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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연중 제 8주일

작성자마이클 킴|작성시간25.02.27|조회수193 목록 댓글 0

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연중 제8주일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1-42)

 

예수님의 이 말씀은,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하든, 관심을 갖지 말라 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15“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마태 18, 15-17)

 

라고 말씀하시며, 

'옆 사람의 죄에 대한 나의 책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태도로 

옆 사람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에 있습니다. 

 

누구나 결점이 있고, 바로잡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옆 사람의 행복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바로잡아야 할 점, 바로잡을 수 있는 점에 대하여

무관심해서는 안되고, 

옆 사람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책임과는 별개로,

우리가 만일, 상대방의 좋지 못한 점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면,

 

상대방이 잘못된 모습으로부터 돌아서서

참 행복을 위해 살아가기를 바래서가 아니라, 

나의 옳음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상대방보다 낫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방의 결점만을 보고 있다면,

 

우선, 상대방의 결점을 바라보기를 멈추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시며,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눈에서, '들보를 꺼내라'고 하십니다. 

 

 

우리 눈에 들보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상대방을 어떠한 태도로 바라보고,

상대방의 좋지 못한 모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에서

드러납니다.

 

먼저,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의 태도와 관련하여 살펴본다면,

 

상대방의 좋은 모습, 좋지 못한 모습을 구분하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고,

 

상대방의 좋은 모습을 먼저 발견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마치, 상대방의 좋지 못한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상대방의 결점만을 바라보는 경우들이 있고,

더 나아가, 

상대방의 결점을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해 두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또 상대방의 결점들을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해석하는 경우가 있으며,

상대방의 결점들을,

상대방을 깍아 내리는 데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서,

우리 눈 안에 들보가 있는지? 그 들보가 얼마나 큰지? 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서 결점이 보일 때,

나의 마음이 보이는 태도에 따라서, 

우리 눈에 들보가 있는지, 있다면 그 크기가 얼마만큼인지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결점을 보고서,

 

‘저 사람, 저런 사람이 아닌데, 아마 내가 잘 못 봤을 거야!’

‘저 사람, 저런 사람이 아닌데, 아마 이번에는 실수했을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저 사람, 저러면 안되는데,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도록

내가 조용히 가서 타일러 주어야 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저 사람, 저럴 줄 몰랐는데,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바라볼 때,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바라봅니까? 아니면,

좋은 점이나,

좋지 않은 점을

먼저 바라보거나,

발견하려고 합니까?

 

나는, 상대방의 좋지 않은 점이 눈에 들어왔을 때,

그것을, 그 사람의 우연이나 실수로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 사람은 원래 그렇다' 거나, '그 사람은 나보다 못한 사람' 이라거나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상대방의 행복을 염두에 두는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상대방의 잘못은 똑같이 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떠한 사람이냐에 따라,

그 결과는 사뭇 다릅니다. 

 

상대방의 행복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마음이, '관심과 사랑' 이라는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상대방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합니다. 

반면,

자신만의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마음이, '간섭과 지적' 이라는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상대방이 바른 길을 갈 수 없게 만들 뿐더러, 

상대방이 바른 길을 향해 마음을 바꿀 결심을 했더라도,

나로 인해, 그 결심조차 포기하게 만듭니다.

 

 

나는, 

나의 행복 만큼이나,

혹은,

나의 행복 만큼은 아니더라도, 

옆 사람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행복 만큼이나,

혹은,

나의 행복 만큼은 아니더라도, 

옆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우리 눈에서, 들보가 빠지게 되어,

사랑의 눈으로 

옆 사람을, 옆 사람의 부족함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루카 6,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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