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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명산 순례 - 베이커 산 Mt. Baker

작성자줄루|작성시간11.02.13|조회수256 목록 댓글 0

밴쿠버 명산 순례 - 베이커 산 Mt. Baker
공룡능선에서 보는 가슴 떨리는 풍경 글 사진 이남기



◇ 생김새가 마치 식탁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테이블 마운틴. 이 산에 올라서면 주변 봉우리들을 한눈에 아우르는 전망이 무척 뛰어나다.

베이커 산(Mt. Baker·3285m)은 분명 미국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 가려면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를 밟아 미국 워싱턴 주로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그 다음 우거진 숲길을 한참 달려야 그 산 언저리에 닿을 수 있다.
월경까지 해야 하는 베이커를 '밴쿠버 명산 순례'에서 다루는 것이 어쩌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잣대에 따른 형식적인 구분일 뿐이지, 실제 우리의 가슴은 밴쿠버와 베이커를 굳이 따로 나누지 않는다. 그만큼 베이커는 밴쿠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산이기에 밴쿠버 명산의 범주에 넣어 소개하기로 한다.

밴쿠버나 그 인근에 있는 프레이저 밸리 어느 곳에서도 고개만 들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베이커다. 정삼각형 모양으로 우뚝 솟은 베이커의 웅장한 자태를 매일 접하는 이곳 사람들에겐 어머니 산 같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혹 몸은 미국이란 나라에 기대어 있지만 마음은 원래부터 밴쿠버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베이커는 워싱턴 주의 주도인 시애틀에 비해 오히려 밴쿠버에서 훨씬 가깝다. 직선 거리로 따진다면 밴쿠버에서 불과 100km 정도 떨어져 있지 않을까 싶다. 하루에 산행까지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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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해안 지역에서도 베이커의 존재를 뚜렷이 식별할 수가 있다. 그런 연유로 이 산에 이름을 붙여준 사람도 뱃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해군의 조셉 베이커(Joseph Baker)란 사람이었는데, 1792년 조지 밴쿠버 함장이 지휘하던 디스커버리호에 승선해 이 인근 해안 지역을 탐사하던 중 유럽인 처음으로 이 산을 발견한 것이다. 그 이전에도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 예를 들면 원주민이나 탐험가, 모피상 등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리 없건만, 산 이름을 명명하는데 있어서도 강대국의 논리가 우선하는 것 같아 입맛이 개운치는 않다.


베이커는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Mountains)에 속한다. 미국 워싱턴 주 산악지형 자체가 이 산맥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면 된다. 캐스케이드 산맥의 줄기는 알래스카에서 발원한 해안산맥에서 가지를 뻗은 것으로, 밴쿠버에 있는 가리발디 산(Mt. Garibaldi·2678m)에서부터 시작해 국경을 넘어 베이커 산과 레이니어 산(Mt. Rainier·4392m), 세인트 헬렌 산(Mt. St. Helens·2549m)을 지나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진다. 베이커는 이 산맥의 북단에 위치해 있는데 주능선에서는 조금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특이하게도 캐스케이드 산맥은 해안산맥과는 달리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봉우리들이 폭발의 징후가 높은 활화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0년 대규모 폭발로 인해 상당한 인명 피해와 지형 변화를 가져왔던 세인트 헬렌 산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 산은 2004년부터 다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간헐적으로 화산 폭발을 일으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베이커 산도 19세기에 수차례 폭발이 있었고 1880년 마지막 폭발이 있은 후에는 지금까지 잠잠한 편이다.
워싱턴 주에도 캐스케이드 산맥을 따라 장쾌한 산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가장 높은 산은 레이니어이며, 그 다음이 아담스 산(Mt. Adams·3742m)이다.

베이커는 워싱턴 주에서 세 번째 위치를 차지한다. 그 독특한 생김새와 빼어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베이커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고 대신 생태보전지구(Wilderness)로 지정되어 있다. 베이커 바로 동쪽에 노스 캐스케이드(North Cascade) 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는데, 베이커와 허리를 맞대고 있는 슈크샌 산(Mt. Shuksan·2783m)부터는 이 국립공원에 소속되어 있다.


◇ 콜맨 피너클을 지나친 지점에서 베이커 정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베이커 정상에 오르려면 어느 정도 경험과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일품 조망의 시작점 '아티스트 포인트'
생태보전지구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 우선 산행에 나서는 사람들은 그룹 당 12명을 초과할 수가 없다. 그 인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인원을 나누어 별도로 리더를 두고 따로 운행을 해야 한다.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Leave No Trace' 정책에 적극 동참을 해야 하고, 가져간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지고 내려와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는 캠프파이어를 할 수 없고,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금지다. 산사람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지켜야 할 내용들이지만, 이곳은 생태보전지구인 까닭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또 하나 기억할만한 사항은 겨울철 베이커 지역에 유독 눈이 많다는 것이다. 연평균 강설량이 16m나 된다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1998~1999년 동계 시즌의 기록을 보면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단일 시즌으로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던 그 해에 내린 눈이 자그마치 29m나 되었다. 겨울철에 베이커를 찾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대부분 접근로도 눈 때문에 차단이 된다. 단, 히더 메도우(Heather Meadows) 스키장까지는 언제나 차로 접근이 가능하다. 이 스키장은 눈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살려 북동쪽 사면에 30여개의 슬로프를 설치해 놓고 스키어들을 불러들인다.


이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산행 기점으로 부지런히 오른다. 글레이셔(Glacier) 관리사무소를 통과한 후 포장도로를 따라 고도를 높이면 히더 메도우가 나타난다. 여기부터는 나무에 가렸던 시야가 탁 트이며 풍경이 일순간에 바뀐다. 다시 차를 타고 구불구불 산허리를 돌아가면 해발 1445m의 아티스트 포인트(Artist Point)가 나온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가졌기에 이렇게 낭만적인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일부러 바위에 올라 눈으로 확인하려는 듯 사방을 둘러본다. 앞쪽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육중한 봉우리 베이커가 떡 하니 버티고 있고, 뒤로는 흰 눈과 시커먼 바위가 절묘하게 대비되는 슈크샌 산이 손에 잡힐 듯 서 있다. 이 두 봉우리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에 담기가 힘이 드니 '아트'란 단어를 쓴 것에 시비 걸지 않기로 했다.


산행 출발점은 바로 이곳 아티스트 포인트로 차를 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여기에서 콜맨 피너클(Coleman Pinnacle)까지는 왕복 16km에 등반 고도 500m를 올려야한다. 소요 시간은 대략 7~8시간. 아티스트 포인트를 출발해 처음에는 체인 레이크(Chain Lakes) 트레일을 타고 걷는다. 급경사 초원지대를 트래버스하고 테이블 산(Table Mountain·1737m)의 하단부를 가로지른다. 한발 한발 다가오는 베이커의 모습에 압도되어 한눈을 팔면 위험하다. 길이 뚜렷하고 평탄하다고는 하지만 산사태로 무너져 내린 잔돌이 많아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아차' 하는 순간 급경사를 따라 100~200m는 족히 굴러 떨어질 판이다. 더구나 잔설이 남아 있는 경우, 이런 사면에서는 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 30분쯤 걷다 갈림길이 나타나면 왼쪽 길을 택한다. 오른쪽이 체인 레이크 트레일이고 왼쪽이 타미간 리지(Ptarmigan Ridge) 트레일인데, 우리가 가는 콜맨 피너클은 타미간 리지 트레일 끝에 있기 때문이다.


◇ 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산이라 초원지대를 제외하고는 맨땅을 보이는 지역이 많다. 오르막길에 모래와 자갈이 많아 미끄러지기 쉽다.

'공룡능선'에서 바라보는 베이커 전경
산허리를 휘감고 이리저리 돌아가는 산길에 정감이 간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초원을 가로질러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길에서도 제법 운치를 느낄 수 있다. 산길도 베이커의 여유로움을 배운 모양이다. 발걸음도 가볍게 산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야생화 군락이라도 만난다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이유가 없어 쉬엄쉬엄 여유를 부려본다. 그래도 산행 목적지인 콜맨 피너클은 그리 멀지 않으니 말이다.
콜맨 피너클 아래에 섰다. 원래는 여기가 목적지였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좀더 진행을 하기로 했다. 1시간 정도 더 가면 베이커를 지척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능선에 이르기 때문이다. 산행 내내 베이커와 슈크샌이 앞뒤를 호위하듯 함께 하더니 어느 산허리를 휘돌자, 슈크샌은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지고 콜맨 피너클 뒤로 베이커의 진면목이 겹쳐 보인다.

어느새 왼쪽 골짜기에서 한 덩이 구름이 몰려온다. 저 아래 봉우리가 구름에 휘감기는 듯 하더니 뜻밖에 신비스런 분위기가 연출된다. 거기에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산양 무리까지 눈에 띄니 베이커의 음덕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능선으로 연결된 마지막 오르막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가 않다.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거저 대할 수는 없는 법. 미끄러운 설원과 돌밭을 지나 콧등에 땀이 맺힐 때가 되어서야 공룡 지느러미처럼 생긴 날카로운 능선 위에 올라선다. 눈앞에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나고 그 건너편에는 베이커의 온전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구름이 걷혀 푸르름이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치솟은 베이커 정상. 그리고 그것을 정점으로 해서 사방으로 흘러내린 빙하들. 저 빙하 위로 올라설 수만 있다면 오래지 않아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여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빙벽과 빙하를 통과할 수 있는 경험과 장비를 갖추었다면 말이다.


INFORMATION
베이커 산 길잡이

밴쿠버에서 1번 하이웨이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다가 아보츠포드(Abbotsford)에서 미국 국경을 넘는다. 미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자가 필요하다. 미국 쪽 국경도시인 수마스(Sumas)에서 왼쪽으로 돌아 547번 주도로(State Route)를 타고 진행을 하다가 켄달(Kendall)이란 마을에서 542번 주도로로 갈아타야 한다. 켄달에서 산행 기점인 아티스트 포인트까지는 숲 속 포장도로를 따라 약 50km를 더 가야 한다.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밴쿠버에서 차로 대략 2시간 걸린다. 베이커 생태보전지구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없지만, 데이 패스(Day Pass)라 해서 차량 당 미화 5달러의 주차료를 받는다. 데이 패스는 글레이셔란 마을에 있는 관리사무소에서 구입할 수 있다. 히더 메도우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도 살 수는 있으나 현금만 사용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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