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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기라티 2봉(6512m)원정대/다오름산악회 김상우 등 대원 4명 동벽…

작성자줄루|작성시간11.01.12|조회수174 목록 댓글 0

바기라티 2봉(6512m)원정대/다오름산악회 김상우 등 대원 4명 동벽…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난 흰산 여정 글 김상우 원정대원·사진 원정대


 ◇ 암벽구간을 등반중인 김상우 대원.


<연금술사>라는 소설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대표 작품으로 인도의 성지 강고트리에서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네가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성공을 도와준다”면서 자아의 신화를 찾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왜 히말라야에 가는가?”라는 주변의 수 없는 질문에 그냥 웃거나 정말로 답을 “그냥”이라고 말할 때가 많았다.
내가 히말라야로 향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 자아의 신화를 찾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코엘료가 양치기 연금술사 산티아고에게 속삭였던 것처럼….
9월 8일 0시20분 우리는 연일 형을 선두로 어두운 벽으로 향했다.
1피치 고정로프가 없는 구간이다.
50~60도 경사로 된 눈과 바위가 혼합된 벽이다.
모두들 줄 없이 약 80~100m를 올라간다.
고정로프 작업을 위해 자주 오르내려서 발자국이 남아있다.
비교적 쉽게 돌파한다.
약 30분 소요되었다.
2~4피치는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모두들 주마링으로 오른다.
60~70도 경사를 이루고 있으나 일부 구간에서 직벽 혹은 오버행이 나온다.
등반 보다는 확보물 설치가 더욱 힘들었다.
벽과 바위가 아주 부서지기 쉬운 암질로 하켄 설치가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약 2시간 만에 도착한 듯하다.
계획했던 속도라서 만족하였다.
5피치로 접어들면서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새롭게 줄을 설치하면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심 걱정되고 긴장되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기존 등반 팀이 설치해 놓은 고정로프가 모습을 보이고 있어 코스 선택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매 피치를 끝낼 때까지 거의 1시간씩 소요되는 듯하다.
6피치 종료 지점에서는 하켄을 설치할 곳이 없어 커다란 고드름 기둥에 줄을 감아서 확보를 하였다.
7피치까지 종료하자 내가 대원들에게 설명했었던 트래버스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른다.
6시가 가까워지면서 동이 터온다.
600m 준비해 온 고정로프는 부족하고 75m 알파인 로프만 남아 있다.
우리는 사용했던 고정로프를 끌어올려서 다시 이용했기에 시간은 더욱 지체되었다.
10피치 등반 후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졸음이 쏟아졌다.
승민이도 빌레이 보면서 졸았다고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벽이 계속된다.
80~90도 직벽 구간도 나오고 50~70도 암벽구간 및 설벽구간 등 혼합등반을 맘껏 즐길 수 있게 해준다.
9시간 동안 암벽구간 등반 이번이 12피치인지 13피치인지 잘 모르겠지만 암벽구간으로는 마지막 피치이다.
9시간 가까이 벽을 오르고 있다.
75m 알파인 로프를 가지고 선등을 나간다.
도대체 암벽 구간의 끝이 어디인가? 이번 피치에서도 설사면이 나오지 않는다면 후등하는 3명의 대원이 모두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줄을 가지고 다시 올라야한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가보자. 약간 오버처럼 형성되어 윗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과감하게 출발해서 20여m 정도 지나자 암벽구간의 마지막이 보인다.
거기엔 다른 등반대가 설치해 놓은 하켄과 남은 고정로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4명의 대원이 모두 모인 시간이 10시 30분경이었다.
이제부터는 설사면을 돌파하면 된다.
표시기와 스노우바를 건네받고 출발한다.
햇살이 너무 강렬하여 고글을 착용하고도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언뜻 살펴보니 1시간은 넘게 지겨운 눈밭을 지나야 할 듯하다.
‘그래 한번 가보자. 후딱 해치우고 내려가서 맛있는 밥 먹자’ 이런 심정으로 올랐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끔찍한 상황이 계속 전개되었다.
바기라티2봉의 설사면은 제법 길어서 우리는 무려 3시간이 걸려서야 정상을 밟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오르는 비하인드 루트는 동벽이기 때문에 오전 내내 비추는 강렬한 햇살로 인해 설벽은 신설 구간을 러셀하는 듯 했다.
고도는 6400m를 넘어가고 있었고 속도는 잘 나지 않아 답답증만 커져 가고 있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연일 형도 지겨운 듯 “상우야, 차라리 약간 내려가서 좌측벽 쪽으로 붙어서 올라가자”고 제안한다.
나도 그 방법이 덜 지루하고 오히려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의하고 빠르게 내려갔다.
이제 다시 오름 짓이다.
조심스레 바위 쪽으로 다가가 스노우바를 바위와 바위 사이에 걸치듯이 집어넣고 해머질을 한다.
아주 튼튼한 확보물이 설치된다.
“완료”를 외치고 “그래 설사면 보다는 바위가 있어야 훨씬 좋지”라고 중얼대며 숨을 골랐다.
마지막 주자 대순이가 도착하기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었다.
벌써 13시가 다 되었다.
더 늦을 경우엔 하강하다가 해가 저물겠다는 걱정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15시 이전에는 낙석과 낙빙의 위험이 크니까 여유 있게 15시 이후에 하강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등반 자체가 지겨우니까 일단 정상까지는 서둘러 가자는 것이 나의 최종 결론이었다.

 ◇ 바기라티2봉 정상(6512m). 좌로부터 장대순·김상우·한승민 대원.


9월 8일 대원 4명 정상 올라

바위와 눈을 번갈아 밟으면서 계속 전진한다.
바윗길을 조금 지나 또 다시 설벽이 나타났지만 더 이상 난 오를 곳이 없었다.
정상이다.
13시 30분. 난 한국인 최초로 가르왈 히말라야의 난봉 바기라티2봉의 정상에 서 있었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이제 정말 더 이상 오르지 않아도 되는구나. 정상 오르기 직전에도 주변의 파노라마는 보였지만 왜 감동적이 않았을까? 더 오를 곳이 있기에 눈으로는 다른 산의 풍경을 보았지만 마음으로 대할 여유가 없었던 것 아니었을까? 정상에 오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눈, 그 눈이 열린 것인지 더 이상 오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눈물나게 고마웠다.
약 10분 간격으로 승민, 연일 형, 대순이가 올라왔다.
14시경 다오름산악회 4명의 원정대원이 바기라티2봉 정상에 함께 서게 되었다.
30분 동안 기념촬영과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설사면을 약 1시간에 돌파하고 15시 30분부터 본격적인 하강을 시작했다.
그러나 하강도 간단하지는 않았다.
고정로프를 회수하였던 구간이 역시 문제였다.
등반할 때 줄을 끌어올렸던 구간은 어쩔 수 없이 75m 알파인 로프를 이용하였는데 유독 하강 길이가 길어서 애를 먹었던 구간이 있었다.
불가피하게 클라이밍 다운을 했다.
3피치에서 하강을 하다가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빨리 떨어진다.
약 5m 정도 거리의 추락인 듯하다.
다친 곳은 없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2피치를 내려오면서 아래를 보니 승민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고개를 처박고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를 보니 대순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하강시 엉덩방아를 찧었던 3피치 구간은 줄이 상당히 꺾이면서 오버행 구간도 있기 때문에 대순이가 체력이 소진된 상태인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대순이를 크게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고 자고 있던 승민이가 놀라서 깬다.
17시 30분이 지났다.
17시간 넘게 잠 한숨 못자고 벽에 붙어있었다.
‘아무 사고 없이 캠프2로 돌아가야 한다.
정신 차리자.’ 계속 나에게 힘을 주는 말을 내 스스로가 하고 있다.
다시 대순이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20차례가 넘게 외쳤던가. 빨간 우모복이 3피치 오버행 너머로 빠끔히 모습이 보인다.

18시간의 대장정 마치고 캠프2로 하산

난 배낭을 벗어놓고 빠르게 주마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고산 벽등반의 어려움을 실감하면서 대순에게로 향했다.
2피치 중간에서 대순을 만나 배낭을 건네받았다.
대순은 체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였지만 정신력으로 이번 등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대단한 녀석이다.
1997년 알프스등반을 함께하며 나는 대순이의 정신력과 등반의지 그리고 등반기술 등 등반과 관련된 거의 모든 능력을 믿고 존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강한 녀석이 나에게 배낭을 건네줄 때 너무나 지쳐보여서 안쓰러웠다.
그래도 사고 없이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이쿠, 녀석 배낭이 왜 이렇게 무겁누.” 승민이가 대순을 데리고 캠프2로 내려갔다.
마지막 1피치는 약간 완경사지만 약 100m를 로프 없이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승민이도 많이 지쳐보였다.
그래도 대순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녀석이다.
자신도 지쳐서 2피치 하강 후 40분 정도 잤다고 했다.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녀석이다.
18시 10분. 17시간 40분째 동벽에 있는 셈이다.
몸은 피곤하고 대순이의 배낭까지 들어 무척 무겁다.
한발 한발 다리가 후들거린다.
18시 30분 마침내 캠프2에 도착하였다.
18시간의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정상에서는 기쁨의 만세를 캠프2에 도착한 후에는 안도의 만세를 불렀다.
4명의 등정대원 외에 캠프2에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상준과 연행 형 그리고 등정을 기원하며 베이스를 지켜주었던 미정 누이까지 총 7명의 모든 대원이 바기라티2봉 초등정의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고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이 우리를 괴롭혔지만 사고가 없었다는 점이 우리를 기쁘게 했다.
또 고소 포터를 이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체의 힘으로 루트를 개척하고 짐을 나르고 등반하고 정상을 밟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2004 대한민국 바기라티2봉 원정대
대상지 가르왈 히말라야 바기라티2봉 동벽
기 간 2004년 8월 25일~9월 23일
대 원 임연일(원정대장) 장대순(등반대장) 김상우(행정) 조연행(식량) 한승민(촬영·기록) 이상준(수송) 양미정(촬영·기록)

 ◇ 캠프2전경. 텐트를 설치할 당시에는 눈이 쌓여있었으나 계속되는 포근한 날씨로 눈이 녹은 상태다. 뒤로 강고트리빙하가 내려다보인다.


INFORMATION

바기라티2봉의 첫 번째 등반은 1933년 초 마르코 팰리스 등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몬순이 시작되기 전인 6월 21일에 끝났다.
초등은 5년 뒤 오스트리아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에디 엘모샐러와 토니 메스너가 6300m에서 비박한 후 1938년 9월 5일 동벽을 통해 정상을 밟았다.
이 루트는 50~70도 경사로 눈과 얼음지대로 이어져 있으며 정상으로 오르는 마지막 피치는 2~3급의 믹스 클라이밍으로 등반되었다.
다오름산악회가 오른 코스도 넓게 보면 이 루트이다.
북서벽은 1981년 후반에 아일랜드대에 의해 등반되었다.
이 팀은 난단반으로부터 곧바로 솟아오른 약 2㎞의 북벽 얼음지대를 돌파하여 정상을 밟았다.
한국에서는 하이얀산악회가 1995년에 북서벽 아이리시 루트로 도전하였으나 눈사태로 1명이 사망하고 실패했다.
또한 아메리칸 알파인저널 1985년판에 의하면 이탈리아대의 A.사르티, V.라베시에토 그리고 E.보나파세가 1984년 10월 서벽을 통해 올랐다고 되어있으나 어떠한 보고서도 없으며 이탈리아 루트가 서벽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도 확실치 않다.
서벽의 가파른 절벽(Ⅳ~Ⅴ·A1·60도)은 1985년 7명의 폴란드대가 실패한 코스다.
그들은 등반 9일후 4명의 대원이 고도 6000m까지 도달할 수 있었으나 악화되는 날씨로 등반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음 1988년 폴란드대의 시도는 비극으로 끝났다.
등반 5일째 클라이머가 벽밑으로부터 약 600m 등반했을 때 낙석이 등반대를 덮쳐 조 노왁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리더인 크리지르쵸프 윌리키는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접근로
델리에서 강고트리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우타르카시에서 강고트리 구간은 아주 협소한 길로 산사태의 위험이 있어 포터를 태우고 가야만 한다.
강고트리(3100m)를 떠나 보즈바사(3600m)에서 1박 하기까지는 산길을 걷는 느낌이지만 보즈바사를 떠나 고묵(Gomuth·바기라티 강의 발원지, 현지어로 소의 입이라는 뜻)을 지나면서는 강고트리 빙하에 형성된 모레인 지대를 통과하게 된다.
이 구간부터 고소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크레바스를 지나고 난단반(4300m) 직전의 계속되는 오르막길은 힘이 든다.
베이스캠프는 넓은 목초지대와 같은 난단반에 설치한다.
난단반은 남북으로 흐르는 바기라티봉 서쪽 강고트리 빙하와 동서로 흐르는 북쪽 차투랑기 빙하가 만나는 삼각점이다.

캠프구축 과정
베이스에서 ABC(약 4700m)까지는 평이한 산길이다.
차투랑기 빙하 위쪽으로 형성된 길을 따라서 바기라티2봉이 끝나는 지점에 ABC를 설치할 수 있다.
이 길은 사토판스(Satopanth·7075m) 베이스캠프 가는 길이기도 하다.
수량은 풍부한 편이나 9월 초순이 지날 무렵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
고소 적응이 된 경우 2시간이면 도착 가능하다.
캠프1은 ABC에서 남쪽방향으로 40도 정도 경사의 모레인 지대를 올라 설치한다.
캠프1은 남쪽에 위치한 바수키(Vasuki)로 인해 아침 햇살이 늦게 든다.
수량은 풍부하지는 않지만 양호하게 흐른다.
새벽에는 얼기 때문에 아침을 위해서는 물을 저녁에 확보하는 것이 좋다.
ABC에서 캠프1까지는 3~5시간이 걸린다.
캠프1에서 캠프2를 구간은 코스가 난해하다.
이 길은 동벽의 남동쪽 사면과 이어지는 코스인데 그해의 기온과 적설량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크레바스 또는 낙석지대가 산재해 있고 일부 구간은 고정로프 작업이 필요하기도 하다.
동벽이 넓기 때문에 동벽에서도 어느 코스로 오를 것인가에 따라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경험이 없는 팀은 반드시 경험 많은 현지인을 캠프1까지 데리고 가서 길 안내를 부탁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등반 정보
동벽은 눈, 얼음, 바위가 혼합되어 있다.
적설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2004년 여름은 눈이 그리 많지 않았다.
동벽은 아침 6시 지나서부터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고 오후 2시 정도가 되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따라서 낙석, 낙빙의 위험을 피해 오전 10시쯤에 벽 구간을 돌파하는 것이 좋다.
평균 경사도는 50~70도 정도지만 구간별로 직벽·오버행 구간이 나타난다.
바기라티2봉은 푸석 바위가 많아 하켄뿐만 아니라 스노우바와 같은 크고 기다란 확보물을 바위틈에 끼워 박는 방식이 더 좋다.
고정로프는 900~1000m 정도 필요하다.
만약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한다면 100m 로프 2동이 있으면 편리하다.

입산료와 등반 허가
입산료는 미화 2천 달러, 환경분담금 4백 달러, 정부연락관 비용 5백 달러이다.
입산료는 과거 1천8백 달러에서 최근 2천 달러로 인상되었고 환경분담금은 환불되지 않는다.
바기라티 2봉 등반을 위해서는 난단반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때까지 총 5군데에 인도산악연맹(IMF)에서 발급한 허가서를 제출해야 한다.
우트란찰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주지사, 경찰서장, 네루등산학교장 그리고 강고트리 지역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경계하고 있는 담당자, 마지막으로 강고트리에서 카라반을 시작할 때 처음 접하는 산림청 담당자에게 제출한다.
이 모든 절차는 정부연락관이 책임지고 진행한다.

강고트리국립공원 이용료
2002년부터 신설된 이용료는 강고트리국립공원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부과되는 일종의 세금으로 현지인들도 내야 한다.
물론 현지인은 저렴하다.
강고트리를 떠나 보즈바사 방향으로 약 10분 정도 걷다보면 강고트리국립공원 산림청이 나온다.
여기서 인도산악연맹이 발행한 허가서를 제출하고 대원들 전원 여권확인 후 통행세금을 정산해야 한다.
자세한 내역은 입장료 100루피, 조랑말 25루피, 카메라 100루피, 무비카메라 100루피, 영화촬영 2만 루피, 다큐멘터리촬영 5천 루피, 1일 야영비 50루피, 주방텐트 100루피, 텐트 50루피 등이다.
이 같은 비용을 원정 기간인 3~4주 이상으로 계산하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정부연락관, 사다를 내세워 담당자와 협상을 하는 것이 좋다.
담당자들에게 줄 조그마한 선물이 있으면 좋다.
탈레이사가르 방향으로 가는 팀은 이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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