or.kr/board.read?mcode=101210&id=1&num=6) 학부모들은 진성고의 '3無'정책에 호감을 보이는 듯하다. 사교육이 없고 유해환경이 없고 이성교제가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은 없을 수밖에 없다. 전교생을 모두 기숙사에 몰아넣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감시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야담'이라는 야간교사들이 함께 합숙하며 학생들의 공부를 독려하니 사교육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기숙형 학교'들은 입시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사교육의 역할을 공교육이 흡수해버린 것이다. 이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전국에 '기숙형 공립고'를 150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기숙형 학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난 10일 KBS <시사투나잇>은 '입시명문 진성고'의 실태를 폭로했다. 내용은 경악스러웠다. 40여명의 학생들이 비좁은 방에서 모두 함께 생활한다. 남녀 학생 1000명을 수용하는 이 학교 기숙사의 샤워실은 각 층에 하나밖에 없다. 제대로 쓸 수 있을리가 만무하다. 학생들은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는다. 그나마 샤워실에 들어간 학생들도 '얼음물'로 샤워를 해야 한다. 세면시간인 6시 40분부터 7시 10분까지는 온수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경제규모 11위의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극기'의 차원에서 용납해 보도록 하자.
급식은 어떤가. 진성고의 급식 단가는 3550원이다. 단체급식 치고는 싸지 않다. 그러나 식사의 질은 형편없다. 2700원에 공급하는 서울의 모 고등학교의 것보다도, 심지어 군대급식보다도 형편없다. 웬만한 대학 학생식당에서 2500원에서 3000원이면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진성고의 단체급식에는 문제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수년 전 학교의 행정실장의 양심고백을 했단다. 학생들의 급식비를 횡령했다고 한다. 그 액수가 4개월 동안 자그마치 2억 2천만원이다. 도대체 이게 교육의 장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냐고 분노해야 마땅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사학비리는 '필수상식'에 속한다. 단체급식에 대해 <시사투나잇> 취재팀과 인터뷰한 교장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 학생들이 서명운동을 벌이면서 급식개선을 요구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1000명의 학생이 모여있다. 학교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1년 365일 24시간을 학교에서 생활한다. 그 규모가 매우 넉넉한 '산업'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4인 가구당 월 평균 가계지출이 316만원이다. 공평하게 1/4로 나눠도 80만원 가량이다. 여기에 12를 곱하면 960만원이다. 이것이 학생 한 사람한테 들어가는 최소한의 돈이라도 생각해 보자. 여기에 진성고 학생수 1000을 곱하면 96억원이다. 진성고의 산업규모는 1년에 최소 96억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고등학생에 들어가는 가계소득이 그렇게 적을 리 만무하다. 학생들은 먹고 입고 자지만 않는다. 교과서도 사야 하고 참고서도 사야 하고 체육복도 사야 하고 보충학습비도 내야 한다. 진성고의 산업규모는 96억원을 훨씬 넘는 수준임이 틀림없다. 급식비로만 2억 2천만원을 횡령할 정도라면 그 잠재적 규모를 예측할 수 있다. 시중에서 5000원 하는 체육복 티셔츠가 진성고 매점에서 9000원이라면 이미 끝난 일 아닌가.
이를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옥상에서 시위를 했다. 지난해의 일이다. 학생들이 옥상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렸고, 개중 하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육이 아닌 진정한 교육을 원해요!" 학교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동영상에 따르면, 옥상시위 다음날 학교당국은 방송을 통해 학교의 입장을 전달했다. 교사는 아주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한다. 그 내용과 어조가 매우 인상깊어 그대로 옮긴다. 조롱과 사랑이 절묘하게 합일하는 희대의 '명훈계'다.
어제 종이 비행기 잘 봤다. 아주 잘 봤다. 2007년까지 가능했던 일이다. (여러분들이 칠한) 락카칠 잘 보고 잘 지웠다. 2007년까지 가능했던 일이다. 이사장님 푯말 꽂아놓으면 없어지고, 꽂아놓으면 없어지고, 3회간 아주 잘 지켜봤다. 생활관 5층 낙서.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내용들 아주 감명깊게 잘 봤다. 여러분들은 학생이다. 진성고등학교 학생이다. 선생님들은 바보가 아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한다. 여러분들을 위해 선생님들이 노력한다. 노력해도 되는 게 있고 되지 않는 게 있다. 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런 거는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을 통해 장기적으로 함께 논의해야 한다. 여러분들 대학생 아니다. 여러분들 인생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비판의식, 부정적인 사고방식 필요 없다. 여러분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무슨 말인가. 2007년까지 가능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개혁정권의 종언을 학교당국은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임기 초반, 개방형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 했던 정권의 종말을 학교당국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설립자 차종태는 한나라당 당원이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대구 달성군에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었다. 차종태의 아들 이사장 차동춘 역시 한나라당 당원이고 18대 총선 광명갑에 공천을 신청해 둔 상태다. 이사장 부자가 모두 한나라당 당원이다. 그러므로, 강의석이 종교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학교당국과 대치했던 일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개혁정부 주도의 사회분위기가 이제는 끝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2007년만 지나면, 수구정권이 다시 집권하면, 너희들의 이 버릇없고 무지한 짓거리도 이제 끝장이라는 무언의 경고가 아닌가. 그러면서 이 교사는 학생들을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학교가 학생들을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동영상에 따르면, <시사투나잇> 방영이 끝난 뒤 학교는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CCTV를 학내 곳곳에 설치한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고인다. 돈이 고이면 반드시 썩는다. 진성고가 그렇다. 돈이 그냥 고이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의 '생활'까지 책임진다고 선전하며 학부모들의 환심을 샀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동영상에 따르면, 설립자 차종태가 이사장직을 아들 차동춘에게 물려줬고 차종태의 첫째 딸 차동춘에게는 매점 주인을, 둘째 딸 차선민에게는 교사를 맡겼다. '입시명문'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이 이사장 일가의 부귀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학생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철저히 유린당한다. 동영상에 따르면 기본적인 주거인권과 생활인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형편없게 잠을 자고 형편없게 씻고 형편없게 먹는다. 여기가 아프리카 후진국인가. 지금이 '헝그리 정신' 운운하던 1960년대인가. 국민소득 4만불 달성을 소리높여 외치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한민국이다.
비단 진성고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숱한 사립학교들이 유사한 비리를 안고 있을 것이다. 개정 사학법은 이를 척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거센 반동에 임기말년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것마저 내주고 말았다. 이젠 아무런 장치도 없다. <시사투나잇> 이후 그 어떤 언론도 진성고에 대해 보도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동영상만이 인터넷을 떠돌며 누리꾼의 '공분'을 살 뿐이다. 지금은 누리꾼이 대통령을 만든 2002년이 아니다. '삼성알바'와 '한나라당알바'의 괴담이 유령처럼 인터넷을 떠도는 2008년이고, 포털권력과 거대자본과 정치권력이 트라이앵글의 동맹을 맺은 2008년이다. 진성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묻혀져 갈 것이다. 고삐풀린 수구세력의 전횡은 이제 더욱 가관으로 치달을 것이다. 5년 내 '자율형 사립고' 100개를 만든다고 한다. 100명의 이사장과 100명의 매점주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 이사장들이 모인 곳이 한나라당이고 거기서 대통령이 나와 청와대에 앉아 있다. 그 공고한 기득권의 카르텔을 더 일컬어 무엇하겠는가.
입시광풍으로 인간성이 말살된 교육 아닌 '사육'에 신음할 학생들이 불쌍하고 불쌍할 뿐이다. 수구세력의 탐욕에 희생될 학부모들의 피땀이 처량하고 처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