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Expedition - 2006 한국 로체 남벽 원정대

작성자줄루|작성시간11.02.10|조회수36 목록 댓글 0

EXPEDITION - 2006 한국 로체 남벽 원정대
글 안치영 사진 원정대


일본대와 함께 슬로베니아 루트 등반

안치영 8200m 진출 우리는 실패라 말하지 않는다

 

◇ 8200m 지점에서 팔에 낙석을 맞아 아쉽게 후퇴한 안치영 대원.
문화관광부와 외교통상부가 후원하고, 재단법인 한국아리랑문화협회가 주관, 한국산악재단이 주최한 ‘2006 한국 로체 남벽 원정대’는 2006년 11월 7일 카라반을 시작했다. 오후가 되면 로체(8516m)에서는 항공기 엔진 소음과 같은 굉음을 동반한 강풍이 불기 시작한다. 아마다블람이 있는 추쿵쪽에서 시작한 바람은 미세한 모래 먼지를 동반해 우리의 베이스캠프를 지나고 로체 남벽을 향해 밤낮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남벽의 모든 능선에 눈 기둥을 만든다. 이번 등반의 최대고비는 혹한의 강풍과 낙석이었다. 출발 전 원정대는 슬로베니아 토모 체슨 루트를 통해 정상에 도전할 계획으로 등반을 준비 했다. 그러나 김형일 부대장의 정찰 이후엔 캠프2에서 갈라지는 러시아 루트를 택해야 할지 계획대로 슬로베니아 루트로 오를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등반의 길이로 보아서는 러시안 루트가 짧고 크랙 구간이 많아 대원 모두가 선호하는 듯 했다. 특히 일본팀과 같은 루트 등반한다는 것에 대해 몇몇 대원들은 극도의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충직 대장은 안전과 등정 우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다시 고려해보자며 며칠 후 대원 전원 회의를 통해 토모 체슨 루트로 오르자는데 합의했다.

 

일본대와 공동 루트 개척에 합의

 

캠프1을 한·일 팀이 별도로 구축한 다음날, 일본팀의 센다 부대장이 한국팀 베이스캠프로 찾아와 루트 공동 개척에 대해 의사를 물었다. 우리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 로체 남벽 원정대 6명의 대원과 일본 오사무 다나베 대장외 6명의 대원은 이렇게 해서 루트 개척에 공동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11월 17일 우리는 김형일 부대장의 선등으로 첫 도전에 나섰지만 막상 거대한 남벽을 마주하자 심리적인 압박을 느꼈다. 대원과 셰르파들을 무더기로 공격해오는 낙석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대원들은 6300m의 직벽에 이날 오전 10부터 매달려 낙석에 팔 부상을 입은 강기석 대원의 후송을 위한 한·일 공동 구조작업을 시작했고 그날 오후 8시가 돼서야 베이스캠프에 복귀할 수 있었다.

 

12월 18일 낙석의 공포로 장비와 식량을 수송할 셰르파들이 대부분 카트만두로 하산했다. 부상을 입은 강기석 대원은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얼마간 팔을 쓰지 못했다. 캠프3(8050m) 구축 땐 희생정신이 강한 성낙종 대원이 선두에 서서 캠프 구축을 완료했으나 고소증으로 호흡 중 계속 피를 토해 더 이상은 등반하지 못하고 하산해야 했다. 낙석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 1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경 운행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오전 10시 30분쯤 짐을 챙기고 베이스를 출발했다. 베이스에서 30분 정도 걸어 모레인 지대를 통과하면 3인용 텐트가 있는 임시 캠프가 나온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크레바스를 건너고 얼음 지대를 지나 1시간여 만에 고정로프가 설치된 지점에 도착했다. 고정로프가 시작되는 구간부터는 또다시 낙석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번 등반에서 제일 힘들었던 요인 중에 하나가 낙석이었다. 캠프1까지 설치된 고정로프 2동은 일본대와 한국대가 따로 설치했다. 일본대 캠프는 커다란 바위 밑에 설치했는데 중앙에 빙벽이 형성 되어있다. 일명 ‘비너스 허리’라고 불리는 바위 오른쪽 편에 텐트 4동을 설치를 했고 우리는 빙벽 왼쪽 편으로 텐트 3동을 설치했다. 셰르파들과 함께 센다·켄모치 대원이 올라와 있었는데 센다는 안치영 대원과 여러 번 루트 작업을 같이 했었다. 다음날 캠프2로 향한 일본대는 새벽 3시에 출발하고, 한국대는 새벽 4시에 뒤따르기로 했다. 앞서가는 등반자 때문에 발생하는 낙석과 낙빙을 고려해 30분의 간격을 두고 출발을 결정한 것이다. 캠프1에서 장비를 챙겨 놓고 저녁 7시 잠을 청했다.?

 

? 꿀르와르 구간 낙석 위험 가장 커

◇ 캠프2에서 임시캠프3(7400m)로 진입 직전 구간.?

12월 19일 새벽 2시 30분 눈을 떴다. 새벽 3시쯤 되자 일본대 셰르파들이 바위지대를 주마링 하느라 분주하다. 새벽 4시에 우리도 캠프2를 향해 출발했다. 캠프1과 캠프2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고소적응이 안된 상태에서는 12시간 정도의 거리. 위험한 직벽과 오버행의 바위지대는 일본대 로프와 한국대 로프를 3동 정도 고정했고, 기존에 있던 고정로프들은 낡고 헐어모두 수거했다. 기존의 확보지점에도 하켄을 보충하고 슬링을 다시 묶었다. 이곳엔 역층의 오버행과 암각이 많아 로프가 쉽게 상한다. 캄캄한 벽 밑으로 크램폰이 바위에 긁히는 소리가 들리고 헤드랜턴 불빛이 반짝인다. 이 비너스 허리 구간을 지나면 설빙 구간이 나온다. 오른쪽과 왼쪽에 형성되어 있는 거대한 꿀르와르에서는 계속해서 낙석과 낙빙이 떨어지고 있었다. 고소포터인 파상 보티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다. 설릉이 끝나는 지점에서 트래버스를 시작했다. 안치영 대원과 강기석 대원 그리고 파상보티 세 명의 대원이 각자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속도를 맞추어 올랐다. 트래버스가 끝나면 직벽에 가까운 빙벽구간. 깔때기 모양의 지형 때문에 낙석이 가장 심한 구간이다. 빠른 속도로 올라야 하지만 몸은 마음처럼 그렇게 따라 주질 않는다. 이 빙벽구간을 오른 후에 바위지대를 지나고 낙석과 낙빙이 쏟아지는 좁은 꿀르와르 지대를 통과하면 삼각형 모양의 대암벽이고 이 구간이 끝나면 캠프2가 나타난다. 설릉을 깎아 만든 캠프 사이트에 3인용 텐트 1동과 2인용 텐트 1동을 설치했다.??

 

12월 20일 일본대는 캠프2에서 하루 더 쉬어간다고 했고 한국대는 그곳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임시 캠프자리에 3인용 텐트를 치고 하루 자기로 했다. 아침 7시에 안치영 대원과 파상 보티가 출발하고 강기석 대원은 뒷정리 후 조금 늦게 출발했다. 일본대는 자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거대한 암벽 밑으로 트래버스 한 후 30m 가량의 직벽을 오르면 예전 유고대가 설치한 로프와 와이어사다리가 있다. 임시 캠프 자리는 텐트를 한 동밖에 칠 수 없는 면적, 우리는 3인용 텐트를 설치해 스노바로 고정시켰다.??

 

12월 21일 7000m 높이에 있는 거대한 꿀르와르는 등반이 까다로운 구간이었다. 엄청난 양의 스노샤워와 낙석 그리고 높은 고도에서의 믹스 등반에 하켄 설치도 수월치가 않다. 이 구간을 통과하자 또다시 직벽구간이었고 삼각형의 거대한 대암벽을 돌아올라 8000m 높이의 캠프3를 구축할 수 있는 능선 끝자락에 도착했다. 첫날은 대원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한 상태에서 확보를 하고 새우잠을 청했다.? 안치영 낙석 사고로 8200m서 후퇴

 

12월 22일 강기석 대원이 컨디션 악화로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했다. 밤새 마신 산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카트만두에서 고가에 구입한 산소는 완제품이 아니라 리필한 제품으로 산소품질이 형편없었다. 같은 날 고소포터인 파상 보티도 컨디션 문제로 하산했다. 안치영 대원은 혼자 남아 일본대의 센다 대원, 셰르파 한명과 함께 등반을 계속했다. 무시무시한 위험 구간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상태로 직벽에 가까운 암벽을 트래버스 했다. 다음날 안치영 대원 또한 컨디션 저하로 하루 휴식을 취했다 12월 29일 한국대의 마지막 정상 공격, 안치영 대원은 일본대의 센다 대원, 켄모찌 대원과 함께 정상 공격에 나섰다. 그들이 전날 고정해놓은 꿀르와르 지점까지 먼저 돌파한 후 좁은 협곡 안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왼쪽 능선은 유고슬라비아 루트이고 오른쪽 능선은 러시아 루트. 여기선 하켄이 많이 필요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우리는 좁은 골 안에 들어와 있다. 낙석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저 위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낙석은 무자비한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수많은 낙석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헬멧과 몸, 마스크 등에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센다 대원은 선그라스의 오른쪽이 깨져서 금이 갔고 켄모치 대원도 얼굴에 낙석을 맞은 자국이 나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는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8m 정도의 빙벽구간에서 안치영 대원이 왼쪽 팔뚝에 주먹만한 낙석을 맞아 살이 움푹 패이고 말았다. 상처는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그냥 옷으로 덮어 버렸지만 왼팔을 당기질 못할 정도로 통증이 가라앉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안치영 대원은 일본팀 센다·켄모치 대원과 상의한 후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한국팀은 로체 남벽에서 철수했고 일본팀은 다시 2차 정상공격을 시도해 로체 남벽의 끝부분까지 도달했다. 로체 남벽은 신들의 땅에 ‘헝그리 정신’으로 발을 들여 놓은 우리들에게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실패라 말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했기에 ‘성공적인’ 등반이라 평가한다. 한편으론 안치영 대원이 8200m 고소에서 팔에 낙석을 맞았지만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감사하고 김형일 부대장, 최준열 대원, 성낙종 대원, 강기석 대원, 모두 크게 다치지 않고 무사히 등반을 끝마치게 되어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 대원들을 잘 이끌어 주신 이충직 대장님께 감사드린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