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본음을 듣기 위하여 고깔을 썬 무당들이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남을 헐뜯고, 탐욕과 아집으로만 빠져들어, 무교를 돈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어찌 삼신할머니를 대할 것인가? 삼신할머니가 마고성에서 세웠던 소의 진정한 뜻과 의미를 깨우치고, 고깔을 서는 순간 하늘에서 들리는 천부의 본음을 들어보자. 즉 하늘의 소리를 들어 네 천인(황궁, 청궁, 백소, 윽소)에서 이어진 삼신할머니의 참뜻을 깨우치고 이어받아 고깔을 썬 무당으로써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하늘의 소리를 전하여야 할 것이다.

고깔을 서고 굿을 하면서도 천부의 본음을 외면하고 어떻게든 돈을 더 뜯어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무당들은 삼신할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소의 참 뜻을 모르는 이도에 빠진 사람으로 무당의 자격이 없다하겠다.
우리는 천부의 본음이 뭔지를 모르고, 천지창조의 소리인 천부경의 진정한 참뜻을 모르지말 마고성을 떠나면서 다짐하였던 인간 본연의 마음, 즉 선한 마음, 착한 마음을 찾으려고 하는 다짐은 하고 있어야 무당으로써 고깔을 선 의미가 있으며,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사제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 불교에서 하는 탑돌이의 진정한 이유는 개인의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탑을 통하여 전해오는 천부의 소리를 가까이서 잘 듣고 인간의 본성을 찾자는 의미로 삼신할머니의 마고성에서 유래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교회의 지붕이 뾰쪽하게 하늘을 찌를 듯 세워져 있는 것 역시 소에서 비롯된 고탑과 층대의 변형로, 천부의 본음을 뽀쪽지붕을 통하여 전해오는 것이라 믿고, 교회의 지붕을 뾰쪽하게 만들었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천부의 본음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듣고 깨우쳐, 인간의 참 마음을 찾자는 의미로 교회에 모여 예배를 보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소에서 비롯된 탑돌이의 유래를 모르고 탑돌이를 하면서 개인의 축복만을 기원하고 있으며, 또한 고탑을 세우는 즉 소를 세우는 진정한 의미를 잊어버리고 고탑 대신 불상을 경쟁하듯 하늘 높이 세우고 있다.
또 불교에서는 4월 8일을 부천님 오신 날로 정하였다. 왜 우리나라는 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는 태국(음4월 15일) 등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부처님 오신 날을 음력 4월 8일로 정했을까? 어떤 날을 정하여 부처님 탄신을 축복하던 상관없는 일이지만 4월 8일은 우리 민족에서 뜻 깊은 날이기에 하는 말이다.
[고구려국 본기 제6편]을 보면 고구려 선조는 해모수로부터 나온 다고 하였으며 [조대기]에선
해보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웅심산에 일찍이 살던가 부여의 옛 서울에서 군대를 일으켜 무리에서 추대되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니 이를 부여 시조라 한다. 까마귀 깃털로 만들 관을 쓰고 용광의 검을 차고 오룡의 수레를 탔다. 아침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니 호령하지 않아도 절로 관경이 교화 되었다. 단군 해모수가 처음 하늘에서 내려오심은 인술년(B.C 239년) 4월초 여드레다.라고 되어있다.
이렇게 보면 4월 토 여드레는 부여의 시조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 온 날로써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오면서 고구려 왕족의 선조가 하늘에서 내려온 날을 부처님 탄신 날로 잡은 것이 아닌가 한다. 개신교 역시 천부 본음의 뜻이 뭔지를 잘못 깨우치고 하늘의 뜻과는 다르게 인간이 만들어 논 교리에 묶여 타종교의 정신을 동화시키는 사상 주입서로 탈바꿈하여 온갖 약탈을 일삼고 있으며, 한국의 개신교 목화자들 역시 태양이 자기에서만 비추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라고논리에 맞지 않는 어거지를 부리며 온갖 비리를 자행하는 모습을 보면 또 하나의 이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보면 소는 즉 고탑과 층대인 불탑과 피라미드와 교회의 뾰쪽 지붕 그리고 무당이 서는 고깔은 천부의 본음을 들을 수 있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가 있다. 피라미드나 고탑, 교회의 뾰쪽 지붕 그리고 무당 고깔의 꼭지 점으로 하늘의 소리가 타고 내려와, 천부의 본음 즉 인간의 참 마음을 잊어버린 인간들이 천부의 본음을 잘 듣고 깨우쳐 인간다운 참 마음을 찾을 수 있도록 하여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한국무속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