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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녀(妖女)'는 과연 '은고(恩古)'일까?

작성자百濟 牟大王| 작성시간09.01.14| 조회수3276|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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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大欽茂 작성시간09.01.14 백제에서 왕후를 '대부인'이라고 호칭하고 있다는 것은 '대부인'이 둘일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요녀로 지목된 여인은 은고가 맞을 겁니다. 단재가 언급한 금화는 의자왕의 여러 후궁 중에 총희였을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한단인 작성시간09.01.15 대부인이 융의 어머니에서 효의 어머니로 교체가 되었다면요?
  • 답댓글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01.15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금화"라는 인물은 백제멸망이 신라의 음모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일방적으로 설정한 캐릭터이므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것으로 사료됩니다만...분명한 것은 위의 본문과 삼국사기 내용으로도 태자 효가 아무래도 꺼림직하며 그 어미가 개입된 흔적 또한 우회적인 암닭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01.14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19년 여름 4월, 태자궁에서 암탉이 참새와 교제하였다.(十九年 夏四月 太子宮 雌雞與小雀交.)라는 기사에서 암탉이라면 부여융이 아닌 태자 효의 어미로 보입니다..태자 효가 아마도 비정상적으로 상당히 시끄럽게 태자가 된듯 합니다..그리고 타사암으로 궁녀들을 이끌고 간 왕비 역시 태자 효의 어미가 실책한 것에 대한 후회 또는 자책감으로 자살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매우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본문의 내용이 매우 자세하여 나열된 의문시 되는 점에 매우 공감합니다.
  • 작성자 kamando 작성시간09.01.15 백제가 망한 원인중 하나는 전통적으로 왕과 8성 대족등 귀족이 대립하던중 의자왕초기 부터 정변을 일으켜 귀족을 숙청하고 왕권강화를 꾀하여 큰성과를 거둔것으로 보이는데 의자왕의처 요녀가 국권을 휘두를수 있었다는것은 의자왕시대 왕권강화가 성공한 결과이나 왕권집중하는 과정은 성공했으나 그 행사에서는 능력이 부족했다고 보이며 그결과 요녀및 그 주변세력이 엉터리 정치를 펼쳤다고 추론해봅니다 그결과 백제도성이 함락될때 지방지원군이 오지 않은것으로 보입니다
  • 작성자 大欽茂 작성시간09.01.15 효태자의 모후가 은고대부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무엇으로 알 수 있죠? 설령 은고대부인이 융태자의 모후였다가 폐서인되고, 효태자의 모후가 대부인이 되었다면 백제멸망 당시 포로는 은고대부인이 아니여야 하는데 사료에는 왕의 처 은고라고 명시되어 있거든요.
  • 답댓글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01.15 이미 본문에서 은고가 군대부인인 요녀가 될 수없다는 이유를 "백제공격의 명분을 주장하고있는 당측 선전물인 A)에서 '요부(재앙을 가져오는 여자)'로 지목되어 '충성되고 어진 사람에게 형벌이 미치'게 한 그 -만악의 근원-이, C)에서처럼 의자왕과 부여륭 등 다른 포로들과 같은 처우를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라고 매우 공감이 가는 이유를 밝혀 놓았네요..^^
  • 답댓글 작성자 부여장 작성시간09.09.09 외척 정권이 바뀌었다 해서 꼭 폐서인이 되어야 할까요? 태자가 효로 바뀌고 대부인이 효의 어머니가 되었다 해서, 은고대부인이 폐서인으로 될 이유와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대부인이 효의 어머니인 상태에서 왕의 또다른 처인 은고, 이런 상정은 정녕 있을 수 없는 일일까요?
  • 작성자 해내리 작성시간11.05.10 부여효의 나이가 고려되지 않은 연구같은데요 ? 삼국사기엔 사비성이 포위되고 의자왕과 태자 효가 북변으로 도망치자 둘째 태가 왕을 자처하고 당나라 군사에 맞섰는데, 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 왕과 태자가 밖으로 나갔는데, 숙부(태)가 자의로 왕이 되었으니 만일 당병이 포위를 풀고나면 우리가 무사할수 있겠습니까 ? '하고 당나라에 항복한걸로 되어있습니다. 즉 부여효의 아들 문사가 이만한 이야길 할수 있을법한 나이란거죠
  • 작성자 해내리 작성시간11.05.10 나라를 망친 요녀라면 통상적으로 왕이 나중에 여색에 빠져든 젊은 여인쯤으로 생각하는데...부여효의 어머니를 요녀라 하고...부여효가 태자가 된 시기를 15-20년 사이의 일과 결부지어 생각한다면, 부여효는 백제 멸망시기 다섯살도 채 안된 어린아이란 이야기가 됩니다. (님이나 다른분들이 추정하는건 결국 의자왕이 나중에 얻은 젊은부인에게서 나온 부여효가 태자가 된걸로 생각하시는거 아닌가요 ? )
  • 답댓글 작성자 부여장 작성시간11.07.26 나라를 망친 요녀가 통상적으로 여색에 빠져들어 생긴 젊은 여인.... 이라는 가정이 딱히 상식적인가요? 전 그렇게 단정내릴 만한 근거가 보이지 않는데요...
  • 작성자 해내리 작성시간11.05.10 헌데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이미 부여효에겐 다른 신하들이나 숙부(?)등을 설득할만한 장성한 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부여문사는 분명히 왕을 자처한 '부여태'를 숙부로 지칭했군요. 저도 은고=요녀가 아니다란 주장 자체엔 동의합나다만, 그렇다고 부여효의 어머니를 요녀로 단정하기에도 여러가지 정황상 무리가 따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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