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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답변. 우선 기록에 충실해서 봅시다.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2.08.04|조회수91 목록 댓글 0
1번 문제 - 행군총관 구효충이 이끈 당의 해군이 압록강으로 갔다는 기록만이 있기 때문에 고구려군이 이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당군이 비사성을 점령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고, 그 이후의 구효충과 고신감이 이끈 당나라 해군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당의 해군의 주력은 그곳이 아니라, 건안성쪽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즉 해군 총사령관 장량은 압록강이 아닌 건안성에 갔습니다.

다시말해 당의 해군이 요동반도 남단이 아닌, 북단으로 가서 요하하구에 있는 건안성을 공격했다는 것은 수나라 해군처럼 수륙병진작전이 아니라, 육군을 보좌하는 역할에 충실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입니다. 즉 구효충의 군대는 고구려군에 의해 패배했을 가능성과 함께, 작전이 변경되어 건안성쪽으로 갔을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에게 있어 압록강쪽에 당군을 상륙을 허락한다는 것은 매우 위협한 짓입니다. 그렇다면 661년 계필하력의 군대가 압록강을 공격했을때 남생을 보내 막았던 것처럼 즉각 그쪽에 지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667년 압록강이 요해처인줄 모르는구나라는 당의 암호문을 읽은 남건이 군대를 압록강쪽에 보내자, 암호문을 흘린 원만경이란 자가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도 압록강에 당군이 상륙하는 것만큼은 고구려가 철저히 막았을 것이며, 이 임무는 광록도, 해양도, 대장산도, 석성도, 피구 등지에 있는 고구려해양방어기지들이 담당했다고 보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건안성입니다. 건안성은 신성전투, 주필산전투와 함께 당군이 치룬 3대 격전이었으며, 여기서 당군이 막혔기 때문에 이세민이 바다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즉 장량이 안시성에 있는 군대를 구원하기 위해 건안성 방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고구려군에 의해 깨지게 됨에 따라, 이세민은 바다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2. 당군의 퇴각이 최단거리로 퇴각했다는 것은 물론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안시성에서 뒤로 돌아야겠지요. 하지만, 안시성 앞에 요택은 더 사람이 다닐 수 없는 요하 하구에 가깝기 때문에 이리로는 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요동성까지는 올라갔지만, 그 보다 더 북쪽인 신성앞까지는 갈 수 없었지요. 신성은 대성으로 요동성에 구원병을 보낼 만큼 신성의 고구려군대의 활동범위는 넓습니다. 특히 신성의 고구려군은 요하를 건너 요서지역에도 많이 활동합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부분입니다. 즉 이세적이 온 신성로(영주-신성의 구간)가 당시 당군의 육상보급로이며, 이곳은 특별한 장비없이 건널 수 있는 편안한 길입니다. 여기에는 수나라 군대가 만들어놓은 용도라는 뜬다리가 있기도 해서 쉽게 군대가 오갔습니다.
그런데, 이세민은 이리로 못갑니다. 요택으로 돌아갔때 문제는 그들이 올때에는 부교를 만들어 편하게 건너왔지만, 이미 부교가 불타버렸기 때문에(기록에는 이세민이 요택을 건너온 직후, 스스로 불태웠다고 되어있지만, 고구려군에 의해 불태워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서 요택으로 가는 것은 사지(죽을 땅)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백암성까지 요택이 있다는 것은 당시 지리개념을 보면 잘못된 것입니다. 백암성은 요동성보다 동쪽으로 천산산맥을 넘기 위한 기지로 당군이 동쪽으로 진군하기 위해 공격했던 것으로 보이니다. 백암성을 당군이 공격할 때 오골성에서 군대를 지원하는 것은 백암성이 요동성보다 분명 동쪽으로 치우쳐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세민이 요택을 선택한 것은 분명 고구려군에 의해 강요된 것이며, 그들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 [원본 메세지] ---------------------
1. 장량의 수군을 막지 못한 고구려수군.
표현이 좀 이상한데... 한번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제 역사스페셜에서는 고구려의 수군이 장량의 부대를 처음부터 막은
것 처럼 표현하던데... 어찌 되었건 장량은 사성에 주둔하게 되기 때문
에 장량의 수군이 압록강부근까지 간 것은 사실이고 고구려수군이 그걸
막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군의 역할은 그 이후 하나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그 이후 고구려수군이 장량의 부대를 효과적으로 저지시
켰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해 봄직도 합니다.
왜냐하면 고구려의 수군입장에서도 고구려의 중요한 방어지대인 요동반
도 남단에서 활동하는 것 보단 압록강으로 가는 수군을 막지 않았다가
장량의 부대가 압록강부근으로 진격하여 주둔했을때 포위망을 좁혀
수나라 수군의 활동을 저지한다는 계책도 충분히 들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병법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보아도 차라리 장량의
수군을 압록강에 묶어 놓는 것이 고구려 수군으로서도 편한일이고
효과적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처음 장량의 부대가 압록강으로 진군할때
에 일부러 막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볼수 있다고 봅니다.

2. 요동성문제.
이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생각을 해 볼수 있습니다.
우선 저는 요택의 북쪽범위를 어디까지 보아야 하는 가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가설을 세운 것입니다.

1) 당 태종은 최단거리를 선택한 것이다.
백암성과 개모성 요동성이 당군의 점령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하하구
로 갔다고 하는 것은 백암성까지 요택이 분포되어있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태종으로서는 최단거리 퇴각을 선택한 것이다.

2) 백암성이나 개모성, 요동성등을 고구려군이 다시 탈환한 것이다.
신성의 위치는 동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아무리 신성에서 고구려군의 활동이 있었다 하여도 과연 당군의 퇴각로
를 막을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장량의 부대만 하더라도 원군이 보충되어 왔을 것이라 생각되
는데 황제가 이끄는 부대에는 원군이 배는 더 많이 충당되었을 것인데,
이러한 원군과의 싸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수 있었는
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 정도 2가지에 대한 끄적거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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