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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토론방

Re: 명광개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작성자비사인|작성시간11.10.19|조회수1,553 목록 댓글 3

저도 아는게 별로 많지는 않지만 대강 아는 사실들을 간단하게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우선『삼국사기』에서는 명광개에 관한 기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獲馬五萬匹ㆍ牛五萬頭ㆍ明光鎧萬領, 它器械稱是.

말 5만 필ㆍ소 5만 두ㆍ명광개 1만 벌을 노획하였으며, 기타의 기자재도 이 정도 노획하였다.

- 『삼국사기』 권 제 21 「고구려본기」 보장왕 4년 5월

 

二十七年, 遣使入唐, 獻明光鎧, 因訟高句麗梗道路, 不許來朝上國.

27년,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명광개라는 갑옷을 바치면서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고 상국을 입조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호소하였다.

- 『삼국사기』 권 제 27 「백제본기」 무왕 27년

 

명광개는 본디 중국의 갑옷입니다. 다만 삼국사기 등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지요. 특히 백제에서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명광개를 보낸 기록까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번에 출토된 갑옷을 명광개로 보는 것이지요. 즉 이번 발굴에서 명광개의 존재가 증명된다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명광개의 기록이 증명되는 셈이지요.

 

중국에서 명광개라고 하는 갑옷은 가슴에 호심경(護心鏡)이라는 장식을 단 갑옷을 의미합니다. 이 호심경이 빛에 반사되어 적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또한 생명과 직결되는 가슴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즉 호심경의 유무가 명광개의 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물론 갑옷을 빛나게 보이게 하는 물질을 칠하여 명광개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면 이 또한 명광개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그러한 유물이 없기에 이 부분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명광개가 처음 등장한 것은 동한 말기입니다. 이후 남북조시대 때 그 형태가 완성되었지요. 삼국시대 조식이 쓴 「선제사신개표(先帝賜臣鎧表)」에서 그 존재가 처음 언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주로 유물로서 그 존재들이 보이지요. 그러한 갑옷 실물자료가 발굴되는 것이 아닌, 주로 도용의 장식으로 많이 나옵니다. 당나라의 정인태묘(鄭仁泰墓)ㆍ이상묘(李爽墓)ㆍ독고군처원씨묘(獨孤君妻元氏墓)에서 출토된 도용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나라 때에는 명광개가 꽤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육전(唐六典)』권 16에 보면 갑옷을 크게 13가지로 나눠 보고 있지요. 이들을 살펴보면 명광갑(明光甲)ㆍ광요갑(光要甲)ㆍ세린갑(細鳞甲)ㆍ문산갑(文山甲)ㆍ오추갑(烏鎚甲)ㆍ백포갑(白布甲)ㆍ조견갑(皁絹甲)ㆍ포배갑(布背甲)ㆍ보병갑(步兵甲)ㆍ피갑(皮甲)ㆍ목갑(木甲)ㆍ쇄자갑(鎖子甲)ㆍ마갑(馬甲)이 있습니다. 참고로 명광개는 무조건 철갑인게 아닌, 피갑인 것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제의 갑옷에 황칠을 한 것이 명광개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추정입니다. 황칠은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으로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서식하지요. 그 빛이 황색이다보니 매우 귀하게 여겼지만 또한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조선시대 때 사람들이 일부러 많이 베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지금 남아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지요.

 

일반적으로 칠을 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옻칠이 과연 적에게 눈부시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정도인가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조금 의문이 드는 부분이긴 합니다.

 

 

 

위의 사진은 제가 하남성박물관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비교적 큰 크기의 도용 중 왼쪽 것이 1971년 안양시 홍하둔 범수묘 출토된 무사용이며, 오른쪽의 것이 탕음현 마가구 출토 무사용입니다. 둘 다 북조의 유물이며, 특히 왼쪽의 유물은 북위 제평 6년(575)의 유물입니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낙양박물관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지금 사진을 보니 정확한 출토지 부분을 제대로 못찍어서 아쉽네요. 이는 당삼채로 제작된 것으로서 당나라 때의 천왕용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사진은 섬서성박물관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서안 서교 중보촌 당묘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역시 당삼채로 제작된 천왕용입니다.

 

사진들에서는 찰갑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원래 찰갑 위에 호심경을 장식하는 것이기에 유물 자체에서는 간략화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슴 양쪽에 보이는 둥그런 것이 바로 호심경이지요.

 

현재 공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확실히 지금의 단계에서 명광개라고 단정짓기는 이른 감이 큽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토되지 않았던 피갑이 매우 놀라운 보존상태로 출토되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요. 차후 온전한 개체로 갑옷이 복원된다면, 백제는 물론이거니와 당시 동아시아의 갑옷을 연구하는데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으로선 섣부른 의미부여는 가급적이면 지양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차후 유물이 제대로 복원되었을 때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다같이 고민해보아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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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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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麗輝 | 작성시간 11.10.19 직접 찍은 사진들까지 소개해 주시고, 잘 봤습니다. ^^
  • 작성자실마리 | 작성시간 11.10.19 잘 보았습니다! http://zairai.egloos.com/ 이건 예전에 들렀던 블로그인데...갑옷에 대해 볼거리가 많습니다ㅋ
  • 작성자모단 | 작성시간 11.10.20 덕분에 명광개가 무엇인지 대충은 이해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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