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한참 작업하는 것이 연개소문인지라, 어제 방영된 안시성편은 아주 유심히 보았다.
미리 제작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시성 전투의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이 제대로 안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신채호님의 조선상고사의 고-당 전쟁에 대한 언급을 거의 그대로 따라 할 것임도 알고 있었다. 또 고구려가 북경을 공격한 것 역시 과거에 방영되었던 고-당 전쟁 철저분석 편에서 이미 한 것을 재탕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기대했던 것은 GPS로 찍은 안시성의 모습과 장산열도에서의 고구려 성에 대한 것이었다. 역시 기술의 힘은 무서워서 GPS로 복원한 고구려성의 모습은 훌륭했다.
그런데 의문은 영성자산성에 대한 것이다. 영성자산성을 안시성으로 본다는 전제를 깔고 문제에 접근했으니까 나도 그렇게 보고 문제점을 지적해본다.
먼저 GPS로 인공 토산의 흔적이 확인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 그래 이것은 중국학자 이전복이 인공토산설을 제기했던 것이니까, 약간의 선입견으로 토산을 찾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안시성에는 서쪽에 문이 두개가 있다고 멘트가 나갔다.
그렇다면 성의 동남쪽에 있어야 할 토산이 분명 남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림이 나간 것은 문제다. 이것은 기록과 틀리며, 영성자성이 안시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영성자성에 대한 보고서에는 동문이 따로 있고, 동남쪽에 토산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GPS에서는 동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평지쪽이 서문인 것은 확실하다.
GPS에서 방향 표시를 좀 더 명확히 해주었다면, 또 성문의 위치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군은 6월 20일 성의 북쪽에 왔다가, 7월 5일 동쪽언덕으로, 8월 10일 남쪽으로 각각 진영을 옮긴다. 그들이 주로 공략했던 곳은 성의 정문인 서문이 아니라, 오히려 동문쪽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GPS에서는 당의 주공격이 서문인 것처럼 보게 만든다.
이것이 첫번째 아쉬운 점이다.
두번째 지적할 것은 당나라 해군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기록에 전혀 남아있지 않는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것은 말이 안된다. 고구려해양사 전공학자까지 따라갔다면서 도대체 이런 잘못을 저지르다니...
당나라 해군 사령관 장량은 건안성을 공격했다. 건안성에 대해서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당군은 전쟁 초반부터 3갈래가 아닌 4갈래로 나누어 공격해왔다. 그 나머지 한 갈래가 바로 건안성공격이다. 영주도독 장검이 4월달에 이곳을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7월에는 다시 해군 사령관 장량이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실패한다. 당나라 해군이 건안성을 공격한 것은 해군이 육군에 대한 군량 보급 및 당나라 육군의 보조공격축선인 건안성-수암-오골성 축선을 확보하여, 안시성을 건안성과 요동성 양쪽에서 공격하자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패했던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고구려해양방어성으로써 건안성을 강조했다면 안시성 전투에 대한 의문이 많이 풀렸을 것이다.
또 당나라 해군총관 구효충이 압록강으로 진군하려고 출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이야 말로, 고-당 해군이 장산열도에서 격돌한 충분한 근거자료가 되는데, 이런 기록들이 없다고 멘트를 하다니, 실망감을 갖게 했다.
세번째,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쫓아 공격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연개소문이 영주에 오려고 했다는 기록이 신당서에 있다고 한대목은 나로 하여금 한숨이 나오게 했다. 당태종이 퇴각한 것은 645년 9월에서 11월의 일이고, 연개소문이 영주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은 신당서 장검열전에 나오는 것으로 644년 겨울의 일이다. 이런 시차가 존재하는데도, 이것을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고 설명해서는 안된다.
4번째 당군의 퇴각이 안시성에서 그냥 돌아간 것으로 그려놓았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당군은 요동성으로 가서 남은 군량을 먹고 다시 요동성 앞의 요택을 건넜다. 대와시는 남쪽이라서 그 보다는 북쪽인 대안과 반산시 쪽을 지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안시성에서 퇴각했다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취재도 다른 곳을 찍었던 것이다. 고구려가 북쪽의 성들을 재탈환했기에 요택으로 지나갔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 학자가 대체 누구를 지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운데 만약 내가 포함되어 있다면, 나는 아니다. 나는 고구려가 당군이 철수하기 이전에 요동성을 되찾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 나는 백암성, 개모성을 되찾았는지 여부를 단언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북쪽의 신성이 지켜짐에따라 당군이 육상보급로가 끊겼고, 이세적이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을 이야기했다. 이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다.
이번 작품을 만드느라고 우종택PD 등이 매우 고생했다는 것은 잘 안다.
나도 우종태PD에게 전화를 해서 수고하셨읍니다 인사를 했지만, 프로그램을 보면서 갖는 아쉬움은 남아있다. 연구자들도 깊이 있게 보지 않으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문제를 갖고 시비를 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좀 더 신경을 써서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시청자들이 올바르게 역사적 사실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써본다.
미리 제작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시성 전투의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이 제대로 안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신채호님의 조선상고사의 고-당 전쟁에 대한 언급을 거의 그대로 따라 할 것임도 알고 있었다. 또 고구려가 북경을 공격한 것 역시 과거에 방영되었던 고-당 전쟁 철저분석 편에서 이미 한 것을 재탕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기대했던 것은 GPS로 찍은 안시성의 모습과 장산열도에서의 고구려 성에 대한 것이었다. 역시 기술의 힘은 무서워서 GPS로 복원한 고구려성의 모습은 훌륭했다.
그런데 의문은 영성자산성에 대한 것이다. 영성자산성을 안시성으로 본다는 전제를 깔고 문제에 접근했으니까 나도 그렇게 보고 문제점을 지적해본다.
먼저 GPS로 인공 토산의 흔적이 확인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 그래 이것은 중국학자 이전복이 인공토산설을 제기했던 것이니까, 약간의 선입견으로 토산을 찾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은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안시성에는 서쪽에 문이 두개가 있다고 멘트가 나갔다.
그렇다면 성의 동남쪽에 있어야 할 토산이 분명 남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그림이 나간 것은 문제다. 이것은 기록과 틀리며, 영성자성이 안시성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영성자성에 대한 보고서에는 동문이 따로 있고, 동남쪽에 토산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GPS에서는 동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평지쪽이 서문인 것은 확실하다.
GPS에서 방향 표시를 좀 더 명확히 해주었다면, 또 성문의 위치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군은 6월 20일 성의 북쪽에 왔다가, 7월 5일 동쪽언덕으로, 8월 10일 남쪽으로 각각 진영을 옮긴다. 그들이 주로 공략했던 곳은 성의 정문인 서문이 아니라, 오히려 동문쪽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GPS에서는 당의 주공격이 서문인 것처럼 보게 만든다.
이것이 첫번째 아쉬운 점이다.
두번째 지적할 것은 당나라 해군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기록에 전혀 남아있지 않는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것은 말이 안된다. 고구려해양사 전공학자까지 따라갔다면서 도대체 이런 잘못을 저지르다니...
당나라 해군 사령관 장량은 건안성을 공격했다. 건안성에 대해서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당군은 전쟁 초반부터 3갈래가 아닌 4갈래로 나누어 공격해왔다. 그 나머지 한 갈래가 바로 건안성공격이다. 영주도독 장검이 4월달에 이곳을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7월에는 다시 해군 사령관 장량이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실패한다. 당나라 해군이 건안성을 공격한 것은 해군이 육군에 대한 군량 보급 및 당나라 육군의 보조공격축선인 건안성-수암-오골성 축선을 확보하여, 안시성을 건안성과 요동성 양쪽에서 공격하자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패했던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고구려해양방어성으로써 건안성을 강조했다면 안시성 전투에 대한 의문이 많이 풀렸을 것이다.
또 당나라 해군총관 구효충이 압록강으로 진군하려고 출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이야 말로, 고-당 해군이 장산열도에서 격돌한 충분한 근거자료가 되는데, 이런 기록들이 없다고 멘트를 하다니, 실망감을 갖게 했다.
세번째,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쫓아 공격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연개소문이 영주에 오려고 했다는 기록이 신당서에 있다고 한대목은 나로 하여금 한숨이 나오게 했다. 당태종이 퇴각한 것은 645년 9월에서 11월의 일이고, 연개소문이 영주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은 신당서 장검열전에 나오는 것으로 644년 겨울의 일이다. 이런 시차가 존재하는데도, 이것을 동일한 연장선상에 놓고 설명해서는 안된다.
4번째 당군의 퇴각이 안시성에서 그냥 돌아간 것으로 그려놓았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당군은 요동성으로 가서 남은 군량을 먹고 다시 요동성 앞의 요택을 건넜다. 대와시는 남쪽이라서 그 보다는 북쪽인 대안과 반산시 쪽을 지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안시성에서 퇴각했다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취재도 다른 곳을 찍었던 것이다. 고구려가 북쪽의 성들을 재탈환했기에 요택으로 지나갔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 학자가 대체 누구를 지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운데 만약 내가 포함되어 있다면, 나는 아니다. 나는 고구려가 당군이 철수하기 이전에 요동성을 되찾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 나는 백암성, 개모성을 되찾았는지 여부를 단언하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북쪽의 신성이 지켜짐에따라 당군이 육상보급로가 끊겼고, 이세적이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을 이야기했다. 이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다.
이번 작품을 만드느라고 우종택PD 등이 매우 고생했다는 것은 잘 안다.
나도 우종태PD에게 전화를 해서 수고하셨읍니다 인사를 했지만, 프로그램을 보면서 갖는 아쉬움은 남아있다. 연구자들도 깊이 있게 보지 않으면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문제를 갖고 시비를 건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좀 더 신경을 써서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시청자들이 올바르게 역사적 사실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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