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주구묘와 전방후원분의 관계?, 왜계백제관료에 대한 문헌적 근거, 가야지역의 왜계문화요소: 그리운길님의 댓글에 답변합니다.
작성자지나가다.. 작성시간10.04.01 조회수586 댓글 9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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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그리운길 작성시간10.04.03 글쎄요..당분간 글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으나..글을 올리게 되네요..일제시대때의 일본학자들이 전방후원분의 전신이 주구묘 라고 주장한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던 터에 그 기원이 인터넷이었다니..알려주셔서 감사하구요......인터넷 -- 일제시대의 일본학자들 -- HD 역사스페셜 ...음,,재밌군요.2000년 이후의 논문중에서 그러한 주장들을 부정하는 논문을 못 본것 같은데 .... 님과 같이 이러한 식으로 누가 무슨말을 했다기 보다는 전체 논문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맘에 드는 팩트의 짜깁기 라는 생각만 드는 건 왜 일까요...관리의 무덤을 왕, 천황의 묘제와 동급으로 한다...참.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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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그리운길 작성시간10.04.03 한반도의 왜 에 대해서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제가 주장한 게 아닙니다..무슨 근거로 제가 주장한 설이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2차사료인 중국문헌과 3차 사료인 삼국사기가 충돌할땐 심각한 오류가 나타나기 전까진 2차사료에 신빙성이 있다는 건 당연한거 아닐런지요..
남의 글은 전혀 읽지를 않는군요...칠오삼 논쟁이라 하여 일본의 고대국가시기를 5세기 말, 6세기 초로 일본학계도 주장하는걸로 압니다..3세기는 폐기 처분될 정도죠..
ebs 특집다큐 한반도의 왜..그리고 kbs 다큐 역사를 찾아서 에서 가야사부분, 마한,영산강 부분을 찾아보시고 읽거나 듣거나 보시기를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 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4.03 그리운길님이 올려 놓은 본인의 댓글을 보시고 말씀하셨으면 합니다. 거기서는 일제시대 일본학자의 애기는 없습니다.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에 대하여 영광군동리 주구묘를 거론한 분은 그리운길님입니다.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에 대하여 영광군동리 주구묘 즉 한국의 주구묘에서 계통적 연결되는 것을 검토하지 않는것이 안타깝다고도 한 분도 그리운김님입니다. 왜 일본의 경우를 가져와서 애기하는지 2000년이후 논문을 언급하는지 .... 그리운길님 반론을 정확히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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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4.03 두번째 댓글에 대하여 : 그리운길님이 이른바 <한반도의 왜의 중심이동설>을 거론하였는데 본인의 주장이 아닌데도 언급한것은 최소한 동의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요? 설마 동의 하지도 않으면서 생각난다며 툭 던져 놓은 것은 아니길 바랍니다. 아울러 그리운길님의 알려주지 않아도 방송 다규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대가야의 섬진강유역 진출에 대한 논의 황강남강수계에 진출에 대한 논의는 다큐수준이상 알고 있답니다. 본래 저의 글은 5세기말 6세기초반이라는 시대로 한정되어 있거든요. 저의 글에서도 박천수선생의 견해를 따르며 대가야가 이 지역에 진출하고 이어 백제가 진출하여 장악하는 과정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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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4.04 그리고 뜬금없이 칠오삼논쟁 즉 일본의 국가형성논쟁을 왜 말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군요. 저의 이전글이나 윗글이나 칠오삼 논쟁과는 주제가 다르답니다.
첫번째 댓글에서 그리운길님이 <<관리의 무덤을 왕, 천황의 묘제와 동급으로 한다...참.ㅜ.ㅜ>. 언급했는데요. 좀 그렇군요. 착오인지 뭔지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전방후원분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인데. 전방후원분은 최고위급 수장의 무덤양식이긴 하나 천왕과 천왕가만이 독점하는 전유물이 아니랍니다. 일본열도에서 전방후원분이 보이는 곳을 알아보면 됩니다. 이미 저의글에도 언급되어 있지요 구주계 전방후원분이라고. -
답댓글 작성자 그리운길 작성시간10.04.04 여러학설과 여러학자들의 견해를 얘기하면서 마치 님의 의견이 통설처럼 비추어진다는데 문제겠죠.
또한 그런식으로 비추어지지 않았다면 댓글도 달지 않았죠.
국내학자와 일본학자들 대부분이 주구묘에서 장고형무덤 또는 전방후원분으로 변화 하였을꺼 라는게 통설입니다
또한 무녕왕이 기문대사를 공취한 이후, 성왕시기에 영산강유역에 직접지배를 하였을 것이다 라는게 또한 통설이고요
주구묘, 전방후원분은 세력들의 권력자 무덤으로 열도통일전엔 여러곳에서 발견되지만
통일이후엔 천황의 무덤일거라는게 일본학계의 통설입니다...
전문적인 형식의 글을 올리려면 통설은 이러한데,,나의 생각은 이렇다 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
작성자 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4.04 그리운길님 ..통설?? 국내학자들이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의 견해를 제시하며 일본의 전방후원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논한것은 있으나 가 일본의 전방후원분을 논하는 논고를 제시한것이 있나요? 정확히 알고 말하길 바랍니다.. 다시말하지만 일본의 전방후원분에 대하여 일본측 연구자들이 열도의 전방후원분에 대하여 논하였겠지만, 국내학자들이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이 한국내의 주구묘에서 계통을 찾을수 있다는 논고가 있습니까!!! 설마 윗글에서 제시한 인터넷에서 떠도는 무지에서 비롯한 짜집기 글쓴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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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4.04 통설을 말하며 한반도 왜의 중심이동설 어쩌구말한 사람이 그리운길님이었던것 같은데 이런 엉뚱한 애기가 통설인가요..? 설마 통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것은 아니겠지요.
반론한것에 그저 근거없이 통설운위하는 본인의 주장만 반복하시니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하죠
한반도에서 아니 영산강유역에서 주구묘에서 전방후원분으로 발전? 계통이 이어진 것이 있습니까? 그런 고고학적 근거가 있으면 제시하기 바랍니다.
만에 하나 그러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일본천왕의 무덤이 한반도에서 유래되엇다고 대서특필할만한 특종감이랍니다. 그리운길님만이 이런 특종감을 독점하지 말고 제시하여 주시면 좋겠군요 -
답댓글 작성자 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04.04 그리고 한가지더 일본열도의 통일시기에 대하여 칠오삼논쟁을 자주언급하던데, 그리고 위 댓글에서는 전방후원분이 열도통일후에 천왕만이 독점한다고 하였는데 그리운길님이 생각하시는 통설이 이런것인가요?. 흥미롭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운길님은 구주에서 5세기 후반에 다시 전방후원분이 많이 축조되는것으로 볼때,그리운길님은 일본열도의 통일은 칠오삼논쟁중에 7세기설을 지지하는가 보군요.
그런데 어쩌죠 7세기경에는 전방후원분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고분시대는 종막을 고한 시기가 되거든요. 그렇다면 그리운길님이 말씀하신 일본열도 통일 후에 천왕이 전방후원분을 독점할수 있을까요? 이것이 통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