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산악회 2인조, 슐타나리지로 한국 초등
- 5일. 어제 허기진 몸으로 사력을 다한 이유인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해 오전 10시에 눈을 떴다. 가능한 오늘 중으로 식량이 있는 ABC까지 가기를 고대하며 짐을 꾸려 출발하려니 바람이 불며 눈이 오기 시작한다. 100여m 진행하다 전혀 방향을 잡을 수 없고 지형의 높낮이를 구분할 수 없어 포기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와 다시 텐트를 치고 날이 좋아지길 기다린다.
오후 5시가 되니 시야가 좋아져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갈 때는 어려움을 못 느꼈는데 경사가 심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 안전에 신경을 쓰며 위험구간은 서로 확보를 봐주며 러닝빌레이를 보며 진행한다. 4시간이 걸려 C2에 도착한다. 마음은 ABC까지 가고 싶으나 그 동안의 피로감으로 여기서 하루를 지내기로 한다. 서두르다가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6일. 오전 7시30분 하산을 시작한다. 경사가 심한 곳은 서로 확보를 봐주며 내려간다. 실수하면 빙하 아래까지 떨어진다. 경사가 심한 곳을 다 통과하고 40도 정도 되는 곳을 편안하게 안자일렌하며 내려간다. 오전 10시경인데 우리가 내려가는 설사면은 동쪽이라 떠오르는 태양으로 기온이 오르고 고도도 많이 낮아져 설사면의 눈이 습하다. 아이젠 바닥에 스노볼 방지 고무가 붙어 있는데도 스노볼이 자꾸 생긴다.
- ▲ PT12,475를 횡단하여 슐타나 기지로 진입하는 필자.
- 먼저 내려가던 내가 아차 하는 순간 슬립하고 말았다. 기철형과 나를 이어준 로프의 간격은 15m 정도. 뒤따라오던 기철형은 예측하지 못한 나의 추락에 제동을 못하고 딸려 내려온다. 피켈 피크로 제동을 걸었으나 멈추지 않고 계속 미끄러져 내려간다. 몇 초 후 다행스럽게도 피크 끝이 걸리며 내가 멈추었다. 15m 아래 기철형이 매달려 있다. 만약 제동에 실패했다면 1,000m 아래 빙하로 추락했을 것이다.
성공은 탈 없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
긴장을 풀지 않고 C1에 도착하여 데포한 짐을 추가하니 배낭 무게가 더해진다. ABC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염려 되는 구간이다. 빙하에서 능선으로 연결되는 쿨와르의 눈이 그동안 기온 상승으로 녹아 없어졌다면 하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있는 바위들은 너무 부실하여 아무런 확보를 할 수가 없다. 이미 습설이 된 사면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보니 바닥에서 100m 정도 눈이 녹아 바위만 남아 있고 몇 군데 얇은 얼음과 눈들이 붙어 있다.
마지막 난관이다. 기철형을 위에서 확보를 보며 내려주면 기철형은 바위에 얇게 얼어붙은 얼음에 아이스스크류를 박았다. 나는 다운클라이밍하여 그곳까지 내려간다. 그곳에서 다시 20여m 내려와서 바위에 조금 남아 있는 눈에 스노피켓을 박고 45m 로프를 고정시켰다. 이 로프로 하강하여 우리는 빙하의 안전한 곳에 다달았다.
- ▲ C3에서 기념촬영한 필자와 신기철 대원(오른쪽).
- 이제 약 1시간만 빙하지대 크레바스를 조심하면서 내려가면 된다.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자 다짐하며 ABC까지 내려섰다. 기철형은 텐트에 도착하자마자 담배부터 찾는다. 그리고 그동안의 허기를 채운다. 시원한 우동 국물과 캔콜라 맛은 기가 막히다.
오후 4시30분 ABC를 출발하여 모든 짐을 썰매와 배낭에 나누어 싣고 4시간 후 랜딩포인트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 매니저에게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1시간 이내에 비행기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오후 9시30분 우리를 실으러 경비행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40분 후 탈키트나에 도착했고 자정이 다 될 무렵 우리는 탈키트나의 웨스트립 카페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등정을 자축했다. 지난해 하산시 랜딩포인트에서 나흘간 대기한 것과 대조가 된다.
문제없이 등반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진정한 등반의 성공은 가족에게 아무 탈 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잘 놀았으니 잘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배고픔과 긴장감의 연속이었지만 즐겁고 흐뭇한 등반이었다.
/ 글 원대식 | 사진 신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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